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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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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립경제를 비판한다

홍석만 | 편집실장
<b>민족자립경제를 비판하는 이유</b>

총선이나 대선을 전후하여 다소 정책적 수준에서 강령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제출된 바가 있으나,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강령적인 탐구나 논쟁이 쇠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IMF 경제위기를 전후로 하여 한국경제에 대한 분석과 대안적인 수준에서 논쟁이 국소적으로 진행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함께 이에 대항한 전략적 침로의 부재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투쟁을 확대 전화시켜 내는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박세길 전국연합 편집위원장의 <강령탐구 Ⅲ 민족자립경제, 어떻게 가능한가>(민, 2001. 2월호, 전국연합)는 강령적인 측면에서 경제문제에 대한 접근을 다루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강령에 대한 운동진영의 고민과 논쟁이 부재한 가운데, 몇차례 계속된 박세길 위원장의 강령탐구에 관한 글들은 내용을 떠나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박세길씨도 지적하듯이 강령에 대한 탐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인식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며, 내용적인 측면에서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반대한다고 해서 옛날 방식으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닌 것은 매우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가 뚜렷하지 않다"(윗글 15쪽, 이하 같은 글)는 주장에는 십분 공감한다. 그러나 그 결론이 민족자립경제, 특히나 박세길씨가 제시하는 것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도 또한 필자의 소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분석하고 비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단순히 소감이 나빠서라거나 필자의 생각과는 달라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이유는 현실에서 노동자 민중이 투쟁하고 전취해야 할 방향에 대한 혼란을 낳게 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편 박세길씨의 글은 자주민주정부의 수립을 전제로 한, 최소한 그 수립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민족자립경제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민족자립경제론과 자주적 민주정부론은 일종의 이행기 강령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리를 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자주적 민주정부론과 떼어내서 민족자립경제론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와 비판을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시간과 지면의 한계상 많은 부분은 추후로 미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민족자립경제'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b>고도성장의 동인을 강조하는 이유</b>

<font color="##003366">"만약 미국, 유럽의 자본과 동아시아의 값싼 노동력의 결합이 동아시아 경제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라고 한다면 동일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경우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유별나게 동아시아만 고도성장을 구가한 이유는 무엇인가."(윗글 19쪽) </font>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의 저자이기도 한 박세길씨의 1970-80년대 한국과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대한 그의 독특한 분석은 이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의 표현대로 동아시아는 물론, 한국에서도 군사정권의 개발독재의 방식으로 한국경제의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경제는 1961-80년간 연평균 8.5%의 경제성장을 기록하여 국민총생산은 약 4배로 커졌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1962년 87달러에서 1981년에는 791달러로 거의 열배가 늘어났다. 수출은 4천만달러에서 약 210억달러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한국은 대만과 함께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러한 공업화의 과정이 굴욕적인 한일수교와 돈벌이 용병으로 베트남전 참전을 통한 외자 도입과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시장을 무기로 한 개발독재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주지했던 바이다. 그러나, 박세길씨는 그것이 고도성장의 본질적 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font color="##003366">"한국경제의 장기간에 걸친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높은 저축률과 높은 교육열로 드러난 민중의 희생과 역할이었다. 외국자본과 저임금 노동력의 결합은 일정 단계에서 성장을 부추기는 기능을 수행했는지 모르지만 전 과정을 관통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다."(22쪽) </font>

바로 이러한 민중의 역할 덕분에 외국자본과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서 독자적인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고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추구하면서도 세계시장을 자신의 경제성장을 위한 무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지적과 같이 한국이 대만과 함께 신흥공업국의 선두에 서게 된 요인은 무엇보다도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노동이었다. 당시 노동자 민중이 처한 노동조건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서 알 수 있듯이 열악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마찌꼬바의 그 좁은 방에서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의 초과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면서 흘렸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당시의 경제기적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 과정을 관통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교육열과 저축율은 이러한 참혹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지, 그 자체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표현되거나 민족적 우수성으로 미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박세길씨는 중남미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동아시아의 고도성장의 원인을 그렇게 찾고 있다. 박세길씨의 주장에 따르면 중남미국가의 저발전은 중남미의 노동자들이 동아시아보다 피와 땀을 덜 흘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는 셈이 되는데, 이 또한 사실과 다를 뿐더러 올바른 관점이라 할 수도 없는 주장이다. 중남미와는 달리 동아시아 지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무엇보다도 당시 미 제국주의의 중남미와는 다른, 동북아시아의 차별적인 전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 제국주의는 라틴아메리카와는 다른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발전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중국혁명이 일어나고 동아시아 지역에 2차대전 후 더 이상 원조를 제공하기가 어렵게 되자 일본을 재건하고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본재건의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에 미국의 초국적 자본들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오히려 일본의 제품을 미국이 구매하는 역개방 정책을 통해 일본의 재건을 돕는다. 일본은 이후 생산의 후배지를 요청하게 되고 남한과 대만이 이에 통합되면서 1960년대 일본의 '경제기적'과 1970년대 남한-대만의 '경제기적'이 가능하게 된다. 결국 박세길씨는 제국주의 자본의 성격과 전략에 따라 종속의 요소들간의 비중이,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우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가 각각 차별성을 띠고 나타난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바로 보아야 할 것은 한국과 동아시아의 노동자들이 왜 그렇게 오랜 동안 최악의 노동조건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했던가 하는 점이다.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전쟁을 겪으면서 노동과 자본간의 계급적 역학관계가 자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던 사실이 있다. 당시까지 일본을 제외한다면 노동운동 또한 성장하지 못했고, 특히나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의 강권통치로 인해 1987년 이전까지 (민주적)노동운동의 세력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다. 그에 따라 노동자 민중의 초과착취는 어느 지역보다도 높았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의 주요인을 민중들의 피와 땀으로 미화하는 것은 당시 노동자 민중이 흘린 피에 대한 사후적 보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호도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박세길씨는 왜 이런 주장을 했던 것인가? 그 이유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b>고도성장 = '종속의 약화'?</b>

박세길씨는 고도성장의 과정이 바로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종속으로부터 동아시아와 한국경제가 자립화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font color="##003366">"동아시아는 바로 이러한 민중의 역할 덕분에 경제건설 초기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면서 독자적인 자본과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 아울러 수출주도형 공업화를추진하면서도 세계시장을 자신의 경제성장을 위한 무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22쪽)</font>

그의 논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종속의 본질은 수출의 부등가교환과 그에 따른 초과잉여의 제국주의국가로의 해외유출에 있다고 규정한다. 한국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잉여가치의 유출량을 분석하면서 잉여가치의 80%정도가 제국주의 국가로 빠져나갔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그에 따라 내수가 확대되면서 잉여가치의 유출량이 감소하게 된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잉여수탈과정도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기술사용료를 증가시키고 외국자사제품의 직접판매를 확대시키는 것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에 몰두, 자체생산을 확대하여 산업을 발전시키고 고용창출을 도모해왔다. 수출에 있어서도 수출시장을 다변화시키고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는 등 부등가교환으로 인한 잉여유출의 정도를 완화시켜왔다. 그 결과,

<font color="##003366">"한국경제가 비록 초기에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 시장에 상당히 의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름대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경제가 자립경제로 가는 데 있어 상당히 전망을 밝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같은 책, 26쪽)</font>

즉, 이전까지 상품시장에 있어서 수출을 통한 초과잉여의 수탈이 1980년 후반에 들어서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수출시장 다변화, 그리고 내수확대를 통해 초과잉여의 수탈의 완화(종속의 약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박세길씨의 이러한 주장은 이미 오래 전에 논쟁을 통해 파탄난 '종속약화론'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기술개발을 통한 기술종속이 약화되었다는 주장을 먼저 살펴보자. 기술종속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극히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1950년대 기술원조나 자본재 도입을 통한 비시장형 기술이전이 기술도입의 주된 형태였고 1960년대 이후에 이미 기술도입계약 및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한 기술도입이 활발하게 추진된다. 그러나, 기술도입의 경우 기술수명의 주기상 성숙기나 쇠퇴기에 있는 기술인 경우가 많았고, 최신기술이라고 하더라도 핵심기술의 통제를 통해 종속은 여전히 완화되지 않았다. 또한, 1980년대 들어 자체 기술개발이 실제로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개발되는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상품시장 (박세길씨가 예로 든 자동차시장에 있어서도)의 국제적 분업체계 속에서 하위에 속하는 기술·상품 개발에 치우쳐 있고 그 대표적인 예라 바로 반도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몇몇 산업 내부에서 자체 기술개발에 따른 산업의 발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기술종속은 오히려 심화되었지, 약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사용료는 1980년대 이후 폭증하였고 하락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수출시장의 다변화 역시, 기술과 자본재의 수입이 미국과 일본에 종속되어 있어 시장의 다변화를 통해 부등가교환의 경향은 약화되지도 않게 된다. 수출이 증가할수록 그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잉여수탈 구조는 수출대상을 바꾼다고 큰 변화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 임금상승에 따른 내수의 확대 역시 이렇게 내재해 있는 생산관계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종속 약화의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내수시장을 확대하고 공업화를 통한 생산력의 기초를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수입의존도의 일면적 저하를 가져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세길씨의 주장이 갖는 근본문제는 상업적, 기술적 종속이 약화되지도 않았지만 설사 초과이윤량의 수탈이 감소하고 기술종속이 상당히 감소하더라도 그 자체가 종속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제국주의적 종속의 문제는 국민적 (재)생산력의 종속의 문제이다. 때문에 국내에서 일시적인 이윤축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종속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는 초과잉여의 수탈율이 80%라서 80% 종속되었고 오늘은 60%니까 60%종속되었다고 할 수 없듯이 제국주의 종속을 단순히 잉여가치의 수탈율의 증감으로 표시할 수는 없다.

결국, 제국주의 종속은 국민적 생산력의 지배-종속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국제적인 생산관계와의 통일적인 사고 속에서 파악해야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식민지초과이윤의 실현이 국제적 분업체계와 국제관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세길씨의 주장은 이러한 종속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업적, 기술적 종속의 약화(사실이 그렇지도 않지만)를 그대로 종속의 약화로 대체시켜 그것을 자립화의 경향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b>'독점의 강화'에 대한 의도적 무시</b>

박세길씨는 한국자본주의 발전에서 '종속'의 문제를 1997년 IMF이전까지 '종속의 약화과정'으로 왜곡하는 한편 국내자본의 '독점화'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개발독재의 경제성장 과정이 그 자체로 한국내에서 (재벌중심의) 독점자본의 형성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재벌육성정책의 결과, 1960-70년대의 종속적 공업화를 통해 1970년대 후반에 한국적 독점자본인 재벌에 의한 국민경제의 지배가 확립되었다. 국민경제 전체 속에서 20대 재벌의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73년 7.1%에서 1978년 14%로, 46대 재벌의 부가가치의 비중은 1973년 9.8%에서 1981년 24.0%로 상승했다. 제조업에서 46대 재벌의 부가가치 비중은 1973년 31.8%에서 1978년 43.0%로 상승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도성장의 과정이 국내자본의 독점적 축적구조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박세길씨는 이를 자립화의 경향으로 대체시키고 '초기의 외국자본과 기술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한 과정으로 고찰하고 있다. 특허의 90%를 독점재벌이 소유하며, 자본의 집적은 물론, 생산의 절대다수가 독점자본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는 현실을 두고 이를 자립화의 기초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속의 약화라는 문제는 차치해두더라도, 박세길씨의 주장에는 제국주의의 초과수탈과정에서 필연화되는 독점의 강화경향을 무시함으로써 국내독점자본의 형성, 특히 재벌체제의 형성과정에 대한 곡해를 낳고 있다.

그 결과 앞에서 주장하는 바, 노동력의 초과착취에 따른 고도성장을 민중의 힘으로 미화하는 한편, 재벌지배구조의 형성을 사회적 불평등한 요소 정도로 보고 일본이나 대만식의 '중소기업(자본)의 육성을 통한 극복'이라는 대안에까지 이르게 된다.
한편, 1988년 3저호황 국면과 이로부터 출발하는 한국경제의 성장에 대해 박세길씨는 내수 확대와 독자적인 상품 수출시장의 개발을 통한 잉여가치의 국내축적(= 자립화의 강화)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일면적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불황에 허덕이던 미국과 서독은 물론 일본경제와도 다르게, 남한이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3저호황이라는 일시적인 국면에서 오히려 재벌체제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이 순환적 위기를 극복해 나갔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구조는 자본축적을 더 확대시켜 과잉축적에 따른 이윤율의 지속적인 하락 양상을 가져왔고 결국 1997년의 위기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박세길씨가 말하는 외국자본과 기술, 시장을 나름대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냈다는 것은 독점의 강화와 이를 통한 노동력 초과착취의 강화를 통해 소화해낸 것이다. 그 결과는 재벌체제의 형성과 종속의 심화인 것이지, 이것을 자립화로 보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b>한국경제의 위기에 대한 인식의 오류</b>

'경제성장 = 종속의 약화 = 자립화'에까지 도달한 박세길씨는 급기야 IMF외환위기를 이러한 자립화의 기세를 꺾기 위한 제국주의의 책략이라고 주장한다. 즉, 한국경제가 잘 나가고 자립화의 기운이 강해지자, 제국주의 세력의 의도된 작전에 의해 1997년 외환위기가 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font color="##003366">"제국주의 독점자본은 한국경제가 자신의 수중에서 벗어나 자립경제로 발전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도리어 살이 잘 오른 먹이감을 사냥하듯이 한국경제를 한손에 노획하기 위한 작전마련에 골몰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는 바로 그러한 작전이 빚어낸 결과였다. 일각에서는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의 내재적 발전 과정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고 보고 있으나 이는 사실관계를 극도로 왜곡하는 것이다. 외환위기는 미국의 월가를 배경으로 하는 초국적금융자본에 의해 치밀하게 의도되고 연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26-27쪽)</font>

비록 외환위기의 결과로 인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더욱 공세적인 활동과 공기업 민영화, 그리고 노동불안정화로 대표되는 민중생존권의 위협 등,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인식지반을 공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위기에 대한 원인진단에 있어서 보이는 차이로 인해 그 대응 역시 사뭇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위기의 폭발은 외환위기와 같은 환율과 국제수지의 문제가 직접적 매개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음모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경제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민중의 대응전략을 세우는 데에도 한계로 작용한다. 어찌되었건, IMF의 조건을 수용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 역시 김대중 정부와 국내 독점자본들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는 무엇보다 국제수지의 만성적 적자와 자본도입에 의한 적자 보전, 그에 따른 대외채무의 누적에서 표현된다. 따라서 한국의 국제수지의 위기는 경기변동에 따른 경과적인 성격이라든가 국제경쟁력의 경쟁적 추월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극복되는 성격이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이다. 선진자본주의국가들과 달리, 한국경제에서는 해외부문(국제수지 부문)이 기본적으로 국민경제의 보완적인 부문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지배하고 국민경제가 그에 의존하여 발전해 왔다. 여기서 대외종속적인 재생산구조는 만성적인 적자구조를 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위기는 따라서 국제수지를 독립적으로 파악할 성질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성장메카니즘과 직접 연관하여 분석해야 한다. 이 때문에, IMF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비롯된 외환위기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공격이라는 성격을 지니더라도 단순한 음모가 아니라 신식민지의 종속적 축적이 가져온 필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바대로 재벌중심의 수출지향적 공업화의 결과, 그 성장의 대가로서 대외적인 종속의 강화와 비독점기업의 희생 및 노동자계급의 기본적 권리의 억압 및 노동강도의 강화 위에서만 작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외적으로 국제수지의 만성적 적자에서 표현되며 대내적으로 노자간의 계급대립의 첨예화와 비독점기업의 수탈을 가져온다. 이렇게 한국경제의 고성장은 세계경제의 변화하는 특수한 환경에 규정되며, 고성장 속에서도 대외적인 국제수지의 위기와 대내적인 노동과 자본간의 긴장 그리고 중소기업의 위기라는 위기적 요소를 항상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한국경제 위기는 순환적인 위기도, 장기적인 성장율의 위기도 아니다. 그것은 높은 성장율을 시현하면서도 신식민지-종속적 축적이 가져온 국민경제의 구조적인 위기이다.


<b>경제주권 수호와 단일한 민족경제</b>

앞서의 비판은 민족적 자립경제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역사적 동인과 현재 조건에 대한 사전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하의 내용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전제로 민족자립경제의 수립의 조건과 그 방향을 다루도록 한다.
박세길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외적인 경제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부당한 협정의 파기, 외국자본에 대한 선별적 대응, 투기적 국제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국가기간산업을 공기업화하고, 셋째, 개방농정을 지양하고 농업부양책을 통한 농가부채 해결 및 농민의 생존권 보장과 농업에서 국가책임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비록 이 내용이 민족자립경제가 갖는 핵심적 내용의 전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견 보기에 타당한 내용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단일한 민족경제의 형성을 통해서 구성되는 맥락을 띠고 있다.

박세길씨가 말하는 민족경제론의 중심에는 사실상 '단일 민족경제의 형성'이라는 문제의식이 있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들은 이북경제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가득 차 있다. 박세길씨의 논지를 전체적으로 요약해 보면, 이남에서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대외적 경제주권의 확립과 국가기간산업의 공기업화 및 농업부양책을 쓰면서 경제주권을 지키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 이북의 첨단의 과학기술, 풍부한 에너지, 발전된 식량기술을 이남의 마케팅능력과 결합하는 것이 성공적인 남북경협 즉, 단일한 민족경제의 수립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font color="##003366">"앞서 말했듯이 이북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능력이다. 반면 이북은 세계시장에 진출하는데 필요한 마케팅 능력, 즉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데서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 이러한 약점은 바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타개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이 방면에서 도가 튼 자본주의 친구들이 잘해낼 것이다."(41쪽)</font>

필자는 솔직히 전국연합의 노선과 내용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어도, 적어도 박세길 편집위원장을 필두로 전국연합 간부들의 변혁에 대한 열정만큼은 크게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정세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시민운동에 대한 태도와 전선 형성에 대한 입장, 대안적인 권력의 상에 대해서 필자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을 경청한 것은 그들의 열정과 진지함이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그 입장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단일한 민족경제의 수립과 관련해서 박세길씨는 열정과 자신감을 넘어서 거의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자립경제에 필수적인 식량, 에너지, 기술문제에 대한 이북의 경제능력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식량자급에 있어서 슈퍼옥수수를 대안으로 삼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이북의 서해안 유전개발에 대한 기대는 희망사항치고는 지나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font color="##003366">""이미 이북에서는 서해안 유전이 개발되면 남측에 원유 공급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온 터라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하겠다.(41쪽)"</font>

는 말까지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북의 정확한 경제현실에 대해서는 필자의 지식과 정보의 부족으로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북은 제국주의 세력의 경제봉쇄와 자연재해가 겹쳐 상당기간 동안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려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경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이래 1998년까지 9년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1995∼1997년을 '고난의 행군시대', 1998년을 '사회주의 강행군의 해'라고 북한 스스로 명명한 것을 보아도, 199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의 경제난이 최악의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99년 들어서 북한경제는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가목표를 설정하고, 실천적 대중운동으로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채택하는 등 본격적인 경제회복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1999년을 '강성대국 건설에로 전진하는 전환의 해, 총진군의 해'(신년 공동사설)로 규정함으로써 경제회복에 다소 자신감을 내비치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을 '천리마 대고조의 불길 속에 자랑찬 승리의 해'(신년 공동사설)로 규정하는 등 경제운영에 대하여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은 경제회복을 위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과 경의선의 복구와 서해안공단 건설 등에 합의하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다시피, 경제회생에 요구되는 자본을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비록 기존의 '민족자립경제 건설전략'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선행부문 우선투자론과 '남한자본(및 외국자본)의 대대적인 도입에 기초한 경제발전전략'의 채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논점들이 남아있다. 또한, 김정일위원장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북이 중국식 발전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들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식 경제발전에 대한 평가 또한 상당히 다양한 수준에서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지식인들 가운데 이미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입장까지 제출되는 것만을 보더라도 WTO가입과 시장경제의 도입에 대한 평가는 그만큼 비판적이다.

게다가 북은 광범한 영토와 인구, 부존자원 등을 갖고 있는 중국과는 사뭇 그 처지마저 달라서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북의 이러한 전략들은 비록 제국주의의 경제봉쇄로 인한 '피해자적 입장'에서 진행되는 발전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원칙적인 수준에서만 놓고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북의 입장과 처지를 십분 이해한다 치더라도 이와 같은 전략은 그 자체로 북의 '민족자립경제'와는 상당히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할 것이다.


<b>민족자립경제,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가</b>

또한, 이러한 민족자립경제가 과연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록 박세길씨의 민족경제론이 자주적 민주정부의 건설을 전제로 하더라도 말이다. 과거 평화적 정권교체를 민주정부로 사고하고 이에 기반한 연방제 통일을 주장했던 오류 즉,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김대중정권에 기대했던 오류를 정정하고 민족민주전선에 입각한 자주적 민주정부의 건설을 연방통일의 전제로서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점진적 변혁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한다는 데서 여전히 현실적인 한계를 노정하고 있고, 그러한 통일의 결과가 결코 민중적인 통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는 또 다른 비판의 지점이 존재한다.

민족경제론에서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자주적 민주정부가 국내의 독점자본을 해체하지 못하고 제국주의의 토대를 일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박세길씨의 남북 역할분담식의 경제론은 일종의 합작경제론으로서 국가연합의 물적인 토대를 갖고 있는 경제통합의 형태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사회통합 없는 경제통합은 진정한 통일이 아닐 뿐더러, 분단을 고착화하고 제국주의의 지배와 예속을 영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과연 그가 진정한 민중적 평화통일을 바라는지 아니면, 평화공존을 전제하고 있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b>대동아공영권을 방불케 하는 동북아경제구상</b>

어찌되었건 박세길씨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통한 단일민족경제의 형성으로 제국주의적 지배와 종속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경제 유지와 국제적 생존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사회주의 진영은 물론 제3세계 반동맹 진영까지 몰락한 현재의 상황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제국주의의 질서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고립이 불가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세길씨가 우려하고 고민하는 지점은 매우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고민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귀결된다.

<font color="##003366">"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 경영'을 추구하는 동북아경제권은 그 유력한 해답이 될 것이다."(42쪽)</font>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 경영. 박세길씨는 남북합작경제론에 이어서 동북아지역의 합작경제론으로 확장하고 있다. 즉, 탈냉전과 한반도 평화무드의 성숙으로 동북아 지역의 해빙이 시작되고 있고, 러시아의 기초과학기술과 지하자원, 중국의 광활한 시장과 노동력, 일본의 선진기술과 자본, 남북한의 숙련된 생산기술 등 각국의 생산요소간 결합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이익이 매우 크기 때문에 동북아경제권의 형성가능성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font color="##003366">"이들 유럽 및 북미지역 경제블럭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의 독자적 개발이 절실히 요청된다."(44쪽)</font>

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APEC과 NAFTA에 대항한 아시아블록으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북아경제권의 형성전망을 보면서 두만강유역의 개발을 통해 한반도가 주도해서 나가자는 것이다.
그의 바램대로 동북아경제권 구상은 다양한 가능성이 이미 모색, 검토되어 왔다. 국토연구원은 미국의 동서문화센터와 공동으로 '동북아경제와 한반도 구조개편 전략(1999년2월16일)'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변화하는 동북아의 정치·경제적 상황아래서의 한반도 역할과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경영전략 탐색하고 21세기 한반도의 지정학적전략 수립을 위한 연구를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 중, 일 정부의 회담을 통해 동북아경제권의 형성에 대한 논의가 가사화되고 있으며, 각국 자본가들의 연쇄회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 뿐인가? 일본 역시 동북아 경제권 구상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케이단렌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전경련과 중국의 대외경제단체연합회와 환란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민간차원의 협력문제를 협의하고 있고, 일본정계의 신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전 외무장관 고노 요헤이도 동북아경제통합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박세길 위원장의 전제는 한국에서 최소한 자주적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남북한간의 합작경제가 활성화된 상황을 전제로 하여, 동북아 경제권에 대한 한반도적 구상을 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각국정부의 움직임과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동북아경제에 대한 구상은 일본 자본주의에 의해서 주도되거나 자본주의화된 중국의 중화경제권에 복속되는 것일 뿐, 종국적으로 세계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다시 편입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세계화, 금융화는 물론 세계경제를 지역적 블록으로 조직하여 각국 경제정책(=경제주권)을 파괴하고 노동권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지역 경제블록이 조직되고 있다. 이 속에서 동북아경제권이 국가간 호혜롭고 평등한 경제권역이 될 것이라는 발상은 적어도 제국주의 질서의 더욱 반동적인 재편을 동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주체의 역량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제국주의적 종속으로부터 한치도 자유로워지지 않을 것이다.


<b>신자유주의 세계화 속, 우리의 과제</b>

앞서 살펴본 바대로, 박세길씨의 민족경제론은 제국주의적 종속에 대한 오해, 독점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로 인해 한국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왜곡된 평가에 기반해 있다. 또한, 이북경제에 대한 근거없는 과도한 의존과 평화공존적인 단일경제수립은 민중적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기보다는 국가연합식의 남북합작경제론에 기초하고 있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무지로 인해, 동북아경제권의 형성을 단순히 생산요소간의 결합으로 사고하는 편향을 보일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적 신질서로의 편입이라는 전략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편, 박세길씨는 많은 부분에서 상당한 자신감으로 민족경제의 수립을 호소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에 대한 패배주의적 인식에 기반해서 방어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그 입장을 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박세길씨의 글은 지금 경제현실과 투쟁과제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그 대안에 대해서는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분석에 기반한 접근이라기보다는 상당히 주관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을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노동자 민중이 탐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많은 요소들에 기반을 오히려 사장시켜 나가고 있다.
무릇 경제의 영역에서 변혁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전략과 강령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랜 시간동안 뒤편에 두고 살아 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뒤늦은 감이 있다. 독점의 해체와 생산의 사회화, 자본의 민중적인 통제와 노동자 민주주의의 실현 그리고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국제적 동맹질서의 회복에 대한 고민들을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들인 것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의 국제적 질서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주제어
경제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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