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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2.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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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한반도 정책 분석

수열 | 정책위원
2012년 말, 한국을 비롯해 한반도 문제에 핵심적인 나라들이 권력 재편기에 있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정부의 안보 및 대외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알려진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지난 10월 5일 보고서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국가안보 가이드’를 펴내면서 ‘미국 경제가 처한 심각한 위기로 인해 2012년 대선에서 후보와 미디어는 물론 대중에게까지 국가 안보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미국 경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해법이 모든 쟁점을 압도해 대선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할 쟁점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비슷하다. 아직 본격적인 선거활동에 돌입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주자들은 각각의 정책 비전이나 구상을 발표하면서 예비후보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남북문제나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 체제에 대해 깊은 성찰과 근본적인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지만 서해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남북 간 충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나 기존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전전 정권에 대한 의혹 제기를 통한 정치 공세 수준이며, 남북 간 상생과 협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구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한국 대선에서 한반도 문제가 다루어지는 방식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색깔론이거나 한국 경제의 위기 탈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 개척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두말할 필요 없이 현재 한반도가 놓인 정세는 엄중하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이후 한국은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 큰 논란을 겪었던 한일 정보협정 문제에서 알 수 있듯, 한일 간 군사협력 강화를 발판삼아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실현이 눈앞에 와 있다. 한미일 세 나라의 군사협력은 날로 긴밀해 지고 있으며, 위협적인 군사훈련이 반복되면서 북한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을 자극해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한다.
이러한 한반도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민중의 평화적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모색을 해야 할 시기다. 이 글에서는 18대 대선 주요 주자들의 한반도 정책과 함께 현재 한반도 문제에서 고민되어야 할 쟁점들을 개괄하고자 한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통된 인식

18대 대선 주요 주자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여 남북관계를 파탄’시켰다고 평가한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남북경제협력 3대 과제’에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고 개발이 낙후되어있다는 ‘현황’ 분석을 하고 있어 문재인 후보의 평가와 유사하다. 여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비슷하다. 박근혜 후보는 ‘유화주의적 포용정책과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 모두 북한사회의 의미 있는 변화를 유도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해 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이전 정부의 그것을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인데, 모두 한국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평화가 곧 경제다’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 문제를 철저하게 한국의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다룬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그가 자칭 615, 104 선언으로 상징되는 햇볕정책의 계승자라는 측면에서도 알 수 있다. 안철수 후보는 ‘북방경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남북경제협력을 제도화하고, 이를 통해 경제영토를 북방으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 활성화 이전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착’을 주장하는 박근혜 후보의 정책은 두 후보와 비교해 이러한 특성이 훨씬 약하지만, 경제협력 사업 활성화가 재원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한국 경제 상황에 종속시킨다는 면에서 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비핵개방3000’으로 표상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핵 문제나 미사일 문제에 있어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고, 오히려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다는 평가는 매우 일반적이다. 심지어 한 국책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선언적 대북정책이 북한에 대남비난의 명분만을 가져다줄 뿐’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의 평가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현상을 지적할 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각 후보가 제시하는 해법에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한다.

햇볕정책의 재현: 문재인, 안철수

문재인 후보는 ‘남북경제연합’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다. 남북 간 포괄적인 경제협약을 체결해 자유롭고 안전한 투자와 경제활동을 보장, 보호하겠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국민소득 1인당 3만 달러-인구 8천만’의 한반도 공동시장을 탄생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경제연합을 실현하기 위해 104 선언 중 경제적 효과가 높은 사업을 우선 선택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북한의 산업기반 구축을 위해 ‘한반도인프라개발기구’를 설립해 국제사회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울산-포항-삼척-동해-나진선봉 등 동해안을 거쳐 중국, 러시아까지 연결되는 ‘환동해 경제권’과 제주-전라-충청-인천-경기-해주-남포-황금평-신의주 등 한반도 서부지역과 중국 동부지역이 포함되는 ‘환서해 경제권’을 조성해, 이를 바탕으로 인구 6억 명 시장의 ‘동북아협력성장벨트’를 형성해 가겠다고 말한다.

[표 1] 남북경제연합을 위한 추진과제(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의 키워드는 ‘북방경제’다. 저성장 시대에 중소기업이 성장 한계에 직면해 있기에 경제영토를 북방, 즉 북한을 기반으로 중국, 러시아까지 뻗어나가 중소기업의 새로운 희망을 찾겠다고 말한다. 또 남북 경협이 정치 상황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경제협력 구조가 정착되지 않는다고 진단하면서, 남북경제협력의 제도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북방경제권 형성을 위해 안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은 ‘환황해·환동해 경제권’ 추진이다. 서해를 황해로만 바꿨을 뿐 문재인 후보가 제시하는 내용과 동일하다.

[표 2] 남북경제협력 3대 과제(안철수 후보)

두 후보의 이러한 구상에 대해 즉각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첫째, 남북 경협의 안정적인 제도화가 과연 가능한가. 이를 위해 문재인 후보는 ‘경제협약 체결’을, 안철수 후보는 ‘남북경제공동위원회 가동’을 제시한다. 그러나 두 후보가 모두 평가하고 있듯이 남북 경제협력이 불안정한 가장 큰 이유는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104 선언이 매우 전향적인 조치들을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실행하겠다고 공언하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렇다면 남북 경협을 발판으로 한 동북아시아 중심 국가 구상이 가능한가. 문재인 후보가 제시하는 ‘동북아협력성장벨트’나 안철수 후보가 제시하는 ‘북방 경제’는 모두 북한과의 안정적인 경제 관계가 확보될 때에만 가능하다. 최소한 외국 자본이 북한의 경제 주체들, 즉 기업이나 금융 기관과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셋째, 북한에 대한 인프라 투자는 가능한가.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인프라개발기구’를 설치해 해외 자본을 유치하겠다고 주장한다. 안철수 후보는 ‘북방통합물류운송망’을 구축하겠다고 주장한다. 인프라 투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반면, 그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언제 거래가 끊길지 모르는 국가에 투자를 할 자본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북한의 경제 시스템의 문제도 있다. 지난 8월 방중 한 북한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만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북중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법률을 개선하고, 토지와 세금에 시장시스템을 적용하는 등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을 일종의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는 중국마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상황에서 해외 자본의 인프라 투자가 가능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두 후보의 구상은 김대중 정부 햇볕 정책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 미국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전략에 철저히 종속되어 추진되었던 햇볕 정책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문제는 미국이, 경제문제는 한국이 담당하는 것을 전제했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 조치들, 즉 군사력 감축이나 불가침협정 등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승인하면서 남과 북이 경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을 전혀 제어할 수 없으며, 늘상 정치 상황에 종속된 경제 협력마저도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계승: 박근혜

상기한 두 후보와 비교해 박근혜 캠프에 있어 한반도 정책의 중요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캠프는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공식 홈페이지에 한반도 관련 정책을 게시하지 않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면서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이 현재 박근혜 후보의 공식적인 한반도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데, 이조차 매우 빈약하다. 이는 단순히 중도와 부동층을 의식한 선거 전략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한창 고조되고 있는 동안에도 한미동맹에만 올인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처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보수층의 빈약한 인식을 보여준다.
박근혜 후보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강조한다. 그동안 남북한 사이 또는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에 이뤄진 많은 약속과 국제기준을 지키는 전략적 신뢰관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포용이건 원칙적 대북정책이건 성공할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남북 사이에 맺은, 그리고 북한과 국제사회에 맺은 기존의 약속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 신뢰프로세스가 작동해야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표 3]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착(박근혜 후보)

남북의 당국자 간 대화 재개나 인도적 지원 활성화도 언급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강조하는 것은 기존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맺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신뢰프로세스의 전제라는 점이다. 이는 재원조달방안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박근혜 후보는 ‘경제협력 사업 활성화 이전에 남북간 신뢰를 공고히 하자는 공약이므로 남북협력기금에 의한 인도적 지원 이외의 별도 재원조달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남북 간 신뢰가 자리 잡기 전에는 경제협력 활성화도 없다는 것이고, 이 신뢰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기존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북한의 유의미한 태도 변화 전에는 어떠한 지원이나 협력도 없다는 이명박 정부의 현재 자세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하지만, 실상 그 내용은 동일하다.

2012년 말, 한반도를 둘러싼 조건

미국 대선과 중국
경제 문제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미국 대선에서 대중 관계는 핵심 이슈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경제적 파트너이나 안보적 경쟁자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대외 정책의 일정한 변화가 있을 것이고, 대중국 전략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미국 대선에서 대외 정책을 둘러싼 쟁점을 살피기보다는, 현재 미국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쟁점을 간략히 살펴본다.
앞서 글머리에서 언급한 신미국안보센터의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국가안보 가이드’ 보고서는 미국의 차기 지도자가 대중 관계에서 마주해야 할 의제를 정리해 제시했다.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상호간 불신을 종식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이 보다 높은 수준의 경기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중국을 압박해 미중 무역 관계를 향상시켜야 한다. 이는 지적 재산권의 보호, 나아가 시장 환율에 맞는 적절한 중국 통화, 외국 기업의 시장 접근 보장 등을 의미한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이 책임 있는 세계 파워로서 이란이나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는 것과 같은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 차기 지도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힘의 근원이 되는 미국의 경제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 차기 지도자는 중국이 법의 역할을 확대하고, 인권을 존중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여기에는 소수자(민족)에 대한 처우 보장, 자유로운 정보 접근 등이 포함된다.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은 현재 미국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미중 관계의 갈등 요인을 살펴보자.
첫째, 미국은 중국의 빠른 군사력 증강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2011년 중국은 11.8%의 국방비를 증액했는데, 이는 1,200억-1,800억 달러에 달한다. 5,3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국방예산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향후 중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국방비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재균형’ 전략을 통해 아시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미국에 커다란 장애 요소다. 특히 일본, 필리핀 등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들과 영토 분쟁을 벌이며 노골적인 군사적 팽창을 꾀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힘든 문제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세계 경제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는 양국이 입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위안화 절상이나 지적 재산권 등 쉽게 풀기 힘든 문제들이 많다. 중국의 성장과 확장을 제어하고,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시도들이 계속되는 한 이러한 문제들은 지속적으로 불거질 것이다.
셋째,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에 대한 제재를 번번이 무산시킨 중국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문제를 지렛대 삼아 미국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전략적 대결의 반복은 미국의 패권을 제어하길 원하는 약소국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은 이런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들 수밖에 없다.
넷째,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동아시아정상회의 가입과 같은 지역 다자기구 참여나 전통적인 우방이 아닌 신흥 세력들과의 (군사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에 대해 중국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섯째, 중국 내 인권 문제, 소수민족 탄압 등 전통적인 갈등 요인들이 끈질기게 양국 관계를 괴롭힐 것이다. 중국의 인권 변호사 천광청의 망명을 두고 벌어졌던 갈등과 같은 상황이 충분히 반복될 수 있다.
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자국의 성장을 억누르려는 의도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 분쟁과 관련한 미국의 행보는 미국의 안보 정책이 중국의 이해와 충돌한다는 인식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며,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커다란 축으로 작동할 것이다.

중국의 정권 교체와 북한
중국 역시 18차 당 대회를 통해 지도부 교체를 예고하고 있다. 시진핑 현 국가부주석이 주석 직을 승계할 것이 유력한데, 중국 지도체제가 전환되더라도 북중 관계는 쉽게 변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도체제가 안정화될 때까지 중국 내부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는 차단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중국의 지도체제가 바뀌더라도 북한이 지니는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순탄하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중국에 대한 지금과 같은 의존적 상황이 북한에도 최선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경제·금융 제재를 당하고 있는 북한이 현재 의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대가 중국인데, 북한도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는 없다. 특히 광물 자원과 관련된 중국의 무차별적 독점과 불공정 무역 문제는 북한으로서는 시급한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중국의 대북특사 파견 제의를 거부했고, 일정 기간 북중 고위급 교류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 기간에 북한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비동맹 세계와 접촉하는 등 대외 관계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핵 문제다.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중국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동북아시아의 전략 균형을 뒤흔드는 중대한 상황이기 때문에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문제다. 더구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이후 미국은 핵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 수역에 파견해 군사훈련을 펼친 바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보다 적극적인 미국의 개입을 부른다는 면에서도 중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헌법을 고쳐 ‘핵보유국’을 명기하고,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는 등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한다는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북한이 핵보유국에 가까워질수록 중국과의 갈등 가능성 역시 커질 것이다.

민중운동은 지금

얼마 전 때 아닌 북방한계선(NLL) 논란에 대해 한 진보 학자가 인터넷 언론에 글을 게재했다. NLL은 국제법적으로 어떠한 효력도 없으며, 국경선으로서의 요건에 미달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에 한 네티즌은 ‘독도도 국제법상으로 따지자면 분쟁지역’이라며, ‘필자와 같은 논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영토 분쟁이 심각해지면서 NLL을 지키는 것도 영토, 영해를 지키는 것과 동일하게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어떠한 합리적 비판도 거부한 채 영토, 영해 문제를 금기시하는 맹목적 애국주의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러한 때, 민중운동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 여름 이명박 정부의 한일 정보협정 추진이 알려지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을 때, 한국 평화운동의 일부는 반일 감정을 적극 활용했다. 한일 정보협정이 군수지원협정 등으로 이어지면 유사시에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하거나, 혹은 한반도를 점령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보다는 민족적 감수성에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군사적 팽창, 한반도 침략 야욕에 맞서 한국도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논리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배타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의 폭력성만이 아니라, 이것이 결국 자국의 보호를 빌미로 한 군사력 증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티즌의 예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호소해 온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혹은 일정 자초한 현실이라면 너무 과장된 이야기일까.
대선 시기 민중운동의 자세도 짚어 보아야 한다. 정권 교체의 희망에만 매달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민중들의 요구를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가두고, 정작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스스로 사장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역내 국가들이 개입된 문제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어 한반도 주변의 긴장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제어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점들을 찾기 위한 민중운동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주제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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