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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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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을 위한 변명

최석진 | 인천지부 정책국장
지난 11월 6일-8일 진행된 대우자동차 최종 부도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매각실패의 책임이 어떻게 노동조합에 전가되고, GM-피아트의 계산이 어떤 방식으로 관철되는지, 1차 구조조정 실패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극복될 것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 동안 민주노총과 민중운동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대우자동차 공기업화 주장의 정당성이 포드사의 매각포기 결정으로 인해 입증되었지만, 현실은 매각실패에 대한 책임보다 동의서를 거부한 노조에 대한 압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정권의 정책기조에 자발적으로 합의한 언론의 분위기 조성 탓도 있다. 그렇지만 공기업화 투쟁을 인식하는데 있어, 이를 기업의 지분 소유형태의 문제로만 국한시켜 접근하거나 혹은 해외매각의 불리함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한 진보진영의 동요 또한 한몫 거든 것도 사실이다.


부도의 책임과 원인

작년 8월 26일 대우자동차는 워크아웃 사업장이 되었다. 사전적 의미로 워크아웃(기업개선명령)이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채권은행단이 서로 협의하여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을 의미한다. 통상 이러한 워크아웃 상태에서 구조조정은 자금지원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고, 그 결과 기업은 채권단의 관리하에 놓이게 된다. 작년 11월25일 채권금융기관 협의회에서 대우자동차 기업개선계획을 발표했던 것이나 채권단이 경영진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계획수립에서 자금지원, 채권회수를 위한 처리방안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채권단이 관여하고 결정하게 된다. 지난 워크아웃 기간동안, 매달 돌아오는 어음을 대우차의 자력으로 충당할 여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볼 때, 부도결정은 실제 채권단의 판단이었다. 다만, 최종부도 결정을 내린 이유에 "노조의 동의서 제출 거부"가 명목상으로 있을 뿐이다.

최종 부도처리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입장에서 제시하는 근거는 추가부실 확대와 기업가치의 하락이다. 그러나 이 부실의 원인도 채권단이 선택한 해외매각 방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매각과정에서 발생한 포드측의 돌발적인 인수 포기결정과 이로 인한 매각가치 하락은 어쨌든 채권단이 내린 선택의 귀결인 것이다. 자금지원에 있어서도 워크아웃 이후 채권단이 지원하기로 한 액수 2조6천220억 중 실제지원액은 2조1천880억원이었으며, 4천324억원은 회수해 간 사실이 있다. 여기에서 지원액의 규모가 적절한가 여부를 떠나 미달한 차액만큼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나마 적기지원을 번번이 놓치면서 도리어 워크아웃 기간동안 추가부실이 가중된 것이다.

대우자동차의 연구개발 계획은 전면 중단되었으며, 연구인력은 빠져나가고 개발해 내놓은 신차 '매그너스'조차 엔진결함에 따른 추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신차 출시가 갖는 잇점(투자액 회수)을 놓치고 말았다. 현재 대우자동차 처리 문제의 핵심은 해외매각 방침에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였던 것이다.


매각실패의 책임

포드측의 인수포기 선언으로 인해 매각계획이 원점으로 돌아와버렸을 때, 정부와 채권단은 매각실패에 따른 파급효과를 줄이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한편, 여전히 동일한 매각기조를 유지하면서 조속한 처리(해외매각)만이 최선임을 강조하였다. 정부 스스로 봉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선인수-후정산 방식이니, 한달 내에 매각할 수 있다느니 하면서 또다시 조급함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와 채권단의 입장에서, 조속 처리도 문제지만 매각실패에 따른 인수가 하락에 대한 책임과 올해 노사가 합의하여 체결한 '고용보장협약'은 GM과의 협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전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포드에 당한 배신감인지 아니면 우발채무라는 과거가 들통나서 더 냉정해진 것인지, 채권단은 동의서 요구라는 절묘한 발상으로 '고용보장협약'과 매각 실패의 책임까지 전가하는 사기극에 성공하게 된다. 당연히 제물이 필요했고 습관처럼 노동자들을 선택했다.

어디 그뿐인가? 현재 채권단이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이 진심이라면, 회사가 작성한 자구계획안과 동의서의 상관관계를 볼 때 지금 채권단의 태도는 막나가도 한참 나간 것이다. 회사에서 체줄한 자구안의 핵심은 '원가절감'으로 그 총액 9천억원 중에서 인건비 부분은 1천억원이다. 그러나 최종부도 이후 열흘만에 가동중지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인건비 절감 부분을 이미 초과하고 있다. 채권단은 '한달 운영자금으로 필요한 1천5백억원을 감당할 수 없어 최종부도를 결정하긴 했지만, 가동중지로 인해 하루에 100억 이상의 적자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종부도가 발표되던 날 주가는 상승하고 추가손실은 노동자들의 몫으로 둔갑했다. 법원이 '노조 동의서는 주된 판단근거가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언론은 외면했고, '파산절차를 피하기 위해'라는 말은 여전한 쟁점이 되고 있다. 법원이 파산결정을 내리면 다시 노조책임이 되고, 법정관리를 승인하면 '연관산업을 고려'해서 판단한 것이 된다.


채권단의 판단, 최종부도

11월 8일 최종부도처리 이전부터, 정부는 대비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을 보이면서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과 부도 파장을 최소화하는 후속조치를 연이어 발표하였다. 회사 또한, 부도 직후 부품협력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지는 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대우자동차의 주채권은행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다. 워크아웃 상태에서의 최고경영자 선임권은 채권단에 있기 때문에, 워크아웃 이후의 대우자동차에 있어 회사와 채권단과 정부의 입장은 다를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동안 회사측에서 자구안을 만들기 위해 노조와 협상하는 동안 산업은행에서 최종부도처리를 미루어 주고, 최종부도 후 정부에서 파장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내 놓은 일련의 과정은 분위기 심각한 하나의 연극에 불과하다. 이는 이종대 대우자동차회장이 부품협력업체 사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동조합이 동의서를 제출했더라도 부도는 났을 것'(인천/연합/11.10)이라는 발언으로 사실로 확인되었다.

결국 정부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런 마당에 채권은행 관리하의 '워크아웃'이나 법원에 의한 '법정관리'나 소소한 차이를 제외하면 동일한 상황에서, 정부와 채권단은 왜 최종부도라는 무리수를 감행했을까?
법정관리 상태에서는 채무가 동결된다는 점에서 우발채무의 부담이 없어 오히려 부실 정리를 위해서는 더 나은(Clear) 조건을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기아자동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최종부도로 인해 이미 퇴직자의 수가 자연 감소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어 인원조정의 효과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경쟁력에 따라 부품협력업체까지 자연정리되니 정부의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요, GM은 '무혈입성'인 셈이다.


해외매각인가, 공기업화인가?

동의서 파동이 한풀 꺾이면서 다시 대우차의 향배가 법정관리 수용여부로 몰리고 있다. 여전히 노조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에서 20여일 전 상황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해외매각이 가져올 파괴적 결말이 포드의 인수포기로 인해 이미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GM의 인수의사 타진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마치 이성을 상실한 듯한 정부의 이런 태도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가 자본시장의 신뢰조차 잃어가고 있는 현재 경제위기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반도체 경기 하락과 유가상승의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경기퇴조 징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진행과정의 반민중성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저항에 밀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격에 쫓기는 형국에서 파국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우자동차 처리과정은 DJ정권의 1차 구조조정 실패와 맥을 같이하고, 2단계 구조조정의 결말에 맞닿아 있다.

해외매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설득이 기만적인 선동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폭로한 정부가 매각방침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각을 제외하고는 공기업화 밖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설령 정부가 일시적 공기업화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2단계 구조조정조차 지지부진한 현재의 상황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실제 집행될 가능성은 더욱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진영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해외매각을 승인하면서 이후 초래할 재앙의 파괴적 성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자임하거나 아니면 대우자동차 공기업화 투쟁으로 해외매각론을 기각시키는 것이다.
때때로 정권의 수용 가능성 여부를 동원하여 공기업화 투쟁을 비현실적인 주장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이러한 입장은 해외매각론과 근소한 차이를 두고 동일하다. 대우자동차의 공기업화를 요구하는 의미는 단지 사기업보다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고, 국내 생산시설을 보호하는 애국심의 발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 논리에 따라 구조조정이 시장기능의 회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시장적 국가개입, 즉 부실이 시장에서 청산되지 않고 그 비용이 사회적으로 분담되고 있으면서도 그 성과는 국내 독점자본과 초국적자본의 이윤율 회복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특히 대우자동차의 경우 공적자금으로 부실채권을 탕감하면서도 외국자본이 그 이득을 수취하는 반면, 노동자들의 경우 자본의 지속적인 이윤보장을 위해 고용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비정규직으로의 리콜(recall)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공공성의 축소, 기간산업 해외매각정책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구조조정과정의 결말이 파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는 사실, 황폐화된 노동자 민중의 삶이 더 이상 착취당할 여지조차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해외매각을 저지해야 하고 공기업화를 쟁취하는 투쟁은 이제 원칙이 아닌 실천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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