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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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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사회복지정책 담론 비판과 대안 탐색

모지환 | 대구대 BK21계약교수
서론

신자유주의는 서구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서 전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착된 복지국가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성공적인 비판을 전개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후의 복지국가가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자유와 모순되며, 그러한 자유는 오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서만 보증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제시된 복지국가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노동력의 재상품화, 국영기업과 복지서비스의 사유화, 민간부문에 대한 탈규제이다. 그러한 정책은 국가개입으로부터 시장의 해방, 특히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다.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은 노동시장에서 자본에 유리하게 세력관계를 변동시키고, 저임금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과 보조의 수단으로서 복지국가를 변화시키기 위한 법률적 및 행정적 변화를 포함한다. 이 변화들은 노조의 파업능력을 약화시키고, 조합주의적 구조와 제도를 해체시키며,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에 대한 기대를 낮춘다.

결국 이것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이동성을 촉진하고,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규율적 힘을 강화하려는 시도들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임금은 감소하고, 사회적 재생산의 수단으로써 임금관계는 강화된다. 생활보조금과 여타의 복지 프로그램은 사회적 재생산에서 최소화되고 주변화되며, 또한 그것들은 차별적 대상설정을 통해 특정한 집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밀접히 결합된다.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는 '혼합복지경제'(mixed welfare economy)를 추진하는데, 여기에서는 직접적인 공적 급부는 감소되고, 사적이고 이윤발생적인 서비스는 장려된다. 또한 국가는 기업과 국가의 공동노력, 자원단체, 자선단체, 자조단체 등을 지원한다. 사유화뿐만 아니라 재정적 및 행정적 정책 또한 복지 서비스의 상업화와 비국가적 기구를 통한 제공을 촉진시킨다. 이러한 조치들이 실패하여 국가가 최후의 도피처로서의 역할을 할지라도, 국가는 그 부담을 가능하면 가계, 친척, 공동체 등으로 떠넘기려 한다.
신자유주의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영국과 미국에서 전후의 복지국가 체제를 전면적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대처와 레이건 정부가 채택한 신자유주의 노선은 사회적 합의를 역전시킨 것이었다.

비록 그와 같은 노선이 이념적으로 '인민주의'(popularism)의 형태로 포장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는 사회적 합의의 한 축을 형성하는 노동계급을 사회적 협력의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것이었다. 복지국가의 사회적 보호와 재분배 기능이 축소됨에 따라 노동력을 '탈상품화'하려는 복지국가의 목표는 폐기되고 '순수한' 시장의 논리가 전면적으로 부각되었다. 다시 말해서 노동력에 대한 복지국가의 보호기능이 시장의 규율적 힘으로 대체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1980년대의 그와 같은 정책이 노동시장에서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실업률을 증가시켰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고용유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이는 정부가 고용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시장의 원리에 의해 자연적으로 고용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견해에 의해 실업은 시장의 자연적인 귀결로 간주되었다. 신자유주의 정부는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핵심적 정책이었던 완전고용의 책임을 거부하였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 수준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시장의 논리가 지배함에 따라,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인플레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화 긴축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1980년대에 실업률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전략이 성장과 고용 및 삶의 질의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에서 유효한 대안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가? 최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들은 '생산적 복지' 담론을 포함하여 변형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필요로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진행한다. 아울러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블록의 형성 가능성을, 시민단체가 갖는 사회복지운동에서의 한계 극복이라는 테마와 관련시켜 논의하고자 한다.

'생산적 복지' 담론을 둘러싼 논의구도 읽기

국민의 정부는 1999년 4월에서 8월에 걸쳐 '생산적 복지'라는 제3의 국정이념을 제시하고 부각시켰다. 대통령의 깊은 관심과 직접적인 언급으로 시작된 국정이념인 만큼 정부 각 부처는 물론이고 관련 연구기관, 학계의 '생산적 복지'에 대한 논의는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생산적 복지의 의미를 규정하고 생산적 복지가 과연 한국의 고유한 복지이념 혹은 복지모델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는지 그 여부를 따지는 원론적인 논의,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개별 정책들의 적합성 여부를 논하는 구체적인 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생산적 복지' 담론이 제기된 배경을 대외적 상황과 대내적 상황으로 대별하고 있는 여유진(1999: 10-12)은 "대외적으로 볼 때, 생산적 복지의 제기배경은 경제의 세계화와 서구 복지국가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경제의 세계화는 국가간 경쟁과 자본의 상호침투를 가속화하며, 이 과정에서 지식기반산업으로의 경제구조의 급격한 재편과 이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유연화와 재교육의 필요성은 서구 복지국가의 변화를 요구해 왔고, 최근 이러한 변화요구에 대한 대응은 영국과 독일,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제3의 길'로 구체화되기에 이르렀다. 외환위기로 인해 세계경제 속으로의 편입이 가속화된 시점에서 이러한 '제3의 길'은 기존의 유럽선진국의 사회복지가 가지는 고비용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서 김대중 정부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고 대외적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의 '제3의 길'의 한국적 표현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생산적 복지론은 제3의 길 노선의 원초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더해, 우리나라에 적용되면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복지의 과잉'이나, 비효율적인 복지확대를 도모하는 서구식의 '좌파 정치'의 부재로 인해 다른 결과를 빚어 내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 김영삼 정권 시기와 그 이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군살도 없는데 군살빼기 정책을 기조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무분별하게 도입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2의 길 또는 비생산적(?) 복지가 부재한 상태에서 제3의 길이나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복지를 가능한 한, 안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경제 위기의 도래로 어쩔 수 없이 확대해야 했던 사회적 안전망을, 생산성의 이름 아래 최소치만 놔두고 거두어들이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남구현(2000)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즉 '제3의 길'론과 '생산적 복지'론은 추상성의 수준이 다른 차원의 담론이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계속해서, "대내적으로 볼 때 첫째, 경제위기 관리에서 보여준 외형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정책기조의 신자유주의적 편향성은 심각한 폐해를 가지고 왔다. 이러한 빈부격차의 확대와 빈곤의 증가로 인한 사회불안에 대한 위기의식이 생산적 복지의 주요한 제기배경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주지한 바와 같이 애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이 좌초됨으로써 심각한 민심 이반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기된 생산적 복지는 상당한 도구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기왕의 사회복지 정책과 프로그램들을 변화하는 경제체계 속에 적응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생산적 복지가 제기된 배경에는 자본주의적 축적구조의 변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사회복지를 조응시키고자 하는 축적기능적 의도와 정치적·사회적 불안정과 대중의 충성심 이반에 대한 사회복지적 처방이라는 정당화 의도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여유진(1999: 12)이나, "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생산적 복지'가 비록 구체적 방법론에 있어서는 미처 내용을 갖추지 못했지만 경제위기와 시장경제가 배태한 사회적 위기에 대응하는 논리라는 명백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출발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정책이 한계에 부딪히자 이를 치유하는 대안논리로서 생산적 복지가 등장한 것이다"라는 박능후(2000 : 37)의 파악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생산적 복지 담론의 형성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이들은 축적과 정당화의 모순이 생산적 복지 등장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의 기저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혹은 효율과 평등이 언제 어디서나 양립하기 어렵고 필연적으로 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논리가 깔려있다.

축적과 정당화의 이분법적 논리는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의 논리와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신자유주의와 이론적 가정이 다르고 정치적 입장 또한 정반대지만, 일차적으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동일한 맥락에서 비판될 수 있다. 축적의 논리가 정당화의 논리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진정한 복지를 얻으려는 노력은 '시지프스의 노동'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사회복지운동의 한계와 신자유주의 저항블록의 가능성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부의 각종 정책(특히 사회복지와 환경 부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이들 시민단체를 비중있게 보고 있다. '국민의 정부' 들어 국가적인 쟁점이 있을 때 위원회를 조직하는 일이 많은데, 이때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유관 시민단체의 대표들을 위원으로 참여시키고 있는 데서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시민단체가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에 대한 영향력도 매우 크기 때문에 이익집단들도 시민단체의 입장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단체가 이익집단간의 조정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하고 있다.

경실련, 참여연대, 건강연대 등과 같은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은 이익집단들간의 갈등과 대립이 가장 강렬했던 한약분쟁과 의약분업 분쟁에서 조정안을 만들거나, 이익집단들이 합의에 응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정부가 각종 위원회에 시민단체의 대표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이유도 이들의 갈등조정 역할을 인정하고 또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익집단들간의 이익 상충은 정부가 조정한다. 사회복지정책을 포함한 국가 정책과 직접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그들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할 경우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를 조정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정부의 기본적 임무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이익집단 이해관계 조정 역할을, 시민단체가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특이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우리는 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찾을 수 있다.

장기간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한 독재 정권과 정부 고위 관료들의 만연된 부정부패는 시민들의 정부 불신을 심화시켰다.
반면에 오랫동안 재야에 몸담고 있으면서 시민들의 권익을 옹호해 왔던 시민사회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의식있고 패기 넘치는 청년들과 힘을 합쳐 시민단체를 결성하고, 그 동안 독재 정권에 의해 억압당했던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들을 대변하고 또 쟁점화시킴으로써 시민사회 내부에 광범위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나 사회적 쟁점에 대한 대응 나아가 이익집단들간의 이익상충 문제도 정부보다는 시민단체가 나서주길 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익집단들도 시민사회의 시민단체에 대한 강한 신뢰와 지지를 무시할 수 없어 시민단체가 이해관계의 조정자로 나설 경우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비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의사단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사실상 관철시켰다. 의사단체는 이익집단의 조정자인 정부, 상대 이익집단인 약사단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시민단체를 제압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관철시킬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이해관계 중재자로서의 시민단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편, 생산적 복지의 핵심내용인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적 복지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다. 이것은 생산적 복지의 이념화 작업이 기초보장제도와 생산적 복지를 논리적으로 연계짓지 못하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기초보장제도를 지지한 집단은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기초보장제도 도입에 이론적 역할을 수행한 생산적 복지이념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복지우호집단이 기초보장제도와는 별개로 생산적 복지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견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 시민운동의 다양한 양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97년 말 IMF 구제금융 이후 지금까지 김대중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는 IMF의 권고에 따른 구조조정과 더불어 일련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벌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면서 재벌에 대한 비난과 국가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동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권은 초기부터 개혁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와 시민사회의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면서 시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전략을 사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제2건국 추진위원회'라는 관변적 시민운동 단체의 결성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IMF 구제금융 이후 사회 전반적인 개혁의 요구가 확산되면서 김대중 정권은 일련의 개혁조치들 - 재벌개혁, 금융개혁, 사회보험제도의 확대, 여권신장, 인권신장, 교육개혁 등 - 을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재벌개혁 운동, 소액주주 운동 등을 통해 정부의 개혁정책을 비판적으로 지원하였다.

한편 신자유주의적인 세계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WTO체제 속에서 국제적인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 전지구적 환경위기 등이 심화면서 정부간기구, 특히 선진국 정부들이 주도하는 시애틀라운드, 다보스 포럼 등 국제회의에 반대하는 전세계 비정부기구들의 저항이 확산되고 또 급진화되고 있다. 각국의 노동, 농민, 환경 단체들 및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비정부기구 연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 단체들도 이러한 국제적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지역 간의 갈등, 이익집단들 간의 갈등, 개발과 환경을 둘러싼 지역주민들의 저항과 요구도 점차 증대되고 있다. 위천공단의 건설을 둘러싼 대구지역 시민들과 낙동강 하류지역 시민들 간의 갈등, 한강 상수원 보호정책을 둘러싼 보호지역 주민들의 정부정책에 대한 반발,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의 처리를 둘러싼 부산지역 시민들의 정부정책 반대시위, 한약조제를 둘러싼 한의사들과 약사들 간의 갈등,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약사-정부' 간의 갈등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갈등들이 나타나면서 일부 지역시민단체들은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기도 했다. 반면에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에 의해 추진된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정부의 건설 포기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운동단체들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시민사회의 변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본다면,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고도화, 국가의 점진적 민주화, 일상생활의 분화와 쟁점의 다원화 - 환경, 여성, 인권, 세대, 탈권위주의, 소수자 등 - 속에서 시민사회의 구성과 갈등 양상이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증대되면서 동시에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분화되고, 쟁점이 다원화되었으며, 다양한 개혁과정에서 이익집단들의 저항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또 이익집단들 간의 갈등도 증대되었다.
국가는 전반적으로 개혁적, 민주적 성격을 점차 강화시켜 왔지만 근본적으로 온건 개혁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래서 시장위주의 경제정책과 조세정책을 펼침으로서 재분배를 위한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펼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개별 이익단체들이나 시민운동 및 민중운동의 요구들에 대한 국가의 대응방식은 다원화되고 또 차별화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따른 계급적 불평등과 이로 인한 계급적대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노동운동은 국가에 대한 중요한 저항세력으로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도 분화되어 온건한 시민운동을 넘어서려는 시민운동이 등장하였으며, 노동운동과 시민운동과의 연대도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시민사회의 다원화와 복잡화는 시민사회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이론의 다원화와 복잡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실천적, 정치적 입장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의 시민사회론이나 사회운동론이 이러한 시민사회의 다양한 양상들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최근 부각되고 있는 '비정부기구(NGO)론'의 문제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비정부기구(NGO)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운동단체들을 비정부기구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관변적 성격을 띤 단체들이나 일반 사회단체들을 시민운동 또는 사회운동 세력인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경향이다(정종권, 2000: 134). 이러한 경향은 일반 사회단체들이 생활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더욱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정부기구론은 특히 공공선을 강조하면서 관변적, 보수적 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정당화하는 반면에, 노동운동을 이익집단의 운동으로 규정하면서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배제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같은 글: 136).

정종권(2000)의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 비정부기구론(NGO)의 시각은 국가-시민사회-경제간의 균형과 상호견제를 강조하는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 특히 하버마스의 이론과 맥이 닿아 있다. 주성수는 민중주의 모델과 다원주의 모델을 구분하면서 미국식 다원주의 모델을 시민사회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민중주의 모델은 정부와 기업에 대한 일반 시민의 투쟁과 견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다원주의 모델은 정부, 기업, 제3섹터 등이 각기 독립적이고 동등한 주요 역할을 맡으면서 파트너십의 조화를 이루는 제도적 행위자들의 공조활동을 강조한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가장 중시되는 것이 바로 이 모델이다. 여기서 그는 한국의 경우 1980년대 말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민중주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났다면, 이후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로 오면서 점차 다원주의 모델로 전환되고 있다고 평가한다(주성수, 2000: 23-4).

미국식 다원주의 모델은 정부와 사회복지단체들이나 자원봉사단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사회적 서비스 체계를 설명하는 데에는 적합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비정부기구들의 분리적, 파편적 경향으로 인해 법적, 제도적 개혁을 위한 연대를 형성하여 정부나 의회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모든 비정부기구가 사회적 서비스를 위한 정부 보조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성격에 따라 국가권력이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과 저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노동운동 단체나 환경운동 단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시장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시애틀라운드에 반대하는 세계적 비정부기구들의 연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러므로 비정부기구들의 다원성을 무시하고 시민사회-국가, 시민사회-시장(기업) 간의 파트너십, 또는 협력적, 동반자적 관계를 강조하는 모델은 쟁점과 정치적, 실천적 지향에 따른 비정부기구의 다양성을 파악하기 힘들게 하며, 특히 '자기제한적 급진주의' 전략은 국가와 경제에 대한 급진주의적인 운동을 비판하거나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하겠다.

사실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은 한국사회에는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은 중요한 사회적 조건들에 기반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물질적 풍요, 민주주의의 발달과 노동운동의 제도화에 따른 불평등의 완화, 조합주의적,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의 제도화, 탈물질주의적인 가치에 기반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 등은 국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해체와 변혁의 대상이 아닌 합리적 개혁의 대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국가-시민사회-경제' 간의 균형과 상호견제를 지향하는 자기제한적 급진주의 전략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각은 서구에서조차 좌파로부터 다양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서구의 나라들이 이미 이루어 놓은 성과물들을 이제 목표로 삼아 추구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사회에서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배이데올로기 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원자화된 소비자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고, 조직과 회원들과의 관계가 시장적 교환관계이며, 사회운동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고, 다양하고도 부가적인 이슈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장형' 시민운동단체(조대엽, 1999: 222)의 조직유형과 특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공공선에 대한 주장 역시 시장적 논리에 포섭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의 시민운동은 역사와 경험이 서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며, 노선적으로도 아직 분화되지 못하고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과 생산적 복지에 대한 입장의 불일치에서 보여지듯이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이러한 불일치는 다른 영역보다도 심하게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시민단체의 역할 정립을 위해서는 운동의 쟁점, 이데올로기, 주체, 운동방식과 자원동원 형태, 이해관심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 보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흔히 노동운동진영과 시민운동진영간의 사회복지 연합전선의 필요성을 요청하곤 한다.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이 글에서 논외로 한다. 다만, 복지연합전선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사회복지 연합전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잘 조직화되는가이다. 노동자계급은 재분배체계로 기능하는 자본주의국가로부터 최저한의 물질적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노동시장 내에서의 지위 등 내부의 분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들이 자본주의국가에 대해 상이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특히 경제위기로 인해 복지분배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예컨대 정규직 상층 노동자계급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은 세금과 복지의 상쇄관계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비노동인구나 노동자계급의 최하층이 수급자가 되는 선별적 프로그램들(예를 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말할 수 있다)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분파적 이해관계로 분열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잘 조직화되어 하나의 계급으로서 사회복지운동을 견인하는가는 복지연합전선의 견고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현재 사회복지 영역은 노동운동보다는 시민운동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이끌려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사회복지 연합전선의 견고성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줄 노동계급 역시도 분절화 양상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복지 연합전선의 정치적 성격과 견고성도 희석될 여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결국 사회복지에 대한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의 이익의 정치적 조직화와 중간계급과 시민단체의 동향에 의해, 사회복지연합전선의 방향과 성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공정한 분배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창출해낼 노동자계급의 성장과 중간계급 간의 연대형성, 그리고 그것을 국가정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의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가 허용할 수 있는 분배개혁의 객관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이런 사회적 세력관계는 구조가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나마 복지개혁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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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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