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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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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건강회의2000'에 다녀와서

최용준 | 편집위원, 민중의료연합
민중건강회의 2000 열려

지난 1월 30일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는 조그만 행사가 열렸다. 행사 이름은 '민중건강회의 2000'. 부제가 '민중건강권 실현을 위한 연대전략'인 이 행사는 사회진보연대를 비롯, 노동·빈민·학생·의료 등 14개 단체가 조직한 민중건강회의 2000 준비위원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약 100명이 참석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이 행사에서는 김대중정부의 '생산적복지'에 대한 논의, 의료보장과 노동운동의 관계, 노동보건운동의 발전전략, 빈민건강 실태와 해결방향 등 민중건강에 관한 주제들이 다루어졌고, 대회 참석자들이 "민중의 연대와 실천으로 건강할 권리를 실현하자"는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이 글은 이 대회에 참석한 한 사람이 쓴 참여기록이다. 아마도 대회를 주최한 준비위원회에서는 보다 짜임새 있는 평가작업을 하겠지만, 그에 앞서 간단한 대회에 참석했던 소감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로써 알려지지 않은 이 행사의 의미와, 중요하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의 관심밖에 있는 '사람의 건강과 건강권'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생산적 복지와 대안적 복지 투쟁

여는 마당의 초점은 '생산적 복지'와 '대안적 복지 투쟁'이었다. 한신대학교 남구현 교수는 발표문에서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정책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동을 교육시켜 자본에 유용한 노동으로 바꾸려는 블레어 류의 '일을 통한 복지(welfare to work)'의 한계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통적 의미의 사회복지 자체가 전무한 상태였던 우리나라에서, 생산적 복지는 사실상 복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경제위기로 불가피하게 확대해야 했던 여러 복지정책을 생산성의 이름 아래 최소치만을 남기고 거둬들이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이어 발표에 나선 민중의료연합의 강동진 대표는 주로 보건의료 분야에 초점을 맞추면서 의료보험 제도개편과 의약분업 실시 등 최근 보건의료 제도변화의 특징을 규명하였다. 또한 최근 의료개혁 과정에서 민중역량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결여' 부분을 지적하면서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연대주의 사회화 전략'을 건강권 투쟁의 큰 담론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문제의 핵심인 '재정'과 관련하여 '민중건강복지예산 확대와 의료비 본인부담금 인하운동'을 올해 건강권 투쟁의 화두로 제시하였다.


민중의 건강, 어떻게 지킬 것인가

오후 행사에는 세 개의 세션(session)이 진행되었다.
의료보장 세션에서는 노동자, 노동운동 중심의 의료보장 투쟁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한편에서는 그간 의료보장투쟁과 노동운동의 역할에 대한 종합평가가 이루어졌고, 다른 한편에서는 의료보험 제도의 변화와 관련하여 운동과제로서 자본과 국가부담 증액 요구, 조세를 통한 의료보장 실시 등 보다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노동보건 세션에서는 김정곤 산재추방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산재추방운동의 역사와 평가에 관하여 발표하였고, 이어 작업장 통제 문제와 현장투쟁에 관한 논의, 노동보건운동의 전망에 관한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빈민건강 세션에서는 준비의 성실성과 헌신성이 돋보이는 발표들이 있었다. 특히 전국노점상연합 홍웅식씨는 '빈민건강 실태분석 및 사례조사'를 발표했는데, 이는 많은 단체활동가와 학생들이 지난 겨울동안 직접 발로 뛰면서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소중한 자료였다.
이 조사에서는 조사대상자 중 의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비율이 13%에 달했으며, 응답자들의 66%(전국 평균 37%)가 우선적으로 이용하는 의료기관으로 약국을 꼽아 의료이용의 접근도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미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행사

민중건강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허약한 사람과 사회를 빚어내는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보건의료인, 보건의료운동의 역할만이 아니라는 것. 이 점을 환기시키는 것이 이번 대회의 본래 취지로 보였다. 그만큼 행사를 주최한 여러 사람들의 성실한 준비가 돋보였으나 아쉬운 면도 많았는데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이 행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실무를 준비하는 사람이 부족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다만 정도를 넘지 않는 마케팅(marketing) 활동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건강과 의료에 대한 다양한 방면의 주제가 포함되지 못한 것도 행사의 취지와 참여주체의 면면에 비추어 보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전히 '건강권'의 문제는 수사적 어휘로 풀이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지닐 법한 철학적, 문화적, 법률적 측면들은 많은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건강의 주체 면에서도 마이너리티로 남아 있는 여성,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의 문제는 그저 보건학이나 제도권의 소재로 남아있을 뿐, 이에 관심과 역량을 투여할 사람들이 아직 나서지 않고 있다.


민중건강회의, 확산되고 계속되어야

행사에 참여하면서 갑작스레 떠오른 것은 '건강'의 문제를 노동자 투쟁의 핵심 화두로 아직 건져내지 못한 운동의 현실이다. 흔히 노동운동은 고용과 임금을 중요한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고용과 임금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는 곧 노동자 민중이, 나아가 만인이 건강한 삶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영국의 윌킨슨(R.Wilkinson)이 지적한 것처럼 허약함과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불평등한 사회이다.
이를 직관으로 알고 불평등을 고치고자 하며, 그 불평등이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 중 하나임을 알게 되면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개조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노동자·민중 운동은 이 '건강'이란 화두,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확산이 필요하고, 어렵사리 준비된 민중건강회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연대운동조직으로 성립이 어려운 여러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계속 상호논의와 주의환기를 할 수 있도록 공동작업을 모색했으면 한다. '민중건강회의' 이름의 웹사이트를 공동운영하는 것도 좋고, 행사에서 제안된 '민중건강복지예산 확대와 의료비 본인부담금 인하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도 있다. 민중건강회의의 시작은 좋다. 이제는 냄비바닥처럼 쉽게 달아 오르고 쉽게 식지 않는 끈기와 성실함이 요구되고 있다.

*** 민중건강회의 2000 자료집은
민중의료연합(http://myr.jinbo.net)에서 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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