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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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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 不明, 조선의 운명

고지훈 | 회원,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
이참판네를 꿀꺽 삼킨 좌판네 사람들

옛날 아주 옛날에… 地球村 極東里 마을에 이참판이란 영감이 살고 있었다. 그가 사는 집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담하고 소박해서 살기엔 더 없이 좋았던 집이었다. 남향이라 볕 잘 들고, 오래됐지만 고풍스런 맛이 있어 오손도손 아웅다웅 살기에는 그만인 집이었다. 폼나게 잘 살지는 않았지만, 주변 哀慶事에 빠지지 않고 인사치레하던 정말 사람 좋은 집안이었다. 헌데, 집도 좋고 사람도 좋았지만 그다지 탐탁치 않은 집안 식구들과 이웃하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이웃해서 살던 이들은 저자거리에 좌판을 벌이던 상인집안이었다. 벼슬은 변변치 않았지만 대대로 글읽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일이라고 여기던 이참판네와는 가풍이 틀렸다. 이문에는 밝았지만 좌판댁 식구들은 얼마 전까지도 가훈으로 쓸만한 문구나 얻으러 기웃거리던, 덜 떨어지고 낫놓고 기역자 모르는 족속들이었다. 사람들은 키작은 그 집 식구들을 좌판네 사람들이라 불렀다나. 아무튼….

속옷도 제대로 못 챙겨입던 이 무식한 집안이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사연인즉슨, 어느날 維新秘 이란 秘書를 얻어 하루아침에 강동의 신흥 명문가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말 타면 경마잡고 싶은 건 인지상정. 주체못할 내공을 갖게 된 좌판네 왕초는 집이 좁다며, 지금껏 목에 뻣뻣이 힘주며 티껍게 굴던 이참판집 고택을 집어삼키기로 맘 먹었다. 일부러 감나무 가지를 늘어뜨려 담을 넘어다니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짐 싸들고 와 안방을 차지하겠다고 으름짱을 놓는다. 하루아침에 집주인으로 행세하던 이씨 어른은 물론이오, 그에 딸린 가솔들 모두가 행랑채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일부는 집 떠나 머나먼 타향살이의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고, 어떤 이는 저 먼 건넛마을까지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식솔들은 체념한 채 그냥 그럭저럭 한동안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예수의 可移路 엄포

지난 날 갖은 비명을 질러대도 뒷짐지고 "저 동네 오늘 잔치하나 부다. 돼질 잡나, 닭을 잡나?"며 딴청을 부리던 강건너 마을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유예수 참판을 위시하여 방귀깨나 낀다는 강북 정통 유지들이, 이 마을 동쪽 어귀에서 일어나는 일에 노골적으로 끼여들기 시작했다. 사발통문을 돌리고 '지역유지간 릴레이 회동'을 개최하더니, 마침내 강건너 이참판네 식구들에게 한줄기 희망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아, 아. 원투쓰리, 마이크 테스트. 에~ 우리 지구촌 유지연합은 오늘부로 좌판네 식구 전원이 갖고 있는 地球村 주민자격을 박탈한다…. 여차저차해서… 또한 좌판네 집안 식구들에게 희생된 가문들은 적당한 때에 적당히 처리해서 예전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이상 끝~."

이참판댁 식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可移路 엄포였다. 쉬쉬했지만 그래도 소식은 이참판댁 식구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대로 영영 좌판네 식구가 되나보다고 낙망하던 이참판댁 식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그때 유예수 대감집에서는 유대감이 초빙한 무허가 약제사들이 비밀리에 뭔가를 만들고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原子丸! 왠 청심환이 하늘에서 쏟아질꼬라며 방심하고 있던 좌판네 지붕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뚫린 지붕 사이로 쏟아지는 8월 한낮의 자외선을 견디다 못한 좌판네 왕초는 결국 입에 거품 물고 머리를 쪼아린다.

"무조건 항복…할래…. 조건이 있다면… 선블록크림이나 좀 주라…."

본가에서 들려온 항복소리에 이참판댁은 순식간에 잔칫집 분위기다. 온 식구가 마당에 몰려나와 수십년 만에 집을 되찾게 되었다는 기쁨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물론 와중에 사고가 없진 않았다. 기쁨에 못이겨 펄쩍이다가 돌쇠가 댓돌에 머리를 찧고, 제사 때 쓰려고 아껴둔 인삼주가 거덜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잃어버린 우리 집을 찾게 되었다는데? 좌판네 둘째아들이 쥐고 있던 곳간 열쇠며, 땅문서며 모두 회수하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몇시간 전까지 말한마디에 껌벅껌벅 넘어가던 녀석들이 날뛰는 걸 두고보기 힘들었지만, 어쩌랴. 돌 던지고 계가할 일 있나?

그럭저럭 정돈되어 가던 집안꼴이 다시 엉망이 되는 걸 좌판네 둘째아들은 가만히 두고볼 밖에.


해방되면 집주인은 우리가 될 줄 알았는데

근데 돌아가는게 좀 심상치 않았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수상쩍은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좌판네 사람들이나 이참판댁 식구들 모두 가이로 엄포를 열심히 리와인드 해본다. '적당히 처리해서', '적당한 때에' '여차저차해서' '되돌린다' 가만 가만, 두고 보니 주어는 전부 강건너 사람들 아닌가? 거 참 희안하네. 좌판네 식구들만 조용히 물러가면 그만 아닌가. 뭘 적당히 어쩌구 저쩌구야? 수상쩍은 맘이 있었지만 그러나 집을 되찾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며칠은 얼렁뚱땅 넘어갔다. 하지만 염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어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너네 이참판네 식솔들은 들으라. 비록 우리 집안이 피곤죽이 되어 나자빠졌어도, 아직은 우리가 이 집 쥔이다. 그러니 다들 정신들 차려. 야야 거기 머리띠 풀어 임마! 집안정리 다시 해놓고, 오늘 저녁 본가 저녁회식 때 쓸 부침개나 마저 부쳐. 실시!."

좌판네 둘째아들로 이참판네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작자가, 며칠 뒤 원기를 회복한 듯 우렁차게 내뱉은 말이었다. 하긴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미 이참판 어른은 죽은 지 오래였다. 말년에 몰아닥친 풍파 덕분인지, 이참판은 비실비실 치매기를 보이면서 상속권에 대한 일언반구의 유언도 없이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참판에게 자식이 있긴 했지만, 일찌감치 좌판네 딸과 결혼하고는 좌판네 사람이 되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다면 이참판 소유 저택이랑 식솔들 그리고 가재도구들은 이제 누구 소유인가? 도대체 누가 이 집 주인이 되지? 그제서야 상속을 둘러싼 복잡한 쟁송문제가 이 집 식구들이 첫번째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여전히 이 집의 주인임을 배짱좋게 주장하는 좌판네 식구들 앞에 갑자기 할말이 없어진다. 군시렁군시렁 대며 서로 눈치들만 본다. 그 때 또다시 이장댁 마이크가 울려퍼진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거기 동쪽 끝에 있는 이참판 식구들은 듣거라. 우리가 곧 갈테니, 갈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라. 좀 있으면 저녁식사시간인데 아직 부엌 아궁이에서 연기도 안 나는 거보니, 니네들 아직 정신 못차렸구나. 거기 머리에 피흘리고 있는 돌쇠, 정신차리고 빨랑 나무하러 나가고, 안방에 들어앉아 있는 행랑아범도 빨랑 행랑채로 돌아가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곳간 및 문갑을 비롯한 제반 가재도구들은 일체의 변동도 없이 좌판네 식솔들 감독 하에 현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도록. 안 그럼, 너네 原子丸 알지, 요 까맣게 생긴거? 피부암엔 약두 없어!"

얼렁뚱땅 이참판의 고택이 법원경매에 붙여지기 전에 마땅한 상속권자를 찾아야만 했다. 안그러다간 집안이 거덜나게 생겼다. 해방되면 집주인은 우리가 될 줄 알았는데….


상속자 不明, 조선

태극기가 국기로 제정된 것은 1883년 1월 27일이었다. 태극기는 조선이 오랜 은둔 끝에 萬國公法에 의한 외교관계, 즉 세계질서가 주권을 보유한 국가들의 동등한 관계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즉위식을 거행한 것 역시, 일종의 상징효과를 의도한 것이었다. 이후 대한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는 국권 혹은 주권이 위태로울 때 항상 등장하던 이념적 표상이었다.

"주권을 언젠가는 우리 품안에!"
"解放"이라고 크게 쓰여진 플랭카드와 태극기를 들고 수많은 인파들이 거리를 활주하는 낡은 필름에 우리는 익숙해 있다.(이 유명한 장면은 8월 15일이 아닌 16일에 있었던 거리 행진이었다고 한다) 8.15 특집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다. 태극기라는 상징을 손에 든 해방 조선의 인민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해방은 곧 주권의 회복이란 사실이다. 애초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분리하겠다는 연합국의 의지는 분명했다. 왜 독도를 그때 분명하게 한국영토로 규정하지 않았는냐고 책임을 묻는다면 할 말 없겠지만, 그래도 유예수, 아니 미국의 조치는 비교적 신속한 것이었다. 치안유지를 위해 총독부 경찰과 일본군을 활용할까 했지만, 곧바로 일본인들을 되돌려 보냈고,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분리(정확하게 말한다면 한국에서 일본인을 내쫓는 일)하는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한국에서 내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미 1876년 개항 이래 동등한 주권보유국으로서 지구촌의 합법적 구성원이 되었던 조선의 지위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사점령으로 조선의 절반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던 미국이 내세웠던 명분은 단 한가지였다. "상속자 불명, 조선에 대한 권리는 상속자가 결정될때까지 당분간 유보됨."


유력한 상속자 그리고 미국(!)의 결정

당시 유력한 상속자로 주장하던 두 세력을 두고보자. 인민공화국과 임시정부. 인민공화국은 일본의 패망을 감지하던 건국준비위원회와 그 후신인 인민위원회라는 강력한 지역적 기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지역에서 치안과 질서유지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행정기관의 상당수를 접수하고 있었다. 물론 산발적이었고, 자생적 지방권력기구들이 통일된 중앙을 구성하는데에 실패하긴 했지만 가장 강력한, 그리고 실질적인 물리력을 보유하고 있던 세력이었다. 해방 당시 중경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임시정부는 실질적인 세력에서는 밀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작은 불빛이라도 어둠이 짙어지면 밝게 보이는 법. 임시정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덕분에 해방 직후 조선의 유력한 상속자로 지목될 수 있었다. 이 두 세력은 모두 연합군의 진주에 맞춰 합법적 상속자임을 내세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경주했다. 건국준비위원회는 미군진주 직전 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정부임을 선포했고, 임시정부 지지세력 역시 임시정부환영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로비활동을 벌여나갔다. 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야말로 조선의 적통임을 주장하고 나선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아는 초대대통령 이승만이다. 그가 미국에서 조선왕조의 왕족(prince Lee)으로 행세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는 또 누구보다도 해방후 이씨 왕족들의 귀국을 반대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권력투쟁에 있어서 누구보다 밝은 혜안을 가지고 있던 그가 그토록 구왕조의 왕족들을 경원했던 이유는 뭘까?

모르긴 해도 일제가 조선왕실을 철저하게 일본화시키고, 또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내려고 했던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형식논리상 대한제국의 후손들은 해방 직후 가장 유력한 상속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다.
미국은 이 세 상속후보자들에 대해 모두 함량미달이라고 통고했다. 그들은 현실의 정부(인민공화국), 상징적인 망명정부(임시정부), 합병 이전의 정부(대한제국)의 지분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조선은 누구의 것인가? 조선인민의 것인가? 그들의 표현을 들어보자.

"우리가 조선을 점령했을 때, 그 곳은 주인없는 땅(no man's land)이었다."


'주인없는 땅'의 주권은 어디로

참 배짱 좋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미국인들은 삼천리 금수강산을 정말 금수강산으로 봤나부다. 하긴 오래전 그들의 선조들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도, 그 곳은 주인 없는 신천지였다. 인디언이나 버팔로들이 그 땅의 주인일 수는 없었다. 그저 적당히 숫자를 줄여서 보호구역에 가둬버리면 그만일 존재였다. 이 주인없는 땅에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누비던 조선인민들 역시, 그들의 눈엔 그와 비슷하게 비쳤다. 미국인들은 이들을 조선인들을 '暴徒(mobs)'라고 묘사했다. 이쯤되면 8월 16일날 들고 나온 태극기가 머쓱해진다. 보나마나 그들은 며칠 뒤 대폿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투덜거렸으리라.

"거 참 요상한 일이네. 좌판네 사람들이 나가면 우리가 집주인이 될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덜 떨어져보여도 그 이참판 장남이라두 내세울 걸 그랬나...."

해방 직후 현대사 뿐 아니라 일제시대의 역사와 구한말의 역사를 모두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가지 이해 못할 일이 있다. 왜 다른 왕조국가들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구왕조에 대한 추대운동 같은 것이 없었을까? 빼앗긴 물건을 되돌려 받기로는 그것만큼 쉬운 일이 없는데.
뺏겼던 주인을 다시 앞장세워 물건을 되돌려 받은 다음, 다시 정당하게 그 물건을 재분배하거나, 다시 이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아무튼 한국을 점령했던 점령국을 어쩌면 가장 난처하게 만들었을지 모를 이 구왕실 복권운동은 합병 이후 단 한번도 민족운동의 중심에 놓여보지 못했다. 조선왕조가 봉건적이었건 어쨌건, 분파주의라는 딱지를 달고 다녔던 조선의 좌파나 우파들에게 그들이 그럴싸한 정치적 구심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치기 어린 상상이다. 도둑맞은 물건을 되돌려 줄 주인이 누군지 불분명하다고 제 주머니에 넣어버렸던 도둑을 호통치는 게 순서이리라. 결국 영토합병은 아니라고 우겼지만, 미국은 3년 동안 조선의 주권을 보유한 사실상의 주권보유자로 행세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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