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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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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자여 일어나라 pasrt 2

김영식 | 회원
거래가 끝난 뒤에 그는 자신이 결코 '자유로운 거래자'가 아니었다는 것, 자신이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시간은 노동력을 팔도록 강제된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사실상 그의 흡혈귀는 '아직 한 조각의 근육, 한 가닥의 힘줄, 한 방울의 피라도 남아 있는 한',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자기네를 괴롭히는 뱀에 저항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동료들을 규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의 계급으로서 스스로 자유의지로 자본과 계약을 맺어 자신과 자기종족을 죽음과 노예상태 속으로 팔아 넘기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하나의 강력한 사회적 방지책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칼 맑스

과학기술자여 일어나라 part II

김영식
2000년, 수많은 과학기술 노동자들은 실리콘 밸리의 꿈을 안고 벤처로 향했다. 제도권 언론을 통해 스톡옵션, 성과급제로 '돈벼락'을 맞아 자기 뜻대로 즐겁게 일한다고 하였고, 혹자는 대기업의 횡포에 치를 떨며, 혹은 재벌의 독점을 막을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을 안고 벤처로 향했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벤처에서 들리는 소리는 사뭇 달랐다. '수습 3개월 동안 40만원, 수습을 마치면 55만원, 입사 2년이 된 대리가 65만원이라는 임금에, 별다른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는 초과근무, 야근, 휴일근무를 벤처, 병역특례라는 미명으로 강요하였다'는 것이다.
2002년, 미국의 불황과 한국 내 수많은 '게이트' 덕분에 벤처 거품은 상당히 빠졌다. 벤처는 발길이 뜸해졌고, 많은 과학 기술 노동자들은 다시 대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 혹은 국가고시에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그들의 2세에게 더 이상 이과로 가지 말 것을 당부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는가 하면, 의사, 변호사의 호화로운 생활을 억울해 하며 '과학기술자여 일어나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기도 한다.

미국에서 만난 두 사람

지난 1월 미국 출장을 갔었다. 그곳에서 '특별한'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한창 벤처열풍과 Y2K로 인력난을 호소하던 시절인 1998년에 미국으로 가서 소프트웨어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는데, 지금은 같은 대학 조교 생활을 하고 있다. 취업비자를 받지 못해서 정식 취직은 못하고 학교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미국에서 정식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직장을 구하려고 그래요?'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요즘 세상에 어디 엔지니어 마음대로 직장을 선택할 수 있나? 뽑아만 주면 고맙지~' 그는 엔지니어로 살기 원했다.

출장 중에 만난 다른 사람은 한국에서 명문대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명문 대학에서 박사후(Post-doc) 과정을 3년째하고 있었다. 그는 비 인기 학과 전공이라 미국에서도 취직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만난 사람과 다르게 그는 나와 동료에게 흥미 있는 제안을 하였다. 우리 기술로도 실리콘 밸리에서 훌륭한 벤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품을 개발하지 않아도 3∼5년은 고임금을 받으며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자신의 인맥과 우리의 '기술'을 합치면 벤처 캐피털에서 충분히 투자를 끌어 낼 수 있다. 이 투자를 발판 삼아 회사를 차리고, 1, 2년 사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독립적인 기업을 늘리기만 하면 된다. 이들 중 하나라도 나스닥에 등록되면 적어도 10∼100배는 벌 수 있다' 물론 2∼3년 안에 제품을 생산할 필요는 없으며 망해도 손해 볼 일은 없다고 한다. 아울러 성공사례도 잊지 않고 전해 주었다. 그는 한국에서 교수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과학기술자의 꿈의 땅 -실리콘 밸리

실리콘 밸리에 있는 기업을 놓고 관한 가장 해묵은 미신 중 하나는 몇몇 소수의 뛰어난 (백인의) 어린 남자아이가 자신의 차고에서 시작하여 실리콘밸리의 거대 산업으로 성장한다는 신화다. 그러나 대부분 혁명적 기술은 IBM, Bell Lab, ATT 등 대기업에서 나왔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군비 확장과 냉전의 산물이었다.

모든 산업과 첨단산업의 공장에서 이 냉전의 뿌리는 노조를 억압하는 근원이 되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첨단 전자산업은 마치 무노조 환경을 만들기 위한 개인경영기술 연구소 같았다. 대표적으로 노동자들을 팀 체계로 재편하는 작업은 자동 생산공장에서부터 철강회사 까지 확대되어 노조를 무력화시켰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쇼클리와처럼 지도적 과학기술자들은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효율적인 정책들을 제정하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이유로 실리콘 벨리에서 성공한 엘리트 과학기술자들을 가상계급의 일부로 분류하고, '이들 계급은 전자왕국의 군주들이며 그들은 실리콘밸리 가상공장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뇌수를 사출(射出)하여 전자두뇌 공간으로 집적(集積)시키는 공장주'라고 비판한다.

대부분 첨단 기업은 기술변화가 빠르고 불확실해서 미래의 필요숙련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필요인력을 만드는 것(직업훈련)에서 비롯하는 불확실성과 시간상의 불이익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오랜 기간 직업훈련이 필요하지 않도록 신규 채용하거나 기존의 노동력을 재배치하고 심지어, 호황기마저 기존의 인력을 해고하고, 새로운 유형의 노동력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첨단기술분야에 있는 기업은 PC를 업그레이드할 때 부품 구하듯 정보기술관련 일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기취업 비자로 미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는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린다. 단기취업 노동자들은 다른 회사로 옮길 경우 1만-2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처음 고용된 직장에서 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으로 장기간 근무하게 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단기취업 비자를 노예문서에 비유하기도 한다. 나이 차별(age discrimination) 또한 극심하게 나타났다. 평등고용기회위원회(the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의 보고에 따르면,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여 20년 경력을 가진 사람 중 겨우 19%만이 프로그래머로 남고, 프로그래머 중 40이 넘은 노동자는 40이하의 노동자보다 퇴출률이 10배나 높다. 게다가, 퇴출당한 이들은 프로그래머가 아닌 일자리를 찾기 때문에 공식적인 실업률로는 집계되지 않았다.

결국 첨단분야는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잘하는 인력만이 살아남는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주는데, 이미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연금플랜 혜택자 비중이 1981년 30%에서 1994년 20%로 하락하였다. 의료보험 비혜택자 비중이 1985년 15%에서 1995년 18%로 증가하였고 비전통적 고용형태 및 한시적 고용 계약 증가와 파트타임까지 포함한 비전통적 고용 형태의 비중은 1980년 25%에서 1996년 28%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신경제의 중심이라는 실리콘밸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실리콘 밸리에서 나타나는 높은 실업률과 심각한 고용불안은 노동자의 반 자본운동을 무력하게 한다. 아마존 닷컴이 지난 해 1월 광범위한 구조조정 일환으로 시애틀에 있는 서비스센터를 철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기술 인력들은 노조를 결성하겠다는 의지를 꺾었다. 2001년 온라인 식품업체인 웹밴(Webvan)과 온라인 전자 리뷰어인 이타운닷컴(Etown.com) 두 업체 역시 회사가 문을 닫을 때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력도 끝나 버렸다. 74만 명의 노조원을 갖는 미국통신 노조 역시 조직화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실업을 지렛대로 노동유연화와 임금삭감을 강요하는 자본의 위협 앞에서 과학기술 노동자의 실업공포는 노동사회를 왜곡시킨다. 노동의 재분배, 더 나아가 노동사회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로 현실변화를 모색하기는커녕 굴욕과 양보, 경쟁과 배신을 거듭하며 자본권력이 휘두르는 전횡을 지켜보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과학기술 노동자들은 이제, '상층' 과학기술자들 일부만 남기고 정보 지식의 생산자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력(知力)을 자본가에게 팔 수밖에 없는 '하층' 과학기술 노동자로 빠르게 전락하고 있다.

과학기술자여 단결하라

이렇듯 신자유주의는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과학기술 전문인으로서의 특권을 모조리 가져갔다. 과학 기술분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증가하고, 불안정 고용 층이 확대되며, 연구의 질이 아닌 성과중심으로 바뀌면서 과학기술 노동자들의 사회적, 물질적 지위는 하락하였다. 더불어서 과학기술은 사적자본이 더 많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제 과학기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권과 과학기술의 사회성 획득을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앞으로 과학기술 노동자는 과학기술(부문)운동을 노동계급의 이해와 동일하게 제기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 순간 과학기술 노동자들이 자본의 침략에 투항하고, 자신의 처지를 일시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어쩌다 올지도 모를 기회를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제할 때를 놓친 파탄자의 무리"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외쳐야 한다.

"과학기술자들이여 노동계급과 함께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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