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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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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통합, 전면재논의하라

전국농민회총연맹 |
협동조합, 그 모순의 역사

1884년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에서, 로치데일 공정개척자협동조합으로 시작된 국제협동조합의 역사는 1895년 국제적인 연대기구인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을 창설하게 되었다. ICA가 채택한 협동조합의 정의는 "협동조합은 공동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용되는 사업조직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모임"이며 협동조합의 기본적 가치를 "자립, 민주주의, 평등, 공평, 단결"로 선포하였다.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자본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시점에서 평등과 민주에 입각한 공동체를 선포했던 것이다.

ICA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고 있는 한국의 협동조합은 어떠한가.
헌법 제123조에 의하면 "국가는 농·어민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일제치하 금융조합과 산업조합이라 이름하여 대농민 수탈기구로 시작된 한국의 협동조합은 5.16 군사정권의 임시조치법에 의해 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하고 조합장 임명제를 규정하여 금융조합 중심의 종합농협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헌법을 위반한 채 정부정책사업의 대행기관으로, 정치자금의 출처로 그 역할을 다해오고 있다.
농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관(官)'으로 군림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비리와 모순을 드러내는 한국의 협동조합은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개혁되어야 한다

협동조합 개혁의 방향은 첫째, 직원 및 조합장이 주인인 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으로 둘째, 중앙회의 지시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지역농협을, 셋째, 정부의 눈치와 간섭, 업무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협동조합중앙회를 건설하여 농민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권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협동조합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야 한다. 농협에 빚진 것이 죄가 되어 권리는 어디로 가고 직원들의 눈치만 살펴야 하는가.
협동조합은 농민의 농산물을 판매하고 농자재를 싸게 공급해주는 등의 대농민 봉사기관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농·축협 등은 경제사업(농산물 판매, 수급조정, 공동구매사업 등)만 전담하는 연합회로 전환되어야 하며, 농업금융은 분리하여 경제사업과 지도사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별도의 농업은행으로 협동조합중앙회 내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중앙회는 하나로 통합하되, 현재의 경제사업은 경제사업연합회가, 신용사업은 농업은행이 각각 독립법인으로 담당하고 중앙회는 이를 조정·지도하며 각종 농정활동과 대정부활동 등의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폐지하고 협동조합의 정치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함께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지난 93년, 전농, 한농연 등 농민단체와 김성훈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으로 농업발전위원회 건의서와 협동조합개혁위원회 성명서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사실이다.


통합농협법 시행령의 문제점

1999년 8월, 국회를 통과한 농업협동조합법은 자민련의 농림해양수산위원 3명을 전격교체(박태준, 김종필, 이완구: 지역구 의원→ 김허남, 김종휘, 김의재: 전국구 의원으로)시키고 법사위 심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국회의장 직권으로 상정되어 국회 본회의에서 변칙처리되었다.
정부는 '통합'이라는 명제를 개혁으로 호도하여 [비사업적 기능의 중앙회 통합, 경제사업연합회 건설, 신경분리]로 압축되는 개혁의 중심내용은 외면해 버렸다. 단순 대통합의 비대한 중앙회와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 통제하기 위한 농림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개악한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우선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없는 중앙회 통합은 신용사업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으며, 비대해진 중앙회는 농민과 회원조합 위에 더욱 군림하게 될 것이다. 애초 농림부는 협동조합은행이 설립되면, 감독권한이 재경부나 금감위로 이관되기 때문에 농업과 정책자금부문에 원활한 자금조달이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지역조합까지 금융감독위원회의 실질적인 검사와 감독기능을 확대시킴으로써 금감위의 기준에 의해 농협신용사업이 운용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출기준이나 조건이 까다로와져, 농촌지역 연체자에 대한 대출이 중지되고 신용보증기준에 대한 기준이 강화될 것이다. 또한 예전에 농협의 특수성을 인정하여 회원조합에 BIS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 BIS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농협이 본격적으로 대출자금 회수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정치관여 금지조항을 공직선거관여 금지조항으로 이름만 바꾸어 협동조합의 주요한 정치활동을 여전히 봉쇄하고 있다. 이는 1966년 국제협동조합연맹 회의에서도 삭제된 낡은 조항으로 협동조합의 대정부교섭 등 농정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통합농협법은 농협중앙회를 사업체로 설정하고 본부중심의 하향식 조직체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농림부는 각 부분별 대표이사 운영체제를 도입하여 형식적인 독립사업부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독립사업부제를 확립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조합원과 지역조합 중심의 상향식 조직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즉 경제사업의 자립적 구조마련, 신용사업 수행의 왜곡과 자의적 운영방지를 위한 연합회체제와 협동조합은행 설립에 대한 본질적인 목적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미 독립사업부제의 허상은 지난 5년동안 입증되었으며, 대표이사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직원의 급여를 차등해서 지원할 수도 없고, 어느 사업부분에서 적자가 발생할 때 각 사업부분의 별도운영은 급여삭감 등으로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사업을 포괄하는 중앙회는 지역조합위에 더욱 군림할 것이며 정부의 정책사업수수료를 챙기고, 이를 대행하면서 얻는 수익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개혁적이라고 항변하는 '품목별 전문조합의 연합회'조항도 중앙회가 여전히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 제도적인 뒷받침없이 중앙회의 견제와 갈등 속에서 살아남을 리 만무하다.

넷째, 또한 합병촉진법을 여전히 존속시켜 자금지원 등을 미끼로 지역조합을 강제합병하고 있으며 시행령에서는 조합의 출자총액을 3억으로 상향조정하여 합병대상 농협을 더욱 확대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대규모로 합병하겠다는 것은 조합원의 참여를 그만큼 배제하고 신용사업 위주로 가겠다는 의도이다.

더욱이 시행령에서, 조합의 주요임원 자격 중 이전법에 있었던 농축협의 근무경력을 삭제하고 정부기관, 은행, 상사회사, 검사, 판사 등의 자격을 인정한 것은 협동조합에 사기업과 은행의 원리를 대폭 도입한 결과이다. 시행령 48조부터 55조까지(농림부 장관의 감독, 경영지도, 채무의 지급정지, 임원의 직무정지 등의 내용) 신설하여 농림부 장관의 감독권을 강화한 것은 감독이 아니라 간섭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적극적 실천을 모색하며

농림부가 주도하고 농협중앙회의 뒷심(로비)으로 통과된 농업협동조합법은, 김대중 정권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농촌사회의 공동체를 위협하고 농민들의 권리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며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우선 정부의 개악의도와 그 내용, 올바른 협동조합 개혁방향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협동조합 비리와 개혁의 국면에서, 더 이상 정부의 논리에 의해 휩쓸리지 말고 원칙과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당장 7월부터 진행될 법의 시행에 대응하여 과정의 비민주성과 개악성을 밝히고, 시행을 유보하며 전면 재논의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전농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의 단체들은 이를 위해 범국민대책위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7월을 앞두고 또다시 과열될 협동조합 개혁정국에서 올바른 판단과 적극적인 개입이 요청되는 것이다.
주제어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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