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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5-6.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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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정치동맹, 왜 문제인가

현 시기 제기되는 복지동맹의 한계와 문제점

최윤정 | 정책위원
한국에서 1997년 IMF 이후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니 복지 확대와 같은 재분배정책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대통령의 사회양극화와 사회적 통합 논의부터 불평등과 재분배 문제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양극화와 민생파탄이 더욱 심화되면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복지는 전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복지국가 열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2006-07년 이후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생산했다. 이후 복지국가와 관련된 논의들이 많아지다가 올해 초에 민주당은 ‘3+1 무상복지’를 내세웠다. 그에 따라 어떻게 무상복지를 실현할 것인가를 두고 증세논쟁이 한창 일었고, 동시에 민주당, 진보정당의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복지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동맹을 맺고 더 나아가 단일정당을 건설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그런 흐름은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다. 기획연재1 역동적 복지국가론 비판, 기획연재2 민주당의 ‘3+1 무상복지’ 비판에 이어 기획연재 마지막인 이번 호에서는 최근 등장하는 ‘복지국가 정치동맹’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현실 정치에서 복지동맹이 제기되는 맥락과 그 내용을 알아보고, 노동자 민중운동의 요구가 복지국가와 정권교체로 수렴될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다음으로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실 내용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점과 복지동맹의 개념과 전략이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복지국가에 고유한 모순이 내재한다는 점을 제시하면서 복지국가를 넘어선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이 제기되는 맥락

복지국가론은 ‘민주당,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2012년 정권을 교체하자’라는 야권연대의 맥락에서 다뤄지고 있다. 반MB라는 네거티브 전략을 넘어 복지국가라는 포지티브한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하여(복지동맹) 민주·진보 정권을 세우고 복지국가를 현실화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정동영, 이인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참여연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작년부터 결성된 ‘백만 민란, 국민의 명령’과 같은 시민조직, 그리고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까지 그 흐름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럼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정동영은 작년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주장했고 현재도 자신이 구상하는 모델을 역동적 복지국가론에서 찾고 있다. 그는 2007-09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참여정부 때의 유연안정성, 규제완화 등의 신자유주의 흐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런 비판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야권이 모두 연대해야 한나라당 재집권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제를 투명하게 해서 경제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진보신당의 ‘노동없는 복지’에 대한 비판에 공감을 표하면서 일차적인 불평등을 야기하는 노동유연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을 인용하며 민주노동당이 과거에 제기했던 부유세나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의 사회보장세 신설을 지지한다.
민주당의 이인영은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제안한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단순한 연합이 아니라 가장 센 힘으로서 복지국가 단일정당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대중-노무현이 꼭 신자유주의 정부라고는 보지 않으며 이중적 성격을 가진 정부였다고 평가한다. 그는 ‘불가피하게 시장으로부터 신자유주의적인 측면에 직면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로 인한 양극화의 폐해를 보완하고 극복하려는 제도적 장치도 동시에 구축했다. 만일 정말 신자유주의적 정부였다면 그 가치에 위배되는 정책들은 털어내야 하지 않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으나 세금재정배분 전략의 변화와 조세투명화, 조세정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음으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의 키워드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이다. 그에게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단지 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경제, 조세, 노동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새로운 국가모델이다. 이에 반해 ‘박근혜의 복지는 경제정책은 그대로 두고 복지를 일부 확대하는 것으로 사고하는 사회투자국가식 복지’라고 비판한다. 그는 민주당에 대해 ‘복지국가에 대한 구체적 상은 아직 없는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정동영, 천정배, 이인영 등의 몇몇 개인이 복지국가론을 주장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민주당이 과감한 좌클릭을 통해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진보정당 일부가 이야기하는 비민주 진보대통합에 대해서도 ‘소수파 전략으로는 집권을 할 수 없다. 집권을 해야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핵심으로 경제적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꼽는다. 경제문제에서 핵심은 경제의 투명성 제고이다. 재벌의 불공정거래를 불식시키고 중소기업 지원을 해야 한다. 집권을 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라고 하며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과 차별이 없도록 좋은 일자리를 확충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따라서 훨씬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시민들 스스로가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금을 기꺼이 더 내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식을 대중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서 풀뿌리 시민운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편 참여연대의 김기식 정책위원장은 ‘빅텐트론’을 주장한다. 그는 민주당 내 복지국가론 추동세력이 1/4~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민주당 안에서만으로는 안 되고 외부에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복지국가를 위한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좌클릭을 해서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고, 진보정당은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당장 정당을 다 통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각각의 정치적 입장을 존중하면서 큰 틀에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세력을 포괄하고 향후 단일정당을 모색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세계사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건에서 대외의존적 경제구조인 한국사회는 이와 벗어나는 다른 길을 선택하기 어려웠다고 두둔한다. 그리고 경제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은 분명했지만, 사회정책적으로는 복지국가적, 사민주의적, 통합적인 방향으로 갔던 모순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증세, 감세 논쟁으로 가는 것은 수혜자와 부담자를 분리시키고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현실정치에서는 제대로 내지 않는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민주노동당이 오래 전부터 무상의료, 부유세 등 복지관련 정책들을 발언해왔으며 현재는 그것의 현실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복지정책의 성과를 의미 있게 평가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이상 후퇴하게 놔둘 수는 없으며 민주노동당에게 야권연대는 절대절명의 문제라고 언급한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생태 복지국가를 이야기한다. 새진보정당을 건설하는 흐름에 신자유주의 반대, 한미 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에 동의하면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민주당과 통합은 불가능하나 연대는 가능하며, 후보단일화는 열어두고 생각할 수 있다고 입장이다. 그러나 무조건 ‘이명박을 넘는 것’만이 선이라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배신감을 느꼈던 오류를 반복할 수 없으며 향후 무엇을 할 지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라고 하며 부자증세를 통해 재정을 투여해서 새로운 일자리 110만개를 창출한다는 전망을 밝혔다.
문성근을 대표로 하는 ‘국민의 명령, 유쾌한 백만 민란’은 야권 단일정당 건설 운동을 벌이며 회원 10만을 돌파하고 있다. 문성근은 “민주당이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은 아니지 않냐,” 그렇게 말하면 일단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고 말한다. 백만 민란 회원들은 직접 거리에서 선전전과 서명전을 진행하며 활동하며, 정당에 대해 냉소적인 20~30대들을 조직하기 위한 온라인 공간을 정치토론의 장으로 활용한다.
4월 16일에는 진보신당에서 민주당 일부까지 포괄하는 복지국가단일정당을 내세운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가 공식 출범했다.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의 부대표를 맡은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는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과 연대와 통합은 피할 수 없으며 금기로 여겨져 왔던 이들과의 통합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이의 경우 복지국가 건설이 제일의 과제이고, 그것을 위해 집권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편이며, 민주당의 이인영은 한나라당 재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매개고리로서 복지국가를 사고하는 듯이 보인다. 백만민란의 경우 한나라당 저지가 최고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정당 질서 재편 방안으로는 가장 강한 단일정당에서부터, 보다 느슨한 조직적 형태로 빅텐트론, 그리고 가장 형식적인 수준에서 선거연합이 있다. 통합이나 연대를 요구하는 세력은 민주당에는 중도진보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진보정당에는 소수파 전략을 비판하면서 정치적 유연성을 요청한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강조하는 인상이 강하며 진보신당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에 신중한 접근을 표한다.
주요한 특징은 정당질서재편을 추동하는 세력으로서 시민사회단체가 눈에 띄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복지국가담론을 정당에 제공하기도 하고 정당이 하기 어려운 대중동원전략으로 정당의 행보에 압박을 가하면서 민주당의 좌클릭이나 정당재편을 외부에서 추동하고자 한다. 특히 복지동맹의 주체로서 시민정치운동과 같은 대중적 기반을 만들려는 실천들도 보인다. 상층 중심의 정치공학적 논의를 극복하기 위해 대중들을 향한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백만민란의 경우 반이명박 정서를 감정적으로 동원하며 정치에 대한 논리적 비판을 상대화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20~30대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극복하기 보다는 그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이며, 합리적인 정치토론을 저해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노동자운동, 민중운동의 일부가 정확한 비판 없이 복지국가 정치동맹에 편승하여 정권교체라는 목표에 매몰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계급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주체적 투쟁이 어려운 조건이다보니 보다 영향력이 있는 민주당 등과의 협력에 대한 유혹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협상은 언제나 진보진영의 요구들을 낮추는 내용이고 그 신뢰 지속 기간 역시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들과의 협상에 골몰하는 만큼 현장과 지역의 주체적인 투쟁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복지국가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들이 묻혀버릴 수 있다. 또는 역으로 복지국가와 정권교체라는 주제로 대중들을 조직해보려고 할 수도 있는데 신자유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복지국가론으로 조직화를 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문제점

1)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 부재
이인영이나 김기식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IMF 이후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 도입은 불가피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완화하기 위한 복지를 제도화시켰기 때문에 전 민주당 정권의 성격은 이중적이며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들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 따로,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은 사회정책 따로 분리해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정책보다는 이자율 조절을 통한 통화정책 우위의 정책을 통해 금융자본의 우위를 보장해준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다. 그렇다면, 재정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통화정책의 목표에 따라 재량권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완전고용 달성을 목표로 했던 케인즈주의 하에서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의 우위에 있었던 것과는 반대가 된 것이다. 케인즈주의에서 완전고용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보완하던 사회정책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전과 달리 경제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 즉 금융적 팽창과 노동시장의 신축성이라는 목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박상현, 2009).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가 빈곤층을 노동시장에서 영구 배제시킴으로써 이들을 아예 경쟁에서 밀어내는 전략을 택했다면, 이로 인한 양극화와 사회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블레어가 제시한 제3의 길은 배제된 실업자를 노동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금융세계화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따라 복지정책은 바뀔 수 있다.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 기조 하에서 복지를 확대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복지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말하는 논자들은 블레어의 제3의 길은 선별적 복지였고 보편적 복지국가는 그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그 차이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실업, 빈곤, 불평등의 문제를 어느 수준에서 관리할 것인가의 차이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국가라는 성격이 변하지는 않는다.
특정 국가가 신자유주의냐 아니냐에 대한 컨센서스가 없다보니 신자유주의자가 ‘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등 현실 정치에서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한다. 이는 연대체 참여의 문제나 선거 시기 연합의 문제에 있어서도 논쟁을 가열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규정의 다름이 실제 정치적 입장과 전략의 다름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도입은 불가피했지만,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회정책 발전에 노력했다”는 식의 인식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대외의존적인 한국의 상황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흐름이거나 어쩔 수 없는 경제위기 극복 정책으로 받아들이면서, 노동, 복지 등 사회정책 영역에서의 피해완화 후속 대책만을 정치의 영역으로 협소하게 규정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신자유주의에서 노동은 금융세계화의 효과로 신축화되고 복지는 노동신축화를 보다 잘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상수’로 규정한 채 사회정책을 논하는 것은 이미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몸을 얼마나 비트는가를 두고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복지국가론자들은 경제정책의 변화를 중요하게 언급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재벌기업 불공정거래 철폐, 지하경제의 투명화 등의 경제민주화의 내용이지 금융자본의 우위 하에 통화정책에 대한 통제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충돌하는 내용은 아니다.
통화정책에 대한 통제는 은행에 대한 정책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은행의 겸업화 등으로 금융의 경계를 허물어서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강화로 인해 화폐정책에 대한 개입이 점점 어려워지는 문제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수의 국가들에서 중앙은행을 법적으로 독립시키는 정책들이 추진되었는데,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일수록 중앙은행의 활동이 세계경제 및 해외자본의 압력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자율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세계금융에 대한 종속의 정도가 높을수록 금융에 요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정책결정에 있어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린다.
작년 주요 금융관계법령 정비내용을 살펴보면 금융기관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금융지주회사의 설립규제 완화, 은행 및 보험회사의 겸영 및 부수업무 범위 확대 등을 위한 법령 개정이 이루어졌다(한국은행, 2011). 규제가 생긴 부분은 금융소비자 보호, 급격한 자본유출입 가능성에 대한 대비, 거시건전성 제고 등, 기본적으로 금융산업 육성이라는 기조 하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점검하고 조정한 부분이다. 그런데 작년 복지가 전사회적인 쟁점이 되는 동안 이런 경제정책들은 정치적 쟁점으로 환기되지 못했다. 이는 1970년대 미국에서 ‘작은 정부’, ‘복지 축소’ 등을 요구하던 신보수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 진보진영이 ‘사회보장을 지키자’는 운동으로 대응하는 동안 정부에서는 금융 규제 완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이 소수의 경제관료들에 의해 조용하고 신속하게 통과되었던 사례를 연상시킨다(박상현, 2009). 복지에 대한 요구는 매우 현실적이고 그 자체로는 정당한 요구이지만, 노동과 복지 전반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자체를 문제화하고 바꾸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한계적일 수 있다.

2) 복지동맹의 개념과 전략 부재
복지국가 정치동맹을 주장하는 논자들이 ‘복지동맹’을 지칭할 때는 여러 차원의 동맹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야당이 모두 단일화하는 당 차원의 ‘동맹’과, 현재 이를 추동하기 위한 세력으로서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간의 ‘동맹’, 그리고 정권교체를 실제 가능하게 할 유권자들의 ‘동맹’이 구분되지 않고 섞여서 언급되는 듯 하다.
역사적으로 복지동맹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서로 다른 계층이나 계급들 간의 동맹이었다. 영국 복지국가 형성 시기의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 간의 동맹, 스웨덴에서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농민) 간의 동맹이 그것이다. 즉 대중적인 계급동맹이었다. 그런데 현재 복지국가 정치동맹에서는 주로 야당 연합·통합,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간의 협력이 보이고, 대중들의 직접 참여라는 것도 구체적인 정치적 내용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민생이 불안해서 복지가 필요하고, 또 다시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은 안 된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주로 선거시기 투표를 위해 모인 것으로 전통적 의미의 복지동맹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통적 복지동맹이 아니라서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어떤 복지정책이 성립했던 것은 불특정 다수 시민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구체적인 계층이나 계급들이 공동으로 지지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국 노동당이 제시한 복지개혁안은 보편주의 하에 중간계급도 복지의 혜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간의 복지동맹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1932년 선거에서 고용확대, 노동자의 구매력 증가를 위한 경제정책과 함께 농민당의 농업보조금 지급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적-녹 동맹이 이루어졌다. 고용확대와 노동자구매력 증가가 농산물 가격 유지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양당의 이해가 일치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 복지동맹에는 그런 문제의식이나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문제고, 노동유연화도 문제고, 비정규직이 문제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중들에게 무엇을 제시하는 것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실업, 빈곤, 불평등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복지국가가 실업과 빈곤의 주체들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는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세한 정책을 이야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서로 다른 계층들이 ‘동맹’을 맺을 수 있을만한 전략도 내용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노동유연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유연안정성을 바탕으로 한 모델이다. 기획연재1에서 노동신축화를 심화하는 유연안정성 모델 자체가 노동자계급에게 해로운 것이라고 이미 비판한 바 있다. 이것으로 유연안정성에 반대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유연안정성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복지동맹과 유연안정성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다음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복지동맹을 이루려면, 예를 들어 노동부문에서, 유연안정성 모델에 대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가 일치해야 한다. 유연안정성 모델은 노동유연화 기조를 오히려 강화하는 가운데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실업급여와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재취업에 용이하도록 지원해 주는 것을 포함한다(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그런데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은 내부의 비교적 안정적인 고숙련 정규직 노동자와 주변부의 저숙련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분화된 구조이고 노동이동은 주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 층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박능후, 배미원, 2006).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료가 만약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위한 비용으로 지불된다면 이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는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단,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해고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면 그 때는 이해가 서로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해고위험은 당연히 정규직 노동자에게 이득이 아니다. 이에 일부 복지국가론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연대의식’을 통해 이런 이해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대의식은 그런 도덕적 당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계층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인식될 경우 그 복지정책에 대한 지지는 철회되었다. 영국에서 1970년대 초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강해지고 결국 1979년 영국 보수당 대처가 승리하게 된다. 이는 기존의 복지동맹이 균열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윤도현, 박경순, 2008). 영국의 중간계급은 인플레와 증세 속에서 조세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중간계급은 자신도 수혜자가 되는 보편적 프로그램은 유지하기를 바라는 한편, 세금으로 충당되는 하층 노동자계급에 대한 복지는 감세를 통해 선별적으로 삭감되길 원했다. 결국 영국의 복지동맹은 국가복지의 선택적 삭감을 지지하는 중간계급 및 상층노동자계급과 기존의 복지국가의 틀을 유지하자는 하층 노동자계급으로 분해되었다. 독일에서 1972년 연금보험 개혁안은 노동자연금보험을 타 계층에 개방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노동조합은 이를 노동자계급의 희생을 통해 자영업자들의 생활 상의 곤란과 위험을 덜어주는 것으로 보았고 이에 반대했다. 또 프랑스에서 1974년 사회보험 개혁 당시 좌파는 노동자들 내의 상이한 보험조직 간의 재분배, 자영업자와 노동자들 간의 재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법안에 반대했다.
물론 공통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재분배정책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반드시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빈민과 실업자를 포함한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노동의 공급을 원활히 하고 일자리를 두고 노동자 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자본의 우위를 보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하고 유지할 책임은 일방적으로 자본에 있지 노동자계급에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을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는 것도 고용된 노동자가 자신이 낸 세금을 실업자, 빈민에 대한 복지로 지출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은 자본이 노동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노동자계급을 분할하고 내부의 갈등을 야기하는 측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층이 늘어날수록, 더 적은 취업자들이 더 많은 실업 반실업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해 세금을 지출해야 하는 것이 된다. 임금격차는 더 커지는 상황에서, 재분배정책을 통해 불평등 정도를 줄일 수 있다 할지라도, 국민들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으로 이분화되고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자체가 복지정책에 대한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게 된다. 복지동맹을 실현하고 싶은 사람은 복지정책에 대한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간의 격차를 확대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노동신축화 저지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즉, 노동신축화를 심화시키는 유연안정성 모델을 파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유연안정성을 근간으로 모델링을 한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복지국가의 내적 모순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끝나지는 않는다. 복지국가라는 완결된 상이 있고, 그 상을 향해 가면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한계에 대한 논의와 복지국가를 넘어선 고민이 동반되지 않으면 복지국가 프로젝트는 자기 한계에 갇히게 된다. 왜냐하면 복지국가는 구조적 모순을 가질 뿐 아니라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적 쟁점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구 복지국가는 전후 경제성장이라는 조건 하에 노동과 자본이 타협한 결과물이었다.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는 전후 장기적인 완전고용의 결과로 노동계급의 힘이 증가되었고 이는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형성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대해 임금인상 투쟁을 ‘자발적으로’ 자제하도록 요구하는 대가로 사회적 임금의 개선을 협상대상물로 사용했다. 그러한 사회적 타협은 기본적으로 전후 호황기에 자본이 노동에 양보할 만한 여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그러한 사회적 타협을 위한 물질적 토대는 사라졌다.
경제 호황기는 지나갔고, 1970년대 말 이후 유럽국가들에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대규모 실업으로 인해, 걷히는 세금의 규모도 1950~60년대에 비해 그 증가율이 둔화되었으며 OECD 국가들에서 세금 수준은 거의 상한선에 도달했다(Clayton and Pontusson, 1998). 또 금융시장의 세계화로 정부의 장기적 적자재정에 대한 재량권이 제약되었다. 이런 것들이 전반적으로 정부 지출에 하향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서구에서 복지국가의 위기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복지국가 위기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복지국가가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한다. 그러면 경기가 회복되면 복지국가의 가능성은 다시 열리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복지국가가 외재적 요인으로 위기에 처했다기보다는 복지국가 자체의 내재적 모순이 1970년대 경제위기로 인해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코너(1990)에 따르면 전후 복지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대규모 법인기업들과 국가부문과의 관계로 인해 복지국가 모델에 국가지출 증가 경향이 내재하게 된다. 대규모 법인기업들은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수행하며 신제품개발, 제품모델 변화, 제품의 차별화에 바탕을 두고 시장이 확대된다. 그런데 시장의 확산, 생산성과 생산의 증가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달려 있다. 따라서 대규모법인기업은 교통, 통신, 연구개발, 교육, 기타 설비 등의 더욱 많은 사회적 투자를 필요로 한다. 이는 기업 간 격차를 확대하는 동시에 국가의 재정에 부담이 된다. 결국 국가부문의 지출 팽창이 대규모법인기업들의 총생산 증가를 위한 기본적 요인으로 작용하며, 역으로 국가지출과 국가사업계획의 팽창은 독점산업 성장의 결과이다. 즉 국가부문의 성장은 대규모법인기업 확장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것이다. 국가부문이 민간부문의 희생 속에서 성장한다거나 대규모 법인기업의 팽창이 국가부문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통념과는 정 반대이다.
한편 대규모법인기업의 성장은 실업과 빈곤을 수반한다. 이는 또 다시 사회적 손비의 증가를 유발한다. 그리고 국가가 사회적 손비를 충당하기 위한 재정을 확대하려면 또 다시 생산성이 높은 부문의 산출 증대에 기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한편, 국가는 자본비용을 점점 더 사회화하지만 그에 반해 사회적 잉여는 계속 사적으로 영유된다. 비용의 사회화와 이윤의 사적인 영유는 재정위기를 만들어낸다.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간접적으로 총생산과 사회적 잉여를 증가시켜 원칙적으로 사회적 손비의 팽창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규모법인기업과 그 노동조합은 잉여를 사회적 자본 또는 사회적 손비 지출에 충당하는 데 강력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는 다른 모든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매우 노동집약적이며, 또한 생산성증대로 임금상승분을 상쇄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이들을 공급하는 상대적 비용은 해마다 증가하게 되며 이는 국가 재정의 부담을 야기한다.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복지자본주의 국가는 필연적으로 국가지출의 증가를 경험한다. 영국에서 사회서비스지출의 GNP에 대한 비율은 제1차 대전 전 약 4%에서 1975년 29%로 극적으로 증가하여 1979년 국가총지출의 1/2을 차지했다. 공공지출은 1961년 이래 GNP의 18%에서 29%로 성장했고 1970년대 전체 국가 지출의 1/2에 이르렀다(오코너, 1990). 모든 선진자본주의국가는 전후 기간의 후반기 동안 영국과 같은 경향을 보여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모든 나라에서 GDP에 대한 사회서비스의 비율은 증대했다.
한편 국가의 재정을 구성하는 세금 부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본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자본에 대한 과세를 높이더라도 자본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거나 피해간다. 법인소득에 대한 과세는 법인소유자가 아니라 소비자(노동자와 소기업)에게 가격인상을 통해 전가된다. 재산세는 상업, 산업용 재산보다 주거용 재산에 더 많은 부담이 지워진다. 상업, 산업용 재산은 주거용과 달리 빈번하게 매매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자본가는 보유재산을 과소평가할 수 있지만 주택소유자는 그럴 수 없다. 또 주거용 건물소유자는 재산세를 세입자에게 전가시킨다. 한편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세는 임금을 억제함으로써 노동자에게 전가된다(오코너, 1990). 이런 전반적인 경향은 노동자계급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안김으로써 재분배정책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복지국가의 비용이 증가하는 경향이 지속되는 가운데 전후 호황기 동안은 재정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1970년대 이윤율 하락에 따라 복지국가는 케인즈주의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로 선회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일부 복지를 삭감하고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면서 복지국가는 재정위기를 견디려고 했다. 만약 경제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혹은 경제가 다시 회복기에 들어선다면 복지국가는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부활한다면 내적 모순을 그대로 간직한 옛날의 복지국가일 것이다.

서구 복지국가에 대한 다른 쟁점들 또한 존재한다. 복지자본주의는 스웨덴 모델을 보든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변이들을 보든,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를 배제함으로써 만들어진 산업화 양식과 혁신 위에 세워진 것이다(Schmidt, 2007). 이 때문에 부유한 국가들의 노동자들은 국내 계급 투쟁을 통해 더 높은 임금, 더 적은 노동시간, 사회적 안전망을 성취할 수 있었지만 빈곤국의 노동자들은 그럴만한 경제적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세계 자본주의 내 위계가 세계 노동자계급 내에서 재생산되었다. 주변부 국가들을 배제, 착취하면서 가능했던 복지국가가 우리의 대안일 수는 없다. 선진국의 복지국가를 모델로 하면서, 우리도 선진국처럼 되자는 논리라면 세계 경제 구조 속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우파적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또 복지국가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완화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스웨덴의 고용구조는 압도적으로 남성적인 민간부문과 여성지배적인 공공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공부문이 새로운 일자리의 80%를 차지하는데 그 가운데 75%가 여성들로 채워진다(에스핑-앤더슨, 1990). 여성의 절반 이상이 전형적인 ‘여성’일자리들에 갇혀 있는 반면 소수의 여성만이 남성 지배의 성역에 진입했다. 스웨덴의 여성 고용률이 높지만 사실상 여성들이 집에서 하던 일을 밖에 나가서 하는 셈이다.
인종차별 문제 또한 심각하다.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복지의 혜택을 받으면서 우리의 세금을 갉아먹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동적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재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맥락에 위치하는 것이다. 향후 복지국가의 재분배 정책을 둘러싼 인종 간 갈등은 심화될 것이며 이는 복지국가들에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환경, 생태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가 말했던 것처럼 ‘복지국가’가 단지 복지의 확장 또는 복지정책의 합이 아니라면 ‘국가의 새로운 상’으로서 ‘복지국가’는 모순도 많고 공백도 많다. 또 복지의 확대만 두고 보더라도 노동정책, 건강보험, 연금, 교육, 보육 등 각 영역에서 복지정책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정치적 쟁점들이 있다. 이런 부분들이 복지국가모델에 삽입되면 되는 문제인지, 혹은 복지국가모델을 ‘쇄신’함으로써 담아질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복지‘자본주의’국가의 내재적 한계로 인해 복지국가 틀 내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것인지 토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복지국가 깃발 아래 정권 교체!’라는 구호에만 집중한다면, 복지국가와 관련한 여러 비판적 토론들이 마치 정권교체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봉쇄되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실에서 제기되는 복지국가와 복지동맹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논의들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정세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재집권 저지와 함께 집권을 통해 복지국가를 현실화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인영이 말했듯이 “(각 진영들 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 차이가 이명박 정권의 후예가 다시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보다 결코 우위에 있을 수 없다” 식의 복지동맹은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 노동자들의 현실 등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문제제기를 봉쇄함으로써 정치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경제정책의 질적전환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대중들의 현실적 이해에 기반한 정책의 실현이 동반되지 않을 시 ‘도로 민주당’이 될 수 있다. 과거 민주당은 금융세계화를 본격화하고 노동유연화 정책을 통해 사회양극화를 야기하고 노동자민중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모델로 제시되었지만 현재 주요하게 제시되는 복지국가담론은 과거 민주당의 방향과 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런 복지국가담론으로 동맹을 해서 집권을 한다 해도, 실제 노동자민중의 복된 삶과 노동에는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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