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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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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수 없는 전력 사유화 저지투쟁

발전파업 10일째를 맞이하여

이상훈 | 교육국장
발전노동자들의 파업이 열흘을 훌쩍 넘기며 식지 않는 투쟁의 열기를 분출하고 있다. 5600명 조합원 중 5270명 참가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시작한 파업대오는 믿기 힘들 정도로 흔들림이 없다. 현재까지 파악된 파업이탈자는 파업 4일차 2명, 6일차 5명뿐이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파업 참가 인원은 늘고 있다. 조합원들이 능동적 주체가 되어 박차고 나간 작업현장에는 비주체적으로 혹은 강압적으로 발전기를 돌려야만 하는 4직급 직원들만이 남아 있다. 그들은 점점 자책감과 부끄러움에 빠져가고 있을 뿐이다. 이 투쟁은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역사로 기억될 만 하다. 투쟁을 만들어 가는 과정, 투쟁이 전면적으로 시작된 순간, 그리고 가열찬 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 기록은 하루하루 아니 매시간 갱신되고 있다. 살아 숨쉬는 투쟁의 현장은 그것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더욱 가슴 졸이게 만든다. 그 만큼 희망과 희열을 간직하게 하기도 한다. 평가는 아직 이르다. 그렇지만 어떠한 결과를 낳는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남겨진 고민, 우리가 챙겨야 할 과제는 지금 이 순간도 펄떡이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뜨거운 투쟁의 열기만큼이나 정권과 자본의 태도 역시 단호하며 강경하다. 지난주에는 국무총리가 발전파업을 국민배신행위라고 매도하더니,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미 법이 통과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면서 파업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다", "발전소 가동에만 문제가 없다면 2천명이든 3천명이든 해고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망언을 일삼고 있다. 대통령 역시 민영화 정책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 발전산업의 사유화, 나아가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정책이 자본의 입장에서 역시 매우 중대한 과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전력 사유화와 관련해서만 보더라도, 'OECD 규제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회원국 상호간의 전력 등 공익산업 규제내용 및 구조개편 상황 점검', 'IBRD 차관공여의 조건으로 전력·통신·가스 등 공익서비스 분야의 구조개편을 요구', 'APEC 에너지 실무그룹에서 회원국 상호간 투자여건 조성을 위해 각 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독려' 등 국제기구의 요구가 거세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발전산업 매각, 나아가 국가기간산업의 사유화 정책이 국내외 자본의 거센 압력, 자본의 이중대인 국제기구의 활약(?) 속에 지배세력과의 모종의 합의 과정을 거치며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정부와 자본은 발전산업 매각 정책이 예상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투쟁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더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산개한 조합원을 찾아 여관방을 뒤지고, PC방을 검문하고 있다. 발전조합원을 마치 범죄자인 냥 취급하고, 온갖 악선동을 일삼고 있다. 명동성당을 침탈해 지도부를 해체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올라오고 있는 가족들의 명동성당 출입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또한 경찰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발전노조와 범국민대책위원회 홈페이지마저 폐쇄하겠다는 협박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교섭에 임했던, 힘없고 권한 없는 자회사 사장들의 태도였다. 극히 불성실하고 오만했으며, 사태해결을 위해 그들이 내놓은 대안이라고는 구태의연한 협박과 발뺌식 책임회피 뿐이었다. 다가온 전력대란을 막기 위한 진지한 대화의 노력은 고사하고, 그들이 들고 나온 협상안은 대량해고, 징계통보, 손해배상 청구와 같은 구태의연하고 파렴치한 협박용 탄압책과, '사유화는 노사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는 발뺌이었던 것이다. 급기야 3월5일, 5개회사 사장단은 일방적인 노사협상 중단선언을 내던지고, 협상장을 떠났으며 이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전력대란 사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지경에 놓여지고 만 것이다. 아니 그렇게 협상장을 빠져나간 사장단과 정부의 심사는 오히려 '진정한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 모든 책임을 떠넘겨보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전노조 파업의 힘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사측과 정부는 발전노동자 파업의 힘,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들불처럼 번질 수 있는 1300만 노동자들의 힘을 느끼기에 그 만큼 완강하고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지난 3-4년 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이처럼 강고한 기조로 맞선 투쟁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발전노조는 단지 하나의 개별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이지만, 현재 이 단위사업장 노조가 벌이고 있는 투쟁은 정부와 자본의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파괴할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발전노동자들의 투쟁은 하나의 단위사업장의 투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항한 전민중적 투쟁의 선두이다.
발전노조는 지난 2000년 12월 전력노조 파업이 어용 노조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무산되고, 전력산업 분할매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로 분할된 5개 발전사의 노동자들이 전력사유화 반대를 기치로 단결하여 독자적으로 결성한 신생노조이다. 이런 신생노조가 전력산업 파업이라는 초유의 투쟁을 100%에 가까운 참가율을 그대로 유지 확대하면서, 일주일간의 산개투쟁과 10일간의 파업투쟁을 수행중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발전노조의 힘은 과연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 물론 당장의 투쟁이 시급하게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번 발전파업투쟁을 평가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무리이다. 하지만 발전노조 파업으로 형성된 기간산업 사유화 투쟁/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투쟁 전선의 지지엄호와 확대 발전이 관건인 현 상황에서 우리는 발전노조 투쟁의 가장 주요한 특징, 즉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라는 분명하고 명확한 투쟁의 목표 슬로건이 투쟁의 실질적인 목표 슬로건으로 살아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듯 보이는 사실이 이번 투쟁이 보여주고 있는 힘의 원천임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자 한다. 1999년 12월과 2000년 12월에 연이은 전력노조 투쟁패배와 어용지도부의 배신을 딛고 경험하며 사유화 저지투쟁을 지속시켜온 발전노조와 노조원들에게 있어,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조직적 목표와 사유화저지라는 투쟁목표, 생존권 사수라는 이해와 요구는 모두 하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 투쟁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정책대안론 혹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우회하는 전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동진영 일부에서는 우리사주제를 받아들여 우리사주조합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으로 민영화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단기적으로 공공사업장의 성격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민영회사로서 이윤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또 노동조합이 아닌 우리사주조합은 그 특성상 자사주의 주식가치를 상승하는데 일조하여, 구조조정에 부분적으로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사주제의 수용은 법정퇴직금을 폐지하고 기업연금제를 도입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퇴직금제도의 개악을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발전 노조의 투쟁은 진실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발전노조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부분적으로라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면 거부하여(거부할 수밖에 없는 발전노조의 특수한 상황을 변명거리로 만들지는 말자), 민영화의 폐해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고취시켰으며, 파업투쟁과 연대투쟁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동안 거의 매년 진행되었던 공공부문의 민영화 반대투쟁은 연대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번번히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번 발전노조의 파업은 숱한 어려움을 뚫고 지도부와 조합원이 매각철회라는 확고한 입장으로 통일되어 오히려 연대파업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모범은 김대중 정권 말기인 바로 오늘 이 노동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발전노조에 빚을 져서는 안된다

발전노조의 투쟁은 이미 그 자체로 승리하였다. 이 투쟁을 통해 발전조합원들은 민주노조의 힘과 역량 그리고 필요성을 뼈 속까지 각인하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6일 훈련원 공원에 모인 1000여명이 넘는 발전 조합원 가족들의 집회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이 투쟁은 조합원은 물론 가족과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에까지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면은 이번 투쟁이 발전노조의 제한된 승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의 전면적인 저항투쟁으로 상승 발전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돌입하고 있다. 사측의 교섭중단 선언, 어떠한 형태로라도 민영화 철회는 있을 수 없다며 발전노조 지도부에 대한 탄압의 공세를 점점 더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상황은 이미 발전노조와 사측의 문제를 넘어서서,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유화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노동자 전체와 정권과 대결로 상승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는 발전노동자 투쟁을 받쳐주는 것은 선언으로서의 총파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다. 지난주 민주노총의 4시간 시한부 연대파업을 잇는 후속 대책과 사유화 문제에 관해 불분명한 노사합의로 파업을 종결한 채 치밀한 사후보복에 시달리고있는 가스, 철도 노조투쟁의 복구, 한전자회사의 연대파업, 그리고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의 성사야말로 진정한 승리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와 같은 국면을 연 것은 발전노조와 조합원들의 헌신적인 투쟁이다. 이렇게 열려진 국면에서 발전노조의 투쟁을 총파업으로 상승시켜 민영화 저지와 신자유주의 정책 철회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노동대중 전체의 몫으로 남아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노동대중은 발전노조와 조합원들에게 갚기 힘든 큰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 투쟁의 모든 영광은 발전노조와 조합원들의 몫으로 남아야 하며, 승리하는 연대투쟁의 모범을 통해 투쟁의 성과가 전체의 노동대중에게 남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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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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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일자리 일자리협약 시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