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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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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관계의 변수-남북정상회담 분석과 전망

임필수 | 정책부장, 한반도팀
지난 4월 1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올해 6월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위한 준비접촉을 4월 중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3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아태 평화위 부위원장이 1차 비밀접촉을 시작한 이후, 단 몇차례에 걸친 협상을 통해 역사적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의 정치적 배경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교환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남북관계의 매 국면마다 임기 내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이에 비해 북한은 남북대화를 위한 '선행조건' 즉 한미일 (군사)공조체제의 중단, 국가보안법 철폐, 남한 통일운동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한국정부와 본격적인 대화를 할 뜻이 없음을 표명했다. 대북 비료지원과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놓고 간헐적으로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북한은 남측이 먼저 비료지원 의사를 보였기 때문에 만나는 것뿐이라고 강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반도 이슈는 주로 북한과 미국의 협상테이블을 통해 주도되었다. 북한은 남북대화를 부차화시키면서, 핵-미사일 이슈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 정치·군사적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 지원과 북일수교 등 외교적 성과를 달성하는데 주력했다. 클린턴 정부 역시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대한 도전이 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이슈를 미국 주도로 해결해나갔고, 이를 통해 북한이 의제화를 시도하는 주한미군 및 평화협정 등의 문제를 봉쇄하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또한 클린턴 정부는 '3자조정감독그룹'으로 명명된 한·미·일 고위급 협의기구를 구성하여 미국 주도 협상에 대한 한국 및 일본의 지원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구상 하에서 페리보고서가 작성되고 1999년 9월 북·미 베를린합의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및 대북 경제제재조치의 일부 해제가 이루어지는 등 가시적 조치들이 시험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북미간의 '페리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조짐이 보이는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된 것은 뜻밖의 사건이다. 물론 북한 고위급 외교관의 미국 방문이 이루어지고 북·일 수교협상이 본격화된다면 남북 고위급 대화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남북 양측의 정치적 의도가 크게 반영된 것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소망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정상회담 합의는 북한의 '선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실제 남북 비밀접촉에서도 적극성을 보인 것은 북한이었다고 전해진다. 북한은 최근 준비접촉을 위한 장소로서, 베이징 등 3국이 아니라 남한이 제안한 - 그러나 북한이 남북접촉의 장소로서 기피해왔던 - 판문점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북한은 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의욕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는 그만큼 북한이 대외관계 및 남북관계에 대한 면밀한 전략하에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도가 중첩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우선은 남측이 정상회담 성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북한은 기존의 '상호주의'의 틀을 벗어나 대북 경제지원을 얻고자하는 실리적 측면이 존재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열린, 남북 당국자회담에서 한국은 대북 비료지원이 실행되려면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구체적 조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상호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북한은 이에 반해 '남측이 대결정책을 중지하고 연북정책으로 전환하였다면 먼저 성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이번 대북 경제지원에는 아마도 비료지원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과 향후 미래의 대북투자에 대한 약속이 포함될 것이다.(4월 20일 <한겨레>는 5∼6월 중에 20만톤 규모의 대북비료지원이 계획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정부관계자는 이것이 남북정상회담과 무관하게 준비되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남북정상회담 합의에는, 외교적으로 구조적 열세에 놓여있는 북한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페리보고서로 집약되는 한·미·일 3국공조체제는 미국의 관심사를 3국 '공동'의 관심사로 끌어올려 이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도록 배치하고 있다. 물론 페리보고서는 북일대화(수교협상) 및 남북대화가 북미협상과 병행될 수 있도록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3국간의 협조체제하에서 긴밀히 조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한·미·일 3국의 공동 압박전선을 의미하는 '페리 프로세스'가 공고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난 해 북·미 베를린합의 이후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이 다소 느슨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정상회담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통해 협상경로를 다각화하고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한 출구로서 남북 정상회담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의 구조적 조건

그렇다면, 이러한 배경하에서 개최될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1998년 남북 당국자회담의 사안이 이산가족상봉 및 대북비료지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정상급' 회담은 그 위상에 걸맞는 의제 선정과 구체적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문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이번 남북정상회담 성사는 남북정부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이지만 그 전반적인 틀에 대한 미국의 규정력은 여전히 지대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정부가 의도하는 의제설정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 정상회담 개최합의가 발표된 다음날인 4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재결합을 최우선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특수'를 반복하여 언급하였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의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산가족 상봉와 남북경협 활성화에 맞춰질 전망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제 설정은 '페리보고서'를 통해 이미 예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페리보고서를 통해 남북대화의 의제는 '이산가족상봉'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등 남한의 '독자적' 관심사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이것은 남북협상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수정하게 만들 정도로 비약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나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이슈에 대한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들이 협의되는 것도 곤란하다는 메시지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이에 조응하여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간의 문제이다"(즉 남북대화의 협상의제가 되어선 안된다)라는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한국정부는 이 틀을 준수할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결국 이러한 구상대로라면, 이번 정상회담은 10년전 남북기본합의서(1991)에서 선언한 '화해·협력·불가침' 원칙을 추상적인 수준에서 재확인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남북 경제협력사업도 북한지역에서 자본의 안전하고도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기 위한 법·제도적 개혁과 재원조달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경제특구를 비롯하여 부분적인 개혁·개방이 실시될 수 있을지의 여부가 북한의 선택에 달려있는 문제라면, 구체적인 재원조달 여부는 남한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식량 및 에너지 지원, 사회간접자본 투자 및 북한 기간산업 재건 등에 투여될 비용을 약 200억 달러로 추산할 때, 한국정부가 마련해야 할 자금은 그 절반인 100억 달러 정도로 예상된다. 이 정도 수준의 비용은 일회적인 대북경제지원(예컨대 비료지원)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문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는 북·일수교가 이루어져 대북배상금이 지불되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시키면서 국제금융기관 차관을 허용할 때를 가정한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경협사업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미국 및 일본 각각의 관심사들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북협상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어야 하며 국내적으로도 대규모 자금이 북한에 투자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남북 경제협력의 강화를 위한 방안들이 '다각적'으로 검토될 수 있겠지만, 그 실행을 위해 밟아야 할 수순들은 많이 남겨져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 개최합의를 통해 대외관계상의 변곡점을 마련하고자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에 대한 주요고리들을 미국(및 일본)이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큰 돌파구가 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한국정부의 경우 북한을, 자신이 세운 대북 구도 속으로 인입시키려는 의지는 확인되지만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은 아직도 취약한 것으로 여겨진다.


남북정상회담, 모두에게 선물이 될 것인가?

그러면 실제 이번 정상회담까지의 판은 어떻게 꾸며질 것인가? 앞서 언급한 구조적 조건들이 남북준비접촉 과정을 통해 쉽사리 변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한국정부는 남북간의 화해를 상징하는 정치사적 의미를 부각시키며 그에 걸맞는 정치적 '세레모니'를 마련하는데 주안점을 둘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이산가족상봉은 남북화해를 묘사하는 극적인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북한특수'를 이슈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처럼 남북경협과 관련된 몇 가지 규모가 큰 사업아이템들도 발표될 수 있겠다. 언론에 보도된 바대로 모든 정부 관계부처가 정상회담을 위한 사업 아이디어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으며, 전경련을 비롯하여 각 재벌들도 저마다 대북 경제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안'을 내놓고 있는 등 대북정책의 '비지니스'적 마인드를 강화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대북정책이 갖는 정치적 적실성의 문제는 남북화해의 '경제적' 실용성으로 대체될 것이다. (또한 재벌들은 햇볕정책의 주요지지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는 문제는 대북경제지원에 부합되는 북한의 조치들이 이루어졌는가(즉 '상호주의'가 사후적으로 관철되었는가), 그리고 대북비지니스를 위해 국내적 수준에서 취할 수 있는 재원조달의 합리적 방안은 무엇인가 로 모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먼저 민중운동진영이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핵심적 쟁점으로 제기하고 있는 바, 평화협정 체결 및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된 남북정상간의 정치적 합의, 국가보안법 철폐를 계기로 한 남북정치관계의 정상화, 남북기본합의서 포괄적 이행 등의 과제가 다루어질 여지는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양상은 이번 정상회담에 한하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며, 한국정부의 대북접근방식이 내재하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다)

특히 이와 같은 민중운동 진영의 요구사항들은 단순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부가적 과제가 아니라, 남북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이 과제들을 예견할 수 없는 훗날의 일로 회피하려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 정식화하던 간에 결국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정부의 위상은, 하나의 '정치적' 주체라기보다 실용적이며 잠정적인 파트너라는 제한된 역할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정계개편의 함수관계※


많은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총선이후 여야관계 및 정계개편에 변수로 작용할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한겨레> 4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정상회담의 3가지 원칙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 양보불가 상호주의 원칙 고수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경제지원과 대규모협력 등은 국민과 국회의 동의가 필수 등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한나라당의 제안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조건부 찬성 혹은 조건부 반대로 이해된다.
여기에는 정부·여당과의 대북정책상의 기본적인 차별성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총선이후 여당이 한나라당에 대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정상회담에 대한 쟁점화를 결정할 것이라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이처럼 야당의 전략이 사실상 방어적이고 단순한 인과관계에 따라 구성되어있다고 본다면, 오히려 정부·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주요 변수가 된다. 즉 강도높게 야당을 '갈라치기'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정치적 성과를 독점하고 정상회담에 대한 범(汎)지지세력을 규합하여 정계재편 국면으로 곧바로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야당과의 협조체제를 마련하면서 여야구도를 현재와 같이 유지하고 정상회담의 순조로운 추진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정부·여당은 이러한 선택사항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재벌들이 남북정상회담을 반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후 재계의 반응이 언론의 우선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까지도 남북간의 실질교역은 감소추세를 보여왔으며, 제조업 부문의 교역은 중소기업의 '위탁가공' 위주였다. (오래 전부터 대북사업을 해온 대기업은 오히려 위탁가공규모를 줄여왔다) 김대중 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우면서 대북경제사업 활성화를 추진해온 것을 고려해본다면, 매우 부진한 실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계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즉각적인 환영의사를 표명하면서, 경협사업의 본격화를 위한 구체적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4월 12일 전경련 손병두 상근부회장이 발표한 '남북경협 5대원칙'이 그것인데, 골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투자자금 조달, 북한 SOC(사회간접자본시설) 조속 확충,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투자보장협정 및 이중과세 방지협정 조기체결, 우리 기업간 과당경쟁 및 중복투자 방지, 유럽연합(EU) 등 제3국 기업과의 대북 공동진출 등이었다. 재벌들은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대북비지니스는 충분히 해볼만한 게임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어내길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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