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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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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관계의 변화, 동북아시아 정세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박준형 | 인천지부 회원
동북아시아 평화질서와 북한

동북아시아 평화질서와 남북한 평화체제의 구축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반도 탈냉전의 제도화는 북-미관계의 군사외교적 문제·북-일관계의 역사적·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선행조건으로 한다. 또한 이는 남북한 평화체제에 대한 주변국들의 동의를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신질서구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역으로 한반도에서의 변화는 동북아 각국의 관계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 된다. 현재의 급변하는 남북관계, 북-미 관계의 변화는 동북아시아 정세 전체의 변동을 쟁점으로 제기한다.

북한은 1990년대 동안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현재는 '강성대국'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왔다. 이는 북한 사회의 '고갈되지 않은' 가용자원으로서의 군사력을 국내정치에서나 대외관계에서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북한의 모습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1990년대 개발해온 핵-미사일은 애초 군사적 생존전략에서 이제는 미국과의 협상의 카드로 변화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 말부터 소련의 군사동맹 파기,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등의 위기를 자주적인 국방력의 확보로 대응하려 했지만,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는 조건의 협상은 북한의 대응이 중대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은 핵-미사일 등의 자위수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군사적 대결 상태라는 정세 자체를 변화시키고, 이 를 위해 이전의 자위수단을 활용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군사력 확보를 통한 자주권의 수호라는 전략이 변화한다는 것. 이전의 군사적 자위수단 확보와 체제 유지는 미국의 전략을 포용전략으로 변화시키게 되었는데, 북한은 이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과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일본과의 수교를 통해서 경제봉쇄를 풀어 군사적 위협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쇄 정상회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교 일정을 보여주는 아래의 표(매일경제 10.14)는 현재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의 폭을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북-미 관계의 변화가 단지 양국간의 관계의 변화라는 측면, 혹은 이에 따른 남북 관계의 변화라는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동북아시아 정세 자체를 변화시킬 쟁점이라는 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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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장소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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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31 베이징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6.13~15 평양 김대중 대통령
7.19~20 평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11월 초 평양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11월 말~12월 초 평양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내년 초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내년 봄 서울 김대중 대통령
미정 미정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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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이전, 베이징 방문으로 시작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는 남북 정상회담과 '주변 4강' 정상 모두와의 회담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장쩌민 주석과의 회담은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이어지는 북-미 관계의 개선에 대해 북한의 후견자이자 동맹국인 중국과의 의견 조정과정으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진행되었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은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이어, 내년 남북 정상회담(남한 방문)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답방을 앞서 계획함으로서 러시아를 배려할 것을 보여준다. 곧 진행될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일정이나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는 모리 일본 총리와의 회담계획들은 올해 초에만 해도 예측하기 힘들었던 변화이다.

이 연속적인 정상회담의 시작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북-중 관계의 비중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히 최근에 이루어진 고위급회담인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홍성남 내각 총리등의 중국방문에서, 장쩌민 주석은 양국관계 최초로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할 것을 공식적으로 권고하였다. 이는 이미 북-미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북한이 대외 정책을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주문이었다기보다는, 북한이 추진하는 방향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기조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환영입장 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 전역미사일방위(TMD)체제 구축 움직임, 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미일방위협력지침' 이른바 新가이드라인) 등이 직접적으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공동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평양에서 이루어진 북한 김일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츠하오톈(遲浩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의 회담은 이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공조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문제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파들이 NMD·TMD를 추진할 것을 주장하는 명분 중에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라는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이 중단될 경우, 이란 및 파키스탄에 대한 북한의 기술제공이 불가능해져 미사일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NMD, TMD배치계획도 재검토되어야한다는 점.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회담에서도 이 쟁점은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중국의 경우에는 북-미관계의 개선이 북한의 미사일 포기를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북한의 미사일 포기는 미국의 NMD구상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효과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러시아와의 관계는 19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 이후 급속하게 악화되었던 상황에서 90년대말에 다시 복원된다. 1997년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북·러 기본조약실무회담부터 199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1999~2000년 대외정치분야 상호협력 공동사업안'의 합의로 이어지는 가시적인 변화가 이어졌다. 러시아의 이러한 대북 영향력 확대를 위한 시도는 푸틴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러시아 역시 미-일의 TMD 구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북한과 공동으로 제기하고 있다.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과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화

미국은 페리 프로세스의 일정에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는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경제제제를 완화하는 단계에 와 있다. 북미 대화가 급진전하면서, 미국은 자신이 주도해 만든 미사일 기술통제협정(MTCR)에 따른 규정을 북한이 지킬 것을 수교의 전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의 미사일 수출을 통제하고 계속적인 개발을 제한할 수 있게 될 것인데, 동북아시아와 중동 모두에서 도전을 막아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일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중동 지역에서 미국에 적대적인 시리아와 이란 등의 국가들에게 미사일 기술을 판매해왔다는 점에서, 이는 동북아시아의 분쟁을 봉쇄하는 효과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을 축으로 하여 주변 4강의 쟁점이 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문제의 해결방향은 모두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핵심쟁점은 북한의 미사일과 NMD·TMD 배치계획의 관계, 그리고 주한미군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양국간 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다자간의 쟁점이다.

북-중, 북-러 간의 각종 회담에서 빠지지않는 의제가 NMD·TMD 문제라는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미사일 포기가 선언될 경우, NMD·TMD의 포기를 요구하는 명분을 얻는 셈이다. 북한의 경우, 군사적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는 쟁점이 NMD·TMD로 반드시 맞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보면, 북한이 미국에 대해 이 쟁점의 논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까지 고려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한미군 문제에 있어서는 북한이나 중국이나 모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하여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중국도 북한과의 국방부장 회담에서 주한미군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등 주한미군 철수를 직접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근본적인 입장을 변화시킨 것이라 볼 수는 없으나, '현재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가 동북아시아 힘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주한미군 철수가 가져올 힘의 공백이 촉발할, 군비경쟁과 지역의 군사적 불안정은 모두에게 어느 정도는 공통된 우려사항이다.

북한은 미군 철수를 협상의 전제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미군의 위상이 다시 설정되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려 하고 있다. 평화협정과 남북 관계의 실질적 개선('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의 제도적 수준까지 포함하는)을 통해서 미군의 위협을 제거하고, 결국에는 철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를 위하여 미군철수 요구를 먼저 요구하던 과거의 태도를 바꾸어 남북관계의 개선을 연방제 등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 위상을 변화시키더라도 미군이 주둔하는 것 자체의 의미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상 쉽사리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군의 위상변화를 통한) 직접적 군사 위협의 약화라는 것과 (미군 철수를 통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군사적 위협의 제거라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

북한이 이 쟁점의 한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북-미, 북-일 수교와 이를 통한 경제제제의 완화, 식민지 배상금의 집행, 경제협력 강화 등의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 (또 그러한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해 갈 것이다. 이는 '교차승인'이라는 쟁점을 부각시키게 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사회진보연대} 8/9월 합본호, [미완의 교차승인 10년, 미완의 논쟁 10년] 참고)

북한은 이러한 군사적 균형 속에서 한반도 내의 평화정착을 제도화시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이는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투표를 할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발언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남북관계의 공식적인 제도 개선을 통하여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 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의 변화와 미군의 위상조정, 장기적으로는 미군 철수를 다시 쟁점화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라는 것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남북관계의 제도적 수준의 변화라는 것으로 마무리하기에는 쟁점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여전히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의 문제는 논쟁적이다. 최소한 주한 미군의 위상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각국의 이해관계가 조정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느끼는 군사적 위협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특히 미국이 계속 TMD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미 한국의 미군기지에도 요격미사일을 배치할 계획이 있다는 점 등을 상기해보자.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문제가 동북아 안정을 위한 완충역할을 할 것이라는 합의가 힘겹게 이루어진다하더라도, 그 위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고는 중국과 러시아도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위상의 근본적 변화란 곧장 철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한미군의 '자연스러운' 철수라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결국 '(평화유지군으로의) 위상변화'라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남북한 평화 체제의 제도화를 통해 미군의 위상변화-철수라는 것이 가능할 지도 미지수이다. 오히려 미군의 위상이 문제되는 경우에, 남북관계의 급격한 진전에 미국이 제동을 거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한편으로 NMD·TMD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군수자본의 이해가 반영되는 폭과 수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인데, 이 경우 미사일 협상을 다시 어려운 국면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러한 우려는 각국 협상이 빨리 진행되도록 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년 이후에 이 협상이 불안정한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남북한 교차 승인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시작되는 새로운 한반도 정세가 미국의 의도대로 효과적인 분단관리 체제로 기능할 것인지, 혹은 북한의 의도(혹은 레토릭)대로 한반도의 진정한 통일과 제국주의의 축출로 나갈 것인지는 두고보아야 할 일이다. 일차적으로는, 변화되는 상황에서 미군의 위상과 역할의 조정, 철수 여부로 우선 드러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제국주의를 축출하고 민주적 변혁을 이루는 가운데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완화라는 전략은 한편으로는 동북아시아 각국의 세력균형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의 영향력이 동북아시아에 지속될 것을 전제하게 된다. 긴장완화 → 남북, 북미 관계개선→ 미군철수로 이어지는 '깔끔한' 도식은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긴장완화는 자동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축소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벌이는 외교활동의 결과는 갈등적인 북-미 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여 동북아시아의 분쟁을 '봉인'하는 '티핑포인트'가 될 수도, 혹은 새로운 혼란을 시작시키는 '티핑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혼란스러운 과정 속에서도 일단은 북한과 미국이 분쟁을 '봉인'하고 '평화공존'하는 상황을 향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쟁을 '봉인'한다는 것이 만약 미국의 포용(접촉)전략(engagement policy)의 동전의 뒷면인 봉쇄전략(containment policy)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성공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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