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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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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희의 육아일기 ①

정경희 |
식물과 함께 살기 2000년 3월 8일 목요일

어제보단 날씨가 풀렸기에 놀이겸 산하의 봄옷 구경을 하러 나섰다.
길가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분주한 산하.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나 아줌마들에게 "안녕하세요?", 아는 체를 한다. 잘 한다고도, 안 된다고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다행히 인사를 받아주면 신나하지만 그냥 무심한 경우에는 꼭 따지고 든다. 다시 한 번 큰 소리로(뒷모습을 향해) "아줌마아~ 안녀세요?(이게 정확한 표기다)"

신림동 살 때다. 산하를 낳고 백일이 지난 봄에 성희가 화분을 하나 사왔다. 튤립이었는데 노란 꽃이 어찌나 예쁘게 피던지 아침마다 산하와 열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3일에 한 번씩 물도 주고 무척 예뻐했다. 창 밖에는 큰 과일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커다란 나무여서 창문 위까지 가지가 뻗어있었다. 방안에는 노란 꽃이 창 밖에는 파릇한 과일나무의 새순이 그렇게 피었었다. 튤립이 시들 즈음 화분을 갈아주고 뿌리(알)를 싸 두었다가 다시 봄에 심어야 꽃이 핀다고 했지만, 그러질 못해 그만 뿌리가 썩어버렸다.

내친 김에 화분을 하나 살까, 망설이는데 가격이 (좀 크다싶은 화분) 만만치 않다. 라벤다와 페퍼민트는 작년 봄에 키우다가, 여름에 화분갈이를 안 해주는 바람에 둘 다 죽어버렸다. 집에서 무엇을 기른다는 것은 내 성격에 어지간한 인내심 갖고는 안되는가 보다. 그래도 물고기나 토끼보다는 화분이 만만하다. 물만 주면 되고 또 향긋한 향기. 동물들의 지저분한 불순물, 먹이 주는 일, 죽어서 버려야 할 때의 고충이 덜하기 때문이다.

산하는 나무보다는 물고기를 더 좋아하지만 어항을 놓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예전엔 고모가 작은 물고기를 두 마리 키웠었는데(고돌이, 고순이라 불렀다) 둘다 죽었다. 원인은 아마도 제때에 물을 안갈아 준 것과 먹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물보다는 식물기르기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화분에 눈독을 들인 것인데, 그것조차 뜻대로 되어주질 않네.

그래도 이사가서 봄 꽃을 보려면 부지런히 사서 길러야지. 쟈스민도 사고, 라벤더도 사서 잘 키워야지. 베게 밑에 넣으면 숙면에 좋다는 라벤더를 그냥 버린 게 지금도 이쉽다.

오늘부터 산하의 간접일기를 쓴다. 엄마가 오늘 있었던, 겪었던 일을 말하게 하고 산하가 떠드는 내용을 수정없이 그대로 받아적는 일기다. 오늘은 좀 말이 안 되는 얘길 한다.

"오늘, 맛있는거 먹었져(컵케익). 어, 으, 또 맛있는거 먹었져(캬라멜). 어, 그리구 또 맛있는거 먹구(?)… 엄마랑 어디 갔는지 몰라. 또 빵도 먹었져(피자)."

산하는 오늘도 식당에서 엄마의 짬뽕을 나눠먹으면서 자기권리에 충실했다. 종업원에게 물달라 포크달라… 졸라서 사준 과자가 싫증나자, 의자에 앉아 얘길 나누는 할머니를 향해 걸어가더니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과자 먹을래요?"


투자 2000년 3월 20일 월요일

하루에 내가 산하를 위해, 정말 산하만의 즐거움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가치와 보람보다는 산하의 중심에서 엄마를 평가한다면, 아이의 만족도는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1998년 겨울이던가? 이제는 '공부'라는 것에 손을 좀 대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스티커가 있는 학습지(?)를 샀다. 잠깐 하다가 딴전을 피우는 바람에 스티커만 날리고 접어두었던 것을 산하가 다시 꺼내든다.
딱히 '공부'라기보다는 놀면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공부를 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골라잡은 것도 그 기준에 적합하다고 느꼈다.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5세가 되어도 고작 10분에서 15분 사이다. 초등학생도 집중시간이 20분이란 걸 알고나니, 지금의 산하에게 더 큰 시간을 강요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꺼내든 책을 펴고 제목부터 읽어가면서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측정한다.
앞부분에 스티커가 붙은 곳은 넘기고 수 개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개미가 세 마리.
각각 개미의 수레에 1-3까지의 동그라미가 개수별로 그려져 있고, 그 동그라미에 과자스티커를 붙이라는 명령문(!)이 나온다. "산하야, 어느 개미가 과자가 제일 많지?"
"어, 이거!" 잘못 짚었다. "아니야, 다시… 이건 두 개고 둘보다 많은 게 어느 거야?"
"어, 이 개미야!"

아직은 숫자 5를 넘어선 수개념를 잘 알지 못한다. 단순히 쓰기와 읽기를 위한 공부방법으로 수개념을 인식시킬 필요는 없겠다.
"야, 이번엔 이 친구들 집을 찾아주자. 자, 강아지집은 어떻게 가야 하나?" 색연필을 쥐어주자 선을 긋는데 비뚤비뚤하다. 꽉 누르지 못하고 살살. 집만 찾으면 되지 뭐. "그래 잘했어. 다음엔 병아리, 그렇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한다. 다만 내 맘에 쏙 들게 아이가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게(?) 나의 만족도를 높여주진 못했지만. 하다보니 마치 내가 숙제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서 열을 낸다. 이상하게도 산하가 자꾸 엄마의 마음에 들었는지를 점검한다."엄마, 나 잘했져?" 혹은 "나, 못했져?" 하는 식으로.
만 2세용 학습지를 끝내고 나서 산하가 한숨을 휴- 쉰다.
"아, 나 힘들다. 너무 많이 해서."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 또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해야하는 억지행동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이보다는 내가 제어가 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다. 이해력, 창의력, 상상력, 관찰력 모든 것이 아이다우면서도 그것이 이후 아이인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려면 적절한 '투자'가 필요하다. 돈이 아니라 '시간'을 할애한 '넓은 구경' 말이다. 아직까지 산하에겐 그러한 부모의 투자가 적었단 생각이 든다.


자연학습1 - 콩벌레 2000년 4월 8일 토요일

황사바람 때문에 외출하기가 꺼려지는 요즘이다. 어제는 황사가 무척 심해서 100미터앞이 뿌연 안개처럼 보였다. 아침에 날씨가 좋기에 아빠의 출근시간에 맞춰 산하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외출이라야 요 앞 놀이터나 초등학교 그리고 백화점 부근이 전부다.
문화센터 옆에 있는 공터가 맘에 들었다.
"엄마, 난 '이' 줘. 이거 마시꺼야." "아, 그래 숫자 2가 있네." '2% 부족할 때' 라고 쓰여있는 음료수를 보더니 말한다. 산하는 음료수를,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해바라기를 했다.

온통 시멘트 천지라 맨땅을 밟아보는게 소원이었는데, 부근에는 나무도 심어져 있고 잔디도 있어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공터를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놀던 산하가 "엄마, 벌레야!" 한다. 보니 쬐그만 콩벌레가 햇살이 좋아선지 시멘트 위를 열심히 기어가고 있다. 내 어릴 적엔 '쥐며느리'라 불렀고, 이들은 장마철 이후에 집안 곳곳에서 심지어 안방에서도 발견되곤하던 흔한 벌레였다.

예전에 글사임당 회원아이들과 글쓰기수업을 하느라고, 축축한 땅을 열심히 뒤져 콩벌레를 잡아 관찰글을 쓰던 기억이 났다. 콩벌레 경주도 하고 다리수도 세어보고. 지금은 많이 컸을 그 아이들이 그립다.
아이들이 '벌레'를 징그럽다고 여기는 경우는 어른들에 의한 간접경험과 표현 때문이다. 아이들은 벌레를 징그럽다기보다는, 신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징그럽다기보다 '왜 그럴까?'하는 의문을 더 많이 갖고있는 것이다. '콩벌레는 왜 다리가 그렇게 많을까?' '건드리면 왜 몸을 동그랗게 말까?' '개미는 무엇때문에 그렇게도 열심히 기어다니는 것일까?' 등…

산하에게 '벌레'는 그냥 벌레일 뿐이라는 생각보다, 관찰을 통해 궁금증을 만들고 스스로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다. 물론 집안에서 발견하는 벌레(개미, 바퀴벌레, 쌀벌레, 나방)는 단격에 처치해버리는 엄마를 보고 의아해 할 지도 모르지만.
가능한 벌레들의 특징을, 왜 벌레가 집에서 사람과 같이 살면 나쁜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는지, 특히 바퀴벌레는 왜 '나쁜 놈(!)'인지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콩벌레는 축축한 땅을 좋아해." "왜?"
"어, 벌레들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거야. 구멍을 만들어 옹기종기 모여있지? 열 마리도 넘겠다. 몸을 동그랗게 말았어. 봐, 동글동글 동글동글 콩알처럼 웅크리고 있지?"
"와! 엄마, 콩벌레가 여기도 있구 여기도 있구 아주 많아." 신기한 듯 쳐다본다.

밖으로 나와있는 한 마리는 죽었는지 꼼짝을 안한다. 나뭇가지로 몸을 건드리자 더 작게 보이려고 몸을 움츠린다. 건조한 아이의 콧구멍을 보는 것 같다. 거무스름하고 반은 축축하면서도 딱딱한.
````````ㅂㅉㄸ(저녁 밥짓는 동안에 산하가 몰래 두드린 내용)0 899

큰 놈은 축축한 땅을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뒤집힌 작은 콩벌레가, 열여섯 개의 다리를 바둥거리며 몸을 바로세우려고 한다. 유난히 작고 약해보이는 다리들. 가로로 죽죽 그어진 줄무늬의 딱딱한 등딱지와 비교되는 모양새다.
산하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본다. "콩벌레가 왜 그래?"
"응, 뒤집어져서 일어나려고 그러는 거야."
그새 커피를 나는 다 마셨다. 벌레보면서 커피 한 잔이라. 햇빛 따사론 봄에.
아마도 다음에 내가, "산하야 콩벌레다!"하면 산하는, "어디 어디?"하며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일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아이에게 주고싶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에 세상도 환경도 삭막하긴 하지만, 내가 어릴적 보고 자랐던 1/100만이라도 얘기해 주고 싶다.


※ 이번 달부터 정경희씨의 육아일기가 연재됩니다. 글쓴이는 과거 안양민주화청년회와 구로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활동하셨고, 정종권(사회진보연대 정책기획부장)씨와 슬하에 산하(만4세)를 두고 계십니다. 현재는 지난 2월부터 육아를 전담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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