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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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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_시론_이상훈.pdf

한미FTA 저지투쟁은 계속된다!

비준안이 통과되면, 더 길고 고된 조약폐기 투쟁이 기다릴 뿐

이상훈 | 정책위원
한미FTA가 날치기 통과 직전! 하지만 안타까운 투쟁 현실

한미FTA 비준안 처리가 오늘내일 한다. 미국 오바마가 지난주에 먼저 FTA안에 사인해버리자, 다급해진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며칠 남지 않은 10월 중에 국회 비준안 처리를 강행할 작정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국회본회의장에서 막겠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FTA 원조당인 민주당이 온몸을 던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진정 안타까운 것은 유일한 희망인 대중투쟁이 지지부진한 현실이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대한문 앞 노숙단식이 3주째 계속되고 있지만, 대중투쟁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FTA투쟁의 주력이었던 농민대오가 가을철 농번기를 맞았고, 민주노총은 전반적인 대중운동 침체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는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식의 관성적이고 패배주의적 태도가 만연한 탓이다.

한미FTA를 숨기는 선거운동

서울시장 선거가 FTA를 숨기는 선거 전략을 택한 영향도 적지 않다. 진보양당과 민주노총이 박원순 선본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나섰지만, 정작 박 선본은 앞장서서 FTA반대를 주장하기는커녕 한미FTA 관련 입장을 숨기는 데 힘썼다. TV토론에 출연한 박원순 후보는 나경원후보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이냐”고 집요하게 따졌지만,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고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엇을 위한 야권연대이고, 무엇을 위한 선거승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판이다. 한미FTA에는 눈감고 일단은 선거에 이기고 보자는 생각은 기회주의적일 뿐 아니라,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한미FTA가 통과된다면, 설령 어떤 진보적인 지도자가 서울시장이 되더라도, 이후에 재벌과 미국자본에 맞서서 진보적인 정책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미FTA를 찬성하는 여론이 다수여론이라면, 그것을 바꾸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일이지, FTA관련 입장을 숨길 일이 아니다. 한미FTA는 유치한 학력논란이나 아파트 월세 논란, 1억짜리 피부관리숍 같은 네거티브 선거쟁점들보다 크고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네거티브 선거쟁점들의 이면 어딘가에 심오한 계급전쟁의 참뜻이 숨어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나라를 송두리째 팔아넘기는 한미FTA 날치기가 목전에 있는 마당에, 선거만 이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들의 소중한 정치역량을 한미FTA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그것을 막아내는 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비준통과 되더라도 끝날 수 없는 투쟁이라면, 한미FTA저지 투쟁에 남은 총력을 기울여야!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한미FTA투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투쟁인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하여 우리의 투쟁태세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미FTA의 본질이 국가이익이 아니라 계급이익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미FTA는 양국 간의 무역이익을 조정하는 단순한 무역 관세협정이 아니다. 한미FTA는 세계경제위기에 내몰린 초민족적 자본이 제 살길을 찾기 좋게 제 입맛대로 남한사회 전반을 구조조정 하는 정책 패키지다. 미국 자본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재벌 또한 한국경제의 주체가 아니라 초민족적 자본의 지위를 누린다. ‘국익’이 아니라 ‘계급’이 본질이다. 한미FTA는 한국재벌을 포함한 초민족적 자본이 국경을 넘어, 노동자 민중을 보다 효과적으로 쥐어짜내기 좋게 남한사회를 재편하는 총체적 정책, 전략이다.
그러니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된다고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한미FTA를 발판으로 일본과 호주를 포함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더 큰 전략을 추진할 것이고, 한국사회의 진정한 1%인 재벌과 정권은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의 우산 아래에서 ‘소유권 절대’의 이념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다시 말해 비준안 통과가 최악의 끝이 아니다. 실제 재편이 이루어지는 최악의 상황은 비준안 통과 이후에 이곳저곳에 분산된 삶의 현장들에서 펼쳐질 것이다. 한미FTA 국회비준안 저지투쟁은 그렇게 각개 격파 당하기 전에, 함께 뭉쳐 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이대로 국회 비준안 처리를 힘없이 지켜보고 만다면, 이후 우리의 삶과 투쟁은 그만큼 더 고단해질 뿐이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아무리 적은 숫자라 할지라도 함께 모일 수 있을 때, 모일 수 있는 만큼 싸워야 한다.
비준안이 언제 통과되는 지도 중요하지 않다. 국회의사 일정상의 기술적인 문제는 다수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의 마음이다. 한나라당의 의지가 불분명하면 모를까, 그들은 한미FTA를 양보할 뜻이 조금도 없다. 국회 의사일정이나 몇몇 기술적인 협상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 일정을 중심으로 작고 큰 투쟁계획을 줄기차게 이어 가야 한다. 유일한 관건은 국회 밖의 대중투쟁의 규모를 얼마만큼 높여낼 수 있느냐다. 국회 본회의 FTA법안이 비준된 후에 규탄할 것이 아니라, 그전에 비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고 감히 날치기 처리하지 못하도록 막아설 수 있는 대중투쟁을 만들어가자! 우리가 비준안 저지 투쟁에 얼마큼 힘을 쏟느냐에 따라 이 피치 못할 투쟁의 조건이 변화한다.


<보론> 막아야 하고, 막지 못하면, 앞으로 폐지하기 위해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한미FTA 독소조항들

1. 투자자-국가 제소제도(ISD)

투자자-국가 제소제도(ISD)는 강력한 독소조항 중 하나다. 미국 투자자는 언제든지 한국정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할 수 있다. 반면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투자자는 미국정부를 제소할 수 없다.
이 조항과 관련된 국회 끝장토론에 나선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 조항이 투자유치를 위한 조항이라고 옹호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약을 만든다는 것은 공동선을 위해 주권 중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라는 충격적인 주권포기 발언을 했다.

2. 간접수용

한미FTA에는 우리나라 법체계에는 없는 ‘간접수용’을 인정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간접수용이란 투자자의 자산 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모든 정부의 조치를 직접수용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따라서 각종 정부 규제, 정책에 의해 투자자의 자산 가치 하락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는 해당 정부가 자신의 재산을 침해한 것으로 보아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소유권 절대’ 제도가 있을 수 없다. ISD제도와 이 간접수용으로 인해 한국정부는 더 이상 땅값, 주식 값을 떨어트릴 만한 공공정책들을 사실상 포기해야 할 판이다.

3. 역진 방지 조항

역진방지조항(래칫조항)은 한번 개방-개혁된 사항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게 하는 조항이다. 이 역시 정부정책 결정권을 제약하는 전형적인 주권침해조항이다. 앞으로 한미FTA로 인한 각종 폐해들에 맞선 우리의 투쟁이 사사건건 발목 잡히게 될 조항이기도 하다.

4. 금융시장 완전개방의 재확인

한미FTA는 금융시장의 완전한 개방과 자유화를 실현한다. 또한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포지티브 방식)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등재하는 포괄주의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이다. 따라서 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 시장들은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
물론 이미 한국의 금융자유화 정도는 더 개방할 것이 남지않은 정도로 높다. 다만 한미FTA는 세계금융시장이 나날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추가적인 대응조차 완전히 봉쇄하는 독소조항을 추가한다.

5. 허가-특허 연계조항

국내 제약업계 대다수는 오리지날약이 특허 만료된 뒤 나오는 복제약을 생산한다. 그런데 허가-특허 연계조항이란 복제약을 만들어 식약청에 시판승인을 요청할 때, 이를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통보를 받은 특허권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소송을 제기, 복제약의 시판을 늦춤으로써 사실상 특허연장의 실익을 누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의약품소비자는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의약품에 한해, 기본적으로 사권(私權)에 불과한 특허권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시행되면 약값이 인상되고,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누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심하게 제약하는 이 조항은 미-파나마, 콜롬비아FTA에서는 재협상을 통해 삭제된바 있다. EU에서도 이 조항은 허용되지 않는다. 2010년 12월 재협상과정에서 허가-특허 연계조항에 대해 3년 유예를 받았다고 정부는 자랑한다.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6.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조항(TRIPs+), 인터넷 사이트 폐쇄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 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또한 한미FTA에 의해 “저작물의 무단 복제, 배포 또는 전송을 허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다. 세계에서 처음이다. 물론 미국은 아니다. 한국의 해당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다는 말이다.


7. 세이프 가드 조치 금지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상황에서 정부는 긴급 외환송금 제한조치 곧 세이프가드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제한조치를 취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미합중국의 상업적, 경제적 또는 재정 상의 이익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만에 하나 미국에 투자한 한국 자본이 손해를 볼 때, 미합중국은 그럴 의무가 있을까? 없다. 대한민국 정부만의 일방의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국인 직접투자와 연계된 지급 또는 송금”은 제한할 수도 없다. 예컨대 KT의 대주주는 미국계 사모펀드다. 이 펀드는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사실상 KT의 최대 주주다. 매년 수 천억에 달하는 배당금을 송금한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투자’에 해당되므로 송금을 제한할 수 없다.

8. 비(非)위반제소

FTA를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등 자본이나 기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이익을 못 얻었다고 판단되면 국제 민간 기구에 상대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한다. 예컨대 자본이나 기업이 자신의 경영실수로 기대이익을 못 얻었을 경우라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9. 공기업 완전 사유화와 외국인 소유 지분 제한 철폐

한국의 공적이며 독점적인 공기업들을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들에게 맛좋고 수월한 사냥감으로 던져주는 조항이다. 수도요금, 전기료, 지하철 요금, 가스요금, 의료보험료 등의 인상을 피할 수 없다.

10. 대책 없는 농업포기정책

정부가 대놓고 인정하는 한미 FTA 피해 분야가 농업이다. FTA체결 이후 눈에 보이는 대략적인 피해만 10여 년간 12조 이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피해대책은 ‘농어민 폐업 지원 제도’다. 사람을 살려 달랬더니 장례지원정책을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꼴이다. 기후변화, 세계경제위기로 국제 식량위기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농업 포기정책은 단순히 농업피해액수 12조 원을 다른 곳에서 벌충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카길(Cargil) 같은 초민족적 농업자본은 어느 나라의 국가의 정부들보다 해당 국가에 식량상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식량 공급가격을 차별화하여 공급한다.
그 외 한미FTA는 <미래의 최혜국대우 조항>, <스냅백 조항> 등과 같은 수많은 독소조항들을 담고 있다.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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