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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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1e특집-새마을.hwp

21세기 첨단새마을운동, 신지식인운동

정세권 | 출판편집팀
<b>불만과 공감, 양립가능한가?</b>

이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IMF 구제금융. 주식시장의 호황과 경제지수의 호전 속에서 정말로 'IMF'는 잊어 마땅한, 하룻밤의 악몽이었는가?
그렇다라고 단정짓기에는 아직 미심쩍은 현실이다. 삼성자동차의 부채해결 방식에 대한 논쟁이 한껏 사람들의 불안감을 고조시키더니, 이제는 '대우'다. 국내 유수의 대재벌들이 또다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며, 새삼 2년전의 한보와 기아를 되새김질하는 것은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에 놀라는' 가지지 못한 자의 심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못가진 자의 불안감을 일소하기에는, 현재 정부의 모습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21세기 첨단시대를 예비하기 위하여 지식기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둥, '정보통신산업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둥.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정책을 운영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아직까지 실업자가 4백만을 상회하고,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거리를 배회하는 판에. 또다시 정부에 향한 욕지거리가 나올법 하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의한다. 21세기에는 첨단지식산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식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을. 벤쳐로, 벤쳐로 몰리는 젊은 인파를 지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불만과 핑크빛 미래에 대한 공감. 이같은 이중적 사고는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b>'첨단'과 '지식'이 아니면 미래는 없다?</b>

"우리가 왜 IMF체제란 불명예를 안아야 했는가. 바로 밤낮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뛰기만 했을 뿐, 우리의 주변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하는만큼 일을 하는 것으로 자만한 나머지 일하는 방법을 개선·개발·혁신시켜서 이를 다시 활용하는 일에는 소홀히 한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3.22

"정부가 '창조적 지식국가의 실현'을 제2의 건국의 목표로 내세우고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가 그 실천운동으로 '신지식인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로 한 것은 IMF체제라는 어둠을 떨쳐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어 주는 '등대'를 제대로 세운 일이라고 평가된다. 특히 학력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끊임없이 개선·개발·혁신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신지식인'을 육성하는 일은 우리나라가 새로운 천년과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대로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매일경제신문 2.04

매일경제신문사에 의하여 주창(?)되고 제2건국위원회에 의하여 주도되는 '신지식인운동'에 대한 기사이다.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옛 속담을 다시 환기시켜주려는 것인가?
아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 영역에 대한 전문화된 지식을 갖추어야만 효율적으로, 능력있게 업무를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학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산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지식을 구축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라는 21세기의 '정언명령'일 것이다. 영구가 아닌 영화감독 심형래가 그러하고, 고교자퇴의 아픔(?)을 딛고 '소프트웨어 개발'로 성공한 어린 사업가가 그러하다. 작년 12월 8일에 발표된 <신지식인 보고서>에는 우리가 따라야 할 생활습관과 삶의 자세를 가진 인물들이 즐비하다.

정부에서는 새로운 인간유형을 창출하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한다. 최근 교수들의 반발로 이슈가 되고 있는 'Brain Korea 21' 사업이 그러하다. 국가경쟁력에 직결되고 비교우위 확보가 가능한 정보기술, 의생명, 기계 등 7개 과학기술분야와 고부가가치화가 쉬운 디자인, 한의학, 영상 등 6-7개 분야를 선정해 연간 적게는 15억원에서 많게는 75억원까지 지원하겠다고 한다. 정보통신부는, 지식기반경제로 정보통신산업의 전 분야에서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한다는 '정보통신인력양성계획'을 수립하고 890억원의 자금을 확충할 방침이다. 문화관광부에서는 '신지식인운동 추진위원회와 실무추진반을 구성하고 전분야에서 신지식인을 발굴, 전국민의 모델로 삼겠다'라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전직원 신지식공무원 선언'을 한 정부기관도 있다는 보도까지 들린다. 한술 더떠, 전국소기업연합에서는 '소기업들이 단순 하청생산에서 부가가치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며' 지난 3월 '신지식인되기 전국소기업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한 신문사의 3년에 걸친 연구가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는 순간이다. TV광고에서는 심형래를 출연시켜, 화려한 '신지식인운동'을 축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외국에서도 '지식기반산업'에 대한 투자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은 지난 1월 12일 '21세기 직업을 위한 21세기 기술'이란 주제로 열린 직업정상회담(Jobs Summit)에 참석, "미국이 번영을 계속하기 위한 최선의 과제는 지식경제에 대응할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정부도 1998년 '경쟁력 있는 미래, 지식기반경제 구축'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영국이 지식기반경제에서 경쟁력있는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을 적극 실행에 옮기고 있다. 네덜란드가 이미 94년에 '행동하는 지식'(Knowledge in Action)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장정에 들어갔으며, 96년 '핀란드:지식사회'(Filand:A Knowledge - Based Society)라는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는 핀란드는 올해 IMD가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인적자원 경쟁력 1위의 국가로 부상했다. 싱가포르도 최근 '산업의 지식화'에 초점을 맞춘 경제청사진을 공개하면서 제조업 근로자 3명 중 2명을 지식근로자로 만들겠다고 천명하였다. 또한 중국도 최근 우리의 신지식인 운동과 유사한 캠페인을 범정부 차원에서 전개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전세계적으로 '지식경제'는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21세기를 향한 비전으로 추대되고 있다. 정보화·국제화시대에 뒤처져서는 안될 대한민국 정부가 호들갑을 떨기에 충분한 분위기다.


<b>신지식인운동 이면에 숨어 있는 자본의 논리</b>

현재 정부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는 '신지식인운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단지 보편적으로 타당한, 누구나 추구해야할 인간상을 제시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제위기와 '신지식인'. 단지 '고통분담론', '경제를 살리자'라는 담론류의 당연히(!)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정권과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식상한 음모론을 되풀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꺼풀 벗기기와 삐딱하게 보기를 다시 한번 시도해 보자.

하나. '신지식인 운동'은 현재 남한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의 모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혹은 그 이전부터 자본에 의해서 요구되는 노동력의 형태는 70년대처럼 '땀과 근면함'만으로 무장된 생산직이 아니다. 오히려 점점 훈련수준이 높고 큰 자율성을 누리는, 장인에 가까운 '다기능 노동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즉, 신'지식'인이라는 말로 포장된 지식'노동자'이다.

"추상적 지식이건, 구체적 지식인건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모두가 지식인은 아니라는 것이죠. 신지식인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지식인은 사실상 지식노동자와 동일합니다. 신지식인론이 이야기하는 지식인, 요컨대 지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 지식을 활용해서 자기 영역에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 그는 지식의 응용자일지는 몰라도 지식인은 아닙니다."
-'특별좌담 : 21세기 한국사회와 신지식인론' [교수신문] 154호. 99.4.16

신지식인 옹호자들이 주로 인용하는 피터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지금 지식이라고 의미하는 것은 행동을 하는데 '효과가 있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 정보이다. 결과라는 것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사회적·경제적으로 나타나면 혹은 지식 그 자체의 진보로 나타난다"
능동적인 자기계발과 창의력 발굴이라는 것이 가져다 주는 것은,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되지 못하는 '지식'인이라는 허명이다. 또한 '바깥'에서 항상 검증받고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력일 뿐이다. 과정이 아닌, '효과가 있는 결과'만을 추구해야 하는 또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두번째로 신지식인운동을 통하여 현재 정부의 실업에 대한 무능함이 숨겨진다는 것이다. 아니, 새로운 노동력 관리방식의 첨병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 가장 큰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단연코 대량실업이다. 굳이 서울역의 노숙자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400백만을 상회하는 실업자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사실상 없다! 공공근로사업과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라는 정부정책은 예산의 무분별한 낭비와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전락하고 있을 뿐이다.
실직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신지식인으로 포장된 새로운 21세기 미래이며, 나머지는 이를 위한 최소한의 직업훈련이다. 앞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말로 포장된다. '더 이상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하면 신지식인이 될 수 있다.'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하라. 그러면 당신도 잘 살 수 있다.' '봐라!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신지식인을!!!'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논외로 치자.
최소한의 직업훈련은 어떠한가? 재취업 교육내용의 50%이상이 '첨단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것들이다. 가령, 정보처리 능력이나 인터넷 관련 실무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재취업 훈련 이후 취업이 이루어지는 경우의 다수가 중소벤처기업에 입사하는 것이다.

"아울러 직업훈련을 지식기반산업 등의 인력수요에 대응하는 인력양성 체제로 개편하고, 이에 부응하는 국가기술자격제도를 정립한다."
"훈련직종을 정보통신, 메카트로닉스 등 고부가가치 분야 위주로 전환 - 재직근로자의 향상훈련프로그램도 신지식 창출형으로 개편, 미래유망직종 과정 개발시 훈련비용의 20%를 과정개발비로 지원.국가기술자격의 검정기준을 지식기반산업에 부응토록 개선"
-[99년 종합실업대책]

정부는 직업훈련의 기조를 명확히 하고 있다. '지식기반산업의 육성'이라는 것으로. 이는 결국 고부가가치 산업인 정보통신산업-이는 곧 유연화된 노동시장을 특징으로 한다-을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이에 걸맞는 인력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재교육된 실업자들이 취업하는, 끊임없이 자본이 투자되고 코스닥에서도 각광을 받는 벤처기업의 현실은 정반대이다. 이미 존재하는 노동자와 새로 유입되는 재취업자 사이의 갈등과 함께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는 벤처기업 내의 노자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현재의 산업구조에서 벤처기업 혹은 첨단 소프트 관련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독립적이냐, 하청관계냐를 떠나서)을 감안할 때 노동자계급의 분화를 낳을 수 있다는 것까지 연결된다.
'현대적 전문노동자'와 '주변부노동자'의 분화. '노동계급의 어떠한 부분이 새로운 특권적 숙련노동자가 될 것인가'하는 점이다. 산업분야에서의 고용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더 많은 '방법지(方法知. 문제해결에 대한 지식)'를 가진 사람만이 특권적 숙련노동자가 될 수 있다. 그 방법지에 도달할 수 있는 비용과 노력은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치부된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대중의 어떤 부분이 노동계급으로 나타날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곧 '노동대중의 분화'를 넘어서, '노동계급' 자체의 축소를 야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에 대한 기준이 바로 '신지식인'이라는 것으로, '지식경제기반 육성'이라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동조건은 열악한 데 '첨단'이라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들잖아요. 물론 최근 컴퓨터산업이 워낙 분화되어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상태라면 우려스럽죠. 야근수당의 문제에서부터, 연월차도 그렇구. 여태껏 노동운동을 통하여 쌓은 성과와 룰이 이쪽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거든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규조차 없는 회사가 태반이예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없죠"라는 말하는 한 벤처기업 사원이 말을 귀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b>불만은 오직 투쟁과 양립할 뿐이다.</b>

1970년대. 암울한 경제적 상황에서 '근면·자주·협동'의 기치를 내걸고 진행되었던 새마을운동. 경제성장 우선의 당시 정책이 노동자민중에게 가져다 준 것은 '산업역군'이라는 수식어와,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는 자긍심뿐이었다. 경제성장으로 인한 부의 대부분은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채. 남은 것이라고는 최저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비료값도 되지 않는 추곡수매가 뿐이었다.
그렇지만 새마을운동은 남한사회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후과를 80년으로 넘겨주었다. 저곡가정책으로 인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과 그로 인한 노동력의 대량공급. 자본은 철저히 순응하면서도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하면서 무한한 증식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조직된 투쟁도, 아니, 최소한의 생존권투쟁도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생존'을 위해서, 노동자들 스스로 외면해야 했을 것이다.

1999년. 또다시 경제는 암울하고 '근면·순응·경쟁'의 기치를 내건 신지식인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변한 건 20여년의 시간과 좀 더 화려하게 포장된 구호뿐이다.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고통받는 노동자민중이며, 여전히 무한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과 그의 영원한 파트너 국가권력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있을지언정, 미래에 대한 공감은 없다. 불만은 오직 투쟁과 양립할 뿐이다.
주제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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