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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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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자

윤애림 | 불안정노동팀
- 민주노총의 5월 총파업투쟁에 부쳐 -


4월 총선이 끝나면서부터 정국은 급속도로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제도정치권의 정계개편구상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총선까지 일시정지 상태였던 공기업 및 금융권 구조조정이 서서히 재개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은 임단투의 본격화와 함께 5월 총파업투쟁을 조직해 들어가고 있다. 총선을 경과하면서 서로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얽히고설켰던 각 세력의 행보가 보다 분명한 방향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조직하고 있는 5월 총파업은 그 폭과 수위에 따라 김대중정권의 향후 정국운영 및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의 향방을 크게 좌우할 계기점이 될 것이다. 김대중정권 출범 이후 폭력적으로 진행돼 온 노동에 대한 공세를 일정하게 반격해 내고 노동대중의 요구와 투쟁의지를 분명히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신자유주의적 공세 앞에서 노동대중이 사분오열하며 부분적으로 투항해 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인지가 판가름날 것이다. 그런 만큼 민주노총의 5월 총파업투쟁에 쏠리는 관심과 요구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1월부터 민주노총은 5월 총파업투쟁을 준비하는 3대 요구를 제시한 바 있다. 그것은 알려져 있다시피 "주5일근무(주40시간제) 실시", "구조조정 중단과 단체협약·임금 원상회복", "조세개혁과 사회보장예산 확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요구사항들은 IMF사태 이후 폭력적으로 강탈당해왔던 노동의 권리들을 회복하고자 하는 내용과 함께 고용위기의 시대에 노동대중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민주노총의 3대 요구는 그 문제의식과 주체의 역량에서 볼 때 단지 노동조합운동만의 요구가 아니라 전 민중운동의 요구를 규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민주노총의 3대 요구를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반대하는 투쟁'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5월 총파업의 전선을 확장시켜 내기 위한 몇 가지 지점들을 고민해 보려 한 것이다.


◇ '실업'의 폭발에서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으로

먼저 5월 총파업이 놓여 있는 노동대중의 현실이 어떠한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은 한마디로 "실업의 폭발에서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으로"라고 압축할 수 있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눈에 띄게 낮아졌지만, 실업의 구조는 더욱 악화되어 상당수의 실업자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그도 아니면 장기실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하는 보고서에도, 현재의 상황이 경기변동에 따른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구조적 폐해로 각인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다음의 표와 그림을 통해 현재의 고용구조의 단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표 1> 경제활동인구조사


외환위기 이후 악화추세를 지속하던 고용사정이 1999년 2/4분기 이후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 1>에서 보듯이 각종 고용지표가 이전 수준으로 쉽게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기업들이 경기회복에 따라 노동자들을 새로이 더 고용하기보다는 기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려 생산을 확대하는 경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실업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실업률이 구조적으로 높아진데 주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산업별·종사상 지위별 구성비



<그림 1>을 통해서 불안정 노동자의 분포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산업별로는 일용직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산업은 농림어업(72.2%)과 건설업(52.1%)이며, 임시직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산업은 도소매음식숙박업(56.8%)이며 그 다음으로 금융보험업(36.8%), 제조업(27.9%), 기타서비스업(27.7%)의 순이다. 특히 최근에 고용 흡수 효과가 상대적으로 높은 도소매·음식숙박업과 금융, 보험 및 기타 서비스 부문에서 상용직 구성비가 두드러지게 낮은 현상은 최근의 고용형태가 상용 정규직보다는 임시 계약직으로 흐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몇 가지 표만 가지고도 우리는 현재 노동대중의 삶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최근의 경기회복이 더 이상 고용회복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부분적인 고용회복도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통계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면 다른 사례들을 열거할 수도 있다. 우선, 공공근로의 축소 및 폐지로 인한 실업률의 증가와 실업자 생계보전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정부는 2000년 실업대책에서 단기일자리 제공을 위해 공공근로사업에 1조 1000억 원을 투입하되 1/4분기에 재원을 집중운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4월 10일부터 시작되는 2단계 공공근로는 1단계의 1/5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1단계 41만 1천 명이었던 공공근로 참여자는 2단계에서 7만 7천 명으로 33만 4천 명이 줄어들며(이는 33만 4천 명의 실업자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3단계 예산을 2단계로 앞당겨 사용할 경우 3, 4단계는 그 시행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음, 근로자파견법 시행 2년을 맞는 올 6월에 파견노동자에 대한 대량해고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1998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근로자파견법 제6조 제3항을 보면,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그)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되어 있다. 애초 이 규정은 파견노동자의 사용기간을 제한하여 정규직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을 방지하고, 장기간 사용된 파견노동자의 경우 사용사업체와의 고용관계를 보장해 주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사용사업체의 대부분이 파견노동자를 기업의 상시적인 업무에 활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단기간 고용계약의 이점 때문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인 만큼 이 규정으로 인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반길 리가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용사업체가 파견노동자 사용 2년이 되는 올 7월 전에 이들과의 고용관계를 단절하고자 할 것이 분명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2, 3분기 실업대책 예산의 부재, 공공근로의 축소 및 폐지, 파견노동자의 대량실직 위기 등은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요인들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현재의 경제구조가 고용파괴를 확산시키고 있음과 '안정적인 일자리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용구조의 악화는 실업노동자와 불안정노동자만이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은 정규직노동자들도 위협하는 것이다.


◇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

그렇다면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인식과 대응은 어떠한가? 이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민주노총의 2000년 3대 요구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민주노총은 "주5일근무(주40시간제) 실시", "구조조정 중단과 단체협약·임금 원상회복", "조세개혁과 사회보장예산 확대"를 3대 요구로 내걸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20∼21일의 민주노총 전국단위노조대표자 수련회 결의문에서는, 주5일근무제 실시, 자동차해외매각·공기업민영화·정리해고 중단, 임금 15.2% 인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차별철폐, 사회보장예산을 GDP기준 10% 이상 확보가 투쟁요구로 정식화되었다. 그리고 이상의 투쟁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노동절 투쟁, 5월 중순 단위노조 파업결의를 거쳐 5월31일 총파업돌입을 계획으로 제출한 바 있다.

민주노총의 투쟁요구를 다시 요약하면 구조조정 2년여 동안 훼손돼 왔던 임금과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고, 사회보장의 확대를 통해 실업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특히 민주노총의 투쟁요구 속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철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민주노총이 2000년 주요사업으로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를 제출하고 있다는 것 등은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한 노동조합운동 차원의 적극적 대응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5월 총파업이 조직되어 가는 과정에서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한 공세적인 대응문제는 뒤로 밀리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

먼저 민주노총이 제출한 투쟁과제 자체가 이러한 우려지점을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투쟁요구 자체가 현재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을 위해 싸우고 이미 불안정노동자나 실업자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깔려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를 주된 과제로 제시해 놓고서도 이를 실현시킬 수 있을 만한 대중투쟁의 계획은 전혀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상반기에는 비정규직·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5억 기금 마련, 하반기에는 비정규직노동자와 관련된 법제도적 개선요구가 실물화되고 있을 뿐이다.

당장 6월에 파견노동자의 대량해고사태가 예상되고 있고, 이를 빌미로 파견법에 대한 규제를 좀더 완화하려는 자본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민주노총 차원의 진지한 대응계획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당면한 5월 투쟁에서 중심은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회복'이고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나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대한 반대'는 수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아가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면서도, 구조조정의 본질적 내용이라 할 수 있는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해서는 대단히 협소한 시각에서 대응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노동의 불안정화는 "취업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지키기와 불안정·실업노동자들을 위한 법제도개선"이라는 도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노동대중의 생활 전반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노동력사용에 대한 일체의 규제를 없애버리려 하는 구조조정 자체에 있는 것이고,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권리'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불안정노동의 확산은 노동대중 내부의 경쟁과 상호배제를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적 요구라 할 수 있는 '임금인상' 요구에 대해 국가와 자본은 "임금이 올라가면 실업자도 늘어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는데, 이런 논리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취업자와 실업자가 함께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노총의 투쟁요구는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정규직노동자들만의 요구로 고립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 문제를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로 가두려는 사고는 취업노동자들 스스로의 투쟁의 가능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 '빈곤'과 '불안정노동'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조직하자

지금시기 빈곤 확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자리를 파괴하고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는 구조조정 자체에 있다. 지금시기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는 우리의 요구는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 창출", "실업과 불안정노동을 확산하는 구조조정 반대"로 맞추어져야 한다. 현장에서 5월 총파업에 대한 대중동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구조조정 2년간의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이라는 수세적 차원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에 대한 반대라는 공세적 차원에서 투쟁요구를 제출하고, 불안정노동자 및 실업자와 함께 연대투쟁을 벌일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노동대중의 정당한 요구가 정규직노동자들만의 집단이기주의로 고립되지 않도록 스스로 투쟁의 요구와 전선을 확장시켜내야만 한다.
1998∼1999년에 걸쳐 진행된 실업자들과 불안정노동자들의 초기적 조직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에는 불안정노동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의 조건을 준비해 가도록 하자. 공공근로의 폐지, 파견노동자에 대한 집단적 해고사태 등에 대한 대응에서부터 투쟁을 조직화해 들어가자.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에 대한 노동악법 철폐투쟁을 대중적으로 벌여내자. 이번 노동절에서부터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가 함께, 그리고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함께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확산에 반대하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내자.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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