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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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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인터뷰.hwp

"선동은 노동자의 무기다"

김미옥 선동교육가와의 만남

박준도 | 편집부장
<font color="##003366"> Q. 안녕하세요? 멀티데이타시스템 노동조합 선동교육때 뵙고 또 뵙는군요. 선동교육을 하시는 분이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할 듯 한데, 간단히 소개 좀 해주세요.</font>


A. 예... 그럼 간단히 제 경력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전남 소록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86년 서울에서 처음 공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89년 3월 나우정밀에 취직하고 나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90년 파업투쟁을 거치면서 91년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을 맡기도 하였지요. 9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97년 나우정밀 위원장이 되었답니다. 당시 나우정밀은 해태에 인수되었다가 해태가 IMF로 법정관리되었구요, 그때 나우정밀도 같이 부도가 났습니다. 97년 11월 퇴직금을 받기 위한 노동조합의 마지막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직원의 퇴직금을 받고 다음해 4월 4일 노동조합은 해산되었습니다. 나우정밀 마지막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것이지요.


<font color="##003366"> Q. 어떻게 선동교육가가 되셨나요? 혹독한 선동교육을 받았었다고 들었는데...</font>


A. 90년 조합원시절 생전 처음 경찰서에 연행되었었습니다. 그때, 처음 무언가 세상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90년 골리앗투쟁에 전노협 선봉대로 함께 참여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해 새삼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초 서노협 선동교육에 참여하면서, 처음 선동이라는 걸 접했었지요. 그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추운 겨울에 정말 혹독한 훈련이 동반되었답니다. 군대를 훨씬 능가하는 노동자의 부대가 필요했었지요. 선동가의 임무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단련되어야 했지요.

강경대 열사 투쟁때 처음으로 거리에서 선동을 했습니다. 조합원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에서 선동을 했어요. 정권에 대한 투쟁에 함께 하지 않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물러서면 참혹한 결과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죠. 집회대오를 향해 선동을 했지요. 시민들을 향해 선동했습니다. 그렇게 구호를 외치고, 투쟁의 방향을 모아냈죠. "김가투""김구호".... 그때, 조합원들이 붙여준 별칭이었답니다.

임단투때에는 공단거리에서 선동을 했었답니다. 구로에서 가리봉5거리까지 행진하면서 선동을 하기도 했지요. 그렇게 선동활동을 하였지요.
94년 민주금속(금속연맹)내에 선동교육 강사단 훈련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토론중심으로 진행되었었습니다. 이때 선동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되고 훈련되어야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지요.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필요 때마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간부들을 대상으로 선동 교육을 진행했었지요. 어떤 때는 일상적인 수련의 형태를 띄기도 했고, 파업투쟁 사업장에서의 교육훈련이기도 했었습니다.


<b>선동은 기술이 아니라 노동자의 사상입니다. </b>


<font color="##003366"> Q. 그럼 주되게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교육을 하는지요.</font>


주되게는 금속사업장에서 조직쟁의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선동교육을 하였지요. 대공장 같은 경우 간부대의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죠. 보통 2~3회에 걸쳐 진행하지만, 영창악기나 한국중공업처럼 매년 선출되는 간부대의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선동교육이 필수라고 생각해서인지 사안에만 그치지 않고, 일상적으로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안정적으로 교육을 가는 곳의 경우 그곳의 투쟁의 경험을 연계하면서 교육을 하지만, 대체적으로 해당 사업장의 투쟁경험과 간부들의 역량에 따라 내용의 수위를 조절합니다. 투쟁사업장은 곳곳의 투쟁사례들을 많이 들어가면서 교육을 합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쉽게 빨리빨리 습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상황과 장소를 떠나 노동자의 정신에 대해서만큼은 원칙을 지키고자 합니다.

정리해고에 대한,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에 대한 문제를 분명히 하고 투쟁을 했을때에야만이 노동자 전체투쟁이 될 것이다는 거죠. 비정규직 처우개선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의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설령 그곳이 한국노총사업장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진행합니다. 얼마전 서울은행에서 선동교육을 할 때에도 저는 이 원칙을 강조하였습니다. 지주회사냐 아니냐는 노동자의 투쟁의 요구를 가립니다. 3차에 걸친 구조조정과정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정리해고가 핵심이죠. 노동자의 목줄을 자름으로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이윤만큼은 줄이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하죠. 멀티데이타노동조합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벤처기업이 투쟁한다라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고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노동자들의 처우가 무엇이었는지를 제기해야 하고, 이를 중심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투쟁사업장의 경우 어떤 것이 쟁점인지 사전에 알고 갑니다. 조합원들의 상황이 무엇이고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지를 분명히 파악하고 선동교육을 나가지요.


<font color="##003366"> Q. 그래서 입모양이니, 호흡이니 하는 선동기술보다는 투쟁의 내용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시는군요. </font>


선동에 있어서 가장 핵심은 노동자의 정신입니다. 선동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정치교육을 시킴과 동시에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투쟁의 무기입니다. 투쟁의 무기를 거머쥐려고 한다면, 입모양이니 손동작이니 하는 것은 하나의 그릇에 불과하죠. 오히려 그릇의 내용이 얼마만큼 노동자적인지, 과학적인지, 노동자의 사상을 올바르게 전달하느냐가 핵심이죠. 저 또한 선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육이 기계적인 기술전수에 그치는 것을 경계합니다. 선동기술을 교육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노동자의 정신을 전달해주려고 하지요. 어떤 투쟁의 조건에 처해있는가에 따라서 어떻게 투쟁을, 노동자를 조직해야하는지를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랬을 때 나는 살아움직이는 선동가이며, 선동교육가이고요, 또 그것이 선동이지요.


<font color="##003366"> Q. 그럼, 교육 나갔을 때 안타까웠던 순간도 정말 많이 있었겠네요. 투쟁의 자세라든가 선동의 태도에서요. </font>


안타깝기보다는 자세가 안되어 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조운동을 하고, 이 땅에서 노동운동을 하고자 하는 간부라면 이 한몸 불사르겠다는 결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자세로 투쟁에 임해야 하구요. 하지만, OOOO노동조합 간부들에게서 전 그런 자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3년 내로 해고될 것이고, 해고 비용을 조합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의 어이없는 논리들을 보았습니다. 해고를 못하도록 조합에 가입시키고, 함께 싸우는게 먼저 아닌가요. 이는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아니, 정부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행부라는 이야기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어떤 땅에서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았을때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뭐, 복지사회니, 민주사회니, 사회민주주의 사회, 법치국가, 국민의 정부, 문민의 정부, 김대중 사회...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자본주의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선동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계급적으로 대치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부터 분명히 인식해야 하지요.

대공장이 특히 이런 경향이 심각합니다. 대공장 그러면 움직임이 커서 이 땅의 민주노조 운동의 주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교육을 다녀보면, 아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을지언정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곳이 대공장이었습니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도 허깨비였구요. 억압이나 착취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힘들어졌는데, 그걸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font color="##003366"> Q. 선동교육가로서 선동가로서 최근의 선동이나 구호에 대해 한마디 해주시죠. </font>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해 알고 있냐? 그게 뭐냐? 라고 물으면 아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구호 외치고 대중적 요구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손에 꼽힙니다. 이해가시겠습니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투쟁으로 박살내자" 이렇게 외친다구요. 그런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무어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고... 선동을 하는 당사자들이 잘 모르면, 조합원들은 더 모르죠. 전혀 구체적이지 못한 슬로를 외치고 있습니다. 실질적이며, 노동자의 대안이 녹아있어야 합니다. 대중적 요구는 정리해고 분쇄, 비정규직 철폐, 생존권 사수, 노동강도 강화분쇄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반대? 해외매각 반대? 대중적 요구와 거리를 두며 외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인데, 이런 구호와 슬로에 무슨 의지가 들어 있으며, 투쟁의 결의가 있겠느냐? 자본가들이 내뱉는 말에 대응하기 바쁜 구호나 슬로여서는 곤란합니다.

수세적인 슬로가 아니라 공세적인 대응을 해야하지요. 구호하나에 있어서도"보장받자""물러가라"가 아니라 "쟁취하자""박살내자"이렇게 표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구조조정의 반대 이유, 여기에 노동자계급의 입장이 분명히 들어 있어야 합니다. 간결하고 분명하게, 당면해 있는 투쟁이 무엇인지, 그리고 투쟁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해야 합니다. 대우자동차 예를 들어볼까요? "나라경제 말아먹는 해외매각 반대한다"가 아니라, "정리해고 자행하는 해외매각 반대한다"가 옳지요. 노동자의 사상과 현 투쟁의 쟁점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font color="##003366"> Q. 예전에 E랜드 노동조합 조합원들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놀랍고 대견스러웠다고 말했는데,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font>


제가 교육다니면서 힘을 받는 때는 노동자들의 변화된 모습을 볼 때이지요. 이랜드 한지부를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여성동지들 8명하고 남성조합원 1명이 있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언니, 오빠하고 지내고 있었는데요 무언가 투쟁하는 분위기보다는 야유회나 오는 듯한 것처럼 말이죠. 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 다들 쑥쓰러워하고, 뒤로 빼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답답해했었죠.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걸 무엇으로, 어떻게 선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죠.

얼마안가 이랜드 조합원 그 누구이건,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거에요. 연단위에서건 토론자리에서건 말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놀랐죠. 아니, '어떻게 말을 저렇게 잘하냐? 어떻게 저렇게 투쟁적이냐?' 하면서요... 사실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생전 못할 것처럼 이리 빼고 저리 빼곤 했는데... 정말 놀랐죠. 투쟁의 공간이 이렇게 노동자들의 의식과 말을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정치학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던 거죠.
이랜드 노동자들이 경험의 부재와 지도의 능력이 축적되지 않아 파업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이후의 조합원들의 모습에서 그것이 축적되고 있는 듯이 보이고 있습니다. 비록, 올해의 임금인상 투쟁을 하지 않고 한꺼번에 합의했다거나, 일간신문에 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는 식의 광고를 하는 등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조합원들이 아직도 투쟁의 거리에 나오고 있고, 또, 현장에 복귀하면서 회사의 조합 무력화 시도에 미리 준비하면서 복귀했다는 점 등등에서 이는 분명히 보입니다.

보다 의식적이 되고, 투쟁이 몸에 베여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정말 파업의 성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저도 선동교육을 한 보람을 느끼고요.
가끔은 아예 이곳에 상주해라, 우리 조합에 와라 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지요. 실제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고, 인사치레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보람을 느껴요. 정말 우리 동지들이 선동의 필요성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이건 발전이고 변화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동은 노동해방사회에서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하기 때문이죠. 오늘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이런 미래를 발견할 때, 그이상의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font color="##003366"> Q. 선동가로서 기본적인 자세와 관점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요</font>


이 땅의 모든 것을 자본가들이 장악했습니다. 생산은 수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지만 한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습니다. 언론도 자본가들의 사상으로 점철되어 있고, CF에서조차도 자본가들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들은 적대적인 사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합니다. 분쇄한다는 관점을 갖지 않고, 노동해방사회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작년 11월 투쟁현장에 갖는데 적들과 대치했어요. 안에는 회사구사대들, 경찰 고위관계자들이 있었지요. 앞에는 방패막이 전경들이 있었구요. 이들을 뚫지 않으면 우리가 목표하는 곳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저는 선동을 했지요. 뚫어야 한다. 그럴러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그래서 *** 조합원들이 '그러자'하면서 뚫은 거예요. 방패도 빼앗고, 전경도 끌어내고 하면서요. 근데 그 집회를 준비했던 임원 한사람이 그러는거에요 "돌려보내, 돌려보내 전경은 우리의 적이 아냐. 우리는 그들과 싸울려는게 아냐 돌려보내, 돌려보내" 하는거에요.

그렇게 눈물이 날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저들을 치지 않으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갈 수가 없는데,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순간은 자본가들의 하수인이요, 똥개나 다름없는데 돌려보내라니..." 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밀어붙입시다. 그러는거에요. 또 끌어냈지요. 그랬는데 또 돌려보내라는 거에요. 그러고는 또 뚫어하는거에요. 이건 썩어있는 것이요. 노동자를 우롱하는 것입니다. 선동가가 기본적인 자세가 없어서지요. 이순간 그들은 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이지요. 공권력이 자본가들의 방패막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이지요. 기본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 선동가라면 노동자 사상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순간순간 오염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것은 없다. 아울러, 노동자들의 구미에 맞는 것을 선택해서도 안됩니다. 편안하게 표현한다 할지라도 노동자의 기본적인 사상이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단련 역시 게을리 해서는 안되죠.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자기단련을 게을리 하는 것 같아서 정말 쑥스럽네요(웃음) ... 옆의 동지들이 그랬습니다. 동지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니, 건강에 주의하라고 했는데... 하지만, 결국 건강을 지키지 못했죠. 한번 무너지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전 교육 다니면서 늘 배워요. 조합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봅니다. 교육을 하면서 이 상태에서는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자기원칙을 쉽게 져버려서도 안됩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있다고,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한다던가, 그들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떠들거나 하면 안됩니다. 동일하게 조합원들의 순간순간 즉자적인 표현을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어디 현장조직에 속해 있다고 너는 그 물이야하고 규정지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를 낙인찍어서는 안됩니다.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되죠. 노동자들에 대한 신뢰를 끊임없이 가져야 하죠.


<font color="##003366"> Q. 투쟁의 내용을 압축하는,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는 슬로를 외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동가로서 기본적인 자세를 강조하셨구요. 마지막으로 선동가로써, 아니 선동교육가로서 무엇이 선전선동인지를 이야기해주세요.</font>


<b>조합원들의 불만지점을 폭로하라. 노동자들의 불만지점을 폭로하라. </b>

노동자들이 무얼 고민하는지, 어디서 폭발하는지, 그것을 폭로해야 합니다. 이것을 끊임없이 지켜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늘 가지고 있는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 비정규직에 대한 불안감,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불안감, 이것을 직시하고 정확히 폭로해야 합니다. 단 두마디를 하더라도 현장의 노동자들이 바로바로 흡수할 수 있는 그런 선동을 해야합니다.


<b>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를 들어 폭로해라. </b>

대우자동차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투쟁의 사례를 가지고 폭로해야 합니다. 모범이든, 실패든 그 어떤 사례라도 그것은 생생하고 살아있는 내용입니다. 추상적인 주장으로 선동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선동은 교육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맞부닥치고 있는 사례들을 폭로하고 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폭로해야합니다. 구호와는 달리 선둥이 실제 현장에서 교육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합니다.


<b>대중과 호흡하면서 선동하라.</b>

선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자기기분에 취해서 연설을 하고는 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일례로 지난 5월 1일, 대우자동차들의 피의 투쟁을 보고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하자"는 구호만 반복하면 안됩니다. 거리의 수많은 노동자들과 호흡해야 합니다. "대우자동차 동지들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갑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동이지요. 자기 주장에만 취해, 사회적 여론이 어떻니 따위의 말은 의미가 없죠. 그 자리 현장에 있는 노동자, 대중의 상태를 정확히 보면서 선동해야 합니다.
자기 기분에 취해서 한없이 연설하는 때도 있는데, 그러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대중이 무엇을 듣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대중의 눈을 보면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어떤 선동에 갈증하고 있는지를 보아야합니다.


<b>넓은 시야와 미래를 보면서 방향을 제시하라</b>

노동절 때 제가 보기에 방글라데시아 이주노동자들의 연설은 정말 살아있는 선동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했던 연설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세계의 노동자는 하나다"
우라는 늘그러죠. "노동자는 하나다" 말로는 그래요. 정규직 비정규직도 차별하면서 말이죠. 그분들에게서 노동자가 하나라는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함께 투쟁하면서 외쳤기 때문입니다. 과거 축하메시지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지요.
이주노동자들은 메이데이날 쉬어야 한다고 했고, 동시에 같이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도 쉬어야 한다고 사업장에서 선동했습니다. 그리고 한국노동자들도 같이 쉬면서 투쟁의 거리에 나온 것이지요. 이것입니다. 전체 노동자 계급의 문제로 본다는 것, 세계노동자계급의 문제로 본다는 것이 이거 아닌가요? 이는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남북노동자의 미래와 투쟁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b>노동자의 정신으로 무장하라</b>

끝으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노동자의 정신, 즉 자기 잣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대중의 순간순간 움직임에 자기 잣대도 따라 움직이면 어떤 선동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어처구니 없는 선동을 하거나 아니면 "에이 싫어"하면서 포기하게 됩니다. 이게 없으면 앞의 네가지는 지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선동할 수도 없지요. 이게 제일 중요한 것이지요.


<font color="##003366"> Q. 오늘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끝으로 선동가로서 선동교육가로서 당부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면 한 말씀 해주시죠. </font>


선동, 그리고 선동교육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염없이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워낙 미력하고, 배움이 짧아, 개념이라든가 좀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당위감이 앞설 때 이런 두려움이 앞서지요. 논리나, 이론이 아닌, 투쟁으로 깨달은 머리요 가슴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런가봐요.
하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공허함도 봅니다. 골방에 쳐 박혀서 책 몇 권에 의존해 가지고, 현장의 노동자, 대중을 임의로 평가하면서 투쟁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거요(사실, 저희 기관지도 그런 평가를 받고 있지요. 선동기준에 비추어보면 거의 바닥을 치고 있지요. - 웃음).

물론, 이런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쳐 박혀서 원론적인 것, 이론적인 용어들로만 가득차 있으면 안되죠.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서 좀더 명확하게 노동자의 사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벽을 넘도록 아니, 노동자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 벽을 함께 부수려고요. 그 길에 사회진보연대 기관지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노동자들의 정치와 권력이 필요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구체적인 선동이 필요합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과제를 직접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말이죠. 그것이 선동의 진짜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저 역시 함께 투쟁할 것입니다. 투쟁의 거리에서, 선동의 자리에서 또 만나겠습니다.
주제어
노동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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