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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4.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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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중국(3) - 국유기업 개혁과 중국의 노동자

백승욱 | 한신대 교수, 편집자문위원
중국의 동북지방에 자리잡은 랴오양(遼陽)과 따칭(大慶)에서 노동자의 시위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수천에서 수만 명의 노동자 시위대가 시정부청사와 공안국 청사를 포위해 요구를 외치고 있고, 이 와중에 시위의 지도부가 체포·연금 되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는 계속되었다. 이 시위대의 주축은 기업에서 면직(下崗)된 노동자들이고, 이들의 요구는 기업과 정부가 일자리를 보장하고 밀린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고 자신들의 사회보험금을 계속 납부해 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면직이란 공식적으로 실업과는 다른 범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유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서 외형상 실업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실업으로 내몰린 불안정고용 상태의 노동자를 말한다. 실업이 기업과 공식적인 고용관계가 해지되는 경우를 말하는 반면, 면직이란 고용계약관계는 유지되지만 직무를 배정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임금을 받지는 못하고, 다만 기업에서 일정액의 생활보조금을 지급 받고 기업에서 배정 받은 주택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 지니며 기업에 사회보험금을 대납하는 경우를 말한다. 중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01년 6월말 기준으로 중국의 공식 도시 등록 실업자 수는 619만 명이고 도시 실업률은 3.3%였는데, 이들 이외에 국유기업의 면직 직공이 이보다 많은 수인 769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어, 이들을 합하면 사실상 도시의 실업률은 7%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실업자의 경우는 정부가 실업보험을 통해 구제금을 지급해야하는 책임을 지며, 실업률의 상승 자체가 정치·사회적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실업대신 면직제도를 이용해 국유기업의 구조조정에서 배출되는 노동자를 기업 내에 묶어두기를 원하고 있다. 면직자의 취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기업이 책임지거나 면직자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2001년 면직직공 중 재취업한 사람은 11.1% 뿐인데, 새로 취업한 일자리가 대부분 사영기업인 경우가 많아 사영기업이 적고 국유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인 동북지방의 면직자는 장기간 실업의 상태로 남게되는 경우가 많고, 이번 동북지방의 시위도 이처럼 누적된 면직자의 문제가 폭발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랴오양과 함께 시위가 벌어진 따칭이란 어디인가? 중국사회주의 역사에서 따칭은 1960년대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지역이었다. 일찍이 1960년대에 마오쩌뚱은 "공업은 따칭에서 농업은 따자이(大寨)에서 배우자"는 구호를 외친 적이 있었다. 따칭은 중국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유전으로 자력갱생과 노동자의 헌신, 정치우위 등이 집약된 상징적 모델이었으며, 중국 전체 석유 생산량의 2/3를 담당해 왔다. 중국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공장이 몇 곳 있다. 따칭이 그렇고, 정치우위에 입각한 기업관리를 뜻하는 '안강헌법'의 본산지인 안산(鞍山)강철 공장이 있고, 중국 사회주의 기업의 대표적 모델인 서우뚜(首都)강철이 있고, 문화혁명기에 마오쩌뚱의 직접 지원을 받은 쭝난하이(中南海) 공작대가 조반파와 결합해 공장경영체제의 혁신을 실험한 베이징 방적공장, 그리고 같은 시기 노동자 중심의 생산경영체제를 실험하고 대학과 공장의 결합을 실험한 상하이 공작기계창 등이 있다. 이런 과거 역사를 대표하는 기업의 하나인 따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일이 보여주는 상징성은 크다. 더구나 따칭에서 시위가 벌어진 이유가 중국의 대표적 대형기업집단인 중국석유가 뉴욕과 홍콩 증시에 상장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단행한 구조조정과 인원삭감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현재 중국이 걷고 있는 길의 상징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동북부 석유산업을 통합한 거대기업인 중국석유는 1999년 이후 산하기업 중 비효율적인 기업들을 점차 축소하기로 하면서 종업원의 28%를 삭감하였다. 중국석유에 인수된 따칭에서는 8만6천명이 감원되어, 종업원수가 9만 명으로 줄었는데, 따칭은 대외개방의 심화과정에서 국제 유가기준 보다 생산가가 높다고 평가되어 점차 그 생산을 단축하기로 결정됨에 따라 집중적인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앞선 연재에서도 언급했듯이 1990년대 중반 들어 중국의 국유기업 적자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였고, 1998년 총리에 취임한 주룽지는 3년 내에 국유기업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국유기업 문제 해결을 위한 대대적 구조조정에는 반대가 많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WTO가입으로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외부의 힘을 통한 내부의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방침이 설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런데 외형상 2001년 들어 중국의 국유기업은 적자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윤총액의 대대적인 증가가 그 표지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몇몇 업종의 초대형 기업과 나머지 대다수 중소기업 사이에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2001년 1월에서 9월 사이 이윤액 10억 위안 이상인 20개 국유기업이 국유기업 이윤총액의 78%를 차지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이윤총액순 5위안에 드는 중국석유, 중국이동동신, 중국전신, 중국해양석유, 국가전력이 이윤총액의 55%를 차지하고 있으며, 업종별로 보아도 고이윤 5개 업종이 이윤총액의 74.6%를 차지한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보아도 31개성·직할시·자치구중 6개성이 국유기업 이윤총액의 64.2%를 차지하여 규모·업종·지역에 다른 집중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에 비해 중소규모의 국유기업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는데, 이런 양극화의 추세는 1995년 중국공산당 14기 5중전회(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 제기된 "큰 것은 쥐고 작은 것은 놓는다"( 大放小)는 방침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어 가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국유기업 변화의 방향은 전체 발전노선의 틀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국유기업 구조의 변화는 국가와 기업의 관계와 기업운영 방식 상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발생시키며, 또한 노동관계상에서도 근본적인 전환을 낳는다는 점에서 중국 전사회구조 변화의 핵심적 축이 되고 있으며, 현재 중국이 나아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핵심적 쟁점의 장소가 되고 있다.


1. 개혁개방과 국유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중국의 개혁개방을 향한 노선전환은 처음에 농촌에서 시작되었지만 핵심적 목표는 국유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그 비중의 축소에 맞추어져 있었다. 다만 국유기업이 지니는 상징성이나 국유기업이 수행해온 사회경제적 역할 때문에 처음부터 이 문제를 거론하기에는 이데올로기적 저항이 강했고, 그 때문에 1980년대에는 우회로를 거치면서 국유기업의 외곽을 포위한 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국유기업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국유기업의 구조 전환은 국가와 기업관계의 변화와 기업 내에서 권력관계의 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수 있는데, 양자는 사실 분리되어 진행되어온 것은 아닌 동일한 과정이기도 하다.

(1) 소유권과 경영권의 분리

개혁개방 전 중국의 도시지역의 기업에는 크게 국유기업과 집체기업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이 둘을 묶어 '공유제'라고 불렀다. 국유기업은 1994년 이전까지는 국영기업 또는 '전민소유제' 기업이라는 명칭으로 지칭되었다. 국유기업은 그 기업의 책임관리주체에 따라 중앙부서 직속 기업, 성급기업, 지구급기업, 현급기업 등 행정 등급에 따라 구분되었고, 그에 따라 시설 규모나 급여, 복지혜택 등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이에 비해 집체기업은 건국초기의 사기업들이 국가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통합되면서 집체기업으로 전환된 것과, 국유기업 산하에 설립된 기업, 도시의 구(區)보다 아래 등급인 가도(街道)에서 설립하여 운영하는 기업, 농촌지역의 인민공사가 설립한 기업(이는 인민공사 해체 이후에 鄕鎭企業으로 전환된다) 등을 일컫는다. 중국은 소련과 달리 계획경제 운영에서 중앙 집중성이 덜한 탈집중적인 특징을 지녔는데, 이는 대약진이나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고유의 역사적 배경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다수의 국유기업은 중앙정부의 직접 관할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해당 부서의 관할 하에서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운영되었고 전국적 통합성은 비교적 적었다. 일반적으로 국유기업의 운영은 그 기업 상급의 해당 정부의 관할 부서가 책임을 나누어 졌는데, 재무, 원료공급, 노동력 공급, 생산물 유통 등이 각기 별개의 부서로 나뉘어 관할되는 체제였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의 시기에 국유기업의 구조전환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변화는 국유기업과 상급주관 단위 사이의 이런 고리를 끊고 기업에 더 많은 경영권을 위임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점차 그 변화의 폭과 깊이가 깊어지면서 국유기업의 성격 자체가 변하기에 이르렀다. 이 세 단계는 ① 권한의 위임과 이윤허용 시기(1978-84년) ② 소유권과 경영권 분리의 시기(1985-1993년) ③ 현대기업제도 건립 시기(1994년 이후)로 구분된다.

첫 번째 '권한의 위임과 이윤허용 시기'에는 기존에 기업의 이윤을 상급주관단위에 전액 납부한 뒤 이를 다시 배분하던 방식을 일부 벗어나, 기업이 상급주관 단위에 이윤액이나 이윤증가율 등을 청부하고, 청부한 목표를 초과하는 이윤을 기업 내에 유보하여 자체적인 축적기금이나 복지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방침이 도입되었다. 1983년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윤상납을 세금으로 전환하는 제도(利改稅)가 도입되어, 대형국유기업의 경우 실현이윤 중 55%를 소득세로 납부한 뒤 나머지를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8급의 차등 누진소득세 제도를 도입하였다. 1984년에는 기업 경영자에게 허용되는 권한을 10개 영역으로 확대하여, 생산경영계획, 상품판매, 상품가격설정, 자금 사용, 인사노동권, 임금사용권 등을 기업에 허용하였고, 이듬해는 허용영역에 4개가 더 추가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 달리 이런 방식은 기업의 경영자의 권한을 확대하고 기업 자체적으로 생산 계획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억제된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가 폭발하면서 기업의 유보이윤을 복지기금으로 배분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당과 정부는 경영자의 권한 확대를 위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두 번째 시기에는 소유와 경영권을 분리하고 경영권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경영책임제가 도입된 것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다. 상급주관단위는 기업경영의 여러 목표와 관련하여 기업의 경영권을 특정 경영자에게 청부하고, 이 청부를 맡은 경영자는 청부기간 내에 기업에서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형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청부제가 시행되었고, 중소기업에서는 기업 임대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양자를 묶어서 살펴보면 1987년에 이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이 예산 내 기업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빠른 변화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는 앞선 시기의 이윤상납을 세금으로 전환하는 제도를 개선한 세금과 이윤의 분리(稅利分流)제도가 시행되어 기업 소득세가 일률적으로 33%로 낮아졌으며, 주식회사 제도가 시험적으로 도입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논의는 국가가 기업에 대해 소유권만을 지니지 경영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 없다는 소유권과 경영권 분리주장이었는데, 이는 다음 시기 현대기업제도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1994년 이후에 현대기업제도 건립이 추진된 시기이다. 1992년 14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발전노선으로 채택되고, 국가가 경제의 직접개입에서 거시경제 관리로 물러남에 따라 기업제도에서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근본적인 전환이 나타나는데, 이는 주식회사제도를 골간으로 한 현대기업 제도의 건립이 추진된 것이었다. 기업의 핵심 조직은 주주총회와 이사회, 감사회가 되며, 이사회의 대표인 회장(董事長)이 그 아래 사장(總經理)을 두어 기업을 경영하고, 소유자로서 국가의 권한은 대주주로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발휘된다는 방침으로, 국가가 소유자로서 권리만 가지겠다는 것은 계획경제에 의한 관리방식을 포기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 체제로 기업은 경영책임과 손익에 대한 책임, 발전계획에 대한 책임을 지며, 국유기업의 파산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기업제도에서는 국유기업이 현대주식회사 형태로 변화되어감에 따라 국유기업과 비국유기업 사이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게 되었다. 기존의 국유기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었는데 일부는 독자적인 지주회사 형태의 총공사(總公司)로 독립한 기존의 상급주관단위가 그 산하의 개별기업들을 소유지분을 통해 통제하는 기업집단형 기업체제로 전환되었고, 일부기업은 실질적으로 주식회사제도로 전환되어 상하이와 선전의 주식시장에 상장되었으며, 범주상으로도 국유기업이 아닌 주식제 기업으로 분류된다. 이어 1995년의 중국공산당 14기 5중전회에서는 앞서도 언급한 '큰 것은 쥐고 작은 것은 놓는다'는 방침이 제기되어, 핵심적 국유기업만 국유형태를 유지하고 중소형의 기업들은 파산, 매각, 합병 등의 방식으로 처분한다는 새로운 방향이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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