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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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에 관한 일언

김철호 | 전국노련 정책국장
<b>'민주주의'는 좌우가 아닌, 계급투쟁의 자양분으로 자기해방의 날개를 편다</b>

봉건사회의 몰락과정에서부터 수백년 동안 '민주주의'는 모든 계급·사회세력들 내부에서 주요한 자기근거로 자리매김 해왔고 그 성격과 방향을 둘러싼 대립을 확대시키는 '뜨거운 감자'였다. 경제체제와 정치권력의 배타적 지배권을 획득한 자본가계급과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보장하는 각종의 수단과 방법들을 이미 사회 전영역에 걸쳐 촘촘한 그물망으로 구축하여 왔다.
역사적으로 우리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내는 투쟁과정 속에서 자본과 지배권력의 계급적 본질과 그들이 제기하는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확인하였고, 계급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민주주의'를 사회주의와 결합시키면서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확대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유력한 수단과 무기로 노동조합과 정당운동을 전개해 온 것이다.
지난 100여년간에 걸친 노자간의 '민주주의'의 성격과 방향을 놓고 벌어졌던 치열한 계급투쟁은, 자본주의체제를 옹호하고 지배권을 더욱 강화하려는 보수반동세력과 노동자·민중의 현실체제를 지양하는 운동의 충돌과정이었다.
이런 투쟁의 성과는 과거 소련처럼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 자체를 전복하고 사회주의체제를 현실로 만들기도 했고,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자본주의와 의회주의 틀 속에서 사회주의를 바라보았던 다양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집권을 통해 '수정자본주의'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21세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좋던 나쁘던 현존의 실물적 자기근거를 찾기 힘들어졌다. 체제(진영)대립의 한축이던 현존사회주의가 거의 몰락하였으며, 수정주의로서의 사회민주주의 또한 최근의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의 능동적인 파트너쉽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각국의 계급적인 노동자·민중운동이 현실사회주의와 사민주의에 정치적 신뢰와 지지를 적극 보낸 것은 아니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주체의 부재 속에서 체제대안에 대한 접근은 아무튼 더욱더 힘들어진 상황이다.
한편 현실사회주의 몰락 속에서 다시 천년왕국을 구가할 것 같던 세계자본주의는, 90년대 초반을 거쳐 과잉생산·과잉축적의 위기에 다시 봉착, 자신의 근거가 되는 자본·노동시장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위기의 블랙홀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다. 노동시장의 파괴와 사회복지의 후퇴를 강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일국적 차원에서 유지되던 계급타협체계로서의 코포라티즘의 균열이 확대되면서 개량의 그늘에 안주해왔던 서구의 노동운동에는 '거리의 정치'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의 노동운동 또한 96년말 총파업을 경과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새로운 계급적 대중투쟁의 힘으로 확대되고 있다. 당시 민주노총과 범대위를 중심으로 전개한 대정부·대자본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전체 운동에서 차지하는 노동운동의 비중과 역할을 새롭게 자각했으며, '노동자중심의 민주주의 투쟁과 민중연대투쟁', 그리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새로운 과제로 삼게 되었다.


<b>진보정당운동, '현실정치'인가 '혁명적 현실정치'인가?</b>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은 지난 96년말 노동법 및 안기부법 개악 반대를 위한 민주노총의 정치적 총파업투쟁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투쟁에 대한 민주노총 내 공식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투쟁의 결과를 놓고 1기 민주노총 지도부들에 대한 현장과 지역 조합원 대중의 불만과 불신이 크게 고조되었다.
또한 당시 대중적 이슈로 등장한 '정치세력화'의 요구는 대선을 거치면서 민중운동 내 좌우세력들이 망라된 공동선거대응기구로서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을 출범시켰지만, '일어나라 코리아', '종이정당' 등으로 상징되듯 선거운동 기조를 둘러싼 내부논란과 대중적 불신을 초래하면서 투쟁과 득표에서 모두 실패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선 이후 '선거'를 중심으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사고하는 일군의 정치세력들을 중심으로 조급하게 '정치조직'으로의 전환을 결정하면서, 그나마의 기대와 우려감 속에서 진행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선진활동가와 현장 대중들의 기대를 등지며 스스로 '자립화'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

한편 최근 상반기를 거치면서 '진보정당창당추진위'(아래 진정추)를 중심으로 정치조직 건설논의와 준비작업이 새롭게 진행되면서 국승21은 진정추 내의 활동으로 전환되었다. 97년부터 계속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및 정치위의 결의와 최근 해소된 국승21의 전환, 그리고 빈민조직과 기타 세력들이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대중은 물론, 일선의 선진노동자들과 민중운동가들은 대체로 이에 무관심하다.
이러한 문제를 '대중토론의 부족'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부터 드러난 것이지만, 국승21에서부터 현재의 진정추에 이르기까지 정치노선의 불분명함과 우경성 문제에 대한 우려가 이미 현장과 지역, 민중운동 활동가에게 퍼져 있다.
현재 진정추 내부에서 진보정당의 정치노선 및 이념과 관련해 '자주·민주·통일', '민주적 사회주의',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전투적인 노동자중심의 진보정당' 등의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현재 적극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대략적 성향이 단일하지는 않지만, 민족주의 경향의 국민정당운동론(현·구 전국연합 일부세력, 지방자치운동에 경사된 지역운동론 포함), 사민주의적 진보정당론(진보정치연합 등) 등을 한축으로 하고,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을 결합시키려는 민주노총(연맹)과 전국빈민연합 상층지도부와 (구)노진추 세력(전투적 진보정당 표방) 등이다.

전자의 경우는 이미 한국사회의 변혁전망을 의회·선거주의의 틀 속에서 바라보는 개량주의 노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대부분 일상적인 현장 및 기층 민중운동의 실천관계로부터 떨어져나간 세력들이다.
한편 민주노총 내에서 정치세력화를 바라보는 상층 지도부의 시각은 대부분 '조합주의'에 고정되어 있다. 지난 96·97년초 총파업에 대한 평가의 시각에서도 보듯이, 그들은 당시 '패배의 원인'을 '정치력과 교섭력·원내 지지세력 부재'에서 찾고 있으며, 이의 연장에서 진정추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전망을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합주의 경향은 민주노총 건설과정에서 민주노총 상층과 연맹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세력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있는데,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과 금속산업연맹의 지도부의 '계급타협적 노동운동'의 경향을 중심으로 반영되고 있다.

정치조직, 특히 정치정당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근거하는 세력들을 대표해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구성된다.
특히 노동자·민중세상을 자기과제로 삼는다면, 정치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내부적 민주주의 형성과 계급적 원칙에 대한 확고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최근 진정추 내에서 정당건설 논의 과정을 보면, 도대체 노동자·민중운동의 대의에 충실하고자 하는지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주요한 조직의 방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의결정족수를 무시한채 편의적 발상으로 창당방침을 결정하고 그것조차 다시 자의적인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정치조직으로서의 자기위상을 실추시키며 내부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또한 '할당제'에 입각한 1만명 회원확보 방식의 조직구성 계획은, 도대체 노동자·민중의 정치조직이 과거 보수세력들의 '민주산악회'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게 한다. 특히 민주노총 내에 할당된 5천명의 회원조직화 방식은, 현장과 지역차원의 대중적 토론의 내실화를 통해 진행되지 않고 '조직의 결정사항'이라는 명목으로 조합 간부와 일선의 활동가들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진보정당 창당을 계기로 대중운동의 발전적 전망을 기대하는 활동가들도 있다.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혁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 대중운동의 기반에 대한 끊임없는 개입과 지도력을 필요로 하며, 앞장서 싸우는 선진활동가들의 뒷받침 속에서 정치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 대선과정에서도 보듯이 권영길 대표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과 전국빈민연합 대중들의 표는 기대 이하로 저조했다. 자기가 속한 조직의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현상은 대중조직이 정치적 목적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이 아니라, 생존권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속성 때문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현실의 민중은 그 자체로 변혁적이지는 않다. 투쟁과정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의식은 발전하지만, 자신의 생존조건의 불안정성 때문에 자본과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과 '타협'을 오가며 동요하는 '처세술'을 갖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층 민중(운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 사회를 변혁해야만 하는 계급적 주체세력이라는 것이며, 이러한 '가능성'을 투쟁과 조직 속에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있다. 그러나 이는 아마 변혁이후에도 계속적인 문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발전 과정에서 기층 민중의 역할은 거대한 것이지만, 수천년 동안 계급착취와 억압 속에서 형성된 '수동적 처세술'이 한순간에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변혁의 문제를 현실의 주요한 문제로 사고한다면, 정치조직 건설 과정에서 '대중운동 형식의 일부를 정치조직의 근거로 결합시키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자·민중운동의 대의에 충실하고 근본적 사회변혁을 자기과제로 삼고 있는 선진적 주체의 '정치적 결사'에 입각한 확대방식의 원칙 위에 '정치조직'의 외연을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물론 대중조직이 시기별로 정치적 입장을 갖고 특정한 정치세력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입장을 갖는 것이 곧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은 실제적인 투쟁과정 속에서는 긴밀히 결합되어야 하지만, 조직구성과 활동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를 수평화하거나 하나로 다른 것을 치환하는 태도와 방식은 결코 올바르지 못하다.

현재의 진정추는 노동자·민중의 대의를 정치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선진적 활동주체'를 중심으로 내적근거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 창당 일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진정추의 '조급성'은 대중운동을 한낱 총선에서 표찍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위험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소 평론적으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진정추는 이후 총선을 거치면서 더욱 부르주아 '현실정치'에 경사된 모습으로 나아가거나, 개량주의와 계급성·민중성에 대한 정체성을 놓고 다시 분해될 공산이 크다. 현 시기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이 정치조직의 건설을 '동호회' 결성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직업적·선진적 운동역량을 정치적으로 결집하여 운동의 통일성과 자기집중성을 갖는 책임있는 조직건설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b>노동자·민중의 정치조직, 이제 새로운 체계와 방식으로 모색되어야 한다!</b>

"어떤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요소를 해방시킨다"는 맑스의 언명은 현시기 새로운 정치의 화두를 갖고 운동에 임하는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현실주의'라는 덕목이 '현실정치'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세상의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제 의식있는 활동가들은 대중의 심장에 의지하되 그들의 '현 존재가 갖는 한계'를 생활 속에서 동시에 깨우치면서 해방을 일구어 갈 수 있는 능동적인 정치주체로 나서야 한다. 진정추는 더 이상 선진노동자와 직업적 민중운동가들을 선거주의와 개량주의의 동원물로 전락시켜서는 안되며, 다가올 총선 자체에 매달려, 노동자·민중운동의 대의를 표에 의한 지지로 귀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진정추의 노선과 활동방식에 명백히 반대하며 현재 참여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많은 건강한 활동가들에게,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괜히 몸대주러 가지말 것을 권고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 진정추에 대한 민주노총의 '조직방침'에 대한 부담 속에서 상명하달식의 압력에 눈치보며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내맡기는 노조활동가들이 있다면, 차라리 노동조합활동에만 전념하는게 좋다고 권고하고 싶다.
현재의 진정추에는 '노동자·민중의 심장'이 보이지 않고, '해방의 씨앗'을 싹틔울 미래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진정추 일부 사람들이 필자와 같은 경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불 속의 사회주의자'라고 폄하하고 있지만, 필자는 그들처럼 전선에 서있는 대중의 뒤에 뒷짐지고 서서 '대중운동의 한계'를 훈수하며 계급의 이름을 팔아 '현실정치'를 거들먹거리는 낯두꺼움은 없다.
필자는 이후 진정추처럼 당장 '1만명'을 목표로하지 않지만, 그동안 계급적 노동자·민중운동의 발전과 노동해방을 위해 헌신해 왔던 현장과 지역, 전선의 선진활동가를 중심으로 정치조직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예비모임'에 참여할 예정이다.
늦더라도 계급적 대의와 현실투쟁에 능동적으로 나설 수 있는 정치적 기관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며, 이의 중심에는 이제 노동해방을 책임있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선진활동가들'의 주저함 없는 실천이 절실하다.
주제어
정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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