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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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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노동자 대량해고에 맞선 투쟁을 준비하자

심재억 | 불안정노동연구팀
근로자파견제 시행 2년, 임박한 대량해고에 맞선 노동운동의 대응이 절실하다

우리는 역사적인 노동자 총파업투쟁 이후, 1997년∼1998년을 경유하면서 이루어진 일련의 노동법 개악을 기억한다. 이 과정 속에서 현행법상에 정리해고제, 단시간근로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법 등이 명문화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들 모두는 노동법개악 이전부터 노동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온 것들이었는데, 현행법에 명문화됨으로써 불안정노동이 확산되는 사회적 흐름을 정당화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이들 중 근로자파견제의 문제가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현재 취업자 중 5만여 명에 달하는 파견노동자 대부분이 근로자파견제 실시 만 2년이 되는 오는 6월말께 다니는 직장에서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1998년 2월 20일 제정되어, 1998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제5512호, 이하 근로자파견법)에 의하면 파견기간이 최대 2년이 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상황은 '6월 무더기 실직위기설'로 표현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에 발맞추어 근로자파견법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재계와 노동계, 정부의 행보 또한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파견근로법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이에 입각한 파견근로자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실물화된 투쟁은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이 글은 근로자파견제의 본질과 지난 2년간 근로자파견제가 양산해 온 문제점들을 살펴봄으로써 임박한 대량해고의 원인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또한 근로자파견법을 더욱 개악하려는 자본측의 논리에 맞서 파견근로자의 생존권을 쟁취해 내기 위해 노동운동에게 요구되는 대응의 방향에 대하여 간략히 서술해 보고자 한다.


IMF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근로자파견제의 합법화

우리나라에서 파견근로가 발생하게 된 직접적 배경은 두 가지 사회적 변화에 기인한다고 한다. 첫째는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임금 급상승 등의 영향으로 기업들이 정규근로의 기피와 임금비용 감소를 목적으로 파견근로를 선호하였다는 것과, 둘째는 일본의 경우 1986년부터 파견근로가 합법화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제도를 본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파견업체의 대부분은 1987년 이후에 사업을 개시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우리나라에서 근로자파견법이 제정되기까지의 역동적인 과정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근로자파견법 도입의 문제는 노사정 간에 입장의 차이가 확연할 뿐만 아니라, 정리해고제와 함께 노동계가 격렬히 반발해온 입법이었다. 근로자파견법의 제정은 고용과 노동조건 전반의 저하와 함께 노조의 단결권을 심하게 훼손할 것이라는 노동계의 입장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인력수급의 효율화를 위해 그 제정이 시급하다는 사용자의 입장은 사실상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던 중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12월 5일 발표된 [IMF 자금지원 합의내용]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게 되었다. 1997년 12월 24일에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1998년 2월중에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의 입법을 추진하기로 IMF측과 합의하였다고 발표하였다. 1998년 2월 9일에 노사정간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이 이루어지면서 6년여를 끌어온 근로자파견법의 제정 문제가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근로자파견제 합법화가 남긴 쟁점들

근로자파견법이 입법화될 당시 이를 정당화해 주었던 논리는, 기왕에 존재하는 파견근로 중 일부를 합법화함으로써 파견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 근로자파견사업의 적정한 운영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강력한 논리는 위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IMF 경제위기를 빌미로 근로자파견법이 전격적으로 입법화됨으로써 노동의 유연화를 구조조정 시대의 대세로 기정사실화하였다는 점이다. 나아가서 노개위와 노사정위를 거치면서 노사정의 합의 속에서 근로자파견법이 입법화되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즉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가속화시키는 근로자파견법이 통과되는 데 민주노총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사정간의 역관계에서 노동조합이 열세였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근로자파견법에 대한 계속적인 문제제기와 대중적 투쟁의 계기들을 여하하게 배치하지 못했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렇듯 근로자파견제 시행 2년을 온전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현행 근로자파견제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노동의 유연화로 대별되는 자본의 요구와 노사정합의주의를 통한 포섭과 배제의 전략이 발현되고 있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낼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행 근로자파견법의 시행이 낳고 있는 문제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근로자파견제가 양산하는 문제점들

첫째, 근로자파견제 자체에 내재한 문제점이다. 근로자파견제는 원래 법으로 금지되었던 근로자공급사업 중 일부를 합법화한 것이다. 그만큼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고용 및 근로조건 전반의 악화와 단결력의 저하로 귀결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파견근로제는 태생적으로 근로계약관계와 사용종속관계의 괴리를 통해 일정 정도의 중간착취를 용인해 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 또는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또는 일시적·간헐적으로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는 근로자파견법의 규정은, 실제로 파견근로자가 생산직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근로자파견법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는 대다수의 파견기업들이 노무도급계약 등의 형식으로 불법적 근로자파견사업을 벌일 수 있는 기회를 오히려 마련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파견근로제 운영상의 문제점이다. 파견업체들의 대다수는 유료직업소개소와 거의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 근로자가 파견업체와는 근로계약관계를 가지면서 실제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은 사용업체로부터 받는다는 점에서 근로자파견제는 근로계약관계와 사용종속관계의 괴리로 인한 근로자의 고용불안 및 근로조건 저하의 가능성을 항상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파견업체가 파견근로자를 상용으로 고용하지는 않으면서도 파견근로자의 근로계약 및 파견계약을 1년 단위로 반복 갱신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상용근로자로 일하게 함으로써, 일단 어떤 사유로든 사용업체와의 파견계약이 종료하면 해당 파견근로자는 실질적인 해고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러한 항상적인 고용불안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사용업체가 요구하는 잔업 및 규정외 업무를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셋째, 파견근로자에 대한 전반적인 처우의 열악함이다. 파견근로자들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단지 파견근로자라는 이유로 임금수준 및 복지제도의 적용에 있어서 차별적인 취급을 받고 있다. 실제 1997년 조사에서 나타난 사용업체와 파견업체간의 용역비 내역을 살펴보면, 직접인건비 75.7%, 간접인건비 8.5%, 일반관리비 9%, 파견업체 이윤 6.8%로 구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사용업체가 지불하는 용역비 중 75.7%에서 83.2% 정도가 근로자에가 돌아가고 나머지 20∼30% 정도는 관리비 등의 명목으로 파견업체가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파견근로자는 상용근로자에 비해 턱없이 낮은 50% 전후의 복지제도 적용률에서 볼 수 있듯이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정규직의 축소와 하향취업 경향이 가속화되는 문제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대다수의 기업들이 비용절감과 노동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파견근로를 확대해 나감에 따라, 파견근로가 주변부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근로자를 대체하고 일단 한번 파견근로시장에 진입한 근로자는 이러한 2차 노동시장에서 탈피가 어려운 영구화가 가중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섯째, 불법적인 근로자파견사업에 대한 규제와 파견근로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위에서 살펴본 제반의 문제점들로 인해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규제에 대한 행정당국의 의지박약의 문제를 넘어 근로자파견제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태도가 어떠한지 암시해 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하여 우리는, 근로자파견법이 입법화단계의 논리대로 파견근로자의 보호와 근로자파견사업의 적정한 운영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견근로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산출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파견근로제 시행 2년은 기본적으로 비용절감과 노동의 유연화라는 재계의 일방적인 이해가 관철되어 온 과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 시기 임박한 대량해고의 원인은 단순히 현행 근로자파견법 상의 규정-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파견근로제의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불안정노동의 전사회적인 확산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2년간 근로자파견제의 시행과정에서 파생된 제반 문제들-임금수준 및 근로조건의 악화, 고용불안의 심화, 정규직의 축소와 하향취업경향 등-의 심각성이 점차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지금, 임박한 대량해고의 위험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위와 같은 문제들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길과, 문제의 심각성에 편승하여 근로자파견제를 오히려 확산시켜 나가는 길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후자는 현 시기 자본측의 분명한 입장이다. 경총은 1999년 초부터 "파견근로의 범위확대는 신규고용창출과 기업부담완화라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파견근로자 대상범위의 확대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으며, 이제는 근로자파견 대상범위의 제한뿐만 아니라 파견근로계약상 규제들에 대한 완전철폐를 공공연히 요구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실제로 재계 쪽에서는 현행법상 올해 7월 1일로 예정되어 있는 파견근로기간의 만료에 의해 실업대란이 초래될 수 있다면서 파견근로기간의 제한을 2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는 탈규제를 통한 근로자파견제의 확산이라는 자본측의 입장을 노골화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에 비해 노동계의 입장과 계획은 어떠한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노동계는 전자에 입각하여 자신의 입장과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대량해고 사태를 대비하여 파견근로기간을 초과하여 계속 사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 부당해고 시에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의 신설, 노사정으로 구성된 실태조사위원회를 꾸려서 부당해고를 자행하는 기업을 '반사회적 기업'으로 규정하여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것 등으로 대략의 대응방향을 잡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처벌조항의 신설이나 실태조사위원회의 구성과 같은 제도개선 차원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지금은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위에서 언급한 재계의 주장을 수용할 가능성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현 시기 근로자파견제가 파생시키는 문제들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올해 6월중으로 예상되는 불법·부당해고 사태에 맞서 사용업체에 의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것, 상용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 나아가서 근로자파견법의 철폐를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요구에 입각하여 파견근로자 스스로 노조 등 자주적 조직을 중심으로 자기조직화를 이루어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은 제도개선 요구로 대응방향을 국한시켜서는 안되며, 파견근로자들의 투쟁을 통한 자기조직화 흐름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과 더불어 근로자파견법 철폐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시켜내기 위한 제반의 실천을 시급히 조직해야만 한다. 더 이상 정부와 재계의 장단에 놀아나고 뒷북만 치는 오점을 민주노조운동 역사 속에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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