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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5-6.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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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최인기, 『가난의 시대』(동녘, 2012)

김두범 | 서울서부 회원
2009년 1월 용산에서 정권의 철거민 학살이 있은 지 3년이 지났다. 도시 개발 계획에 맞서 최소한의 생존권 요구를 내건 철거민들의 저항에 정권은 살인진압으로 대응했고, 이후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의 처절한 투쟁이 지속되었다. 지난 1월 서울역에서는 참사 3주기를 맞이하여 추모대회가 열렸다. 이날 용산 참사 유가족들의 발언에는 지난한 생존권 투쟁의 회한과 분노가 서려있었다. 용산 투쟁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존권 투쟁과 기본권 투쟁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또한 한국사회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빈곤에 대한 저항의 단면이기도 하다.
노동자, 농민 투쟁과 마찬가지로 빈곤에 맞선 빈민들의 투쟁 역시 생존권과 기본권에 기초한 요구를 제기한다. 그런데 학생운동이나 노동조합운동이 자기만의 영역과 역할을 가지고 조직돼 왔듯이, 도시빈민운동 역시 고유한 영역과 의제를 가지고 진행되어 왔다. 민중운동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빈민운동을 완전히 독자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빈곤에 저항하는 사회 전반의 투쟁에서 도시빈민운동이 지니는 나름의 위치를 평가하고 조명하는 작업은 운동의 전진을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의 시대』(동녘, 2012)는 바로 도시빈민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책이다. 저자 최인기는 빈민해방실천연대와 민주노점상전국연합에서 활동해온 빈민운동가다. 이 책은 2009년 용산참사 직후 <노동자 역사 한내> 측의 요청으로 쓰기 시작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민중언론 참세상>에서 ‘도시빈민운동사’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과 빈민운동의 평가와 전망부분을 포함해 두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도시빈민 운동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이명박 정권까지의 역사를, 2부 ‘도시빈민운동, 어디로 가야하는가’는 도시빈민의 현황부터 주거정책, 철거민·노점상 운동, 빈민운동 조직의 변화, 도시빈민 활동가의 설문까지를 담고 있다.


빈민의 형성기, 그리고 1970년대까지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에는 토막민(무허가 정착지 주민), 화전민, 도시노동자 등이 도시빈민 층을 형성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도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판자촌과 같은 거주 불안의의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1948년에 최초로 공적 부조와 관련된 정책들이 공포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도시빈민 문제는 이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다변화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오는 동안 서울의 인구는 245만 명에서 550만 명으로 2배나 증가했다. 1960-1966년 사이, 서울은 전체 인구 증가의 3분의 1, 도시인구 증가의 80%를 흡수했다. 1960년 당시의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서울의 주택 7만 5804동 가운데 16.4%가 거주불안에 시달렸고, 실업률도 악화 상태였다. 도시 빈민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 광주 대단지 사건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총 2만 세대 12만 명의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최초의 도시빈민 저항이다. 이는 이후 전개되는 민주화 운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에는 서울 인구 증가 비율의 48%가 인구이입에 의해 이루어졌다(전 도시 이입 인구의 3분의 1이 서울에 집중됐다). 인구 증가로 무허가 거주형태가 확산되었고, 이를 양성화하려던 정부 당국과 재개발 방식에 저항한 철거민들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도시빈민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 정책의 구조적 모순의 산물이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기점으로 기독교 선교회 등을 통해서 노동자운동이 형성되기 시작되었으며, 이와 비슷하게 수도권 도시선교위원회 등의 조직을 통해서 빈민운동이 태동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 조직적인 빈민운동은 1977년 영동 철거민 투쟁, 1979년 해방촌 주민 농성 등으로 나타나며 이후 도시빈민들의 저항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는 노점상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그리고 학생운동의 결합으로도 이어졌다.


전두환 정부부터 김영삼 정부까지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중동의 건설 사업에 투자한 인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개발붐에 편승해 ‘재개발 사업’이 진행됐다. 재개발 사업은 정부가 철거부터 건설, 분양까지를 관리해 이윤을 남기는 공영재개발 방식을 취했다. 이는 정부의 이익을 위해서 아무런 주거대책도 없이 철거민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구조였다. 정부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합동재개발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의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에 맞서 철거민 투쟁이 대중적으로 촉발된다. 1981년 사당동 판자촌 철거 반대 투쟁, 1983년 목동 신시가지 건설 반대 투쟁, 1985년 상계동 재개발 반대 투쟁으로 이어진다.
또한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자행된 노점상 단속에 대한 저항이 분출된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마침내 10월에 도시노점상연합회가 결성된다. 1988년 올림픽을 의식한 대규모 단속이 전국적으로 시작되자 생계에 위협을 느낀 노점상들은 6월 13일 성균관대학교 금잔디광장에 결집하여 대규모의 노점상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가두투쟁을 전개한다. 이로써 노점상 운동은 정권의 반민중적 정책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띠게 된다.
1970년대 종교진영의 연대와 지원으로 유지되던 도시빈민운동은 1987년 항쟁을 거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민중운동의 한 축으로 성장하게 된다. 1988년에는 연대투쟁체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노점상과 철거민들의 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공동투쟁의 성과로 1989년에는 전국노점상연합회와 서울철거민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연대체인 전국빈민연합이 결성되며 빈민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투쟁을 전개해 나간다.
노태우 정부는 1986-1988년 ‘3저 호황’으로 인한 부동산 거품을 해결하기 위해 1988년 이후 대책을 마련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돈암동과 신정동 등 다수의 철거지역이 발생하였다. 1988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권은 철거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을 벌인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 5개년 계획’ 등으로 과열된 부동산 열풍 속에서 각종 재개발 사업들이 진행된다. 이에 저항하는 철거민들의 투쟁도 지속되었다. 대표적으로 1994년 봉천6동 투쟁과 행당동 투쟁, 1995년 전농동 투쟁이 있었다. 노점상에 대한 단속도 계속되었다. 문민정부 5년 동안 5,039개의 노점상이 강제철거 되었고 5,662개의 손수레가 파괴되었다. 단속에 낭비된 예산만 수백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1995년 한 해 동안 살인적인 폭력단속으로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 씨의 분신과 철거민 박균백씨의 분신 투신 항거가 있었다. 급기야 인천 앞바다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떠오른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 투쟁으로 도시빈민의 저항은 대대적인 반정권 투쟁으로 전개된다.
당시 전국철거민연합은 대부분의 철거민이 노동자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철거민을 노동자계급의 일부로, 따라서 사회변혁을 위한 하나의 주체로 보고 지역 투쟁력 및 조직 확대를 통해 사회운동 진영과 학생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해 나갔다. 전국철거민협의회의 경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가입하고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 등과 함께 토지정의실천시민연대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취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철거민운동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1998년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며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IMF를 겪으며 확산된 실업과 빈곤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생활보호제도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노선에 철저했던 김대중 정부의 사회정책은 빈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기보다는 빈곤 문제를 관리하는 차원을 넘지 못했다. 반면 개발사업 활성화를 통한 부동산경기 부양 정책은 철거민들과 강제 이주민들을 양산했다. 단적으로 강북지역 뉴타운 개발에 의해서만 10만 명 이상의 철거민과 강제 이주민이 발생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대형 유통시장의 확산으로 영세 유통구조가 몰락했고, 정리해고와 실업으로 잉여 노동력들이 대거 노점상으로 유입되었다.
이후 2002년 월드컵 등으로 단속과 철거가 지속적으로 자행되었다. 1999년 장애인 노점상 윤창영 열사의 분신, 2001년 장애인 노점상 최옥란 열사의 음독 등은 ’국민의 정부‘의 허울을 드러냈다.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구조 재편 속에서 도시빈민들에 대한 처우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었다. 이 과정에서 도시빈민운동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빈곤 관련 의제를 폭넓게 제기하는 사회운동의 연대 흐름이 형성되었다. 빈민운동 조직 외에도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결합하여 민중복지연대와 빈곤사회연대를 결성하였고, 이를 계기로 반(反)빈곤 운동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정부 복지 정책의 문제점에 대응하게 되었다.
이후 노무현 참여정부는 사회투자국가를 사회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빈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각종 사회 지표들은 도시빈민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찰청 보고에 따르면 서울지역 단전대상 가구 수는 2002년 22,617에서 2003년 32,676으로 증가했고, 건강보험료 체납자의 숫자도 2002-2003년 사이 8만 명 정도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굵직굵직한 부동산 정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치솟는 집값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 철거민들의 투쟁도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서울 상도동, 2003년 경기도 수청동과 풍동 등 곳곳에서 철거에 대항하는 투쟁들이 발생했다. 2003년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사에 따른 노점상 강제철거 문제도 발생하였다.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도 애당초 도시빈민에 대한 정책이 전무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 속에는 부동산 경기 부양 최우선, 싹쓸이 방식의 노점상 단속, 저항 세력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 등이 함축되어 있었다. 특히 2009년 용산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의 경우 부동산 경기 부양과 공권력의 반민중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으로서는 거리낌 없이 뉴타운 재개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은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용산뿐만 아니라 포이동 266번지의 화재와 철거, 가락시장 현대화에 따른 노점상 철거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폭력은 쌍용차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도시빈민운동, 어디로 가야하는가

『가난의 시대』라는 책의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사고 개념은 ‘도시빈민과 빈곤’에 대한 정의다. 이는 도시빈민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하는데, 저자는 단지 모든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는 방식이 아니라 빈민운동의 영역을 한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분석, 기록하는 방식을 심도 깊게 사유하고 있다. 저자는 도시빈민을 “노동할 능력과 노동할 의사가 있는 ‘경제활동인구’임에도 사회구조적으로 근대적 임금노동체계 외곽에 머물고 있는 집단”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열심히 노동을 해도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대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다. 이들은 주로 폐지 수집을 해서 내다파는 사람들, 파출부, 노점상, 가내 하청 부업, 경비원이나 청소원 등 소규모 영업체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노숙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빈민 범주에 포함된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 모두가 생계를 위해 돈벌이에 매달리거나, 의식주와 교육, 의료 등의 소비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고, 불안정한 주거 상태에 놓여있다.
저자는 도시빈민 계급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주변부자본주의론이나 신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입장, 노동계급의 일부로 보는 시각, 다계급 연합으로 보는 시각을 두루 살핀다. 나아가 상대적 과잉인구론이나 비공식 부문론을 통해 이에 대한 논의들을 풀어간다. 여기에 더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최저생계비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 복지정책과 주거문제까지 도시빈민운동의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구조적인 관계들을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빈민운동의 조직 변화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반빈곤 투쟁이란 곧 생존권·기본권 투쟁의 다른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민운동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가난’이라고 말할 때, 가난의 최소 규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가난의 최소 규정들은 삶의 최소 규정들과 맞닿아 있다. 『가난의 시대』는 바로 이러한 생존권 투쟁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자 기본권 투쟁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대부분의 투쟁이 그러 하듯이, 도시빈민운동은 아직까지 완결되지 않은, 그리고 결사적일 수밖에 없는 투쟁의 현장이다. 최소한의 삶의 영역을 지켜나가는 싸움, 그것의 기록을 통해 빈민운동의 역사와 현재를 조명하여 미래를 밝혀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제어
빈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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