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3-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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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국가보조금을 추가로 받겠다고?

박하순 | 노동자운동연구소 소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꺼내보겠다. 난 20여 년간 사회운동에 가담해 오면서 이렇다 할 의미 있는 정치적 발언이나 실천을 한 적이 별로 없다. 물론 내가 사회운동에 가담한 것 자체, 그리고 내가 이제껏 속해 온 조직에 몸담은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정치적 발언이고 실천이라 하겠으나, 운동사회에서 의견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 내 의견을 명확히 제출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하거나 실천을 조직한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내 활동의 대부분은 전체 운동사회가 거의 다 동의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노조활동 지원사업 등에 국한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한편으로는 내가 사회운동을 하겠다고 처음 들어간 단체, 즉 경영분석을 통해 노조활동 지원 사업을 하는 단체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첨예한 쟁점에 대해 정확한 발언 및 실천을 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후자 즉 실력부족에 대해 변명을 조금 하자면 내가 보기엔 사회운동 안의 주요 사안들 모두가 원래 녹록치 않은 사안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사회 내 모두가 각자 혹은 각 조직의 입장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은 많이 하지만 투쟁요구의 마련과 투쟁의 수행 및 마무리를 제대로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세력관계에 대한 정확한 판단 및 그 변화에 대한 판단,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노동조합원들 또는 투쟁대오의 상태, 지배세력의 다양한 탄압수단에 대한 예상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또한 투쟁 이후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더구나 현 시대는 과거의 모든 것이 의문시되는 정세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올바른 발언과 이에 따른 실천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내가 정치적 발언이나 실천을 한 사례가 몇 있긴 한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민주노총 사무총국 성원으로 일할 당시인 2001년 민주노총(총연맹)이 국고보조금을 받기로 한 대의원대회 결정에 대한 반대 표시로 총연맹에 사표를 낸 것과 2005년 이수호 집행부 당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 사건에 접하여 이수호 집행부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한 글(사실 이것도 누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을 쓴 것 정도다. 후자, 즉 강승규 수석 사건은 열악하디 열악한 택시조합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투쟁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억제하면서, 그 대가로 노조 간부가 사업자들에게 이득을 취한 사건이다. 누가 봐도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비리독직 사건이었고 민주노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내 글의 취지는 이수호 위원장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런닝메이트에 대해 사무총장과 함께 연대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글을 쓰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사무총국 일부 성원들의 집행부 사퇴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글이었다. 결국 이수호 집행부는 물러났고,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데 일조한 것 같아 나름 뿌듯한 실천이었다.

이제 전자, 민주노총의 국고보조금 수령 결정을 계기로 한 사표제출 건을 약간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당시 민주노총에서는 지역본부 차원에서는 자치단체로부터 민주노총의 뚜렷한 결정 없이 사무공간을 무상으로 빌려 쓰는 등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김대중 정권 때의 일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사후 추인하고, 또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총연맹도 건물 임대료 정도의 지원을 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고 이것이 결국 대의원대회에 안건으로 제출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국고보조금은 민주노총이 국고보조금을 받겠다는 결정을 하기 전부터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었고, 당시 노동부는 민주노총이 국고보조금을 받겠다는 결정을 하지도 않았는데 예산 배정을 해놓고선, 이번에 안 타가면 예산이 없어진다는 등 설레발을 쳤다. 내가 보기엔 정부가 민주노총을 구어 삶기 위한 차원에서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국고보조금 수령 안건이 제출된 이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대의원대회가 몇 차례 유회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 이 안건은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감옥에 있었던 민주노총 위원장께는 미안한 감정이 없지 않았지만, 주변 민주노총 간부나 활동가들에게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사건이 있기 훨씬 전 1998년 6월 민주노총 사무총국에서 일하게 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즈음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간다는 결정을 하였을 때 사표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사표제출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는 일이 너무 급작스럽게 닥쳐서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고, 민주노총 생활을 조금 더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아주 쉬웠다. 오래 전부터 이 안건이 통과되면 민주노총을 나간다고 공언해 왔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엔 국고보조금을 받는 행위는 민주노조로서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국고보조금 수령 건은 대중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정부로부터 돈을 받으면 한국노총과 다를 게 무엇인가라는 대중적인 의문이 일었고, 일부 조합원들로부터는 자조 섞인 한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의무금만으로는 조직 유지도 어렵고, 그래서 정부로부터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정부 및 자본가와 한패가 되어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는 한국노총을 전노협-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는 경멸과 조소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고, 당시에는 국고보조금을 받지 않는 민주노총, 재정적으로 자립적인 민주노총 그 자체가 민주노총 조합원이 가진 자부심의 원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런 반응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일부 간부와 대의원들은 국고보조금 안건이 제출된 초기, 당시의 이갑용 집행부를 “총연맹 활동가 상근비도 제 때 못주는 무능한 집행부”로 힐난하기도 하고, “우리가 낸 세금인데 우리가 좀 쓰는 것이 뭐가 문제냐”면서, 약간의 재정적 압박을 이유로 국고보조금 수령을 주장하였다. 그리고는 건물임대료만 받으니 자주성을 침해당할 우려는 전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내가 당시에 가진 생각은 이러했다. 소소한 이유로는 국고보조금 수령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세금을 낸 국민의 일원으로서 그 일부를 돌려받는다 치더라도, 민주노총은 결국 노동자의 일부가 조직되어 있는 것인데 전체 노동자 중 왜 조직된 노동자만 세금을 돌려받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조직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과 비교해 형평성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또한 만일 정권이 태도를 바꿔 국고보조금을 주지 않으려 할 경우 재정적으로 의존적이게 된 민주노총이 국고보조금을 계속 수령하기 위해 정권의 이러저러한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었다.

국고보조금 수령에 반대한 보다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정부 재정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일부가 국가에게 분배된 것인데, 왜 민주노총은 사회를 변혁하여 국가재정을 비롯하여 잉여가치 전체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가지려 하지 않고 정부 재정 중 극히 일부,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치는 정도의 재정을 받아쓰겠다고 저럴까? 한마디로 좀스러워 보였고, 변혁을 포기한 태도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변혁의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고보조금 수령은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이수호 집행부 사퇴를 낳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독직 사건도 사실 당시 글에도 썼던 것이지만 내겐 국고보조금 수령과 궤를 같이하는 사건이었다. 민주노총이 국가보조금을 수령하는 등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거나 이런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가와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때에 따라서는 노조를 탄압하기도 하고 노조 간부를 매수하기도 하는데 둘 다 국가와 자본의 매수기도에 넘어간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글 제목도 “국가와 자본의 매수에 무감각해진 게 아닐까요”였다.

결국 내 스스로 정치적 발언과 실천을 했다고 여기는 사건은 모두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민주노조를 견지하자는 정도였던 것이다.

민주노총 안에서 다시 국고보조금 수령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월 51차 대의원 대회 유회로 안건이 처리되지는 못했지만 민주노총이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더 받아내겠다는 안건이 제출되어 있다. 2001년 대의원대회에서의 결정, 즉 “건물(사무실, 교육연수원, 복지관, 상담소), 토지 등의 부동산 및 그 유지에 따른 비용”을 넘어 이제는 사업비도 받아내겠다는 것이고,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미조직비정규사업에 쓰겠다고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작년 지자체 선거 당시 선거 관련 요구로 비정규 중소영세 노동자를 위한 지원센터 설립 등을 내걸었고, 이번에 당선된 일부 진보적인 지자체에서 이제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위한 재정까지 타내겠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1년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정부보조금의 수령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의 침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업비에 대해서는 일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된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금기마저 허물고, 민주노총 사업 중의 핵심사업인 미조직비정규사업에 정부보조금을 타내 쓰겠다는 것이다.

대의원대회 당시 좌파단체 명의의 성명서에도 지적된 것처럼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어 보인다. 첫째, 비정규 및 미조직, 실업 노동자 조직사업은 민주노총 핵심사업 아니던가? 민주노총 핵심 사업을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받아서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핵심 사업일수록 그 사업비는 민주노총 조합비로 충당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들 사업을 정부 돈을 받아 한다면 이는 민주노총의 자주성을 심대하게 침해하게 될 것이다. 정부 돈을 받아서 하는 느슨한 사업의 성과가 그리 클 리도 없겠지만 설혹 비정규 미조직 사업이 대규모로 벌어질 경우 해당 자본가나 단체에서 정부나 지자체에 압력을 넣지 않을까? 우리의 판단으로는 정부나 지자체 재정을 지원받아 진행하는 미조직 비정규 사업은 자본가와 정부 및 지자체의 간섭으로 사업성공의 가능성이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업방향은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민주노조운동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보수적인 정부나 지자체가 들어선다면 어떻겠는가?

셋째, 지금은 “공공성과 사회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국가재정을 활용하여 진행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미조직 비정규사업비에 한한다고 하나 그 범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확대되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이는 2001년 대대 결정의 범위를 지금 허물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이렇게 정부나 지자체 재정 의존도를 높여간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자주성을 얘기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나 지자체 재정을 통한 사업은 관료적인 조합간부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업성과는 별로 없고, 그 사업방향이 모호한 채 보조금이 주로 관련 간부의 임금으로 지불될 때, 그 간부의 행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노총 노조간부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을 더 받아내자는 발상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노총과의 조직경쟁도 작용한 듯한데, 한국노총과의 조직경쟁이 노조운동의 발전으로 귀결되지 않고 노조관료 숫자 키우기 경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결국 추가적인 보조금 수령은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을 훼손해 결국은 민주노조운동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럴듯한 사무실과 상당한 규모의 노조간부를 거느리는, 그러나 자주적인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은 쇠락한 민주노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민주노총의 국가보조금 추가 수령안건은 이후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부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분열을 극복하고, 그로기상태에 빠진 민주노총을 다시 곧추 세워, 국가와 자본의 탄압공세에 힘 있게 대처하는 하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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