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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3.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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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의약분업론

김현수 | 노동자의힘 보건복지기획단
<b>'의약분업의 결론은 보험료 인상'이라는 논리</b>

의사들이 초유의 폐파업 투쟁을 정리하고 난 뒤에도 의약분업의 논쟁은 여전히 지속되는 듯하다. 물론, 의사와 약사간의 분업제도를 둘러싼 1차 논쟁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보험재정 위기와 관련된 것이 2차 논쟁의 성격이고 보면, 의약분업 논쟁 그 자체가 아직도 재현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 실시과정에서 정부가 의료계에 막대한 수준의 수가 인상을 약속하고 그 수가 수준을 감당할 재원을 민중의 호주머니에서 털어내려고만 하고 있으니, 그 원죄는 의약분업의 실시 그 자체가 책임지고 있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보험료 인상이 의약분업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보수우익 일간지 조선일보 1월 27일자 사회면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수가인상으로 과잉진료 많아'라는 제목 아래 의약분업의 실시 이후에 주사제의 오남용과 오리지널 의약품의 과잉투여가 크게 증가하여 의약분업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신문 2월 13일자 사회면에서는 '의약분업 돈 더 든다'라는 단정적인 제목과 함께, 지난 해 월 7000억원 정도의 보험지출이 의약분업이 실시된 후인 11월 이후에는 매달 1조원 이상 지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의약분업으로 인해 전체 의료보험 재정의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조선일보는 정부가 제시한 의약분업의 취지인 보험재정의 안정화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결론내린다. 의약분업으로 보험재정의 위기가 가중된다는 논리, 한번 곰곰히 되씹을 문제이다.


<b>자본주의 룰에 밀려버린 의약분업</b>

애초 정부는 의약분업 정책을 제시하면서 '의약품의 오남용 방지'라는 본질적 논리보다도, 점증하는 의료재정 위기의 해결책이라는 차원에서 정책수립을 시도했다. 이것이 잘못된 첫 단추였다는 사실이 이제 드러나고 있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현재에도 극심하지만) 소위 약가 마진, 리베이트, 랜딩이라는 의약품 유통 및 소비를 둘러싼 냄새나는 부패가 의료계의 심각한 문제였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정부는 500여개나 되는 군소 제약회사, 그리고 원가와 비교했을 때 수배에서 수십배에 달하는 영업비용이 고스란히 보험재정을 갉아먹는 주범이라고 몰아세웠다.

이같은 관행의 극복 없이는 의료의 '선진화'를 달성 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는 보건의료운동 진영의 고참 선배들에게서도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비슷하게 표출되어 왔다. 즉, 의약분업이 전근대적 의약품 유통과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동시에 보험재정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무기일 수 있음을 공론화 해왔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무지몽매한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하여 투명한 병원경영과 소비자 주권이라는 논리로 의약분업이 만들어 줄 '공정한 자본주의적 게임 룰'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의약분업의 애초목표인 의약품 오남용과 정상적 진료 및 투약이라는 문제의식은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에 밀려 '실체없는 명분'이 되어버렸다. 최근 보험재정 위기가 더욱 심화되자 조선일보가 읽어낸 대로 의약분업은 실패한 정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정책 취지를 밝힌 정부나, 개혁주의 보건운동가들, 그리고 몽매한 시민단체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의약분업론은 조선일보식 진단과 평가에 의거하여 실패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b>결국 모두가 환자부담이 되어버렸다!</b>

의약분업 이전과 이후의 구체적 진료과정을 살펴보자. 여기서 우리는 보험재정이 어떤 문제로 인해 위기로 치닫는 지 알 수 있다.

<b>▶의약분업 이전</b>

바이러스성 결막염 환자가 동네 안과진료실에 도착하면 접수비를 내고 병원에서 직접 안약 1개와 진통제 3일 분을 처방받고 귀가한다. 그리고 3일 뒤에 다시 진료실을 방문하여 같은 진료를 반복한다. 또 3일이 지나면 같은 진료가 반복된다. (환자 생각에) 증상이 완화된 듯하여 진료실을 다시 방문하지 않게 되기까지 환자는 2주 정도의 진료과정에서 외래를 3-4회 방문하게 된다. 물론 잇속이 밝은 의사라면 환자가 방문하는 주기를 얼마든지 2일로 혹은 심지어 1일로 단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 바이러스성 결막염은 2주 정도의 자연치유과정을 거치면 대부분 해결되지만, 합병증으로 세균감염이 된다든지 등의 증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1주일 정도 후에 외래를 방문하면 된다. 즉 교과서적 진료대로라면 2주 동안 2번 정도의 외래 진료를 받으면 해결되는 질환이다. 그런데 2주 동안 4-6회를 방문하여 진료를 받게 되는 소위 과잉진료가 엄연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b.▶의약분업 이후</b>

바이러스성 결막염 환자가 동네 안과진료실을 방문하면 접수비를 내고 처방전을 발급받는다. 물론 우리는, 의약분업과정을 통하여 처방전 비용이 신설된 것을 잘 알고 있다. 의사가 2일 뒤에 다시 외래를 방문하라고 권유하기 때문에 처방전은 단지 2일간의 약품만 기재된다. 다시 환자는 약국을 방문하여 약값과 조제료(이것도 이번에 신설되었다)를 내고 2일분의 약물을 조제받은 뒤 다시 안과진료실을 찾아야 한다. 결국 의약분업 후에도 환자는 2주 동안 2번 외래방문하면 되는 질환이라도, 2일마다 방문하여 처방전 비용과 조제료를 추가로 부담한다. 접수비, 처방전 비용, 약값과 조제료는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출하는 비용총액이니 그 세세한 항목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결국 모두가 환자의 부담이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의약분업의 전후과정을 보면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는 주기가 전혀 줄지 않았다. 이것은 동네병원의 엄연한 현실이며 대부분의 질환이 동일한 코스를 밟게 된다. 그러니 일단 한사람의 환자가 세사람 혹은 네사람의 환자로 둔갑하는 비정상적인 실태가 여전히 유지되는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환자수가 늘어나니 외래는 항상 초만원이다. 즉 1시간 대기 1분 진료라는 현실은 계속된다.

그러니, 진료의 질이 나아질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의사들의 수가인상분이 포함된 진료비와 새로 신설된 처방전 비용, 조제료로 인하여 전체 비용부담은 리베이트와 랜딩, 할인으로 입었던 손실의 몇배를 되갚아주는 현실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더군다나 의사들이 의약품 그 자체로부터 이윤을 갖지 못하게 되자 외국 제약회사의 오리지널 약품을 무더기로 처방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의약품은 외국 수입약이거나,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국내 제약회사에서 제조하는 모방약품(카피 의약품)이기 때문에, 성분과 효능이 안전하게 입증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하는 게 의사들로서는 당연하다. 돈 될 일 없다면 안전하고 효과입증된 약을 처방해야 명의가 될 수 있으니까….


<b>의료행위 자체가 상품화된 현실</b>

엄청난 소요와 폐파업이라는 고통의 대가로 얻어낸 애물단지 의약분업의 문제,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가? 문제는 의료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같은 방식으로 병원에서 거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래는 의료의 독점적 성격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게 거래된다. 앞서 보았듯이 환자 진료에 있어 의사가 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 외래를 오든 1주일에 한번 외래를 오든, 그 모든 과정은 의사가 독점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즉 환자는 의료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지만 소비자의 권리를 내세울만큼 강력한 존재가 못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의료는 공공재(公共財)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순간, 그 모든 의료 공공재로서의 성격은 사라지고 자동차 세일즈맨의 영업이나 비누공장 사장의 수완과 마찬가지로 의사들에게 취급되는 것이다. 즉 의료가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의사들을 탓할 게 못 된다는 일부 지각있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이유있는 변명이다. 생선가게 주인에게 '돈 벌 생각 마라'는 식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생명론을 들이미는 것은 현상과 본질의 전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의료시장이 문제라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는다. 몽매한 시민단체는 시장을 더욱 선호하며, 개혁주의 보건의료 운동가들은 시장이 문제지만 그 시장을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김대중 정부는 시장 지상주의이기 때문에 더 강력한 시장을 형성하고자 한다. 더구나 재정위기를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하려다보니 예상치 않은(?) 반발이 거세게 나오자 각종 수를 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민간보험의 도입논란이며 최근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료저축계정(MSA)도 그 수 중 하나이다.

공보험의 재정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의료시장을 유지하려다보니 원활한 시장 거래를 위해서는 돈줄이 더 확대되어야 한단다. 그래서 강제 저축을 들어 소득의 7-8%를 탈취하려는 무지막지한 계획까지 생각해내는 것이다. 사회복지 정책가들이나 보건의료 운동가들(사실 이들은 대개 개량주의 운동가에 불과하다)의 언급처럼 우리나라는 적정한 보험료를 내고 있지 않으니 보험재정의 위기가 온다. 따라서 적정진료를 이룰 수 없었다는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진료' 이론은 그 현학적 수사가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의료서비스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의료시장을 문제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의 의지나 시민단체의 접근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본질상 하나인 것이다.


<b>의약분업을 '의약품의 분업' 자체로 보려면</b>

올 한해 동안 다시 두어번의 20-30% 대의 보험료 인상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나 더 내라고 할 지 두고 볼 일이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보험료 때문에 혁명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른다. 의약분업을 '의약품의 분업' 그 자체의 문제로 돌려볼 수 있는 유력한 길은 의료의 시장성을 제거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길이다.
그 첫번째 길은 공공의료기관이 의료를 주도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의 공공의료제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이익을 위해 진료를 제공하지 않는 병원을 말한다. 오직 환자의 질환과 환자의 진료만이 문제가 되는 병원이다. 그런 병원에서는 1주일에 한번만 진료를 받아도 되는 바이러스성 결막염 환자를 3번, 4번 오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과는 전혀 별개인 공공병원 월급쟁이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 부담만 늘리는 과잉진료를 굳이 열내서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병원의 장점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증명된 바 있다.

두번째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를 완전히 개혁하는 것이다. 주사바늘 한 개 얼마, 약품하나에 얼마, 상처소독에 얼마하는 식의 수가제도는 의사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게 하는 데 유익한 수단이 된다. 앞서 살펴본 아주 단순한 결막염환자만 봐도, 의사의 처치가 어떤 종류로 몇 개나 시행되었는지에 따라 환자 부담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하물며 온갖 처치와 처방이 이루어지는 복합 중증 질환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사기치겠다고 맘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따라서 행위별 수가제도를 근본적으로 폐지하고 주치의 제도에 근거한 인두제 방식의 수가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세번째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필수의약품의 유통과 소비과정을 공공화하는 것이다.

약에서 이윤이 많이 생긴다는 김대중 정부의 생명공학론의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생명을 담보로 의약품을 생산하고 유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자본의 논리이다. 약가의 이윤을 완전히 없애고 생산과 직접적인 소비 그리고 연구과정에만 의약품이 위치지워져야 한다.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문제만 봐도 의약품의 공공화는 이미 전세계 민중들의 공통요구가 되고 있다.


<b>뒤집을 것은 뒤집자</b>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김대중 정부는 바라지 않으며 이런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장의 해체를 위한 도전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민중의 호주머니를 털만큼 털어내는 방식 외에 그의 대안은 없다.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든, 의료저축계정을 도입하든, 보험료를 100%를 인상하든 시장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보건의료 개혁주의자들이나 시민단체 역시 돈을 더 내야(적정부담) 적정한 진료(적정진료)를 보장받고 의사도 살만할 것(적정급여)이라고 우길 것이다. 이제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누구인가?

의료의 정당한 주인은 민중이다. 뒤집을 것은 뒤집을 줄 아는 자만이 주인 행세를 할 수 있게 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의약분업론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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