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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10.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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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시대, 반전반핵 평화운동의 과제

김민석, 수열, 차승리 |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읽는 키워드: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중국

중국의 부상과 변화된 미국의 아시아 전략

아시아에 대한 적극적 개입
최근 미국은 ‘아시아 회귀’라고 칭할 만큼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식의 변화나 수사의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은 오바마 행정부를 관통하는 아시아 전략의 특징이다.
2009년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해 11월 아시아 순방에 나섰다. 첫 방문지인 일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신아시아 정책구상’을 발표했다. 여기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과 태평양을 통해 하나로 묶여 있다며,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데 아시아 지역과의 협력을 극대화할 것이라 밝혔다. 특히 그는 이러한 협력 극대화에서 중국과의 갈등과 경쟁을 지양하며 실용적 협력을 추구할 것을 강조했다.

아시아, 글로벌 이슈의 협력자
이렇게 미국이 아시아 지역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 마련이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구제금융 투입, 수량완화 정책 등을 동원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막대한 재정 소요를 낳았다. 미국은 부족한 재원을 국채를 통해 조달했는데, 미국으로 상품과 자본을 수출해 온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 국채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다. 현재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6개국이 미국 국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과 동아시아 경제의 상호연관성은 훨씬 깊어졌고,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 지역의 협조와 안정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테러와의 전쟁’의 출구전략 마련이다. 10여 년 간 지속된 대테러 전쟁에서 미국은 1조 3천억 달러가 넘는 전쟁 비용과 2천 명이 넘는 미군 병사의 목숨을 대가로 치렀다. 그럼에도 이라크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안정과 평화는 요원해 보이며, 사실상 발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지난 5월 시카고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한 기존의 계획을 확인했고, 대테러 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유럽 국가들의 조기 철군은 언제나 논란거리다. 따라서 미국은 대테러 전쟁의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손을 빌리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방위 전략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변화된 인식은 방위전략에도 반영되고 있다. 2011년 4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향후 12년간 4조 달러 상당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방예산 4,870억 달러를 감축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국방부는 이에 따라 변화된 조건(예산 제약, 재정 위기)에서 향후 10년간 미국이 추구할 새로운 방위전략을 정리했다. 이것이 2012년 1월에 발표된 “지속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21세기 방위를 위한 우선 사항들”이라는 제목의 새 전략 지침이다.

아시아 집중
새 지침은 ‘미국의 경제와 안보는 서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 인도양 지역과 남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발전과 불가분의 연결 관계를 지닌다’고 밝히고 있어, 미국의 지역적 집중점이 아시아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중동에 대한 초점을 유지하면서도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지리적 우선권이 이동’한 것이라 평가했다.
지리적 우선권의 이동은 방위전략의 강조점도 변화시킨다. 지침이 밝히는 미국의 방위전략은 ‘오늘날의 전쟁’에 대한 대비에서 ‘미래의 도전’에 대한 대비로 이동한다. 테러 집단 등 비정규군과의 전투를 주로 상정하는 전략에서 잠재적 적대국의 공격을 억지하고 격퇴하기 위한 군사적 준비, 사이버 능력 등 미래전력 개발이 중심적 과제로 부상한다. 중동 지역에서의 활동은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부상하고 있는 잠재적 경쟁국, 즉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적 대비를 강조하는 것이다.

작전개념의 변화
새 지침은 전진기지 확보, 지역접근저지 능력 타격, 우주와 사이버 공간 방어 등을 포함하는 ‘합동작전 접근 개념’을 제시한다. 지역접근저지 능력이란 중국의 방위전략으로, 외부의 개입을 차단해 주변 지역에 자국의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즉 새로운 작전개념은 중국의 군사력 투사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미사일방어망(MD) 구축, 미래전력 프로그램과 장거리 타격 능력 강화, 직접 침투와 병행한 원거리 공격 등이 강조된다. 중국의 지역접근저지를 극복하기 위한 장거리 타격 능력은 미사일방어망 추진으로, 전지기지 확보 전략은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과의 긴밀한 군사 협력 강화로 드러나고 있다.

지역 패권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동아시아 파트너십의 강화
2010년 10월 미국은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가입했는데,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공식적인 개입 채널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미국의 기존 외교정책 노선과 큰 차이점을 보이는 이례적 행보다. 지금까지 미국은 자국이 직접 만들지 않은 다자주의 틀에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경제, 군사적 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미국의 고심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동아시아 정상회의 이외에도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경제대화, G20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등을 통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가고 있다.

파트너십을 뒷받침하는 군사력 강화
동아시아 지역과의 파트너십 강화는 국제협력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직접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0년 4월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때 오바마 대통령은 말레이시아와 별도 회담을 개최했다. 7월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은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인도네시아의 특수부대와의 안보협력활동을 발표했다. 게이츠 장관의 인도네시아 방문 직후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와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외교장관 회담을 진행했다. 북한과 핵 협력을 했다고 의심되는 미얀마와 대화를 재개했고, 인도 특수부대와도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동아시아 지역과의 협력을 뒷받침하는 군사력 강화도 진행된다. 미국은 하와이-괌-일본-한국을 연결하는 군사허브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는 핵잠수함이 상시 배치되어 있고,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의 근거지로서 괌 기지가 강화되고 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일본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해 ‘군사일체화’로 나아가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는 7만 명 수준의 미군 장병과 가족이 상주하는 거대 군사기지로 조성되고 있다.

미중 갈등의 고조
미국은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지만, 그만큼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기 때문에 다양한 갈등 요소들이 상존한다. 2009년 3월 남중국해 하이난섬 부근 공해상에서 중국 해군과 미군 함정이 대치하는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센카쿠 열도 분쟁, 서사군도 분쟁, 남사군도 분쟁, 쿠릴 열도 분쟁, 그리고 독도 문제 등 영유권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지역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이러한 영유권 다툼과 얽히고 있다.
경제 부문에서도 아시아 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에 주목하면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구상이 중국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중화 경제권과 아세안에 중점을 두고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FTA)를 추진하고 있는데, 미국의 TPP 구상을 자국을 견제 또는 배제하려는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전략에 종속된 한국의 평화정책

미국 대북전략의 변화

냉전 이후 미국의 대북전략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지역강국’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북한과 이라크 같은 이른바 ‘불량국가’들이 포함되는데, 미국은 이들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1990년대 초부터 핵 프로그램이 의심된 북한이 가장 유력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정치, 경제적으로 완전히 봉쇄하거나 붕괴를 유도할 경우, 북한 사회의 불안정성이 증대해 결국에는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더욱 증폭될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봉쇄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대화와 협상을 병행하게 된다.

클린턴 정부의 페리프로세스
이러한 미국의 대북전략은 ‘페리프로세스’를 통해 정리되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과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름을 딴 페리프로세스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이중경로 전략’을 제시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종료시킨다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조치를 철회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페리프로세스가 북한에 대한 압박에 의존하던 아버지 부시 정부 시절보다 상대적 안정성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페리프로세스가 협상을 첫 번째 경로로 상정한다고 해서 군사력 증강을 협상의 후순위에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중경로 전략에서 군사력 증강은 언제나 협상과 병행된다. 이 때 협상의 결과나 북한의 의도에 대한 예측은 철저히 배제되며, 북한과의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즉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할 경우 이러한 군사적 압박이 단계적으로 가시화된다. 이러한 전략을 수용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동맹의 강화와 현대화가 함께 추진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햇볕정책의 의미와 한계

김대중 정부의 통일방안과 615 선언
615 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기에,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남측의 ‘연합제 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밝힌 통일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5년 대선후보 당시에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연합 단계-연방제통일 단계-완전통일 단계의 3단계로 구성된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남북연합 단계는 향후 통일을 위한 제반업무를 처리하는 권한이 매우 작은 연합기구가 존재하는 단계다. 연방제통일 단계는 하나의 연방과 두 지역의 자치정부가 존재하는 단계로, 연방은 외교와 군사의 전면적 권한과 주요 내정에 대한 주요 권한을 갖는다. 완전통일 이전에 제시된 두 단계는 남과 북의 경제적 통합이 이루어지는 시기로, 이러한 경제적 통합을 정치적 통합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남북 통합의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이 시기는 사실상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단계로 설정되는데, 여기에는 시장경제의 도입과 다당제, 자유선거의 허용 등이 포함된다. 즉, 남측의 연합제 안이란 북한의 경제개방과 정치개혁을 유도하는 기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세부 방안이 남북 간의 무역자유화 시나리오다. 이는 북한 지역을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제조업 생산기지(가공무역형 수출기지)로 전환해 북한을 남한경제의 하위파트너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정경분리 원칙과 햇볕정책
정경분리 원칙은 대외정책에 있어 정치와 경제 문제를 분리해서 추진한다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한 노태우 정부에서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러한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 문제는 미국이, 경제문제는 한국이 담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미국의 대북전략 구도 아래에서 한반도의 정치문제와 군사문제에 관한 주도권을 미국이 행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클린턴 정부의 페리프로세스에 철저하게 종속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개발이나 확산을 봉쇄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전제였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페리프로세스에 따라 미국은 남북의 경제 교류나 이산가족 상봉 등을 적극 지원하지만, 남북한의 관계 개선은 북미협상의 의제에서 배제된다. 때문에 1980년대 후반 이래 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진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핵심적 주장들, 예컨대 미군무력(특히 핵무기)의 철수나 남북한 무력 감축,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의 구축(남북 불가침선언, 북미평화협정) 등은 철저하게 미국의 영역이며, 남과 북의 관계 개선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협상이 별개의 것으로 상정된다는 것으로,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상대화하도록 만든다.

햇볕정책의 한계
615 선언으로 표상되는 햇볕정책이 최소한 남북 대화와 교류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봉쇄와 대결 정책에 비해 상대적 안정감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축으로는 남한 자본이 주도하는 북한 사회의 경제적 재편을 추구하고, 다른 축으로는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형태의 긴장을 형성했다. 미국의 한반도-동아시아 패권을 승인하는 가운데 남과 북이 일정한 경제 통합의 경로를 모색하는 것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전혀 제어할 수 없다.
더불어 햇볕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페리프로세스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핵보유 천명 등으로 이미 실현 불가능한 구상이 되었다. ‘전략적 인내’로 표상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이 비핵화로 향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남과 북의 관계 개선은 필요한 문제지만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종의 정치 문제, 즉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는 남북 협력, 교류는 현재 상황에서는 무망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한반도 구상
노무현 정부의 한반도 구상은 평화번영정책으로 요약된다. 평화번영정책은 북핵 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해서, 북한을 위시한 불특정 위협에 대비하는 전력을 우선적으로 보강하도록 했다. 이는 동북아허브 중심국가 구상으로 연결되는데, 한반도 평화체제를 바탕으로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물류, 관광, 무역, 산업의 중심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구상이다.
여기서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허브 중심국가가 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설정된다. 즉 한반도 평화체제가 필요한 이유는 자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평화번영정책이 말하는 평화란 전쟁위험의 항구적인 제거라기보다는, 경제의 불안이나 투자의 불안 요인의 제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불필요한 전쟁 위협이 한반도에 경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를 앞세울 수도 있지만, 자본 투자의 불안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는 ‘예방전쟁의 교리’, 즉 부시 독트린을 지지하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

평화번영정책과 부시 독트린
2003년 한미정상회담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당시 발표된 공동성명은 남북교류와 협력이 북핵문제의 전개 상황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인정하면서 그것의 절대 우위를 전제하는 군사동맹의 강화를 확인했다. 또한 북한에 대해 경제 봉쇄는 물론, 군사적 수단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한반도 위기 인식과 해법은 부시 정부의 그것과 사실상 일치된다고 볼 수 있다. 남북의 화해협력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완전히 종속되며,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힘을 바탕으로 남한이 주도하는 경제통합을 통일의 윤곽으로 제시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타 정부에서보다 훨씬 높은 국방비 증가는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며, 이러한 면에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의 위기를 더욱 증폭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점증하는 한반도 위기

북핵 위기의 역사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른바 북핵 위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북한은 그동안 2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했고, 최근에는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하며 핵보유국을 선언했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협상이 진행되었고, 때로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나 1994년 제네바 합의, 조미 공동 코뮤니케, 그리고 6자회담에서 도출된 수차례의 합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핵전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미국의 전략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무력화되었고, 북한에 대한 지원을 꺼리는 미국 내 강경파의 반대 속에서 제네바 합의 이행은 계속 지연되다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며 파탄이 났다. 핵 프로그램 해결을 통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6자회담은 ‘비핵화’의 의미(민수용 핵 프로그램 포함 여부, 미국의 핵우산 문제 등)에 대한 혼란과 북한에 대한 지원 문제로 장기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북핵 위기의 역사는 한반도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결국 핵 카드를 지렛대로 체제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북한의 전략이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부터다.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면서 북한의 정치, 경제적 고립이 심화되었다. 한반도에서 초강대국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소련을 통해 값싸게 들여오던 1차 연료 공급이 대폭 감소하면서 북한은 에너지 체계를 핵발전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시작된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듯 보였다. 당시 옛 공산권 국가들과 차례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던 노태우 정부의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남북한의 화해무드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무드는 안정적일 수 없었다. 비핵화 선언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배치를 둘러싼 쟁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뿐 아니라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나 핵우산 문제도 포함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대화 상대자로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1차 북핵 위기
1992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협정에 서명한 직후 1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북한의 핵 시설을 사찰하던 IAEA는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에 의혹을 제기했고, 특별 사찰을 요구했다. 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 탈퇴 선언과 폐연료봉 추출, IAEA는 대북 제재안 결의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남북한 접촉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올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던 1차 북핵 위기는 1994년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극적으로 타결 국면에 접어든다.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 합의’를 체결하고,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이 경수형 원자로 2기,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는 미국 내에서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고, 미국은 제네바 합의 이행 및 경수로 건설을 유보하게 된다. 1998년 북한이 3단계 로켓을 발사하면서 다시 경색되었던 국면은, 2000년 10월 ‘그 어느 정부도 상대방에 적대적 의사를 갖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미 공동 코뮤니케’가 발표되면서 타협점을 찾는다. 미국은 북한에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 원조를 약속했고, 북한은 미사일기술 통제 체제(MTCR) 가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은 일본을 향해 배치된 100여 기의 북한 노동미사일을 문제 삼기 시작했고, 합의는 파기되었다.

2차 북핵 위기
2002년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 규정했다. 북한은 미국의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 반발하면서, 미국과의 모든 협의를 재검토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여부를 추궁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다.
북한은 ‘인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미국의 안전 보장과 북한의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일괄 타결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은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북한에 제공하던 중유 공급 중단을 선언했고,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는 2002년 12월분부터 중유 공급을 중단하게 된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봉인되었던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을 선언하고 IAEA 사찰단을 추방했다. 2003년 1월 북한은 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고, 미국은 군사적 행동을 시사했다. 극단으로 치닫던 북미 갈등은 2003년 8월에 6자회담이 개최되면서 6개 국가의 협상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6자회담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919 공동선언, 2007년 213합의, 2007년 103 합의 등이 이루어지면서 북핵 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듯 했다. 북한은 2008년 6월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그러나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량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료채취 여부와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 문제가 불거졌고, 2008년 12월, 6자회담은 결렬되었다. 미국은 에너지 지원을 유보했고, 일본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이유로 중요 지원에 불참했다. 한국 역시 경제, 에너지 지원을 중단했다.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상 틀은 사실 북미협상이라는 1:1 협상에서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을 5개 나라로 분산하는 구조였다. 더구나 미국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북한을 ‘정권교체가 필요한 깡패국가’로 규정하고,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와 연계시켰다. 이는 미국이 주장하는 다자간 협상이 얼마든지 자신의 책임을 분산하고 북한에 대한 무력행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인식 변화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4월 로켓을 발사한데 이어,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미국 내 북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태도를 ‘대화 성사를 위한 전술’로 간주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견해가 우세해졌다. 로켓 실험이나 핵실험은 최소한 몇 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은 실제 핵무기 보유이며, 이를 미국과 인도가 맺은 핵 협정과 같은 수준으로 미국이 보장하기를 원한다는 시각이 미국 정가에서 힘을 얻었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대북 관계에서 어떠한 진전도 이루어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미국 내에서는 일정한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대선주자인 공화당 밋 롬니 진영과 오바마 진영의 토론회에서 롬니 진영은 오바마 정부의 대외 정책에 맹렬한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접근법에는 동의를 표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어떠한 보상도 주지 않겠다거나,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행시키기 전에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은 이제 일부 매파의 주장에 머물지 않는다.

한반도, 동아시아의 긴장 고조

한반도 위기의 새로운 국면
2010년 발생한 연평도 사태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점점 더 극단적인 형태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긴장 고조 사이클의 반영이다. 1999년과 2002년, 2009년에 발생한 3차례의 서해 교전사태가 외양상 ‘우발적 충돌’의 형태를 띠는 반면, 한국전쟁 이후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군사적 충돌로 평가되는 연평도 사태는 ‘사전에 계획된 도발’로 이해된다.
우발적 충돌은 실수나 최소한 자위적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에, 여기에는 보복과 응징과 같은 추가적 군사행동의 요구가 끼어들기 어렵지만 연평도 사태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이나 교류가 지속되면서 일종의 ‘가상적’ 존재가 되었던 북한 위협을 다시 ‘실질적’ 존재로 복구하면서 호전적 분위기를 정당화시킨다. 한국도 사전에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군사력 증강의 수준 변화), 북한의 타격에 맞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논리(현장 지휘관의 권한 확대와 교전 수칙 개정 요구) 등으로 이어지면서 군사적 긴장이 현격히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서북도서 요새화 계획 등 한국의 군사력 증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군사력 경쟁을 부추기고, 그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상존하는 군사적 긴장과 충돌 가능성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지점을 해상 경계선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서해에서는 군사적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또한 반복되는 군사훈련은 역사적으로 해당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여 갈등을 증폭시키는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미 또는 한미일이 연합한 합동군사훈련 강화,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일본 자위대까지 참여하는 PSI 해상차단훈련 등의 군사훈련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크게 고조시킨다.

북한의 현실

북한 전략의 성공 가능성
북한 체제의 위기는 최근 권력 세습 과정에서 새롭게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원하는 바는 ‘정상국가’가 되는 것, 즉 체제 안정의 보장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나 군사적 도발은 이를 가능케 하는 협상을 위한 지렛대라고 할 수 있다.
북미협상이나 6자회담은 북한이 핵 카드를 이용해 협상을 벌일 수 있는 통로다. 그러나 핵과 체제의 안전보장을 교환한다는 북한의 전략은 북미협상과 6자회담 프로세스의 중단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북한은 이러한 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높은 강도의 방법을 강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 북한의 태도에 대한 미국의 변화된 인식은 이러한 시도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낮추고 있다. ‘미국의 대북압박과 고립정책 → 북한의 더욱 강력한 협상카드 강구 → 군사적 긴장 고조와 압박 정책 강화’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미국의 한반도-동아시아 전략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며, 그 수위는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변화 가능성
1990년대부터 북한은 자체적으로 산업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자원과 자본, 기술이 부족한데다가 경제적 고립이 심화되어 경제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2009년 화폐개혁 등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개혁조치들이 있었지만 성과가 미미하거나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력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에너지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이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하면서 북한 체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의 언론은 대부분 북한 경제가 시장경제, 개혁개방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물론 새로운 체제 아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의 선군정치에서 탈피할 가능성도 있다. 2010년 이후 북한은 시장을 통제, 억압하는 조치들을 폐기하기 시작했고, 중국식 경제개혁 모델을 검토했다. 그러나 값싸고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고, 자본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중국과는 경제적 차원이나 대외 정치차원에서 큰 차이를 갖는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혁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외적 고립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내적인 경제성장 동력도 매우 부족한 북한은 점점 더 군사력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과제

미국의 아시아 집중 전략과 이에 따른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 그리고 이에 맞선 중국과 북한의 군비증강 속에서 동아시아의 군사적 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상호 군사력 증강을 부추겨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러한 흐름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도, 북핵 문제의 해결도 결코 이룰 수 없다. 때문에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에 대한 대응, 가시화되는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대응은 반전평화운동 진영의 시급한 과제다.
이러한 과제 속에서 한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중요하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 이후 심화되는 호전적 분위기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반전평화운동을 질식시키고 있다. 북한 위협을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 날로 수위를 높여가는 공격적인 군사훈련, 그리고 북한, 중국 등 주변 국가의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는 제로섬 게임을 끝내기 위해서는 남한에서부터 군비 축소, 군사력 축소, 군사훈련 반대의 흐름을 조직해야 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

해군이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1>북한의 도발 억제와 해양영토 보호, 2>남방해역 해상교통로와 풍부한 해저자원 확보, 3>제주 남방해역 보호와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한 해군함정의 군수 지원 등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주장은 해군기지 위치 선정의 원칙인 지리적 인접성과 배치된다. 또한 안보 위협이 거의 없는 남방해역의 해군력 강화가 해상교통로 확보와 해저자원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없다.
강정해군기지의 건설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주둔기지 건설보다 동맹국으로부터 기항지와 군수물자를 제공받아 보다 효율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하려는 미국의 해양 전략에 의한 것이다. 정부는 미군이 강정해군기지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은 별도의 협약 없이 한국의 군사시설을 무제한 사용 가능하다.
강정해군기지는 미국이 잠재적 적국으로 상정하는 중국을 상대로 한미 합동 해양전력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해양패권 전략에 조응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역내 군사적 긴장을 크게 고조시키고, 해양 군사화를 촉진할 위험이 크다. 제주도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협할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함께 투쟁해야 한다.

한일 정보협정 반대

한일 정보협정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1년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다.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북한 위협을 빌미로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이 한층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군사협력 수준이 격상되었고, 2000년대 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군사훈련(RIMPAC 등)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전략, 작전 협력이 진행되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을 명시적 대상으로 삼는 훈련(PSI 훈련, 한미일 연합해상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 수준은 공동의 적국에 대처하는 공동 전략을 수립하고, 정형화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보협정과 군수지원협정이 체결된다면 한국과 일본의 군사관계는 군사협조의 완성, 혹은 준 군사동맹의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한일 정보협정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미군 재배치는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해 주둔지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적 작전 수행을 목표로 한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의 전력 공백을 메우고, 미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동맹국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동맹국을 연결하고 이들의 군사력 증강과 현대화를 지원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으로 양분되어 있던 동맹구조를 한일 간 협력 강화 속에 통합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 정보협정은 정보 교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합 방위 태세를 구축하는 군사 동맹의 첫걸음이다. 이 협정의 논의 시작 시점부터 군수지원협정과 함께 추진되었다는 점도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미국은 한미일 협력 강화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MD 추진과 연결되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2012년 6월에 진행된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의 공동성명은 ‘미사일 위협에 대한 포괄적인 연합방어태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일본은 미국의 MD 체제에 점차 깊이 참여하는 중인데, 미국과 공동으로 차세대 요격미사일도 개발하고 있다. 개발이 끝나면 이 미사일은 당연히 일본 주변 지역에도 배치된다. 한일 간 정보교환은 이러한 요격미사일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이번 협정 체결 과정에 문제가 있었지만 내용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서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미국의 MD 체제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어차피 넘어야할 산이기 때문이다.

군비 축소와 군사적 긴장 완화

올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도 예산 요구현황 및 검토방향’을 보면 각 부처가 제출한 총지출 요구규모는 346조 6천억 원이다. 복지 분야는 5.3% 증가에 그친 반면, 국방 분야는 7.6%나 증가했다. 복지 분야의 지출 증가는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등 의무적 복지지출로 현행 수준의 제도 운용에 따른 자연 증가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국방 분야 예산요구안 중 실제 군사력 증가라 할 수 있는 방위력 개선비는 작년에 비해 11.1%로 크게 증가했다.
호전 세력들은 미국의 전략을 추종하면서 자국의 무기와 그 체계를 현대화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한국-일본의 호전 세력들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이다. 또한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아래 연합 군사훈련 역시 그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10년 한미, 미일훈련에 자위대 및 한국군의 교차참관이 이뤄졌고 올해 초에는 최초로 한미일 연합해상훈련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군사력 증강과 침략적 전쟁연습의 확대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크게 높이며, 북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군사력 증강 레이스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반전평화 투쟁은 이러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에서 출발해야 한다.
주제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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