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9-10.1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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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운동의 주요 쟁점과 과제

류주형 | 정책위원장
현 정세는 다음과 같이 특징지어진다.
첫째, 2007-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진 속에서 유럽의 위기가 폭발함에 따라 세계경제가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대단히 높은 한국이 세계 경제위기의 직접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미국의 경기재침체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중간 경제적 갈등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정치군사 정세가 변화하면서 한반도의 불확실성도 증대하고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사회저변의 위기가 심화하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있지만 민중운동은 역관계를 역전시킬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민중운동 주류는 민주당을 포함하는 반 이명박 전선에 주력했고,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지난 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레임덕에 빠졌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드러났듯이 반 이명박 경쟁 구도의 주도권은 민중운동도 민주당도 아닌, 지난 5년간 ‘여당 속의 야당’으로 절치부심하던 박근혜-새누리당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복지와 재벌 개혁 등 ‘경제민주화’ 담론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심지어 정부여당의 실정과 제1야당의 무기력을 반영하듯 반새누리당 비민주당 무당파를 대변하는 ‘안철수 돌풍’이 여론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운동 주류는 ‘경제민주화’ 담론을 일종의 기회로 인식하면서 복지동맹 또는 재벌개혁동맹을 ‘정권 교체’의 결정적 교두보로 사고하고 있다.
셋째,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원내교섭단체 구성과 연립정부 수립을 추구했던 통합진보당의 구상은 총선 이후 부정경선 논란으로 파탄에 이르렀다. 통합진보당의 위기는 이들과 정치노선을 공유한 민중운동 주류뿐만 아니라 그에 비판적이었던 좌파 모두를 포함하는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로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진보정당 또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총체적 진단을 통해 민중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통합진보당의 혁신인가 아니면 통합진보당을 대체할 새로운 정당의 건설인가라는 쟁점이 사태를 압도하면서 민중운동의 집단적 반성을 가로막는 효과를 낳고 있다.
경제위기와 민중운동의 위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역설적 정세에서 민중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쇄신하고 그 조직적 토대를 재건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시급하다. 아래에서는 민중운동의 과제를 주로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경제위기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한다.

경제위기와 대선

세계 경제위기 전망
오늘날 유럽의 위기는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 및 ‘유럽의 역내 불균형’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유럽 통합의 내재적 모순이 2007-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 속에서 극적으로 심화하여 은행위기로 현상하고 재정위기로 전이된 결과다. ‘국가 없는 국가주의’로 압축되는 유럽의 구조적 결함은 이번 위기 대응 과정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른바 ‘민주주의의 결핍’이 유럽 차원의 ‘문제 해결 무능력’으로 드러난 것이다. 또 유럽은 경상수지 불균형에서 기인한 은행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해 구제금융과 긴축재정과 같은 대증요법에 치중하며 위기를 증폭시켰다. 그리스의 디폴트 및 유로존 이탈 우려가 증폭되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재정위기가 확산되는 현재의 위급한 정세에서도 유럽의 무능력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
그리스 신정부와 트로이카 사이에 새 양해각서가 체결된다 하더라도, 트로이카의 강력한 압박으로 그 내용은 현재의 긴축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로이카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질서 있는 그렉시트’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 신정부는 긴축안 재협상 및 실행 과정에서 트로이카의 압력과 국내적 반발 사이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리스의 정치적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그리스 민중들이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지만 그 이면에 반긴축 정서가 공존하는 현실에서, 향후 그리스의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유로존의 위기 공조책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결국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무질서한 그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유로존의 카오스적인 해체, 나아가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촉발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이제 유럽의 위기는 은행위기와 재정위기를 거쳐 정치위기와 제도위기의 단계에 진입했다. 유럽차원의 사회운동의 대안이 부재하다면, 초민족적 기술관료와 민족적 인민주의의 대립의 파괴적 효과가 지속될 것이다. 유럽 통합이 세계화를 지역적으로 특수화하려는 기획이었다는 점에서 유럽의 위기는 곧 신자유주의의 위기,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를 의미한다.
2007-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진 속에서 유럽의 위기가 폭발함에 따라 세계경제가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재정위기 우려에 따라 재정지출을 급속히 축소함에 따라 2013년 ‘재정절벽’에 처할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고, 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도 경기둔화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재침체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중간 경제적 갈등을 배경으로 동아시아 정치군사 정세도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현재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으로 특징지어지는 미중 관계는 서로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려있기 때문에 갈등이 조정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쌍방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어 잠재적인 갈등이 확대되는 형세다.
경제위기 이후 미국이 구상하는 글로벌 거버넌스는 유럽을 상대화하는 대신 ‘아시아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G2)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일과의 협력(G3)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미국의 플랜B로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과 한미일 군사동맹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위기 대응
위기는 국가별, 지역별로 불균등한 양상으로 시차를 두면서 진행되겠지만, 지금의 위기가 장기간에 걸쳐 세계의 커다란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대단히 높은 한국이 세계적 경제위기의 직접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한국 경제는 작년 3/4분기 이후 경기둔화에 진입했다. 올해 들어 전통적 수출 주력 업종의 불황이 가시화되면서 2012년 경제성장률이 추가로 하향 전망되고 있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활로를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에서 찾으며 자유무역협정 전략과 노동신축화 법제화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총선 전 ‘대중소기업 상생’이나 ‘장시간 노동’과 관련하여 몇 가지 상징적 조치를 취할 의지를 내비쳤으나 여당의 승리 이후 현 정부 임기 내에 추진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상태다.
또 정부는 중기 재정건전화 기조 하에 사회보장복지의 추가적인 조정을 예고하였다. 정부는 최근 무상보육 재정위기와 관련하여 현 정부 내에서는 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또 ‘부자감세’를 부분적으로 철회하였지만, 이는 대선을 의식한 미세 정책 조정에 불과하다. 차기 정부에서는 추가적인 조정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정부는 2012년 총대선 시기 ‘선심성 복지공약’에 대비하여 복지태스크포스를 구성한 상태이며, 자본가단체들도 증세 등 정치권의 ‘과도한’ 경제민주화 요구가 경제위기 시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역공세를 펼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도 금융위기의 뇌관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미국스페인과 유사하게 부동산 거품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즉, 부동산 가격 상승을 전제한 저금리 대출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 결과다. 대선 전 정부여당은 투기과열지구 해제와 저금리 등 부동산 가격 하락세를 방지하는 데 정책적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금융적 불안정성을 확대하는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비롯한 금융자유화 조치도 계속 추진 중이다.

경제위기의 정치적 효과와 위기관리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임기 중 만성화된 저성장 문제의 원인을 정치 불안과 반시장반기업 정서로 꼽으며 민주화 담론을 ‘747 공약’과 같은 선진화 담론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반노동 정책은 세계 경제위기의 격랑 속에서 크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누적되어온 사회저변의 모순을 심화했다. 이명박 정부 임기 중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를 하회할 전망이다. 그리고​ 확장 실업률은 10%에 이르고 실질임금인상률은 지난 4년 중 3년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결국 민생 악화라는 조건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은 야권의 민생복지 프레임에 치명적 약점으로 노출되었고, 총대선 전초전 격으로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며 레임덕이 가시화되었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꼽은 주요 정책은 △일자리 창출/비정규직 문제 해결 △경제 성장/국가경쟁력 강화 △재벌 개혁/서민경제 활성화 △교육 개혁/대학 등록금 문제 해결 △양극화 해결/복지 확대 순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지난 총선에서 여야 모두 이명박 정부의 성장과 선진화 담론을 대체하는 복지와 경제민주화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
총대선 국면에서 경제민주화 담론의 부상은 기본적으로 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따른 광범한 민심 이반에 대한 반응이자 미국 반월스트리트 시위에서 얻은 일종의 학습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당명개정, 인적쇄신에 이어 새 강령에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명시하며 이명박 정부와의 이미지 차별화를 시도했다.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보편복지부자증세를 3대 핵심공약으로 선전하며 시민운동민중운동을 자신의 좌익으로 포섭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흔히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일컬어지는 현행 헌법 119조 2항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이 사회조화를 위해 지나치게 강해진 경제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삽입된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헌법의 준거 개념인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서독의 전후 재건 정책의 이념적 기반을 이루는 ‘질서 자유주의’와 친화성이 있다. 이는 1990년대 일부 시민운동에 의해 국내에 ‘진보적 대안’으로 소개된 이후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민주적 시장경제’로 번안되기도 했는데, ‘민주적 시장경제’는 김영삼 정부 실패의 원인을 민주주의 또는 사회개혁 없는 시장경제에서 찾으면서 노사정협약을 대안으로 호도한 바 있다. 노사정협약은 정치세력화 또는 경영참여의 대가로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변형근로제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신축화를 관철하는 기제일 뿐이었다. 이러한 노동개혁에 동반하는 재벌개혁도 실상 초민족적 자본에 의한 재벌의 인수합병이나 재벌의 지주회사 설립 허용을 통한 소유·지배구조 개편을 의미했다. 현재 주류적인 재벌개혁론은 이념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지향하고 이론적으로 주주가치 최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재벌개혁 의제를 계승한다.

대선 정치지형
총선 승리 이후 보수세력은 북한에 대한 이념적 공격을 통해 미국의 지역적 재편 전략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한미 FTA 비준과 한미동맹 강화 흐름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추진 중인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그에 조응하여 이념적 공세를 강화하는 양상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와 같은 ‘중도 노선’은 그에 대한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반면 민주당은 총선을 전후로 정치적 구심과 전략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리틀 노무현’을 회고하거나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비슷하게) ‘안철수 돌풍’에 편승하는 무능력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나 재벌 개혁 등 반 이명박 전략에 있어서 여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대선 직전까지 정치 이벤트를 지속하며 반전을 꾀하겠지만, 경제위기와 한반도위기라는 객관적 제약 속에서 진보개혁적 구상을 제시할 여지는 대폭 축소된 상태다.
정부여당의 실정과 제1야당의 무능력 속에서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무당파를 상징하는 ‘안철수 현상’이 여론을 압도하고 있다. 여론은 ‘성공한 CEO’이자 ‘공정공생공감’로 압축되는 그의 이미지로부터 ‘노무현을 부정하는 이명박과 이명박을 부정하는 안철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안철수 현상’은 기본적으로 정당을 기반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적 명망과 미디어의 힘을 활용하여 선거 자금과 운동원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한국 정치의 이념적조직적 취약성을 반영한다. 안철수 원장 측을 포함하는 범야권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방식 또는 2011년 박원순-박영선 후보 단일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민중운동의 상황

통합진보당의 균열
통합진보당 사태는 민중운동의 이념노선의 위기가 폭발한 것이다. 진보정당 운동 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모순이 총선 ‘패배’와 결합되며 ‘진보의 위기’로 표상했다. 그런데 사실 ‘진보의 위기’는 1990년대 초 ‘변혁의 위기’ 이후의 위기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그런데 현재 ‘진보의 위기’로 표상된 통합진보당의 균열은 ‘변혁의 위기’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아니라 정반대로 집단적 반성을 가로막는 효과를 낳고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반성을 통해 ‘위기 이후의 위기’에 대응하려는 태도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변형된 형태로 자유주의 또는 보수주의를 수용하여 통합진보당을 우익적으로 비판하는 청산주의적 태도를 논외로 한다면, 우선 쟁점이 되는 것은 위기 자체를 부정하는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의 맹목적 태도와 결국 구 당권파의 제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신 당권파의 실용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반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태도는 통합진보당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을 공유하고 은폐한다. 즉 신 당권파는 구 당권파의 패권성과 비민주성을 비난할지언정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한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강기갑 지도부의 당 쇄신(재창당) 방향은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즉 당의 쇄신은 불가피하지만 쇄신 결과 더욱 우경화될 가능성이 큰 역설적 상황인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론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을 대체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여러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재창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당 외부 세력에게 폭넓은 공조를 제안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정치세력들도 제각기 새로운 정당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주로 민주노총 안팎에서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노동포럼’,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흐름들은 현 정세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좌파적 견지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고 대선 시기 민중운동 차원의 독자적 대응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들은 통합진보당 사태로 드러난 진보정당 운동의 위기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과 대안 없이, 다시 말해서 진보정당 운동의 위기의 배경을 이루는 민주노조 운동의 침체와 민중연대전선 운동의 난맥상에 대한 포괄적인 진단과 대안을 동반하지 않은 채 통합진보당을 대체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로 모든 논점을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진보정당 운동 또는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실망과 냉소가 확산되는 현실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상황논리를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진보정당 또는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가 말해주듯이 민중운동의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진보정당 건설 사업은 이미 실패한 미래일 가능성이 크다.

진보정당 실패의 역사적 원인
진보정당 운동의 실패는 일차적으로 의회주의와 선거주의라는 정당의 내적 모순에서 기인한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발단을 이룬 당직·공직 선거를 둘러싼 갈등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원내정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원내정당화와 수권정당 노선이 강화된 과정에 병행해서 확대되었다. 원내진출을 계기로 당의 인력 및 재정 배치는 의정지원에 편중되었다. 또 당의 정치이념을 급진화하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노선 변화와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직공직을 둘러싼 정파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당내 정파 활동의 초점 역시 정당의 이념과 운동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공직 진출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생존의 위기에 처한 정파들이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권력분점을 시도한 산물이 바로 오늘의 통합진보당이라는 점에서 모순이 더욱 심화하였다. 이념과 역사를 초월한 정파연합당인 통합진보당 안에서 정파들 간의 지분 안배와 당직공직 진출은 처음부터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통합 이후 대의기구 지분 분할과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지난한 논쟁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야권연대 역시 정책연합보다는 실상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민주통합당과 후보를 조정하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그런데 오늘의 진보정당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진보정당의 위기는 그 조직적 기초를 이루는 대중조직의 위기를 반영한다. 특히 통합진보당 당원의 40%를 차지하는 민주노총이 민주노조답게 조합원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현장 활동을 소홀히 하고 노조를 진보정당 운동의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부대로 전락시킨 것이 큰 문제점이다. 민주노총 스스로가 투쟁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굳건히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진보정당은 노조운동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노선을 우경화했던 것이다.

민주노조의 혁신과 재건을 위한 당면 과제

정치세력화 관념의 정정
애초 정치세력화 운동은 노동자계급이 이념적조직적으로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분별 정립하여 정치적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운동 전략 전반을 의미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정당 혹은 진보정당 운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축소되어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 정치세력화 운동의 기원적 의미를 되새긴다면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민주노조 운동, 민중운동의 단결과 발전에 복무하는 변혁 지향적 진보정당, 계급동맹의 실현을 위한 전선운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관점을 전도하여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대중운동의 취약한 토대를 강화할 계획 없이 의회 진출이나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력,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물론 현재 새로운 진보정당 또는 제2의 정치세력화 운동을 제기하는 어떠한 정치세력도 민주노총의 혁신이라는 과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 건설 논의가 중심이 되면서 구체적인 지역현장의 실천에 관한 논의는 상대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세력들 간에 정당의 상과 지향, 정당 건설의 경로와 관련한 이견이 부각되면서 역설적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투쟁전선 구축을 위한 공동 활동이나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각 정치세력의 주요한 관심사가 당 건설에 쏠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지역현장의 운동역량이 취약한 조건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중심으로 활동 역량을 배치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을 혁신재건하기 위한 역량은 그 만큼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정당 건설 추진 세력들이 지역과 현장의 주체적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당 건설로 역량을 집중할 경우 민주노조 운동의 활동력을 더욱 축소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해야 할 민주노총의 조직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차대한 과제다.
한편 새로운 진보정당 또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여러 흐름들 사이에 진보정당/노동자정당의 성격정강경로를 둘러싸고 많은 이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당 건설을 둘러싼 이견이 대중운동의 혁신과 강화를 위한 공동 활동에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자칫 새로운 정당 건설의 전망도 대중운동 혁신의 계기도 확보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상호 입장 차이를 인정하면서 상생을 위한 협력과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각각의 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운동의 전망을 개척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 만큼 협력 또는 경쟁 지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새로운 진보정당을 결성한다면, 민주노조 운동의 활성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민중연대 투쟁전선의 강화를 자신의 목표로 삼는 ‘사회운동정당’이라는 방향성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혁신을 위한 공동 논의실천과 선거대응
현재 민주노총이 처한 안팎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밖으로는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밀리고, 안으로는 조직률이 하락하고 운동적 혁신이 지체되고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악선전 속에 민주노조 운동의 사회적 정당성마저 추락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타임오프제를 비롯한 법·제도적 개악과 민주노총의 골간을 이루는 핵심 노조들에 대한 와해 공작이 진행되면서 노조 자체를 지키는 것조차 힘겨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진보당 사태가 겹치며 민주노총은 심각한 내홍을 경험하고 있다. ‘집권을 위한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민주노총의 주류 세력이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 데 이어 대선에서도 야권연대를 추진한다면 민주노총의 이념적 혼란과 조직적 갈등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내 정파별 조직화 경쟁과 일부 산별노조의 조직 이탈 흐름이 존재하는 가운데, 최악의 경우 올 연말 최초로 실시되는 임원 직선제 과정에서 혹여나 선거부정 사태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민주노총은 대대적인 위기에 봉착할 우려마저 있다.
이러한 위기 국면에 대비하여 민주노조 운동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활동가들이 전국적지역적 차원에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공동활동과 공동논의를 통해 조직적 전망을 밝혀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은 비정규직정리해고 철폐와 노조법 개정을 위한 지역과 현장의 공동 실천을 기본 과제로 삼으면서, 민주노조 혁신과 재건을 위한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 특히, ‘집권을 위한 노동운동’ 노선 또는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이 차기 민주노총 집행부를 운영할 경우, 향후 경제위기 정세에서 노동자운동이 더욱 무기력해지거나 심지어 원심력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2012년 말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 공조해야 한다. 총연맹과 각급 산별노조/연맹, 지역본부 선거에 적극 대응하고 향후에도 노조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공조해야 한다.
한편 ‘조합원 명부 및 선거인명부 확정 기준’ 문제로 민주노총 임원선거 직선제 실시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일단 현 집행부 임기 내 직선제 실시를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산된 것에 대해 응당 책임있는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파적 이해에 따라 직선제를 거부하는 논리에 대해서는 단호한 비판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직선제가 반드시 민주노조 운동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라 단언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직선제를 실시하기 어렵다면 현재와 같은 간선제 방식의 대의원 선출 방식의 개선을 포함하여 민주노총의 대표 기구와 그 기능에 대한 포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치방침 개입과 대선 공동 대응
이렇게 형성된 힘과 지혜를 모아 대선 공동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통합진보당 내부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소폭의 조정이 있겠지만, 이번 대선에서 통합진보당 신/구 당권파를 포함한 민중운동 우파의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 전술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민주노총이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 후보를 지지한다면 이는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사실상 ‘자로 공조’(lib-lab alliance) 체제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계급타협은 단기적으로 민중운동의 일부 개혁적 요구를 쟁취하는 데 실용적일지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민중운동의 이념적 정체성과 조직적 독자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설령 ‘민주진보 진영’이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심화하는 경제위기 속에서 이들이 제시할 수 있는 개혁적 의제의 폭은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건부 지지’를 철회하고 대선전술이나 정치방침을 새롭게 논의하기로 결정한 점이다. 현재 민주노총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진보민중 진영의 합의 추대로 노동자민중 독자 후보를 추대하고 △범진보진영에서 후보가 난립하지 않도록 진보민중진영이 세운 독자후보가 전체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후보가 되도록 정치협상을 진행하되 △정치협상이 실패하고 범진보진영에서 각각 후보를 내는 경우 민중경선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박근혜-새누리당과 안철수/민주당의 양자 구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민중운동이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자연스럽게 야권연대 후보 지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단 민주노총의 독자 후보 전술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간 갈등으로 ‘독자 후보 추대’ 가능성이 크지 않고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가 입후보 후 야권연대 협상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어 진보진영(?) 내 정치협상 성사 가능성도 크지 않고 △결국 민중경선제를 실시하더라도 통합진보당 신/구 당권파의 경선 대상 포함 여부부터 경선 결과 승복 여부까지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방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정권교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민주노총의 독자 후보 전술이 여전히 야권연대를 주요한 축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조의 혁신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모색하는 활동가들이 대선에서 공동 활동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올바른 대선방침/정치방침 수립을 위해 공조할 수 있고 대선 시기 민중운동의 공통요구안을 수립하여 연대투쟁을 펼치면서 2013년 이후 정세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한시적 조직체로서 대선대응기구를 결성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민중운동 좌파의 주체적 조건이 여의치 않고 각 정치세력의 조직노선의 차이로 인해 폭넓은 공동 활동이 어렵다 하더라도 현안에 공조하면서 최소한 야권연대 노선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확대하고 대선 이후에 공조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경제위기 대응과 이념노선의 쇄신을 위한 중장기 과제

재벌 개혁론 평가와 대안
아울러 대선의 핵심 쟁점이기도 한, 심화하는 경제위기에 대한 민중의 대안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경제민주화 담론이나 민생 의제가 부각되고 있으나, 지금은 조직된 대중운동의 공세적 대안이 아니라 ‘분노하는 사람들’의 파편화된 요구에 응하여 정치인과 관료들이 전문가적 해법을 제시하는 상황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민중운동은 노동권생존권 투쟁이나 재벌 체제에 맞선 투쟁에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요구에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민주당을 포함하는 복지동맹이나 재벌개혁동맹에 의존하고 있다.
단적으로 민주노총 재벌개혁안은 ‘진정한 의미에서 산업경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기조로 하여, △재벌체제의 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 △노동자 경영 참가 활성화와 노사공동결정법 제정 △공정거래 확립과 원하청기업의 이익 공유 △대형유통점 및 SSM 영업시간 및 진입규제 등을 총대선 요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 참여연대 등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의 공동대표단체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 하에서 더욱 강화되는 재벌 체제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현실화하려면 민중운동의 실력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운동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위기에 따라 더욱 강화되는 한국의 수출-재벌 중심의 세계화 전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재벌대기업을 정점으로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산업업종 전반을 아우르는 연대임금연대고용중앙교섭 전략이 필수적이다.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원하청구조와 노동시장의 분단구조를 바꿔내기 위해 사외하청을 포괄하는 산업·업종 차원의 임금고용 정책이나 교대제 개편과 관련한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산업적 위계의 정점에서 전체 임금 및 노동조건을 일괄 통제하는 재벌이 산별교섭에 참여하도록 조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하청계열화의 핵심 고리를 타격하고 주요 업종의 생산기반을 이루는 특정 공단의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전략조직화 사업이 적극 시도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산업업종의 위계에서 핵심고리를 이루는 자본에 대한 타격, 특정 업종의 공급사슬을 이루는 공단의 전략 조직화, 무노조재벌에 맞선 사회적 캠페인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 시기 구조조정 대응 평가와 대안
1997-1998년 위기와 2007-2009년 위기에 드러났듯이 경제위기 시기 자본의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다. 쌍용차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한계기업의 청산 및 구조조정·정리해고라는 쟁점과 특히 초민족자본의 인수합병·자본유출·기술유출이라는 쟁점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
1997-1998년 위기 이후 금융자유화 정책에 따라 초민족자본 소유 기업이 대폭 증가했다(현재 7대 은행 중 우리은행만 재외하고 모두, 또 4대 자동차회사 중 현대자동차만 제외하고 모두 외국계다). 2009년 민주노총(금속노조) 사업장에 국한해 보더라도 파카한일유압, 위니아만도, 쌍용차 등 초민족자본 소유 기업에서 소위 ‘먹튀’와 정리해고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구조조정에 맞선 총노동 투쟁 전선을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구조조정 대응은 대개 단위사업장 차원의 정리해고 반대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구제금융의 조건과 관련하여 정리해고 반대 외에 추가되어야 할 쟁점이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회사의 경우 국제하청 탈피와 소유지배구조의 변화(소유자 청산, 경영자 교체)를 통한 독자 생존이라는 쟁점을 사회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향후 구조조정, 공적자금 투입, 인수합병 등과 관련하여 초민족자본의 기술이전자금전용을 비판하고 고용보장을 위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 사회적인 투쟁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위기 하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개별기업 차원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용 문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다.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조건에서 고용보장 문제를 개별기업 차원에서만 접근할 경우 자금력이 취약한 기업의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으로서는 구조조정이 합리적이고 손쉬운 해법일지 몰라도 전사회적으로 실업의 무분별한 확대는 급속한 사회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해야 한다. 해고 및 계약 해지 조건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파산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지자체 차원의 고용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해당 사업장을 넘어 민주노총산별노조 수준에서 총고용보장과 노동권 방어를 위한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론 평가와 대안
이명박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의 제일 목표는 고용률 제고다. 정부는 이를 위한 방안으로 비정규직 취업을 장려하기 위한 고용규제 완화와 약간의 비정규직 보호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중장기적으로는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임금의 하향평준화와, 장시간 근로 억제 및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동시간 신축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①연장근로 시간 제한 내에 휴일특근 포함 ②교대제 개편 촉진 ③근로시간특례업종 조정 등은 총선,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추진될 수 있다. 그러나 (교섭과정에서 자본에 대한 양보로) 1년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또한 법 개정이 없더라도 장시간 노동 억제 정책과 조합되는 정부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 유도책이 점점 강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주의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19대 국회에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특별법에 △연간 1800시간 이하로 근로시간 단축과 노동시간 상한제 △초과근로상황이 장기간 계속될 시 초과근로에 대해 신규인력 채용 △야간노동 금지 △휴일, 휴가 등 휴식권 및 여가권의 확장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진영에서는 ‘과도한 초과노동 규제,’ ‘일자리 나누기,’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등 다양한 차원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경제위기 대안으로 제기하고 있다. 일단 여기서는 노동조합의 경제위기 대책의 일환으로 제기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판에 초점을 맞춘다.
노동시간 단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에 따르면 1989년(44시간), 2003년(40시간)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실근로시간과 근로일수가 감소하였고 △실근로시간 단축은 월임금총액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시간당 임금이 인상되고 고용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12시간 초과근로 한도만 지켜도 일자리 69만개 창출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강도를 상승시키기 때문에 그것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금을 하락시킨다. 게다가 노동강도의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고용창출의 효과가 미미하거나 신규 고용이 비정규직으로 충당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유럽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고용을 확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형근로제만 확대시켰다. 특히 생산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현장의 힘이나 노동조합의 교섭력과 투쟁력이 없다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노동시간 단축론은 노동일이 아니라 노동주 또는 노동년의 단축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주어진 주간 또는 연간 노동시간 내에서 노동력을 신축적으로 활용하는 변형근로제를 확산시킬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독일 자동차산업의 고용안정협정을 경제위기에 대한 유효한 대안으로 검토한 바 있다(이번 위기 시기에 독일만 예외적으로 실업률이 하향 안정되고 있는데, 대다수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그 요인 중 하나로 노동시간계좌제로 들고 있다). 독일의 고용안정협정이 △기업위기에 대한 노사의 공동인식에 기반하고 노동자의 연대적 실천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일자리안정과 산업입지역량의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사의 전략적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노동시간계좌제를 경제위기 시기 유력한 고용안정 대안으로 사고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신축화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나아가 이는 독일 노사관계의 전통, 특히 유럽 통합 과정에서 확산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코포러티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주간연속2교대제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을 예의주시하면서 △노동조합 주도로 교대제를 개편하는 방안 △생산량 보전을 자본 투자로 해결하는 방안 △현장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맨아워위원회를 설계하는 방안 △부품사 지회와의 공동 대응과 미조직 조직화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국제연대 평가와 대안
세계화는 세계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활동에 있어서 심각한 변화를 유발하였다. 첫째, 생산의 초민족화, 특히 세계적 상품사슬에 따라 자본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노동조합이 기업 또는 민족국가 수준에서 자신의 임금고용 요구를 달성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둘째, 서비스부문의 성장과 결합된 노동시장의 비공식화는 노동조합 조직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셋째, 세계화에 따라 생산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영역에서의 ‘착취’도 증가하고 있다.
노동자 국제주의는 한국의 자본자유화 정책과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에 따라 지극히 현실적인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즉,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동자들 사이의 국제적 경쟁을 지양할 국제연대가 필수적인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가령 생산의 국제화에 따라 생산기지나 물량의 국외 이전이 발생할 때 국내 노조들의 대응은 대개 입지물량고용 확보를 위한 양보교섭 또는 비현실적인 민족적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국제노총(ITUC)은 ‘양질의 일자리, 양질의 삶 전략’ 또는 ‘노동과 세계화 네트워크’ 접근을 추진,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초민족적 연대를 구현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국제노총의 공식적 전략과 구별되는 몇 가지 사례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초민족적 소매업체 월마트에 맞서 국제연대를 추구하는 미국 승리혁신노총(Change to Win)의 사례로부터 세계적 상품공급 사슬(global supply chain)에 맞서는 노동조합의 투쟁-조직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둘째, 초민족적 자동차기업 네트워크(국제하청망) 속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를 강요받는 각국 노동자들은 타국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보다는 자국의 경영진들과 담합하는 실리적 선택을 하기가 쉽다(단적으로 현대-기아차 지부의 경우 단협에 “물량 축소시 해외 공장부터 폐쇄한다”는 조항을 포함한다). 유럽직장평의회와 같은 국제 노동조합 간 네트워크를 참조하여 노동조합 단체협상의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셋째, ‘FTA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을 통해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의 악순환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유럽금속연맹(EMF)의 ‘단체교섭의 초민족화’ 사례를 참조하여 국제 노동표준 향상을 위한 국제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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