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7/8.56호

빈곤은 범죄가 아니다

정희찬 | 정책편집부장
"빈곤은 범죄가 아니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빈곤에 대항하는 온타리오 연합>(OCAP)이 외친 구호이다. 이번 『사회운동』7/8월호에서는 "특집"을 통해 어느새 우리 주위에서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빈곤'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 6월 최저임금인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노동계와 사용자·정부와의 갈등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정당화하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 속에서 그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공론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특권의식'으로 비난하면서도 정작 저임금노동의 문제를 발본적으로 제기하는 투쟁은 외면당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것이다. 전기·가스요금·수도세를 체납하여 단전·단수 조치를 당한 가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간간이 그 극한적인 삶의 문제가 언론을 통해 세간의 '동정'을 자아내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근로빈곤층'을 양산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서 제기하고 유의미한 정치적 실천을 벌여내는 것은 앞으로 사회운동이 직면하게 될, 아니 벌써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이진숙의 글과 권형은·안성민·최예륜의 인터뷰는 현재진행형인 빈곤의 확산을 총체적으로 분석·평가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이진숙은 1970년대 말 이후 복지정책이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노무현 정권의 복지정책이 결국 임노동자의 임금상승은 억제하면서 '여성인력활용방안' 등 여성을 중심으로 저임노동력을 창출하려는 전략에 다름 아님을 폭로하고 있다. 권형은·안성민·최은아는 유의선 빈곤사회연대(준) 사무국장과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빈곤문제의 원인을 진단함과 동시에 실제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운동의 과제-즉 '주체형성'-를 제기하고 있다. 그밖에 권형은과 안성민의 글은, 각각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와 최저임금제도가 실상은 불안정노동자를 양산하는 노동신축화를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이들 제도의 도입은 결코 막연하게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녀들의 노동에 대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위계화·주변화되는 노동분할을 통해 다수의 대중에게 저임금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원종현의 글은 OCAP의 활동사례를 통해 빈민과 무주택자들을 공격하고 거리와 주택에서 이들을 쫓아내려는 (주)정부와 경찰에 맞서 노동자들과 지역공동체가 연대를 통해 단호하게 직접행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사회운동』특집란은 한국사회에서 '사회운동의 과제로서 빈곤'이라는, 그리 새삼스러울 것 없는 문제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자운동의 혁신, 사회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그간 사회진보연대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읽기를 바란다.
"대안세계화를 향하여"에서는 유럽에서의 사건과 정세가 화두가 되어버렸다. 박하순은 이번 7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이 내건 '부채탕감'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밝히고 있다. 강국은 5월과 6월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연이어 비준이 부결되면서 위기에 처한, 현재 유럽 최대의 쟁점인 유럽헌법 조약 비준을 둘러싼 쟁점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쟁점이 되는 인민주권, 유럽적 동일성, 기본권, 지방적 세계화 등이 단지 유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 세계 민중들에게 제기한 거대한 도전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쟁점임을 강조한다.
"전쟁을 멈춰라"에서는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라크국제전범재판(WTI)에 다녀온 진재연의 글을 통해 전범재판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다양한 증언자들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여기서 지난해 한국 전범민중재판의 증인이었던 살람 가드반이 얘기하는 이라크 내전에 대한 경고와 우려, 이스라엘 평화운동가 렐라 마잘리가 소개하는 군사화된 이스라엘 사회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을 통해 다시금 전쟁에 반대하는 연대와 투쟁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해방을 향한 여성행동"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주목해왔던 세계여성행진의 한국도착(7월 3일)에 맞춰 준비해왔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7·3 여성행진'(여성행진)을 (중간)결산하고자 한다. 정지영의 사진글과 이소형·류미경의 글, 그리고 자료로 수록된 「여성헌장」은 '여성행진'의 경과와 활동, 그리고 주장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여성행진의 한국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세계여성행진의 퀼트(지역별·국가별 각 여성들의 요구와 주장을 나타내고 이를 상징하는 조각보)를 '여성행진'과 공유하기를 거부하였는데 이는 사실 '성 주류화'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인 바, 호성희는 여연이 '성 주류화'에 동참함으로써 결국 다수의 여성들에게 이중부담을 전가하는 '신가족주의'에 사로잡히고, 성매매여성들의 자기조직화를 부정하면서 법의 수호자로 나서게 된 모습을 꼬집고 있다.
그밖에 "사회운동과 연대"에서 김도현(현재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의 글은 80년만의 학생회연합 단체인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의 앞으로 활동방향을 소개하고 있으며, 7월 26일로 예정된 6자회담을 전망하는 "옳다"의 정희찬의 글은 (현재로서는 지극히 난망해 보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중들의 자기조직화라는 과제를 제기하며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회원쟁점토론"의 일독을 권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2년 동안 조사관으로 활동했던 강상구 회원과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노동운동자료실에서 활동하는 정경원 회원이 현재 진행 중인 '과거사 청산'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한·일협정 40주년, 광복 60주년에 해당하는 올해는 과거사를 돌아볼 수 있는 각종 행사와 미디어 프로그램을 어느 해보다도 자주 접하게 될 것인데, 강상구·정경원 회원의 토론은 현재의 '과거사 청산'을 비판적으로 되짚어 볼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제 두 번째를 맞는 『사회운동』이다. 그 변신이 무더운 여름을 맞는 요즈음 회원 및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 지 궁금하다. 모쪼록 푹푹 찌는 무더운 한낮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원한 청량음료의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기를 감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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