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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7-8. 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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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유럽을 향하여

그리스 총선 이후 유럽의 계급투쟁의 전망 - EU 위기와 노동자 투쟁 - 1

임월산 | 노동자운동연구소 국제국장
5월 6일 치러진 그리스의 1차 총선에서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 이하 ‘시리자’)이 부상하였다. 시리자는 소위 ‘트로이카’(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부과되는 긴축정책을 반대하여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중도보수 정당인 신민주당(ND)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1당인 신민주당이나 2당인 시리자 모두 과반 의석에 미달하고 연정 구성에도 실패한 결과, 그리스는 6월 17일 2차 총선을 실시하게 되었다. 2차 총선에서도 시리자는 2위를 차지하였는데, 이번에 신민주당은 전 여당인 사회당(PASOK)과 6위를 기록한 민주좌파당(DIMAR)과 연정을 구성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신정부가 출범했지만 그리스의 경제적·정치적 위기는 절대 끝나지 않았다. 이 글에서 다루듯이 신정부는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매우 낮을 뿐더러 연말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부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유로존의 위기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확산되고 있다. 6월 9일에 트로이카가 스페인에 1,000억 유로 규모의 은행 구제금융을 결정했고 14일에는 사상 최초로 스페인 국채(10년물) 금리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7%를 돌파하기도 했다.
비록 ‘좌파정부’의 꿈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시리자는 사라지지 않고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오히려 제1야당이 된 시리자는 긴축정책과 트로이카의 독재에 맞선 민중의 투쟁을 상징하고 있다. 유럽의 위기가 계속 심화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시리자를 비롯한 그리스 사회운동의 역할도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 글은 5월 6일과 6월 17일 두 차례에 걸친 그리스 총선을 유럽의 경제위기와 그의 맞선 계급투쟁이라는 맥락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시리자가 부상하게 된 배경과 시리자의 강점 및 한계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시리자를 비롯한 그리스 좌파세력 앞에 놓인 과제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유럽의 재정위기

이번 그리스 총선은 지난 몇 년에 걸친 유럽의 재정위기라는 큰 맥락 속에서 치러졌다. 2007년-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한 유럽계 금융기관의 자산 가치가 하락했고, 이는 유럽의 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위기로 확산되었다. 2008년 이후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실업률이 계속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 위기의 영향으로 공공지출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1990년대 이후 지속된 감세로 인해 조세수입 기반이 악화된 상황에서 유럽 각국의 재정수지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2009년 이후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주변국에서 국가채무가 급증하면서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다시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재정위기가 발생하였다. 2009년 7월 유럽연합 회원국인 헝가리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했다. 이어서 2010년 3월에 유로존 회원국 그리스, 같은 해 10월에 아일랜드, 2011년 4월에 포르투갈도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유럽 통합의 신자유주의적 본질
유럽의 재정위기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과 유럽연합 및 유로존의 내부적 모순이 결합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이 모순은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과 ‘유럽의 내부적 불균형’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화폐동맹 아래 민족화폐가 공동통화인 유로로 대체되고 유럽중앙운동이 통화정책을 통제하며 개별 국가들은 통화주권을 포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율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열세인 국가에게 노동신축화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반면 화폐동맹에 상응하는 재정동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통일된 재정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나 정치적 장치가 없고 재정정책과 사회정책은 개별 국가가 맡게 된다. 유럽중앙은행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경기침체에 빠질 경우 각 민족국가는 개별적으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어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유럽의 내부적 불균형도 유럽 통합 과정에서 구조화된 모순이다. 독일은 마르크화를 유로화로 대체하면서 실질적인 평가절하 효과를 누리게 된 결과 수출경쟁력을 더욱 강화하여 2000년 이후 역내 상품수출과 자본수출을 토대로 막대한 흑자를 내고 경제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반면 그리스와 같은 주변국들은 평가절하 전략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경쟁력 격차를 상쇄할 경제적 메커니즘이 소멸되고 단위노동비용이 꾸준히 상승하였다. 유로화를 사용함으로써 주변국의 국채 금리는 독일 수준으로 감소하고 국외로부터 자본이 유입되면서 민간부채와 정부부채가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높은 경제성장률을 시현했지만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가 누적되었다. 이러한 중심부에서의 흑자 누적과 주변부에서의 적자 누적 메커니즘이 유럽의 내부적 불균형의 기초를 이룬다.

트로이카의 대응의 문제점
유럽의 재정위기는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 및 ‘유럽의 내부적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요인과 함께,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라는 정세적 요인이 중첩되어 표현된 결과다. 하지만 트로이카는 재정위기의 본질적 원인을 개혁하기보다는 구제금융과 긴축정책과 같이 현상적 문제점에만 대처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구제금융 및 긴축정책은 남유럽 국채를 보유한 유럽 은행권의 전염을 막음으로써 중심국의 이해에 봉사하지만, 해고, 임금삭감, 사회보장 축소 등으로 주변국의 민중에게 큰 고통을 전가한다. 더욱이 통화동맹 하에 평가절하를 할 수 없는 그리스와 같은 위기국가들은 구조조정·노동신축화 등 긴축정책을 단행하더라도 경쟁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낮다. 결국 트로이카의 해결책은 그 경제적 실행가능성이 의문시됨과 동시에 민중의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여 정치적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2년간의 반긴축 대중운동

구제금융과 긴축정책의 악순환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그리스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 디폴트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그리스는 2010년 4월에 트로이카와 공식 협상을 시작했고 5월에 1,100억 유로의 1차 국제금융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어서 2012년 3월에는 1,300억 유로의 2차 구제금융 지원이 결정되었다.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그리스는 수차례의 긴축정책과 노동악법을 시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경제의 회복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리스는 2008년 이래 줄곧 마이너스 정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임금과 연금은 35% 가량 삭감되었고, 공식 실업률은 20%를 초과한다.
지난 2년간의 긴축정책은 그리스 노동자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2009년 말 이후 총 17번에 걸쳐 긴축 및 노동악법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일어났다. 이러한 파업들은 주류 노동조합 집행부의 지도로 진행되기보다는 평조합원의 요구에 기초하여 집행부에 대한 압박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다. 그리스의 최대 민간부문 노총인 GSEE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공공부문 노총 ADEDY 집행부는 전통적으로 친사회당 계열이다. 사회당이 2009년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하자 GSEE 집행부는 ‘40% 이상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정세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총파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2009년 새롭게 수상으로 취임한 파판드레우는 사회보장 지출을 10% 삭감하고 공공서비스 부문 노동자의 고용을 동결하겠다는 선언을 해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분노를 자극했다. 조합원의 요구 속에서 ADEDY는 2010년 2월 10일 하루 총파업을 전개했다. 이어 2월 24일에 GSEE와 ADEDY가 공동으로 2월 24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1차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결정하고 그에 수반되는 그리스 정부의 긴축정책안이 의회를 통과한 5월 5일까지 공공·민간 부문을 망라하여 여러 번의 총파업이 진행되었다. 파업이 진행될수록 조합원들의 참여도 늘어났다. 현장에서의 결의대회, 파업위원회 구성 등의 과정에 동반하여 현장·지역 차원의 조직화와 대규모 가두시위가 전개되었다.
2011년 5월부터 노동자 투쟁은 그리스의 ‘분노하는 사람들’ 운동과 결합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2011년 초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에 영감을 받은) 스페인의 ‘분노하는 사람들’에 고무된 그리스의 ‘분노하는 사람들’ 운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5월 26-27일 여러 지역에서 최초로 대중 시위를 조직하였다. 이 투쟁들은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과 테살로니키의 백탑광장 점거로 이어졌다. 광장 점거운동은 2011년 8월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는 노조나 좌파 정당과 같은 전통적인 조직 외부에서 자생적으로 조직된 반긴축 대중운동의 새로운 형태의 상징적·물질적 근거지가 되었다. 2011년 5월 이후 ‘분노하는 사람들’은 총파업 때마다 가두에서 연대해왔다.
2011년 하반기 들어 그리스의 긴축조치가 원활히 이행되지 않음에 따라 1차 구제금융 기금 제공이 중단될 상황에 처하게 되자, 그리스 정부는 다시 더욱 강력한 긴축조치를 발표하였다. 그러자 그리스 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하여 총파업을 선언하였다. 10월 19-20일 이틀에 거친 총파업에서는 지난 5개월 동안 단련된 노동자와 ‘분노하는 사람들’의 동력이 결합되어 강력한 투쟁이 펼쳐졌다. 아테네에서만 30만 명이 가두시위를 펼쳤고, 그 외 지역에서도 20만 명이 총파업 및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총파업으로 대부분의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사업장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파업 시기에 정부 부처를 포함한 공공건물 점거운동이 벌어지고 정부가 재정건전화 방안으로 도입한 세금에 대한 납세 거부(no pay)운동이 조직되기도 했다. 공산당과 공산당 계열 노총인 PAME는 10월 20일에 의회를 봉쇄하기도 했다.


재정위기가 야기한 정치위기

그리스 국민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파판드레우 수상은 2011년 10월 31일에 2차 구제금융에 관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그러나 트로이카와 그리스 지배계급의 압박 속에서 파판드레우는 며칠 뒤에 이 제안을 철회했다. 긴축재정에 대한 반대여론과 동시에 지배계급의 불신이 완화되지 않고 사회당 내에서도 사퇴 압력이 강화되는 속에서 결국 파판드레우는 11월 11일에 사임하였다. 이후 사회당, 신민당, 극우 국민당(LAOS)이 참여하는 과도연정이 구성되었고, 2013년에 예정되었던 차기 총선은 2012년 5월에 조기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새로운 구제금융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2012년 2월에도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지속되었다. 이것은 과도연정에 대한 대대적인 반발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로 국민당이 연정에서 물러났고, 신민당은 내부에서 분열이 발생했으며, 사회당은 지지기반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결국, 5월 6일에 실시된 1차 총선에서 전통적으로 그리스 의회를 지배하던 신민당과 사회당은 이전에 비해 득표율이 크게 하락했고 양당 모두 과반수 획득에 실패했다. 또 신민당, 시리자, 사회당 모두 구제금융 조건인 긴축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연정을 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2차 총선이 6월 17일에 실시되었다.


5월 6월, 6월 17일 총선 결과와 의미

[표 1] 그리스 총선 결과
* 출처: Parties and Elections in Europe

1-2차 총선 모두에서 시리자는 상당한 지지를 받아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잘 계획된 선거운동의 성과라기보다는 지난 2년간 발전한 대중운동과 기존 정당의 위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단적으로, 사회당을 지지하던 많은 유권자가 시리자를 지지하게 되었다. 한 분석에 따르면 1차 총선에서 사회당이 상실한 득표율 19%는 시리자가 흡수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시리자는 노동자계급 주거 지역과 청년층·중년충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50세 이하 득표율은 1차 총선에서 약 20%, 2차 총선에 약 33%로 모든 정당 중에 제일 높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리자의 지지 기반은 ▲양당 체제에 대한 불신과 정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무정부주의 경향의 청년층 ▲세금 인상, 임금 삭감, 연금 등 사회보장 삭감, 해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산층이나 화이트칼라노동자 ▲중도좌파 성향에서 급진좌파 성향을 망라하는 노조 조합원 ▲이민자와 도시빈민 ▲구조조정이 장기화될수록 파산 위험에 처하게 되고 세금 인상과 적극적 세금징수에 반발한 중소상공인을 포함한다고 한다.
6월 17일 2차 총선에서 시리자는 신민당에 근소한 차이로 패했지만 득표율이 10% 가량 상승하며 71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되었다. 그러나 전체 ‘반긴축 투표’는 1차 총선에 비해 상당히 축소되었다. 1차 총선에서 긴축반대를 선언한 정당이 60% 가량의 득표율을 획득한 것에 비해, 2차 총선에서 긴축반대 세력의 득표율은 45%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는 보수 세력의 악선전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외 주류 언론이 구제금융-긴축재정의 부정은 유로존의 강제 탈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식의 압도적인 담론을 형성했고, 이러한 지형에서 많은 그리스 국민들은 위협을 느꼈다. 이것은 시리자가 패배한 원인이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긴축정책의 철폐나 대폭 수정 입장을 취해도 유로존 잔류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시리자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은 동시에 또 다른 많은 유권자들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 아래에서 시리자의 역사적 배경과 강점 및 한계를 분석한다.


그리스 좌파의 역사와 시리자의 결성

시리자는 진보적 개혁주의 성향의 좌파 정당, 정파와 개인 활동가의 연합체이다. 주도 세력은 개혁주의 성격을 지니는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 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이지만 급진좌파/마르크스주의(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공산주의) 세력을 포함해 20개 이상의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합류한 여러 단위들과 연합체로서 시리자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좌파의 분열과 다양한 노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 좌파의 역사는 한국과 유사하게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반식민지 투쟁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918년에 창당된 그리스공산당(KKE)은 전쟁 시기에 반 나치 투쟁을 주도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얻어 부상했는데, 전후 그리스 내전(1946~1949년) 패배와 그에 뒤이은 탄압으로 많이 약화되었다. 이 시절 일부 활동가는 소련에 망명하였고 일부는 그리스에 남아 지하 활동을 전개하였다.

첫 번째 분열
1960년 말부터 70년대까지 지속된 그리스 군부독재 하에서 공산당의 대중적인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그리스 좌파는 첫 번째 분열을 경험했다.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략을 바라보면서 유럽 각국의 공산당들이 심각한 논쟁과 분할을 겪게 됐는데, 그리스공산당 내에서도 소련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등이 발생하였다. 결국 지하 공산당 시절 소련에 망명한 활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공산당(친소 세력)과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 니코스 풀란차스가 대변하는 (국내)공산당이라는 두 개의 공산당이 형성되었다. (국제)공산당은 나중에 당명에서 국제라는 말을 빼고 공산당으로 자신을 지칭하였다. 1990년대 초부터 확고한 스탈린주의 노선을 표방한 공산당은, 올해 5월 총선 전까지 의회에서 좌파 정당을 대표했다.
한편, 공산당의 분열과 같은 시기에 양쪽의 경향을 동시에 비판한 비공산주의 좌파, 즉 사회민주주의자,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신좌파 등도 등장하였다. 이 중 일부는 이후 시리자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2009년에 시리자에 비해 보다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좌파연합’(Antarsya, 이하 ‘안타르시아’)을 결성하게 되었다.

두 번째 분열
(국내)공산당 경향은 흔히 유로코뮤니즘(Eurocommunism)으로 규정된다. 서유럽에서 유래한 유로코뮤니즘은 소련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비판하면서 서유럽 각국의 상황에 보다 적절한 사회변혁론을 계발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사회 개혁을 위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보다 중도적인(centrist) 세력과의 연대·연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유로코뮤니즘에 대한 좌파적 비판자들은 유로코뮤니즘의 사민주의 또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지적한다.
1980년대에는 (국내)공산당 내에서 그리스 좌파의 두 번째 분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쇄신을 주장하는 세력과 사민주의·개혁주의를 지향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나타났다. 그 결과 당이 (국내)공산당-혁신좌파(뒤에 혁신공산주의생태좌파(AKOA)로 명칭 변경)와 그리스좌파(EAR)로 분할하였다. 그리스좌파는 현재 연정에 참여하는 민주좌파당을 창당한 세력이다.
1989년에 소련에 대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산당과 그리스좌파는 선거 공동 대응을 위해서 몇 개 소수 정당과 함께 시나스피스모스로 불리는 좌파진보연합(2003년에 좌파운동생태연합으로 명칭 변경)을 결성하고 선거에서 13%라는 상당히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시나스피스모스는 먼저 신민당이 제안한 임시 연정에 참여하고 1989년 말에 치러진 2차 총선 후에 신민당, 사회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였다. 이 기간 동안 시나스피스모스가 사회당과 신민당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에 동참하게 되었다.

세 번째 분열
1980년 말부터 1990년 초에 공산당이 지배세력과 정치연합을 시도한 것에 대한 당 내부 반발에 소련의 붕괴라는 상황이 겹치면서 세 번째 분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공산당의 청년동맹(KNE)이 지배계급과의 협조를 강력히 반대하면서 시나스피스모스에서는 물론이고 공산당에서도 탈퇴해서 신좌파경향당(NAR)을 창당했다. 신좌파경향당은 2009년 안타르시아의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공산당도 시나스피스모스와 분리하여 이 시기부터 확고한 분파주의를 고수하면서 모든 활동을 단독으로 수행하였다.
사민주의 경향인 그리스좌파 중심으로 시나스피스모스에 잔류한 세력들은 1991년에 정당 전환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시나스피스모스(그리스어로 ‘연합’을 의미)라는 조직명을 유지하며 열려 있는 범좌파적 성격을 지속하고자 했다. 이때부터 국제마르크스주의경향을 비롯한 보다 급진적인 여러 세력이 합류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시나스피스모스가 반세계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참여세력이 더욱 확대되었다. 시나스피스모스에 합류한 좌파는 기존 지도부와 갈등하면서 시나스피스모스의 좌경화를 주도하였다.

시리자의 결성과 내부 갈등
1990년대 말부터 시나스피스모스 안의 좌파/비주류 세력은 주류세력인 그리스좌파의 영향력에 도전하기 위해서 “좌파의 단결”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나스피스모스 외부에 존재하는 다른 좌파 세력들과의 제휴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세력들이 2004년 시리자의 결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3%의 득표율, 즉 의석 확보에 필요한 최소한 득표율을 확보할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리스좌파 출신 시나스피스모스 당대표 니코스 콘스탄토팔로스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시리자의 결성에 동의하였다.
결국 2004년 총선에서 시리자는 3.3%를 득표해서 6개 의석을 획득하였다. 이 결과는 일단 선거연합의 성공으로 평가될 수 있었지만, 이내 시리자 안에서 의원 명부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였다(당선된 의원 6명은 모두 시나스피스모스 당원이었다). 같은 해 6월 유럽연합 의회 선거에서 같은 문제로 의원 명부를 아예 구성하지 못해 선거연합이 중단되는 것으로 귀결하고 말았다.
2004년 말에 시나스피스모스 당권 선거에 좌파와의 연합을 확고히 지지하는 알레코스 알바노스가 이전의 콘스탄토팔로스 지도부를 대체하여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내부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알바노스의 지지 속에 2008년에는 현 당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시나스피스모스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다음해 시나스피스모스가 집권 사회당과 타협적 태도를 보이자 알바노스는 마오주의 경향인 그리스공산주의조직(KOE)과 트로츠키주의 경향인 국제노동자좌파(DEA) 등과 함께 연대와전복을위한전선(Front for Solidarity and Rupture)을 결성해서 시리자 내에서 시나스피스모스가 주도하는 우경화에 도전하였다. 같은 시기에 시나피스모스에서는 좌우 분열이 발생하여 우파가 민주좌파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시나스피스모스 내 우파가 민주좌파당으로 분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나스피스모스, 따라서 시리자에 잔류한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서는 분명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특히 유럽연합에 대한 입장, 따라서 경제위기 탈출 방안에 대해서 시나스피스모스의 공식 입장은 시리자 안의 비 시나스피스모스 급진좌파 세력들의 입장과 다르다.


시리자의 강점과 한계

앞서 보았듯이 대중의 긴축정책에 대한 분노와 2년간의 노동자·민중의 투쟁이라는 외부적 조건이 시리자가 총선에서 선전하게 된 주요한 요인이다. 이와 함께 여러 내부적 조건들도 유리하게 작용해 시리자는 공산당이나 다른 좌파정당 보다 많은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개방적인 성격과 반분파적 이미지
위에서 보았듯이 1990년대부터 공산당은 다른 정파들과의 어떠한 공동 활동도 거부했다. 이러한 분파적인 태도가 많은 활동가와 일반인으로부터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시리자는 2004년 창립 당시부터 분파주의 극복과 좌파단결(Left Unity)을 주 슬로건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번 1차 총선 전후에는 범좌파 정당 구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태도가 공산당 등 전통적 좌파정당에 대해 환멸을 느끼던 이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 듯하다.
이러한 개방적인 성격은 시리자의 조직구조에서도 나타난다. 지역 조직 체제가 튼튼하기 때문에 대중적 접근성이 상당히 높다. 각 지역에 지역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노동자와 ‘분노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현장투쟁을 지지·지원한다. 시리자는 지역 차원에서 안타르시아 등 급진좌파 세력과 공동 활동을 벌인다. 시리자에 참여하는 좌파 정당 및 정파는 사업장 단위 파업위원회에 참여함으로써 노동자의 신뢰와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유동적 입장과 강령
시리자의 주요 메시지는 트로이카의 구제금융 조건, 즉 긴축정책 부인이다. 그러나 ‘구제금융 조건 부인’이나 ‘긴축정책 반대’라는 슬로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총선을 앞두고 대중 집회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치프라스를 비롯한 시리자 지도부는 ‘전체 구제금융 프로그램과 긴축정책의 완전 철회’를 주장해 트로이카에 확고히 도전하였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 보수언론의 공격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긴축정책의 일부 수정 및 향후 재협상’으로 입장을 수정하였다.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유로존 탈퇴와 관련해서 시리자의 공식입장(2011년 11월 전국당대회)은 “유로를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No sacrifice for the Euro)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과거 공산당원이던 시리자의 발라바니(Valavani) 의원은 이 슬로건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시리자의 전략은 어느 한도 내에서 유로존에 잔류하는 것이다. 그 한도는 간단하다. 그리스 국민이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유로존 잔류가] 우리의 숨통을 막으면 다른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치프라스 당대표는 1차 총선 후에 ‘[유로존 탈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수 차례 강조하였다. 이것은 당의 공식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시리자 입장의 유동성과 총선 이후의 온건화는 보수언론의 공격 앞에서의 후퇴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1차 총선을 전후로 형성된 대중적 정서에 부응하는 태도로도 볼 수 있다. 보수언론은 ‘시리자를 위한 투표는 유로존 탈퇴를 위한 투표’라는 식으로 공격하였다. 대다수 그리스 민중이 유로존 탈퇴에 대해 상당한 공포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의 영향이 크다. 시리자 지도부는 대중을 분노하게 하는 긴축정책에 대한 대안을 확실히 제시하면서도 유로존에 잔류할 의사를 분명히 보여주고자 애쓴 것이고 정권 교체와 트로이카와의 협상이라는 ‘평화로운’ 과정을 통해서 사회변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전략은 긴축에 대한 분노와 유로존 탈퇴에 대한 공포라는 두 정서 사이에 균형을 찾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2차 총선에서 ‘반긴축 투표 하락’과 시라자의 패배는 시리자의 메시지로 설득되지 않은 유권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시리자의 한계
시리자의 유동적인 입장은 또한 시리자의 한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시리자 참여세력 사이에 위기의 원인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공통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큰 문제다. 치프라스와 같은 시나스피스모스 지도자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아니라 금융기관과 카지노 자본의 탐욕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의 적대적인 대립 없이도 정부교체와 구제금융 프로그램 재협상을 통해 그리스 민중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래에서 설명하듯이 이러한 방안은 실행가능성이 매우 낮다. 긴축에 반대하여 그리스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은 곧 트로이카에 대한 확고한 도전을 의미하며, 이는 상당히 격렬한 계급투쟁을 동반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6월 17일 총선 결과를 보면서, 시리자에 합류한 급진 좌파 세력들은 시리자가 거둔 분명한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한계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시리자가 트로이카와 자본의 공격이 거셀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과 현장 수준에서 경제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문제점을 교육하고 투표를 조직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리자는 2차 총선을 앞두고 트로이카와의 갈등을 축소하려고 애썼고, 지역과 현장 수준이 아니라 매스컴을 주요한 활동 무대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좌파의 경제위기 탈출 방안과 그 실행가능성

시리자 주류세력(시나스피스모스 주류세력)은 “EU-IMF 메커니즘으로부터의 철수”(disengagement from the EU-IMF)를 주장하면서도 유럽공동체 잔류와 재구성을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리스와 여타 남유럽 국가의 채무조정, 위기국 정부에 대한 유럽중앙은행의 직접 대출, 유로본드 발행 등을 위기탈출 방안으로 제시한다. 또한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유럽연합 조약 개정, 그중에서도 특히 채무조건을 규정하는 안정및성장에관한협약(GDP 3% 이하 연간 재정적자, GDP 60% 이하 국가 부채)의 폐지와 이의 사회보장에관한협약으로의 대체를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들은 5월 말에 발표된 시리자의 강령에서 나타나는데, 대체로 시나스피스모스가 속한 유럽좌파당(European Left)의 주류적 입장을 반영한다.
현재 유럽연합 재무장관회의, IMF, 유럽중앙은행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여러 가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예컨대, 재정위기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확산될 우려가 높아지면서 유럽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수행하여 국채매입을 대폭 확대할 것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실행가능성이 높지 않다. 유럽중앙은행이 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하면 그 위험이 유럽중앙은행의, 따라서 공적인 부담으로 남게 된다. 이는 결국 중심부 국가의 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일 등 중심국은 납세자들의 지지를 의식해 반대하고 있다. 중심국 지배계급은 유럽중앙은행이 위기국의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할 경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구분이 모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공동화폐로서 유로화의 위상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독일연방은행도 유럽연합 조약 위반에 해당하며 결국 각국 정부가 재정규율을 준수할 인센티브를 손상시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로본드의 경우도 문제가 비슷하다. 2011년 11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정책제안서에서 최초로 공식화된 유로본드 발행 방안은 회원국 국채를 대체하여 회원국 공동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서, 재정통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 등 고신용국은 그리스 등 저신용국의 신용리스크 전이를 우려하면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EU 통치구조가 전반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채 유로본드를 도입하는 것은 단지 더 매력적인 금융투자처를 제공하고 독일의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시리자 지도부와 달리 시리자에 합류한 좌파나 시리자에 참여하지 않은 급진좌파 세력들 대부분은 EU의 신자유주의적 본질을 고려할 때 유로존 탈퇴와 유럽연합과의 분리는 필연적인 것으로 본다. 이들의 입장은 대체로 런던대학교 경제학 교수 코스타스 라파비차스(Costas Lapavitsas)가 제출한 위기 해결책으로 수렴된다. 라파비차스는 그리스가 채무탕감 및 디폴트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그리스는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겠지만, 노동자 주도의 부채감사위원회를 설치하여 부채를 분류하여 이를 처리하고, (디폴트 선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유로존 탈퇴 이후 통화제도의 변화에 따른 충격이 은행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은행의 사회화와 민주적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파비차스는 이러한 유로존 탈퇴를 통해 통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하고 임금 삭감 등 ‘내부적 평가절하’를 중단함으로써 수출을 통한 경쟁력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의 급진적 좌파 세력들은 대체로 라파비차스의 방안에 동의하는데, 그 사이에도 미묘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그리스가 언젠가 유로존을 이탈/탈퇴할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 하지만, 이탈/탈퇴가 당장의 직접적인 목표인지 아니면 정치·경제적 위기의 불가피한 결과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다. 공산당과 안타르시아의 공식 입장은 유로존 탈퇴, 나아가 EU와의 분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주의경향 계열 사회노동당(SEK)을 비롯한 안타르시아에 참여하는 세력 일부와 시리자에 참여하는 급진 좌파 세력 일부는 유로존 이탈과 유로존 해체는 투쟁의 목표라기보다 유로존에 내재한 모순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세력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앞서 전개될 트로이카에 맞선 중장기적 투쟁에 대비해서 조직화와 대중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트로이카가 지배하는 체제와의 분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유럽 차원의 노동자 연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2007년에 시리자에 합류했다가 2011년에 탈당한 노동자인터내셔널위원회 계열 정파인 세키니마는 각국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통해 ‘자본의 유렵연합’을 대체할 ‘사회주의 유럽’을 건설하자는 구체적인 강령을 제시하기도 한다.
앞서 보았듯이 재정위기에 대해 트로이카가 여러 대책들을 거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단기간 내 실행되기 어렵다. 구조적 해결책이 제시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일부 개선 조치가 도입되더라도 그 실효성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 신민당을 비롯해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은 2차 총선 이후에 구제금융 조건을 재협상할 의사를 밝히고 있고 조금 있으면 재협상이 이루어질 듯하다. 그러나 일부 조건이 완화되더라도 트로이카의 강력한 압력으로 새로운 국제금융 조건의 내용은 현재의 긴축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제금융이 현재 그리스의 위기를 구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로 그리스 민중들은 다시 한 번 고통스러운 긴축조치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그랬을 때 긴축정책의 집행을 담당하는 신정부는 민중의 분노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신정부가 올해 안에 붕괴될 것을 전망하는 언론이나 학자가 적지 않다. 또한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장기화되고 스페인, 이탈리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가 자발적으로 유로존을 탈퇴하지 않더라도 멀지 않은 장래에 그리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가 유로존을 이탈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 따르면, 위에서 제시된 ‘장기적 계급투쟁과 유로존 이탈의 불가피성에 대비하자’라는 입장이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라파비차스가 주장하는 ‘유로존 이탈에 동반하는 은행 사회화, 수출을 통한 경쟁력 회복’이라는 일국적 해결책은 결코 충분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그렉시트는 다른 위기국을 비롯한 유럽연합 전체에 대한 충격이 크기 때문일 뿐 아니라, 유럽의 위기가 유럽 통합의 신자유주의적 본질과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문제이므로 그 해법역시 유럽 차원에서 제시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유럽’ 또는 ‘대안적 유럽’을 모색하는 좌파세력이 존재해도 유럽 사회운동은 아직 국제적 차원에서 세력 관계를 역전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대안적 상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의 2년간의 투쟁을 보면 분명한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


유럽의 계급투쟁과 그리스 좌파의 역할

현재로서는 시리자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다만 총선 직후에 치프라스 당대표의 몇 가지 발언을 통해 시리자의 계획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치프라스는 로이터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책임있는 야당’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또는 당분간 투쟁을 동원하는 것보다 긴축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최하층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조직화와 투쟁 중심의 활동보다는 의회 중심의 전략을 암시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세에서 의회 안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면 시리자는 ‘약한 긴축’(austerity light), 즉 긴축 정책을 일부 완화를 추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이는 민중의 권리와 생존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긴축정책과 트로이카의 독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유럽 통합에 대한 대안을 현실화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민중들이 공포를 극복하여 현재 체제가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하고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전환적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대중적 교육과 조직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과 현장에서, 나아가 유럽 차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안들은 이미 곳곳에서 논의되고 실천되고 있다. 가령 그리스 노동자들은 점점 전투적으로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일부 사업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지난 3월 유럽의 노동조합, 정당, 사회운동단체들은 국제회의(Joint Social Meeting)를 개최하여 긴축에 반대하는 유럽 차원의 투쟁을 조직할 방안과 민중적 부채 감사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러한 대안들이 충분히 성숙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분명 유의미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자는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사회운동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책임 있는 야당’을 자처하며 의회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유럽 차원의 대안 논의에 적극 동참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스 좌파들은 유럽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과 모순을 폭로하면서 대중 교육과 조직화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 속에서 민중적·국제적 대안을 구체화할 때 그리스와 유럽 민중들은 ‘대안적 유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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