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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11-12.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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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M 투쟁 승리의 의미와 과제

김유진 | 조직국장
지난 9월 23일 (주)에스제이엠은 회사 정문에 직장폐쇄 철회공고를 붙였다. 회사의 패배선언이었다. 7월 27일 야만의 새벽에서 시작된 두 달 간의 직장폐쇄 철회 투쟁은 SJM지회의 압도적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용역폭력 - 직장폐쇄 - 조합원복귀, 생산재개, 민주노조 고립 - 어용노조설립 - 민주노조 무력화’ 과정, 수 년간 민주노조의 공포로 자리매김했던 일명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SJM에서 제 무덤을 파야했다. SJM에서 출발한 승리의 기운이 유성기업, KEC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SJM 투쟁 승리로 자본은 앞으로 기존의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그대로 되풀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본은 패배를 분석하고 반격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준비할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는 더 깊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본은 민주노조 무력화의 유혹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운동 또한 SJM 투쟁 승리의 비결을 철저히 분석하고 반영해 지난 패배의 역사를 뒤집고, 연이은 승리를 준비해야 한다. 패배로부터도 승리로부터도 배우지 못한 채 ‘알고도 당하는’ 역사를 또 이어가지 않으려면, SJM을 ‘운이 좋아 한 번 이긴’ 특별한 사례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의외의 반전, 압도적 승리

7월 27일 야만의 새벽, 최근 몇 년 전국을 휩쓴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안산의 SJM에 상륙했다. 무장한 용역깡패 300여 명은 회사 안에 모여 있던 150여 명 조합원들을 상대로 살인적 폭력을 저질렀고, 현장에 있던 경찰과 노동부는 피흘리는 노동자를 방치하고 폭력을 묵인했다. 조합원들은 비무장상태로 저항하다 공장 밖으로 밀려났고 회사는 직장폐쇄 공고문을 내다붙였다. 경주 발레오, 구미 KEC, 대구 상신브레이크, 충청의 유성기업에 이르기까지 자본과 용역업체 - 노동부와 경찰 -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 업체가 한 몸이 되어 벌인 대대적인 노조파괴 시나리오. ‘집안에서는 돈잔치, 집 밖에선 절대 폭력’으로 완성차 노조는 고립시키고 부품사 노조는 철저히 짓밟아 온 현대차그룹의 노조관리전략이 SJM까지 손길을 뻗었다. 다음 그림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는 전면전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300명도 안 되는 조그만 부품공장의 나이든 노동조합. 무너질 수밖에 없겠지, 어떻게 하면 그나마 덜 잃을까?’ 할 수 있는 일은 ‘수습’ 정도일 것 같았다. 같은 날 같은 일을 당한 만도지부는 조금의 저항도 못한 채 순식간에 무너졌다. 중소 부품사 노조 박멸, 거대 부품사 무력화, 완성차노조 고립이 눈앞인 것 같았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SJM 조합원들은 직장폐쇄 2달 만인 9월 26일 공장 문을 열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직장폐쇄 철회와 회사의 사과, 단체협약 유지와 노동조합 활동 보장, 계약직 정규직화와 위로금 지급 등 지회의 요구는 모두 관철되었다. 이 날의 승리까지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공모자들은 하나씩 모두 깨졌다. 직장폐쇄 열흘 만에 용역업체 컨택터스는 업체 허가가 취소되고 공중분해 되었다. 용역폭력에 대한 비판 여론은 두원정공, 쎈싸타, 두물머리 등에서 준비 중이던 용역투입 계획을 주저앉혔고, 경비업법 개정에 관한 논의도 시작됐다. 당일 폭력을 묵인방조한 안산단원서 경찰서장은 경질되었다. ‘5폭 척결’로 경찰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정권 재창출에 기여하려던 경찰의 계획에 심대한 차질이 생겼다. 직장폐쇄 한 달 만에 용역폭력 사태를 기획, 지휘한 SJM 민 모 이사가 구속되었다. 노동자에게 불법폭력을 휘두른 회사 측 인사로서는 최초의 구속이었다. 노동부의 무능과 노조파괴 시나리오 공조 사실이 지탄받았다. SJM 직장폐쇄는 정당하다 주장했던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요즘 궁지에 몰려 ‘부당노동행위는 암세포’라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창조해 돈을 벌던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은 해체되었고, 노무사 자격도 취소되었다. KEC, 유성기업, 쌍용차에 이르기까지 용역폭력과 직장폐쇄로 고통받았던 사업장들 문제도 청문회로, 국정감사로 다시 파헤쳐지는 효과를 발휘했다. 승승장구하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누더기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반전이었다. 압도적 승리였다.

생산과 생계의 힘겨루기

직장폐쇄 후 회사와 노동조합은 생산과 생계의 힘겨루기에 돌입한다. 회사는 생산을 재개하고 복귀자를 늘리고 공장가동률을 높여 바깥의 노조를 무력화해야 한다. 밀려난 노동자는 당장 월급이 안 나오는 문제, 해고에 대한 두려움 등 생계의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내가 없어도 공장이 돌아간다’는 사실은 노동자에게 엄청난 공포이며, 개별복귀와 생산재개의 원동력이 된다. 그 다음은 개별적 집단적 복귀 흐름, 생산 정상화, 노조무력화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힘겨루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생계의 공포를 극복하고 회사에게 생산불가의 공포를 돌려줘야 한다. 따라서 복귀자를 줄이고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는 것, 조합원의 단결이 승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SJM 사측도 직장폐쇄 전에 이미 관리직 현장 투입, 계약직 채용, 식당 노동자 현장투입 등 생산훈련으로 대비를 했다. 중국 제품 바이백과 외주화 등으로 대체생산 가능성도 시험하고 준비했다. 직장폐쇄 후에는 대체인력을 투입했는데 SJM 공장이 있는 남아공에서 노동자를 데려오기까지 했다. 노동부의 불법판정으로 대체인력 투입이 불가능해지자 사장부터 모든 직원이 생산에 투입되어 생산에 큰 차질이 없다며 복귀를 종용했다. 조합원의 10% 정도만 합류해도 초고강도 노동으로 가동률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SJM 조합원들은 생계의 공포에 압도당하지 않았다. 직장폐쇄를 당했던 사업장들에서 가장 먼저 복귀하고 복귀를 주도했던 그룹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조합원과 직장, 반장, 기장 등 현장 관리자들이 복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과 함께 여성조합원들, 식당 노동자들, 계약직 노동자들 등 소수 집단들이 모두 투쟁에 앞장섰다.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의 모금, 경기지부 조합원들의 모금과 전국적 후원으로 지회는 전 조합원에게 100만 원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었다. 적지만 상징적인 돈이었다. 어려운 상황은 함께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조합원들은 ‘한 명이 들어가면 직장폐쇄가 하루 더 늘어난다’, ‘승리는 내 손에 있다’며 뭉쳤다. 매일 아침 총회와 분임조 활동, 카톡채팅방 수다 등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기댔다. 복귀자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집단복귀를 조직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던 이들도 맥없이 혼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생산과 생계의 힘겨루기에서 무게중심은 노동자에게로 기울었다.
실업과 해고가 만연한 사회에서 ‘공포와 이기심’은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전제하는 보통 사람들의 감정과 상식이다. 알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SJM 조합원들의 단결은 그런 비정한 세상의 상식을 벗어났다. 담대하고 즐거운 태세로 자발적으로 투쟁을 키워가는 조합원들로부터 승리는 현실이 되었다.

단결은 어디에서 오는가

SJM 조합원들이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다. SJM지회 또한 노령화되고 관성화 된 노동조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고 자평한다. 싸워본 지도 오래됐고, 현장활동과 연대활동도 축소되었다. 지주회사 설립과 바이백, 외주화 등 최소 3년은 준비하고 추진해 온 회사의 그룹재편과 경영권 2세 승계, 노조무력화 계획에도 미리 대응하지 못했다. 지회의 한 간부는 지회의 상태를 ‘민방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서 반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준비와 신뢰였다.

준비 = 단결
분위기 반전은 ‘준비’로부터 시작됐다. 2011년 말 SJM지회는 사측의 공격을 예감하고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전방위 활동에 돌입했다. 특히 라인별, 부서별, 공장별, 세대별로 꼼꼼하게 간담회를 지속했는데 직장 반장, 고참 조합원, 계약직 등 사측의 주요 공략대상이 될 수 있는 그룹들과 꾸준히 토론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임단투 돌입 전에 조합원 전체를 28개 분임조로 편성하고 선봉대를 확대 재편했다. 조합원 교육을 통해 회사 상황과 탄압 가능성을 공유했고 채증훈련, 집결훈련도 했다. 외주화 바이백 문제 등 구조조정 전조가 발각되자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조퇴를 하고, 직장 다니며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사무실에 올라가 관련 자료공개를 요구하는 피케팅을 하기도 했다. 지회는 공장 안에 천막을 치고 잔농을 하면서 공감을 높여갔다. ‘잔농’은 SJM지회 특유의 용어로 조합원들이 퇴근 후 농성에 잠시 결합하는 것이다. 한편 외주화나 바이백 발각 등은 회사 측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유도해 공격적 직장폐쇄를 하려고 의도적으로 흘린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데, 지회는 그에 대비해 전면 파업을 자제하고 현장 투쟁과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몰두했다. 다른 사업장 사례를 조사하고 준비한 것이다.
이러한 준비는 조합원들의 ‘공통된 상황인식’을 만들고, 공동의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회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다음 계획이 무엇일지, 우리는 무엇을 할지, 조합원들 스스로 토론하고 집행부에 계획을 제안했다. 사측의 대응은 지회가 예측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것은 자부심과 단결로 이어졌다. 자본이 준비해 놓은 링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대의 작전을 미리 알아둔 것이 단결과 승리의 비결이었다.

신뢰 = 단결
민주노조 무력화 과정에서 노동조합 내 갈등은 자본에게 가장 큰 호재다. 전 집행부와 현 집행부 간의 갈등, 정파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다수 그룹과 소수 그룹 간의 격차와 갈등. 자본은 그 중에 취약한 부위를 먼저 공략한다. 한 곳이 먼저 무너지면 갈등과 분열은 더 커지고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다. SJM지회라고 그런 차이와 갈등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두 달의 투쟁과정에서 큰 갈등 없이 끝까지 함께 싸울 수 있었던 비결은 ‘신뢰’였다. 7월 27일 용역침탈 당일,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여성조합원이 “공장을 지킵시다”라고 말했다.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 날 가장 앞서서 용역들을 막다가 크게 부상을 당한 이들은 지회 전현직 집행부와 고참 노동자들이었다. 자기를 내세우며 갑론을박하기보다 직접 나서 지킨 것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본 조합원들은 회사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공통의 사태인식과 공동의 대응은 끝까지 이어졌고 심각한 이견으로 갈등을 빚는 일은 없었다. 가장 앞장서서 싸웠던 여성조합원들, 계약직 조합원들, 회사의 끈질긴 공략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 현장관리직, 고참 조합원들까지 어느 한 쪽도 ‘취약집단’으로 전락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욱 공고해졌다. 한편 평소 세대별, 취미별로 다양한 동아리 활동, 지역연대활동을 해 온 SJM지회의 오래된 일상이 큰 힘이 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후원기금 명단에는 노조와 단체 뿐 아니라 앞집 사람, 쥐띠모임 등 조합원들의 인간관계와 일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이름들이 많았다.
8월 중순, 회사는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복귀자들로 구성된 어용노조를 만들었지만, 20여 명 어용노조는 정보와 신뢰로 똘똘 뭉친 230여 명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꾸준히 이어진 지회 지도부 고립작전, 지도부와 조합원 분리 작전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투쟁을 리드한 자부심과 자발성

공통의 인식, 굳건한 신뢰, 그에 기반한 단결은 조합원들의 자부심과 자발성을 계속 폭발시켰다. 언론에 보도되어 화제가 되고 폭력당사자들을 구속시킨 결정적 증거, 7월 27일 당일 주요 영상들은 모두 조합원들의 스마트폰에서 나왔다. 휴가 기간에도 조합원들은 매일 공장 앞으로 출근했고, 모아서 나눠쓰자며 적금을 깨서 투쟁기금을 냈다. 스스로 출근 시간을 앞당기고, 농성장 결합 계획, 선전전 계획을 세워 퇴근 시간을 늦추기도 했다. 총회와 카톡채팅방 등을 통해 규찰조, 병원에 입원한 조합원 등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경조사를 나누고, 관련 기사 등을 공유했다. 회사의 회유협박도 바로바로 공유되었다. 직장폐쇄기간 거의 매일 발행된 조합원 소식지 ‘활화산’은 조합원들의 모든 일상과 고민, 투쟁을 둘러싼 정보들을 담았고 자부심과 자발성을 확대하는 중요한 밑천이 되었다.
SJM 조합원의 자발성과 조직력은 여론과 정치권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유지하는데도 핵심적인 힘이었다. SJM 사측의 모든 불법행위는 적극적으로 공유, 폭로되었고, 대선국면에서 무기가 필요했던 야당들은 진상조사와 청문회를 관철시켰다. 여당 국회의원들도 회사와 용역업체, 노동부를 꾸짖을 수밖에 없었다.
SJM지회의 2달간의 싸움은 회사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다. ‘회사 망한다’, ‘너만 잘 살면 되지’, ‘생산은 차질없다’ 조합원들은 이런 회사의 협박에 직접 답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공장을 넘어 더 큰 사회적 투쟁으로 국면을 리드했다. 공포와 분열, 무절제한 저항과 굴복을 기대하며 노동자를 내쫓고 공장을 차지했던 회사는 오히려 공장 안에 고립되었다. 경찰과 노동부도 회사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기세를 몰아 ‘풀어라 직장폐쇄! 없애자 용역폭력’운동, 줄여서 전국적 풀업운동을 제안하고 나섰다. 같은 일을 당한 모든 이들과 함께 폭력의 뿌리를 뽑자는 것이었다. 직장폐쇄가 철회되면서 풀업운동이 본격화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확장되는 기세가 회사의 항복을 끌어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충남지부가 농성장을 찾았던 날 한 여성 조합원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노조가 아니라 전국의 민주노조를 위해 싸웁니다.” 정년퇴직을 앞둔 한 노동자도 말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인생 다시 한 번 살고 싶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부심과 긍지였다.

진짜 연대를 보여주다

SJM 조합원들의 조직력과 자발성은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한 지회만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니었다. ‘만도효과와 SJM효과 중 무엇이 대세가 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서 SJM은 치열한 전장이 되고 있었다. 직장폐쇄라는 효과적 무기를 지키려는 자본의 절박한 이해가 걸려있기도 했다. 계속된 노조파괴 흐름, 만도지부의 붕괴,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노동자운동의 절박함과 용산과 쌍용차, 발레오, 상신브레이크, KEC, 유성 등에서 쌓여 온 분노도 SJM으로 모이고 있었다. 안산공대위, 경기지원대책위 등 지역 연대단위가 꾸려졌고 전국 각지에서 연대를 만들었다.
SJM으로 모인 수많은 힘 중에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집중집회 몇 번’의 투쟁계획을 넘어선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투쟁이다. 경기지부는 직장폐쇄 후 첫 운영위원회에서 “여기서 진다면 민주노조 포기하고 각자 알아서 살자. 그럴 거 아니면 여기서 모든 것을 걸자”고 결의했다. SJM지회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을 ‘조직력 유지 확대’로 보고 지회가 거기에 집중하도록 그 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부가 책임지고자 했다. 경기지부는 투쟁의 장기화에 따라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처하고자 매일 철야농성, 전 조합원 생계기금 결의, 지부총파업 결의를 이끌어낸다.
직장폐쇄 투쟁 열흘 째, 경기지부는 SJM 공장 앞에 농성천막을 차렸다. 낮에는 SJM 조합원이, 밤에는 지부 조합원들이 공장 앞을 지켰다. 퇴근하고 모인 밤샘 농성자들이 매일 40여 명에 달했다. 농성자들은 SJM 투쟁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를 공유하고 토론했다. 밤새 매 시간마다 회사를 향해 선무방송을 하고 노래를 틀며 사측을 압박했고, 대체인력투입이나 설비 반출 등 불법행위도 철통같이 막았다. 어느 사업장들은 전 조합원이 돌아가며 참가했고, 그럴 수 없는 사업장들은 나름의 방법을 강구해 농성장에 와서 교육을 받고 기금을 전달하는 등 전 조합원이 와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했다. 경기지부 철농장은 SJM 조합원들에게도 든든한 힘이었지만, 매일 밤 농성장을 찾는 조합원들에게도 생생한 민주노조 교육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대비해야 할 것은 생계의 어려움이었다. 경기지부는 전체 4,000여 조합원들이 SJM 투쟁 승리까지 매달 2만원을 대출하자는 안을 냈다. SJM 투쟁승리를 위해 개최된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한 대의원은 “기한을 정하자. 만약 그 때까지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더 큰 것을 결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장투기금이 적용되는 6개월 이전까지 기금을 결의했다. 이 외에도 각 사업장에서 조별로 반별로 자발적 모금활동을 벌였다.
이 날 총회에서는 SJM투쟁 승리를 위한 지부총파업도 결의한다. SJM을 제외한 대다수 사업장이 임단협을 마무리한 상황, 사용자들의 반발과 협박도 거셌고 9월 13일 파업 당일엔 비마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지부 조합원들은 6시간 파업을 하고 과천 고용노동부 앞으로 모였다. 자본의 전면공세에 대적할 만큼 돈을 모으고, 생산에 타격을 줄 만큼의 파업을 하는 것은 현재 운동역량 상 온전히 달성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았던 결의와 실천을 해낸 경기지부 조합원들의 사기와 자부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의 동력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힘이 되는 진짜 연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기지부의 저력은 SJM 직장폐쇄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 전부터 이어 온 고민과 실천에 더 주목해보아야 한다. 2009년 쌍용차, 동서공업, 포레시아, 파카한일유압 등에서 이미 정리해고와 노조파괴 공세에 무너진 경기지부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집단교섭 사업장들은 투쟁사업장 앞에서 매 주 난장투쟁을 벌이며 사업장 벽을 허물고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고 이완되어 있던 집단교섭은 해를 거듭할수록 지부 사업장 간 단결을 강화하는 과정이 되어왔다. 경기지역에서 직장폐쇄가 벌어진다면 즉시 파업하고 그 사업장으로 집결한다는 지침은 2010년 우창정기, 2011년 인지컨트롤스 직장폐쇄 철회 투쟁의 승리로 굳어졌고, SJM에서도 그 힘을 발휘했다. 또 사업장의 벽을 넘어 실질적 지역연대를 구축하자는 ‘지역총파업’을 제안하고(「경기 지역총파업,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사회운동』(2011년 5-6월호), 「치열한 준비과정으로 역동적인 지역노동운동을 만들자」,『사회운동』(2011년 7-8월호) 참조) 매 주 화요일에는 거리로 나와 지역 시민들을 만났다. 지역운동 단위들과의 공감으로 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김장, 북콘서트 등 사회적 공감을 확장하는 행사를 치렀고, 이런 과정은 SJM 투쟁에서도 지역운동의 헌신적 연대로 나타났다.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구체적 준비도 했다. 2011년부터 직장폐쇄 노조파괴 사업장 사례 분석, SJM 경영현황 분석 등을 하고 2012년 임단협에서도 SJM 직장폐쇄에 대비하기 위해 경기지부 집단교섭 사업장들은 6월 15일 쟁의조정신청을 하고 금속노조보다 빨리 쟁의권을 획득했다.
2011년 경기지부 7기 임원선거의 슬로건이 ‘공포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였다는 것은 지부의 인식과 준비 수준을 보여준다. 이 모든 과정이 SJM 조합원들의 담대한 투쟁과 맞물려 승리를 불러온 것이다. 경기지부의 고민과 투쟁은 통상 완성차지부의 상황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지역지부 운동의 새로운 역할과 전망을 고민하게 한다.

SJM 투쟁 승리의 의미와 과제

SJM투쟁은 승승장구하던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박살내고 패배의 도미노를 멈췄다.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그 다음은 굳히기와 역전이 필요하다. SJM효과는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고통 받고 있는 유성기업과 KEC 등에서 어용노조 해체와 민주노조 재건으로 이어져야 한다. 용역깡패와 국가폭력, 재벌의 돈권력에 맞서 싸우는 쌍용차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로 이어져야 한다. 파괴되어 온 노동자들의 인생과 민주노조를 되돌리고 노동권을 확대하는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전국적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SJM 직장폐쇄 철회로 풀업운동은 추진되지 못했지만, 피해 사례를 전국적으로 발굴하고 힘을 모아 전사회적인 기업폭력 퇴치-노동권 확대 운동으로 이어가려 했던 취지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전체 운동진영의 고민과 역할이 필요하다.
금속노조는 이번 SJM 투쟁에서 전 지부의 철야농성결합을 비롯해 현대차지부, 기아차지부, 세종지회, 세정지회 등 SJM의 원청사들의 연대를 이끌어냈다. 지부 철야농성에 참가한 전국 각 지부들은 SJM 투쟁에서 경기지부의 역할과 결의를 보며 지역지부와 금속노조의 역할에 대한 많은 고민을 안고 간다는 평가를 남겼다. 이러한 흐름을 더욱 확산해 실제 생산에서 회사를 압박하는 힘을 강화해 가야 할 것이다.
한편 SJM과 같은 부품사들의 그룹차원의 이윤재편전략과 구조조정 계획에 맞서기 위한 분석과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SJM, KEC, 유성기업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중대형 부품업체들은 지주회사 설립과 이윤 몰아주기를 통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경영위기를 유포하고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추세다. 자본이 그룹차원에서 돈을 번다면 노동조합의 시야도 자기 사업장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SJM 또한 직장폐쇄 투쟁에서 승리했지만 외주화와 바이백, 그룹재편 문제와 2세 승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계속해서 견제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SJM 효과와 만도 효과’. 자본은 만도효과를 확산해 완성차지부를 고립시키고 민주노조를 완전 무력화하고자 했다. 그런데 SJM에서 의외의 난관을 만나 계획은 잠시 주춤하고 있다. SJM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노동자운동 역사의 중대한 고비를 하나 넘겼다. SJM 노동자의 승리는 그들만의 승리가 아니다. 자본이 패배를 인식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노동자운동도 승리를 인식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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