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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4.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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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ANOS, Misa Criolla

박준도 | 편집실장
노래 없는 혁명이란 있을 수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음악을 뒤지다 보면, 매번 마주치게 되는 말이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이다. 우리말로 '새로운 노래'다. 1958년 칠레에서 열린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 대회가 아예 60 - 70년대 남미의 노래운동을 일컫는 말이 된 셈이다. 첫 대회 수상자가 지난 9월호에 소개했던 '빅토르 하라'다.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 비올레따 빠라(칠레)와 아따우알빠 유빵끼(아르헨티나)가 이 운동의 선구자인데, 빠라는 인류학자이면서 노래하고, 작곡하는 가수이고, 유빵끼는 바이올린과 기타에 정통한 음악가이다. 이들은 오지의 인디언 거주지를 돌면서 수많은 노래와 시, 춤을 수집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이것이 라틴 아메리카 '누에바 깐시온'의 탄탄한 음악적 기반이 된다. 애초에 '누에바 깐시온'은 자본주의 시장 법칙이 대중음악을 장악하면서, 노래-예술이 대중과 무관한 소비 대상으로 전락한 데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운동이다. 이들이 보기에 민중 음악의 질식은 라틴 아메리카 자본주의의 종속적 발전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고, 미국과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지배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의 정치적 각성이나, 이 노래운동이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는 슬로를 내걸며 파시스트에 대항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이 노래운동은 부르주아의 '신민요'를 깨부수었으며, 민중에게 되돌아갈 말과 형식을 되찾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누에보 칸시오네로 아르헨티노 (Nuevo Cancionero Argentino)'로, 브라질에서는 '노바 뮤지카 포퓰라 브라질레이라(Nova Musica Popular Brasileira, NMPB)'로, 쿠바에서는 '누에바 트로바 쿠바나(Nuvera Trova Cubana)'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음악운동은 이제 남미의 음악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가수다. 그녀는 오늘날 '누에바 깐시온' 해석의 대중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두 앨범 중 1993년 필립스사가 내놓은 [30 NOS]에서 우리는 그녀가 부르는 '누에바 깐시온'을 들을 수 있다. 이 앨범은 가수로서 30년 동안 그녀가 부른 노래를 담아 놓은 것이다. 풍부한 성량에서 나즈막히 내보내는 저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왜 사람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가리켜 '대륙의 목소리', '대지의 소리'라고 부르는지 수긍이 갈 것이다. 15살, 아마추어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 역시 '누에바 깐시온'과 함께 했는데, 1975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로 극심한 탄압을 받다가 결국 1979년 망명길을 떠나고 만다. 프랑스와 이태리에서 머물면서 그녀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을 고발하는 공연으로 '누에바 깐시온'을 전 세계로 전파한다.

「미사 크리올라」는 1963년에야 라틴아메리카 카톨릭 교단이 공인한 카스티야어로 된 미사곡으로 64년 라미에츠가 만들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회의에서 교회가 해방운동의 주체로 나설 것임을 공언한 지 2년만이다. '크리올라'는 남미 지역에 사는 스페인계 후예를 뜻하는데, 사용된 말의 정체성만큼이나 음악의 정체성 또한 두드러진다. 그녀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만큼 라틴 음악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노래한다. 그녀가 부르는 '누에바 깐시온'에서 '신'은 '해방'을 향한 질문이자, 자신과 음악의 '정체'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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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시정명령 해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