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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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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직선제는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

박거용 | 운영위원, 상명대영어교육과 교수
교육개혁의 주체와 대상이 뒤바뀐 김대중 정권의 교육정책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지 벌써 2년이 지나갔다. 김대중 정권은 그 동안 개혁이란 담론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며 교육정책들을 쏟아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반민주적인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김대중 정권이 탈상품적 속성을 지닌 교육에, 시장경제논리에 기반한 신자유주의 이념을 도입했던 김영삼 정권의 교육정책을 아무런 평가와 비판 없이 그대로 원용하고, IMF 지배체제시기를 빌미로 <교육발전 5개년 계획(시안)>을 통해 이를 더욱 강조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김대중 정권이 교육개혁을 추진할 현장의 교사와 교수를 주체로 명확히 세우지 못한 것, 그리고 오히려 교육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교육부와 그 주변사람들을 중용하거나 그들이 교육개혁의 주체인 양 아직까지 교육현장에 영향력을 미치도록 방치한 것 역시 교육개혁이 실패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김대중 정권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교육을 망쳐놓았던 인사들과 교육관료들을 또다시 중용하고, 이들로 하여금 각종 교육정책을 수립하게 함으로써 교육계 기득권세력 척결을 요구했던 국민들의 여망을 외면했다. 김대중 정권은 초대 교육부장관에 재야활동을 했던 이해찬씨를 임명했으나, 그는 교육정책, 특히 BK21사업을 기획·집행하는 과정에서 독단과 독선을 보였으며 교육부 관료들의 '장관 길들이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뒤이어 임명된 김덕중 장관은 시장경제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었으며 비리사학 퇴출자들을 옹호하는 발언과 정책들을 펼침으로써, 교육관련 단체들로부터 '교육 7적'의 한사람으로 거명되기도 했다. 현재 교육부장관인 문용린씨 역시 시장논리에 따른 교육정책을 옹호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무차별적인 자율화조치를 강조하는 인사라는 게 중론이다.

김대중 정권은 물론 <교육발전 5개년 계획(시안)>을 통해 대학의 자율성 확대와 책무성 재고를 위해, 그리고 2000년부터 대학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무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했다. 또한 사립대학 운영의 사회적 책무성 제고를 위해 사학 예·결산 공개와 입학정원 2,000명 이상인 대학의 외부공인회계사에 의한 회계감사 실시를 의무화하는 등의 시안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대학을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 이사회의 ⅓이상은 공익을 대표하는 자로 선임하여 사립대학 경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제고하고, 무작위 선정에 의한 표집감사 제도를 확대함으로써 대학운영의 사회적 책무성을 제고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2000년까지 고등교육기관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에 대학분쟁 심의회를 설치하기로 했으며, 현행 총장직선제의 폐해를 방지하고, 대학통합과 경영효율화를 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대학운영의 합리성·효율성·민주성 제고를 위해 총장과 교무위원회와의 효율적 업무 분담 및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정책들은 비록 '혁명'적 교육개혁을 희망했던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를 모두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만약 이것이 추진되기만 했었다면 교육현장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학교 구성원들이 교육개혁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교육개혁의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김대중 정권 집권 2년이 지나도록 거의 추진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9년 7월까지 <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확정한다고 한 계획마저 미루고 있어 국가기관의 공신력마저 실추시키고 있다.

반면에 김대중 정권은, 신중한 검토와 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학 자율화정책은 일사천리로 추진하였다. 학생 수 부족으로 고사직전에 있는 지방대학에 대한 고려 없이 대학정원 자율화를 시행한 것이나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을 개악함으로써, 교육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학운영자들의 활동 폭만 넓혀준 것이 그렇다. 이 와중에 김대중 정권은 현행 총장직선제의 폐해를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대학 '총장직선제'를 아예 폐지시키려 하고 있어 대학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총장직선제, 부작용 있다고 폐지되어야 하나

김대중 정권이 집권한 이후에도 대학 '총장직선제' 논란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왔다. 그러던 중 김덕중 교육부장관이 임명되자 교육부는 앞장서서 '총장직선제' 폐지를 들고 나왔다. 지난해 8월 23일 교육부의 한 간부는 "총장직선제가 과열·혼탁양상, 파벌조성, 보직남발 등 부작용이 많아 전면 개선키로 했다"며, "우선 국립대를 대상으로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는 대학에 대폭적인 재정지원을 해주기로 했다"고 일부 언론에 밝혔다. 그후 10월 27일 김덕중 교육부장관은 배재대에서 열린 대전·충남·전북지역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자신이 직접 "내년 총선 후 국립대 총장선거제를 임명제로 전환하고, 총장에 인사·예산권을 부여하는 등 대학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16일 교육부는 "총장직선제가 대학민주화에 기여해 왔으나 최근 들어 대학내 파벌형성, 논공행상에 따른 보직 나눠먹기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여기에 덧붙여 "총선이 끝난 뒤 총장 선임방법을 대학자율로 정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교육공무원임용령을 개정, 직선제를 아예 실시하지 못 하도록 못박거나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 외부인사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법제화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총장직선제 폐지는 공식화되었다.

87년 12월 대학 민주화 노력의 산물로 목포대에서 시작된 총장직선제는 한때 전국대학의 절반이 훨씬 넘는 80여개 대학에서 실시되었다. 그러나 96년 계명대, 연세대, 국민대, 동국대 등 9개 대학에서 시작된 총장직선제 폐지선언은 거의 모든 대학으로 옮겨가, 현재는 전체 국립대와 일부 대학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총장직선제는 시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의 공개적, 민주적, 자율적 운영에 크게 기여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전에 일방적으로 재단이나 정부에 의해 임명되어 대학구성원들을 억압하던 총장 때보다, 직선총장체제 시기에 대학운영이 훨씬 나아졌다는 데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정부에 의해 임명되어 대학을 정권의 통치 이데올로기 전파수단으로 전락시키려 했던 관변총장들이 사라졌고, 특히 우리나라 대학의 83%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교수들은 대학을 사유화하고자 했던 사학운영자들의 전횡을 견제하는 등, 총장직선제는 사학민주화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이같은 사실은 교육부도 2월 16일 발표한 「국립대 총장선임제도 개선방안 검토」에서 인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총장직선제의 장점을, 대학의 중추적 구성원인 교수단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며 교육민주화와 대학자율화에 기여하고 구성원들의 참여의식이 고조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은 '총장직선제'에 대한 이같은 긍정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사소한 문제를 '침소봉대'하여 이를 폐지하려하고 있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총장직선제'가 교수들의 파벌집단화를 야기하는 등 폐단이 많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논리이다.
만약 김대중 정권의 주장대로라면, 1인독재와 지역감정 등의 가능성이 있으니 '대통령직선제'를 폐지하고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이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려 한다면 이는 대학에 대한 정권의 통제 의도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총장직선제에 따른 부작용, 대학 구성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

대학에 있어 총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총장선출방식을 놓고 대학의 주요구성원들이 갈등을 빚고있는 것 역시, 총장의 지위와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관련법에 규정된 총장의 역할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감독하며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다. 또한 필요한 경우, 법정기준에 관계없이 교원의 교수시간을 정할 수 있으며, 교·직원의 임면·제청권과 겸임교원·명예교수·시간강사·초빙교원 등을 각각 임용 또는 위촉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대학 총장은 법인의 이사가 될 수 있으며 학교 예·결산을 편성하고 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학 총장은 대학원위원회 구성인사를 지명하여 대학원을 운영할 수 있으며, 학교 보직교수에 대한 인사권도 사실상 총장에게 있다. 또한 총장은 필요에 따라, 대학 내 각종 전문위원회를 둘 수 있으며 그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도 총장이 따로 정하게 되어있다.
대학 총장의 지위와 역할이 이토록 크기 때문에 대학 총장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인물을 선출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학의 운영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가장 올바른 방법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학 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학내 구성원들의 바램과 지향을 옳게 반영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정부나 재단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임명한 총장은 대학 구성원들의 이해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임명자에게 대한 충성으로 일관하면서, 대학의 자주·민주화를 요구하는 교수·직원·학생들을 탄압할 가능성이 크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학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으며 대학의 부정·비리 역시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청산하려면 대학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대학내 토론문화 등을 활성화시키는 것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학 민주주의의 꽃인 '총장 직선제'는 당연히 고수되어야 한다.

물론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과 시행착오는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민주주의라는 대의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총장직선제'로 인해 교수들의 파벌형성과 보직남발과 같은 부작용이 있다면, 이것 역시 민주적인 제도 정착을 위하여 치러야 할 민주화의 비용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총장직선제'를 통해 나타나는 문제는 대학 구성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총장직선제는 대학 민주화를 위하여 철회할 수 없는, 몇 안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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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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