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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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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FTA 개방 이후의 농촌의 현실

정지영·최예륜 |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8차 무역협상 라운드인 '우루과이 라운드(1986-92)'(이하 UR)를 통해 WTO가 출범하였다. WTO 협상에는 농업협상, 서비스협정, 지적재산권 협정이 추가되었고 미국 등 거대 국가의 초국적 곡물기업, 금융자본 등의 주변· 반주변국으로의 진입과 투자, 무역자유화가 꾸준히 추진되어왔다. 우루과이라운드는 농업을 관세를 통해서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도록 했고 추곡수매제와 같은 국내보조금, 수출품목에 대한 국가의 보조금을 철폐하도록 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출범 이후 세계 농산물 시장의 90%를 단 10개의 농기업이 장악하여 덤핑수출을 통해 농산물 가격을 폭락시켜왔다. 가속화하는 개방의 물결 속에 한국 농업의 현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벼랑에 선 심정으로 '6·20 농민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농민들을 만나 그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사람들은 떠나가고 지을 수 있는 농사는 줄어만 갑니다"

전라남도 나주시는 쌀, 배 농사를 중심으로 복합농업을 하는 인구 10만의 도시다. 나주시 농민회 활동가들에게 농업개방정책 이후 피부로 느끼는 실질적인 변화에 대해 물었다. 안주용 교육부장은 "농업의 세계화 개방화가 UR이라 지칭되는 그 시기에 가장 심하게 진행되었습니다만 그 이전인 1970년대부터 개방농정으로 기본방향을 잡고 있었죠. UR이 시작된 후 가장 큰 변화는 농촌에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확연히 없어졌죠. 이농은 전에도 잦았는데 더욱 결정타가 된 것 같습니다. 둘째는 작목이 많이 협소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10년 전에는 수박, 마늘, 양파 등 여러 작물을 해왔는데 UR 진행 이후 해봐야 안 되니까 작목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엄청 좁아졌어요. 남은 작물 범위 내에서 농민들이 서로 경쟁하다 보니까 더 힘들죠. 또 작목이 줄다보니 배 농사에 많이 집중해서 2000년까지 굉장히 많이 심다가 그 이후에는 배나무를 베어내고 최근에는 인삼에 그렇게 집중을 하죠. 농사짓는 사람들의 상식적인 감각으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곧 인삼 값이 달라질 것이라고들 해요"라고 말한다. 비단 나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동화 강원도연맹 의장은 "강원도 지역은 고랭지 채소라든가 원예작물을 주산물로 하는데, 그 실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지금 농민들은 어떤 농사를 지을지 혼란에 빠진 상황입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쌀을 제외한 품목의 식량자급률은 20%를 간신히 넘고 있다. 그만큼 농민들의 포기가 늘었다는 얘기다. 특히 중국산 농산물의 저가 공세는 농민들의 일 년 농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농산물은 중국산 의심이 제일 크잖아요. 그게 미치는 영향이 커요. 고추 같은 경우는 말려서 팔지를 못해요. 말려서 팔면 중국산으로 의심받으니까. 게다가 가격 차이가 기본적으로 2~3배는 나요. 저가공세로 밀어붙이면 가격이 다 떨어지죠. 그리고 이 밭에 뭘 지을지는 시시때때로 변하잖아요. 그걸 결정하는 데 영향을 크게 미치죠. 고추를 예로 들면, 올해 고추 재배가 적다하면 가격이 좋거든요. 그러면 빨리 팔아야지 아니면 수입 농산물이 쫙 밀고 들어오거든요. 어떤 것이 가격이 좋다하면 바로 수입 농산물 들어오고, 그러면 다시 가격 떨어지고 그런 악순환이죠." 안성군 농민회 강상욱 총무부장의 얘기다. 가격 폭락뿐만 아니라 가격 변동 폭 자체가 커져서 일년 농사의 성패가 크게 갈린다. 작물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이후 한국의 농업정책 현황

미국, 유럽연합(EU) 등 농업 수출국들과 다국적 곡물회사들의 요구로 제기된 우루과이 라운드(UR) 농업협상은 공식적으로 개시된 1986년 이전에 이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다가 UR 협상이 시작되고 2-3년이 지나서야 협상동향을 부분적으로 공개하였으며 보조금 축소가 큰 타격이 되는 한국 농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국제수지적자(BOP) 품목이었던 14개 기초농산물(고추, 마늘, 양파, 참깨, 감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및 유제품, 사과, 포도, 포도주스, 사과, 사과주스, 과즙음료 등)을 낮은 관세로 개방하게 된다. UR 협상의 결과로 한국정부는 쌀 수입을 최소시장접근(MMA) 형태로 허용하였고, 쌀을 제외한 206개 농산물의 비관세장벽을 관세로 전환하여 개방하였으며 매년 800억 원의 농업보조금을 감축하기로 하였다. 농림·축산물 수입액은 51.2%로, 농산물 수입자유화율은 1994년 83.3%에서 1999년 98.3%로 증가했다. 모든 관세 및 관세상당치의 양허의무에서 쌀은 제외되었으나 총 1,312개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WTO에 양허하였다. 2004년까지 10년 간 관세화를 유예하고 10년차에 관세화 유예여부를 재협상하되, MMA 물량(1~4%)은 허용토록 하였다.
WTO 체제의 출범 이후 체결된 자유무역협정, 투자협정 등은 국내 독점적 기업의 해외시장의 판로와 상대국의 값싼 농산물수입을 맞바꿈으로써 국내 산업구조를 뒤흔들었다. 한국정부는 개도국으로서 유일하게 2003년 칸쿤에서 타결하는 데 실패한 도하개발의제(DDA) 협상과정에서 제출된 농업협상 제안서를 승인했다. 호주, 미국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 수출국 및 EU만이 개방제안서를 제출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개방 수치까지 스스로 밝히면서 말이다. 그 내용은 2006년부터 6년 동안 관세를 감축하되 품목별로 최소한 15%를 줄이고, 농업 국내보조금 역시 6년에 걸쳐 총액기준 55%를 감축한다는 것이다. 한·칠레 FTA 발효 이후 칠레산 농축산물의 수입은 전년 동기대비 50.3% 증가하여 전체 농축산물 수입 증가율 12.3%를 크게 상회했으며, 칠레가 차지하는 수입에서의 비중도 0.7%에서 1.0%로 높아졌다. 특히, 한·칠레 FTA 발효로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거나, 관세 철폐기간이 짧아서 관세 인하 폭이 큰 품목의 수입이 대폭 증가했다. 한국정부의 농업에 있어서의 일관된 개방정책은 식량자급도를 지속적으로 하락시키고 경지면적을 감소시키고 다수의 이농을 불러왔다.


WTO 개방도 모자라서 자유무역협정까지

안성은 쌀, 배, 포도, 인삼이 주요 작물이었다고 한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하 FTA)이 체결된 후 제일 먼저 포도 농사가 눈에 띄게 줄었다. "포도가 확 줄었어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고 나서 안성에서만 50%가 넘게 폐업을 신청했어요. 폐업 신청하면 정부에서 보상을 해주는데, 주로 시설투자에 대한 거죠. 포도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워야되고 하니까 시설투자가 필요한데, 거기에 대한 보상이죠. 그렇게 폐업 신청하고 나면 거기에 다른 작물을 심는데, 어떤 분은 포도 시설 그대로 있는 데다가 애호박을 심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애호박은 포도에 비해 가격이 싸고, 그러니 소득 보전이 될 리가 없죠."
요즘엔 배도 많이 줄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쌀 관세화 추가 연장 협상에서 중국과의 부가협상을 통해 중국산 사과, 배 등 4종의 과일에 대해 검역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음을 발표했다. 이후 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배 농사를 짓는 분이 계시는데, 이제 그만두고 공장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으세요. 요즘엔 이런 분들도 있대요. 한국에서 배 농사를 짓다가 종자랑 기술이랑 가지고 중국으로 가시는 거죠. 거기서 더 넓은 땅에 더 싼 노동력으로 대농장을 경영하는 거죠. 그런 배는 한국 배하고 똑같은 건데, 가격은 훨씬 싸니 경쟁이 되겠어요?" 배 농사가 많은 나주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들어오는 게 없잖아요. 들어올 거라고 하니 문제가 되는 건데, 중국산 배는 가격이 국내산의 1/10밖에 안 돼요."
투기성 농업 형태도 확산되고 있다. 농민들이 자꾸 내몰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크게 돈을 벌 수 있는 작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냥 죽을 수는 없으니까 한 판을 노려보자고 도박을 할 거 아닙니까. 규모를 늘인다거나 밭작물이나 하우스 작물 같은 경우에는 희소성의 가치를 살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한다는 거죠. 대표적인 경우가 요즘 동네에서 한라봉을 하는데 이게 제주도에서 불 때가면서 해야 겨울에나 생산할 수 있는 과일이라는 거죠. 이게 나주에도 와있고 충청도까지 올라가 있다고 합니다. 한라봉을 수확하려면 3년 동안 다른 과실농사를 못 짓고 불을 때줘야 해요. 일년에 불을 땔 때 최소 1,500만원이 들죠. 3년을 한다 치면 4~5천 이상이 들고, 3년 후부터 수확을 볼 수 있는 거죠. 올 겨울에 처음 수확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문제는 그런 것을 너도나도 하고 있다는 거죠. 농산물 가격이 보장이 안되니까 그렇게 투기 작물로 계속 집중이 되는 거예요. 아마 작년 정도의 한라봉 가격이라면 적자가 아닐 텐데, 원래 농산물은 공급량의 1% 차이가 가격을 폭락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농민에겐 나라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죠. 딱히 할 말 없네요. 너무 줏대가 없다고 할까. 농민은 국민이 아닌 거죠. 농민에겐 나라가 없다고 얘기들 합니다." 농업의 대형화 규모화를 실현하기에는 토지의 한계가 있는 우리나라는 개방의 물결 속에서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농업을 포기하고 오히려 공산품 수출에 주력하자는 것이다. 농민들은 이런 정부의 정책에 불만도 많았고, 우려도 많았다. 강상욱 총무부장은 씁쓸하게 전했다. "노무현 정권처럼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농민들과 농업을 말살하는 정권은 없었다고들 얘기해요. 갑작스럽게 지원을 중단하지는 못하죠. 하나하나 조금씩 포기하게 만드는 거죠. 대형화를 해야한다고 말을 하는데,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미국처럼 대형화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대형화 추진한다 하면서 작은 농사를 하나씩 줄여 가는 거죠. 오죽하면 농민들이 작년에 다 지은 논을 가을에 갈아엎는 투쟁을 했는데, 얼마나 속이 쓰린지 모르시죠. 제가 아는 형 하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밤에 부인 붙잡고 우셨대요."
실제 정부는 농업 포기를 유도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고급화, 규모화와 같은 방향을 내놓고, 거기에 맞는 지원 정책을 고안했다. 나주시 농민회 정영석 정책실장은 최근 정부의 친환경 농업 유도 정책의 문제를 짚어냈다. "최근 정부에서 친환경·유기농 만이 농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를 계속 하면서 친환경농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어요. 그런데 사실 이것도 문제가 많아요. 예를 들어 벼를 친환경으로 재배한다 하면 비싼 가격으로 팔려야 할 것 아닙니까? 작년 화순 얘기를 들어보니 오리 쌀(논에 오리를 키워서 해충을 제거하는 방식의 쌀 농업 방식)을 일반 매상했다 하더라고요. 판로가 확보가 안 되는 거예요. 지금도 이런데 이제 너도나도 친환경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또 중국에서 녹색미라는 쌀이 들어온다는데, 낮은 인건비로 생산비를 훨씬 적게 들여 만들어낸 무농약 쌀이 곧 들어온다는 거죠." 강상욱 총무부장의 말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친환경·유기농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친환경·유기농 쌀값이 다 떨어지는 거예요. 게다가 성공할지 여부도 불투명해요. 요즘 오리 쌀, 우렁이 쌀(논에 우렁이를 키우는 방식)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우렁이는 추운 지방에서는 겨울에 다 얼어죽어요. 원래는 이게 겨울에도 그냥 살아있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하는 거죠, 어쩔 수 없으니까."
정영석 정책실장은 정부의 농업포기 정책에 우려를 표시했다. "올해 식량이 당장은 남아돌더라도 내년에 당장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토를 보존하고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농업은 무조건적으로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은 포기한다니 문제죠. 외국의 경우도 그런가 하면 유럽, 미국 등의 선진국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막대한 보조금을 주고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대해서만 수입 개방해라, 보조금 삭감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거죠."

노무현정부의 '농업·농촌 발전 기본계획'

노무현 정부는 한·칠레 FTA에 대한 국회비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지원 특별법'을 비롯하여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등 4대 입법안을 연계처리하였다. 또한 향후 10년의 농정과제를 정리한 '농업농촌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관련하여 2004년 12월 농림부에서 제출한 농업농촌종합대책의 내용은 크게 ▷농업의 체질강화, ▷농업인의 소득 및 경영안정, ▷농촌 복지증진 및 지역개발, ▷지역농업 발전계획의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있다.

- 농업의 체질강화
추곡수매제의 폐지와 공공비축제도 도입, 가격결정의 시장기능 강화 등 시장을 지향하는 제2단계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또한 영농을 규모화하여 2010년까지 6헥타르(ha) 수준의 쌀전업농 7만 호를 집중 육성하고 농지소유제한을 완화하는 등 농업의 시장지향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친환경 농업을 육성하고 브랜드 중심의 고품질 농산물 유통체제를 구축할 것을 장려하고 있는데 이는 소품종 농작에 농민들이 집중하여 나타나는 작목의 협소화, 지나친 가격경쟁을 방지하고 영농을 규모화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식량자급률을 더욱 낮추는 효과를 낳을 것이며, 규모화, 기계화에 따른 생산설비 구입을 위한 농가부채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구조조정에 따른 보완대책으로 경영이양직불제 확대 개편, 자유무역협정(FTA) 지원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현재 극히 제한적이다.

- 농업인의 소득 및 경영안정
직접지불제의 확대와 농가 경영 위험 관리 시스템 강화 대책과 더불어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는 것은 2,3차 산업유치를 통한 농외 소득원의 확대다. 2013년까지 농촌관광을 통해 연간 150백만 명의 도시민을 농촌으로 유치하겠다는 발상은 농지제도 개편과 무분별한 농촌개발이 동시 시행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2013년까지 농촌관광마을이 32개에서 1000개로 늘어나고 농공단지를 확대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농가소득증대 정책'은 노무현 정권의 농업포기정책의 기조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 농촌 복지증진 및 지역개발·지역농업 발전계획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특별법'을 제정하여 농촌복지, 교육, 지역 개발을 위한 범정부적 지원체계 마련하는 한편, 지역농업 발전을 위한 기술, 정보, 인력 등 모든 가용 자원을 통합적·유기적으로 결집한 지역농업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재정지원은 별도 편성된 사업비가 아니라 기존의 농림예산에서 충당된다. 실제 119조원 투융자 지원계획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96조원은 이미 편성된 농림예산임에도 일반국민들에게 농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라는 비판이 이는 등, 전형적인 전시행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위의 내용을 골자로 2007년 이전까지 농업·농촌기본법 등 14개 법률의 제, 개정을 추진하여 종합대책의 법적·제도적 뒷받침 마무리하고 경쟁 제한적 규제완화, 도시자본 유치 촉진 등을 위한 법령정비도 완료할 방침이다.


추곡수매제 폐지, 농지법 개정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은 점점 더 나아가고 있다. 정부는 도하개발의제(DDA) 쌀 개방 협상에 따라 농가보조금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하고 정부가 일정 분량의 쌀을 시가로 매입해 시가로 방출하는 공공비축제도를 도입,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나서 농민들은 농사짓기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추곡수매제도는 2월 중에 약정 수매량을 예시하면, 3·4월에 희망농가와 지역 농협간에 추곡수매 약정을 맺고 수매대금 일부를 4, 5월에 미리 선도금으로 지급 받고 가을에 나락을 내는 제도다. "현실적으로 나락 값이 뚝 떨어졌어요. 나락 40㎏가 5만 5천 원에서 6만 원 정도 했거든요. 이게 5만 원대로 떨어졌어요. 시중에서는 가격이 뚝 떨어졌고 정미소에서 나락 구입을 안 해요. 싼 수입쌀이 들어올 테니까. 그게 바로 나타나는 현상이죠." 나주시 농민회 김요섭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선도금이 없다보니 농사에 착수하지 못하거나 빚을 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게다가 농지법 개정도 농사 포기를 부추기고 있다. 장동화 강원도연맹 의장은 "지금 정부에서는 농지법을 완화해서 도시에 있는 사람들 아무나 농지를 살 수 있게끔 만들려 하는데 지금 강원도의 경우에는 농토가 경매에 넘겨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경매낙찰 가격이 상당히 높습니다. 지금 강원도 농지는 외지인에게 2/3 이상이 넘어간 상태입니다"라고 전했다. 안주용 교육부장은 현재 정부의 농지법 개정 움직임이 '개발을 허용하겠다'는 것이고, "농업은 기본적으로 농지와 함께 가야 하는데, 농지를 그렇게 내놓는다는 것은 농업포기정책의 최첨단을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안성에서도 공도면이 읍으로 개편되고, 인구 유입이 늘면서 예전 인삼농지였던 땅이 대부분 아파트로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땅 값이 오르면서 농사를 포기하고 땅을 파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다시 더 싼 농지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점차 농업은 변두리로 몰려나고 있었다.

"농사로는 먹고살기 어렵다보니 이것저것 많이 해요."

농가부채에 가격 하락, 요즘 농사만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사와 다른 일은 겸업하는 농가가 늘고 있었다. 나주시 농민회 김요섭 사무국장의 부인은 학원에서 컴퓨터 강사를 한다. "먹고살기 팍팍하니까 마누라 보내는 건데, 그거 할 때와 안 할 때 생활의 차이가 엄청나요. 요즘 출퇴근 농사경향도 늘고 있어요. 송정리나 광주 근교 아파트에 살면서 이 쪽으로 농사지으러 출퇴근하는.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이죠. 아니면 동네 아주머니들 중에는 버섯공장 같은 데 다니시는 분도 있으시고, 다른 지역 같은 경우는 식당을 운영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소득도 문제고, 아이들 교육환경도 문제가 된다.
서울과 가까운 안성은 겸업화 경향이 더욱 심했다. "전업농은 매우 적다고 봐야해요. 공장을 다니면서 농사를 짓거나. 부인이 회사를 나가거나 식당을 차리는 경우도 많고, 아니면 부부가 둘 다 일을 하고 휴일이나 주말에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어요. 남편은 농사짓고, 부인은 학습지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다고 농사를 적게 짓는 것도 아니에요. 2만평, 3만평씩 지으면서도 소득이 안 되니까 다른 일을 하죠. 정말 힘들죠." 그렇게 공장을 나가는 경우도 주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일을 한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농가부채가 늘어만 간다. "사실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금 농사짓는 규모보다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전망이죠. 특히 젊은 사람들, 40대의 경우에는 농사규모를 늘일 생각을 하고 있죠. 그래야 소득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니까. 임대를 하든 매입을 하든 간에. 그런데 규모화 한다는 것은 비용이 는다는 것이고, 그게 만만한 상황이 아니에요.", "시골에 가보면 거의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기계를 다루기 힘드니까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본래 자신이 가진 토지가 없어요. 그렇다보니 모든 것을 정부 정책 자금에 의존해서 농토도 마련하고 기계도 마련하고 보통 이렇게 하죠. 다 융자를 받는 셈이에요. 농산물 가격이 보장 안되니 빚은 늘죠. 아주 건실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일수록, 농사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빚이 많아요." 정부가 농업포기정책을 고수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수입 농산물 유입이 늘어날수록 더욱 심각해질 문제다.

"식량 주권의 문제인데, 농민들은 외롭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6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무현 정부가 이들을 파업이라는 극한 상황에까지 몰아넣었다. 작년에는 다 지은 농사까지 갈아엎었지만,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농민에게는 생소한 '총파업'이라는 전술을 택한 것은 무엇일까? 김요섭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에게 가장 높은 수위의 투쟁이 파업투쟁 아닙니까? 그만큼 농민의 문제가 벼랑 끝에 서있는 상황에 왔다, 기본적으로 뒤집어엎지 않으면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인식에서 총파업이라는 명칭이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방식과 전술에 대해서도 다양한 고민이 나오는 듯 했다. 나주시 농민회는 현재 회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대체로 회원들의 의견이 농기계 다 멈추고 일손도 멈추고 농기계 다 모아서 가능하다면 도로봉쇄도 하고 일 안하고 다 모여서 한판 하는 거죠. 그 이외에도 농산물 출하거부랄지 미곡종합처리장(RPC. 반입에서부터 선별·계량·품질검사·건조·저장·도정을 거쳐 제품출하와 판매, 부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미곡의 전과정을 처리하는 시설) 쌀 출하 중단, 직판장 봉쇄 , 농업공조 휴업, 초·중등학교 아이들 학교 안보내기 등등이 6월 20일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안성시 농민회도 여러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물류시장을 막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현실성이 있는 것은 아닌데, 가락동이나 이런 곳을 2~3일만 막으면 굉장히 강력한 투쟁이 되겠죠. 하지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견도 있고." 어떻게든 농민들의 결의와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장동화 강원도 연맹 의장은 쌀 농사가 많지 않아 WTO 쌀 개방 저지 투쟁이 농민들에게 전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농협노조 등과 연대해서 그 날은 강원도에 있는 전체 농협이 파업을 하도록 이야기하고 있고, RPC 같은 정부기관 창고 등을 봉쇄하고 타격하는 투쟁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농업이 나갈 길은 험난하지만 농민들 스스로가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투쟁해서 이를 꼭 이뤄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결의를 밝혔다.
총파업을 준비하는 농민들은 이 투쟁이 "농민의 생존권 문제도 있지만 한 나라의 식량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한다. 식량주권은 이제 민족적 식량자급을 포함하여 토지, 생명, 유전자원, 농업지식에 대한 농민의 권리, 농민 자신이 농산물 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로 나아가고 있다. 이 투쟁을 준비하면서 농민들은 사회운동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어찌 보면 농민들은 상당히 외롭게 투쟁을 하고 있죠. 언론 보도 태도만 보더라도 불 한 번 질러야 화면에 나올까 말까 하지 심층분석이나 이런 데 나오는 법 없잖아요? 집회에서 이런저런 단체들이 연대발언도 하지만 그 순간뿐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왜 이런 문제가 전체 운동 내에서 식량주권을 지켜내는 투쟁이기보다는 농민들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함께 투쟁했으면 합니다."

쌀협상 이면합의 파문에 대한 진실

1. 쌀협상임에도 쌀 이외의 품목에 대한 개방요구까지 수용한 것은 협상 실패의 대표적 사례임
정부는 협상대상이었던 9개국과 쌀개방과 관련한 이행계획서외에 5개국(중국, 아르헨티나, 캐나다,이집트, 인도)과 별도의 합의문을 작성함.

-합의사항

1) 중국
사과, 배, 양벚, 롱간, 여지 의 수입위험평가절차의 조속한 추진.
농수산물조정관세 품목 축소 또는 관세인하 등을 위한 노력. 식물검역 정례협의회 출범 노력.

2)아르헨티나
검역절차가 진행중인 닭고기(2단계), 오렌지(5단계)에 대한 수입위험평가를 신속히 진행.
쇠고기 관련 자료가 접수되는 대로 수입위험평가 절차 개시. 쇠고기 관련 자료가 접수되는 대로 수입위험평가 절차 개시.

3) 캐나다
완두콩과 유채유 관세를 인하하기로 합의

4) 인도, 이집트
대북지원과 같은 식량원조시 자국쌀을 우선 구매해 주겠다고 합의.

정부는 UR농업협정문 부속서 5.2절 9항에 명기된 '관세화유예 연장시 추가적이고 수락 가능한 양허를 부여한다'는 조항을 들면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음.
하지만 통상학계 내에서는'우리 정부가 국익을 위해서라도 협정문을 좁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출국들의 논리에 빠져 쌀 이외 품목에 대한 개방요구까지 수용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임.(이번 협상은 쌀에 대한 관세화개방 유예를 연장하기 위한 협상이었으며, 쌀이외 품목도 협상대상이 된다는 규정 역시 없음으로 타품목은 협상대상이 아님을 강력히 주장했어야 함)

2. 정부는 지난해 쌀협상과정에서 타품목과는 연계시키지 않겠다고 누누이 밝혀왔음. 하지만 이것이 거짓 진술이었음이 밝혀진 것임 (정부는 국회조차 기만함)
지난해 12월 22일 국회 농해수위 업무보고시," 미국, 중국 등과 큰틀에서 합의하기 위해 이면합의또는 쌀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통관절차, 검사기준 완화, 다른 품목의 검사기준 완화 등 부대적인 양보를 한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서도 농림부장관은'쌀 이외의 부가적인 합의는 전혀 없다'고 밝혔음.(제251회 국회 농해수위 회의록 p8)
그러나 최근 파문이 불거지자 4월 15일 농민단체 간담회에서 농림부 차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각국과의 부가합의가 이미 지난해에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남.
-" 지난해 12월 30일 쌀협상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쌀 이외 품목에 대한 양자협상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3. 정부는 지난 4월 12일 쌀협상 최종결과 발표시에도 각국과의 별도 합의내용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축소 발표하려는 의도마저 보였음
애초 발표에는 민감한 사안이 중국산 사과, 배, 아르헨티나의 쇠고기 등을 빼고 발표했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발표함.
- 중국산 사과는 생산량(세계 1위), 가격은 국내산의 29~34% 수준임.
- 중국산 배는 생산량(전세계 생산량의 55%), 수출 세계 2위, 가격은 국내산의 31~48% 수준임.
- 아르헨티나 쇠고기는 세계 5위 수출국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쌀협상 이면합의의 전모」,『농민의길』,2005.5(17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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