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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3.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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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기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송유나 | 정책기획부장
<b>노동시간 단축의 현재적 조건</b>

노동시간단축 투쟁은 19세기 미국과 영국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된 투쟁이다. 인간이 하루에 8시간 노동하고 8시간 여가를 즐기며, 8시간을 수면한다는 기본적인 권리로서 생산의 패턴, 노동자 삶의 패턴을 규정하는 매우 소중한 투쟁이었으며, 극렬하고 비인간적 초과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확보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자본의 착취구조에 대항한 가장 기본적 권리투쟁이자, 생존권 투쟁이었이다. 이 투쟁과정에서 수많은 산업프롤레타리아의 희생이 있었지만 노동계급은 결국 승리하여 하루 16시간 노동제에서 8시간 노동제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의 과정에서 노동 3권의 확립과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의 건설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아동노동을 철폐시켰으며 모성보호를 노동자의 기본권리로서 인정하게 하였다. 즉,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이라는 노동자들의 성전(聖戰)은 노동자 권리의 확보와 노동조건의 비약적인 향상을 동반한 투쟁이었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집약된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자본의 위기가 항상적으로 일어나고 그에 따라 실업이 폭발적으로 양산되면서 노동시간 단축은 점점 수세적 의미로 전환되어 나갔다. 극소전자혁명 등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른 생산성 상승은 경제 전체수준에서 보더라도 필요 노동량을 급격히 감소시켜 나갔다. 완전고용은 파괴되었으며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은 증가하였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하에서 사회적 배제와 빈곤, 대량실업의 폐해가 속출했으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임금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분할, 그리고 갈등이 증폭되었다. 이에 따라 서구 유럽에서 이 고실업 해소의 방안으로서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야기되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8시간 노동제 쟁취투쟁과 비교하여 투쟁의 조건과 목표가 사뭇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구조조정과 자본의 축적구조 변화에 대항하는 전략적 측면에서 제기되는가, 아니면 수세적·방어적 측면에서 일자리 보전을 위한 전술인가, 혹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계급적 슬로건인가 등의 다양한 이면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구체적 투쟁의 목표도 일정하게 달라지게 된다. 또한, 전략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과제라고 하더라도 주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형성되어 있는 조건에 따라서 그것이 오히려 투쟁을 호도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의 위기하에서 정리해고와 실업에 대한 대안 창출이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특히, 전술적인 측면에서의 고려는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 살펴볼 것은 첫째,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는 조건, 둘째,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 셋째, 이와 관련된 노동진영의 전술적 오류들을 평가하고 점검하고자 한다.


<b>노동권에 대한 공격, 그 맥락으로서 노동시간 단축</b>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노동시간 단축이 하나의 사회적인 쟁점으로 대두되었지만, 최근 제기된 맥락의 노동시간단축 논의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 한국노총은 1996년 단체협약에서 주5일 근무제(주 40시간)와 토요일 격주휴무제(주 42시간)를 주장했고, 금속연맹과 민주노총 역시 주40시간 노동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데이콤 등 7개 노조가 41시간으로, 대우조선·한국중공업·쌍용자동차 등 73개 노조가 42시간으로 각각 주당 노동시간을 단축하기로 경영 측과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논의는 IMF 구제금융신청과 함께 도래한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하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IMF 외환위기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각 기업별로 감행하는 동인을 제공하였고 그에 따라 비정규직, 실업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양산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을 위시한 민주노조운동진영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를 제안하고 구체적 방법으로서 1) 전산업에 주40시간 법정 근로시간제 실시 2) 특정산업의 경우 주 35-38시간의 산업별 협약으로 현 수준의 고용유지 3) 노동시간단축 특별법의 제정, 노동시간단축위원회의 구성 운영 등을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법정근로시간을 주40시간으로 단축하면 현재의 연간 실 노동시간 2500시간을 2000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고, 그 효과는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전체 피용자수 1300만명*1/5 = 260만명에서 산업별·기업별 특성을 감안되더라도 최소 200만 개 정도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은 실제 일자리 창출에 복무할 수 있는 것인가? 문제는 시간계산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논의가 어디로 귀결되는가 하는 점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부터 시작된 경제위기 국면의 형성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면적 관철기로의 돌입은 급속하게 한국사회 전반에 위기담론을 양산시켜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에게 고통분담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전담되기에 이른다. 또한, 자본과 정권은 이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로 노사정위원회를 건설해 나간다. 난생 처음 맞이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의 노동자계급은, 세계적·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구사해야 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술의 혼란함을 거듭하게 된다.

결국 위기의 성격에 대한 상황인식의 부재, 그리고 위기적 국면에서의 투쟁에 대한 부담감이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로 귀결되었다. 이로부터 자본과 정권에 의한 노동권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이 감행되기에 이른다. 1998년 2월 6일,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는 어이없게도 노동시장 구조조정의 핵심적 테마인 정리해고제의 조기 도입, 그리고 근로자파견제의 입법화에 대한 '합의'가 성사된다. 합의구조, 양자간의 혹은 삼자간의 양보라는 게임의 법칙은 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라는 핵심적 의제가 마치 '고용보험제 개선, 실업재원의 확충이라는 실효성 없는 실업대책'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주요한 한 축에 자리한 재벌개혁 및 정부행정개혁이 마치 동등한 맞거래의 대상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듯하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노자관계가, 그리고 이 '위기적 국면'에서의 노자간의 역관계가 동등한 합의와 양보라는 게임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며, 가당찮은 상상력의 발호일 뿐이라는 역사적 진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 2000년 들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기축으로 하여 노동조건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에 들어간다.
이처럼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업과 불안정 노동이 일반화되고 있는 조건 속에서 이야기되는 노동시간 단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노동시간 단축의 전 과정은 노동계급의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 노동조건의 개선과 질적인 향상을 위한 논의가 아니라 구조조정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보완적 논의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둘째,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노사정 3자의 합의구조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논의는 전반적으로 악화된 노동권과 노동조건에 대한 맞교환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고 있다. 셋째, 따라서 이러한 수세적인 국면에서의 노동시간 단축논의는 노동진영의 체계적인 양보교섭을 이끌고 있다. 즉, 지금의 논의지형은 노동진영의 공세하에 노동조건의 개선과 노동권 확립의 기점이 되었던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노동진영의 양보교섭의 형태를 의미하며, 이것은 다시 노동법 개악의 한 축으로서 노동시간단축과 노동조건의 개악의 맞교환과 거래 대상으로 형성되고 있다.


<b>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시간 단축</b>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권과 자본의 노동법 개악시도를 살펴보면 이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2000년 6월 발표된 경총 및 자본측의 입장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의 기자회견이나 노사정위의 연내 노동시간단축 입법추진 선언 등이 이어지면서 대략 1) 월차휴가 및 생리휴가의 폐지 2) 초과 근무 할증률을 50%에서 25%로 인하 3) 변형근로시간제·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 4) 노동시간 단축을 전산업·전규모가 아닌 사업별 규모와 업종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실시 5)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삭감 및 주휴 무급화 등을 실시한다면 주5일 근무제를 받을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정리되고 있다.

2000년 10월 노사정위의 '근로시간단축 합의문'은 노동시간단축과 함께 임금, 노동시간, 휴일·휴가제도, 모성보호 문제 등에 대한 포괄적 개정이 한 묶음하에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현 시기 구조조정 국면에서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의 대안으로 제출되는 노동시간단축 자체가, 노동시장 유연화와 동시 병행해나갈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우리보다 앞서 진행시키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독일의 경우, 노동시간의 유연적 이용과 변형근로시간제가 합법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정상적인 법적 최대 일당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정하고, 기업 사정에 따라 주당 30시간에서 36시간의 범위 내에서 기업별 공장협약을 맺게 되었다.

단, 예전처럼 기업 내 노동자의 일부분(13-18% 범위 내)에 한하여 주당 40시간까지의 노동이 허락된다. 따라서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에 노동하던 정규노동보다는 날마다 노동시간이 들쑥날쑥한 불규칙적 노동시간의 비중이 합법화되어 버렸다. 개별기업은 사정에 따라 노동시간을 1년 단위 내에서 마음대로 조정·배분하며, 일거리가 많아지면 노동시간을 늘리고, 일거리가 적어지면 단축을 실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원칙적으로 한 기업내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일괄 단축되면 임금보전은 없는 대신 앞으로 2년간 해고는 않기로 합의했다. 고용보장을 받는 대신 노동시간 단축분만큼의 임금이 삭감된 것이다. 직업훈련생은 3년간의 직업훈련이 끝나면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일자리가 보장되나, 기업사정에 따라 6개월 이상의 단기고용을 가능하게 했다.

즉, 작업태도에 따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갱신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독일에서 이 협약의 결과는 산별협약의 구속력을 파괴했고, 명목상 35시간제이나 실질적으로 변형근로시간제와 임금삭감이 허용된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주당 35시간 합의가 20인 미만 소규모 기업의 경우 2002년부터 적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2년 유예기간 동안 일어나는 일이 무엇일까?
자본측은 가능한 한 사업체를 20인 미만으로 분산시키고 있을 뿐이다. 또한,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는 수준에서 노동시간단축의 속도를 조절하고, 완급을 조절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사실상 법정노동시간 단축은 총노동시간의 단축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전제로서 실질임금의 보전과 초과노동시간에 대한 규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1997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규정되어 있는 초과 노동시간은 하루 12시간, 일주일 56시간의 총 노동시간 상한선으로 되어 있다. 수치상 본다면, 연간 최고 624시간(12*52주)의 초과노동을 할 수 있다. 이 초과노동시간이 폐지되지 않으면 노동시간단축은 아무런 실효성을 가질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기본급 비중이 낮아 연장근로를 통해 보충하지 못하면 실질적인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다. 이 상황에서 기본급 인상 투쟁 역시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투쟁인 것이다. 만약 위의 단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실질임금의 보전을 위해 남는 시간에 또다른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된다.

그 결과는 노동인구의 상대적 과잉팽창으로 나타날 것이며,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 부족현상을 심화시키고 다시 임금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력 비용의 축소를 통해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하고자 도래한 경제위기를 통해 노동권에 대한 총체적인 약탈을 수행한다. 한국은 물론 국제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노동권에 대한 대공세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본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통해 총노동시간 관리와 노동시장을 분할하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하의 노동시간 단축은 첫째, 총노동시간의 단축이라기보다는 변형시간 근로제로 드러나고 둘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하는 노동력 분할관리정책의 일환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하에서 특히, 노동진영의 수세기 하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변질된 의미인 것이다.


<b>구조조정 반대투쟁으로서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점</b>

IMF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의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조조정은 첫째, 과잉생산시설의 축소와 정리를 목표로 이루어지는 기업퇴출 또는 공장폐쇄 둘째, 분사, 분할, 민영화, 매각 등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리해고 셋째, 사업장 내에서 노동비용 절감을 목표로 이루어지는 구조조정으로 나타났다. 기업퇴출의 경우 관련된 노동자 전체가 곧바로 해고상태에 직면하게 되고, 분사와 민영화의 경우에는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되거나,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은 단순한 정리해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자본은 노동권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를 법제화하는데 성공하여 구조조정과 노동법 개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해 나갔다. 또한, 노동분할전략을 통해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노동자의 이해를 서로 분열시켰으며 업종간 노동자들의 이해를 분할시켜 나갔다. 그 결과 동일노동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정리해고 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정규직의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이 상황에서 노동진영에서는 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의 일환으로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또는 '노동조건 개악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슬로건이 제시되었다. 이 슬로건은 임금삭감 없고 노동조건의 개악없이 단축된 노동시간을 통해 나누어진 일자리로 다른 사람이 노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의미이다.

비록 슬로건이 그 자체로 선한 의도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이 요구는 현실에서 굴절되어 나갔다. 노동시간단축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노동조건 개악없는 노동시간단축->그리고 주5일 근무제로 슬그머니 전화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임금삭감 없는'에 노동진영의 투쟁의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에 중점을 두었다. 이 때문에 단위사업장에서 정리해고 분쇄와 실질임금 보전을 위한 투쟁이 동반되지 않았고, 민주노총의 전국적 대응이 형성되지 못하면서 지속적인 양보교섭을 허용하였다. 결과적으로 '임금삭감 없는'이라는 조건은 사실상 수식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노동법 개정논의의 주도력은 자본과 정권에게 넘어갔고, 그에 따라 민주노총의 요구도 끌려가는 양상이었다. '임금삭감 없는' 에서 '노동조건 개악없는'으로의 수정은 이 역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며, 노동시간단축에서 주5일노동제로의 선회 역시 그 본래의 의미조차 후퇴한 것으로, 법정노동시간단축을 토요일 휴무제로 대체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게다가 2000년 들어서는 이러한 요구마저 제도개선 투쟁으로 제한되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술로서 노동시간단축투쟁은 정리해고제의 대안이 아닌 정리해고제의 변형이며,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체하는 또 다른 효과를 방조하는 길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구조조정의 목표가 직접적으로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비용의 절감에 맞춰져 있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활용하여 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을 압박해 가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오히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투쟁의 전선을 교란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자본의 노동분할전략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전술이 되지 못했다. 자본과 정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한 정리해고자 명단을 먼저 통보하고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에서 비정규직의 정리해고를 수용하도록 강제해 왔다.

1998년 현대자동차로부터 2001년 한국통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진행된 구조조정의 과정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가 갈리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미 구조조정이 용인된 상황하에서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나아갔던 노동진영의 대응은 노동시간 단축이 '당위적'으로 전계급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투쟁목표가 하락되는 과정을 통해서 정규직 중심의, 아니 정규직 중에서도 일부분의 일자리 보전투쟁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전술은 구조조정 분쇄와 정리해고제에 맞서 노동진영의 단결을 이루는 것이 아닌, 자본에게 구걸하고 자본의 노동분할전략에 활용당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노동시간단축 투쟁은 노동시장 구조조정과 유연화와 동전의 양면에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인식되어야 하며, 이 경향은 이미 현실 정세가 말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시간단축 투쟁이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적 투쟁으로 인식되는 순간, 구조조정을 용인하고 구조조정의 순조로운 관철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에 동조하고, 유연화를 위한 제 조치를 허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노동시간단축 투쟁이 가지는 대안적·전략적 측면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b>노동시간단축, 노동계급의 전술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b>

현재 노동시간단축은 한국사회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 당면한 실업 해소를 위한 '정세적'·'전술적'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노동시간단축 투쟁이 노동자계급의 진전에 가치를 가지는 슬로건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간의 세력관계를 혁명적으로 뒤바꾸기 위한 계획 속에서 제출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노동시간 단축은 성급하게, 혹은 조급하게 대안으로 제출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합의구조를 통해 논의할 성질의 것도 아닌 것이다. 노동시간단축은 다분히 정치적이자, 계급적 슬로건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노동계급에게 8시간 노동제 쟁취가 가져다 주었던 역사적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의 경우, 노동시간단축 투쟁이 급격히 전술적 슬로건으로, 당면 목표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다분히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다. 더구나 개별사업장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 수준의 투쟁, 전국적 수준의 전술로 자리잡혀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앞서도 제기했듯이 현재와 같은 구조조정 국면에서 '대안적' 투쟁으로서의 노동시간단축 투쟁은 오히려 노동시장 유연화를 허용하고 정착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즉, 자본의 입장에서 주 40시간으로의 노동시간단축이 문제가 아니라 총노동시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노동시장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시간 단축 슬로건은 자본의 협상도구로 전락한 슬로건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만약이라도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아주 획기적인 노동시간단축이 노동계급의 공세적 투쟁과정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생산의 패턴, 노동자 삶의 패턴을 전반적으로 변화시켜내겠다는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할 주제이다. 자본축적의 변화, 과잉생산-과잉축적의 상황에서 이 위기를 노동자적 관점에서 해소할 수 있는 인간생활의 사이클, 노동자들의 여가, 노동시간과 노동환경의 총체적 재구성 등과 관련한 장기적 고민 속에서 제출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의 의도가 아닌 노동의 의미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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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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