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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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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힘은 여성으로부터!

이진숙 | 여성위원장
지난 10월 17일 아프리카 서부내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에서 세계여성행진이 7개월 여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빈곤과 폭력의 제거를 기치로 내건 이번 행진은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로를 출발하여 남미-북미-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순으로 지구를 횡단하였다. 행진의 상징인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이하 여성헌장)과 ‘패치워크’가 거쳐 간 국가만도 60여 개에 이르며, 그 외에도 많은 국가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행진에 동참하였다. 한국에서도 7월 3일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하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이름의 행진이 조직되었으며, 10월 17일 정오를 기해 세계적으로 진행된 24시간 연대행동도 함께 진행되었다. 7월 3일의 릴레이 행진에서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이하 권리선언)이라는 이름의 여성의 권리에 대한 20개 항목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0월 17일까지 이르는 공동행동의 성과에 기반하여 권리선언은 16개의 항목으로 재구성되고, 그와 함께 7개의 구체적 행동과제가 제시되었다. 여성행진이 오랜 시간 축적된 연대의 경험이나 네트워크 등을 기반으로 조직되지 못했던 한계 때문에 권리선언을 작성하는 과정에 많은 여성들의 참여와 토론이 조직되지는 못했다. 이 글은 권리선언의 근간이 되었던 문제의식과 거기에 담겨진 권리들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에 앞서 세계여성행진의 운동에서 여성헌장의 역할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할 듯 하다. 공간의 창출과 프로세스의 확장이라는 일종의 물질적 토대를 동반하며 조직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과는 다소 차별적으로, 세계여성행진 운동의 가장 중심적인 축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실천들과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구성하려는 끊임없는 국가별·국제적 토론이다. 이러한 운동전략이 가지는 의미를 사고함으로써 여성행진이 남긴 쟁점, 그리고 권리선언이 향후 어떻게 발전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운동의 전략으로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의 출현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여기에 페미니즘적 분석과 요구들을 통합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행동도 활성화되어 왔다. 이러한 운동들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연대, 즉 다양한 주장과 요구들이 상호배제적이지 않고 상호 조정될 수 있는 운영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형태들이 인민의 보편적인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의 맹아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여성운동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닌데,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세계여성행진에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 당시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의 회합에서 구상된 세계여성행진은 현재 약 163개 국가와 지역의 6000여 개가 넘는 여성운동조직과 함께 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2000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세계적인 여성들의 행진을 조직했다. 세계여성행진 운동이 가진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여성헌장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여성헌장은 여성억압의 근원으로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인식하고 여성과 인간 모두의 권리와 자유가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 것을 제안하는 전문으로 시작된다. 이어 새로운 세계를 위한 대안적 가치로서 평등, 자유, 연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제시하며, 이러한 각각의 가치들을 31개의 구체적인 권리 항목으로 구성한다. 마지막 부분은 헌장이 제시하는 가치들에 기초하여 상호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낼 권력이 여성과 모든 억압받는 이들에게 있음을 확인하며, 사회운동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긴급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여성헌장에 담겨있는 가치와 권리들은 매우 추상적인 성격의 것들이다. 세계여성행진은 여성헌장의 이해와 활용을 돕기 위해 두 종의 보충문서를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여성헌장의 취지와 의미에 대한 해설을, 다른 하나는 2000년 첫 번째 릴레이 행진 당시 제시된 17개 요구 목록과 그와 연관된 다양한 의제와 세부적인 요구들을 담고 있다. 이들은 여성헌장이 여성의 권리와 실현방안에 대한 구체적 제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상, 유토피아에 대한 묘사일 따름이며, 여성헌장은 여성의 억압적인 현실을 반영한 17개 요구목록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실천과 결합함으로써 구체적인 운동으로서 힘을 획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운동들이 자신의 요구를 구성하는데 있어 여성헌장이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제언한다.
세계여성행진의 지향을 이해하는데 있어 여성헌장이 담고 있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여성헌장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근원으로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분명히 인식하며, 이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별도의 보충문서는 여성헌장이 바로 이 점에서 지금껏 존재해온 인간과 여성, 기타 다양한 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수많은 권리선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여성헌장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여성들의 분리주의적인 요구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와 함께 성차에 기반한 여성의 고유한 권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권리들의 실현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관계들의 발전을 의미한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윤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헌장의 구성은 어떻게 현실의 여성운동들과 결합되고 있는가? 여성헌장의 구성과정은 세계적 차원의 거대한 토론과 대화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제거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98년 이후, IMF·세계은행 등 세계화의 집행기관들에 대한 공격, 성폭력·여성신체의 상품화에 맞선 투쟁, 세계화의 성차별적 결과들로 인한 여성 빈곤의 심화를 고발하는 등 다양한 실천들을 벌여왔다. 여성헌장의 구성은 이러한 실천들이 근간이 되었다. 2003년 초에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여성행진 3차 국제총회에서는 여성헌장 초안이 논의되고, 2004년 12월 4차 국제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여성조직들과 세계여성행진 대표단 내에서는 매우 활발한 토론이 조직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이 구성되는 산파역할을 한 캐나다 퀘벡에서는 30여 개의 여성운동 조직들이 헌장 초안을 검토하는 논의에 참여하였고, 세계적으로 32개 국가와 지역에서 200여 개의 여성운동 그룹이 헌장의 구성에 대한 논평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구성된 여성헌장은 릴레이 행진에서도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릴레이 행진에서 각 국가의 여성들이 제기한 요구들은 매우 다양했다. 앞서서 행진이 진행된 남미의 국가들에서는 낙태의 권리, 자유로운 이주의 권리,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등이 제기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빈곤, 육아지원 예산 책정, 여성에 대한 폭력 등이 주요한 의제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빈곤과 성매매가, 아프리카에서는 식량, 물, AIDS 등이 긴급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여성행진의 중심 요구 및 여성헌장의 권리들과 결합됨으로써 다양한 삶의 조건, 운동의 조건을 가지는 여성들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켰다. 또한 여성의 요구들은 다양한 형태의 여성억압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가부장주의적 성차별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확대했다.
이렇듯 여성헌장은 아래로부터 여성들의 요구를 모아내고, 운동의 공간을 형성하며 또한 연대와 동맹을 형성하기 위한 세계여성행진의 운동 전략의 일환이다. 여성헌장을 구성하는 토론에 참여했던 많은 국가의 여성들은 이 헌장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지위를 인식하고 강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여야 하며, 따라서 대중교육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17개 요구목록 중의 하나인, 성 인신매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V-6 조항1)을 둘러싼 논쟁처럼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이 운동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세계여성행진이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토론과 운동을 강조하고 중점을 두지만, 그렇다고 각 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개입, 특히 유엔의 역할을 전면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17개 요구목록에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UN의 역할제고와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계여성행진은 최근에는 빈곤 감축을 목표로 하는 UN의 밀레니엄개발목표(MDGs)에도 여성헌장과 여성행진 내의 대안경제팀에서 마련한 세부적 대안들에 근거해 적극 개입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과 유비해 보자면, 쟁점은 제도에의 개입과 방어적인 요구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구가 기반을 두는 운동들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의 의미

세계여성행진의 이러한 운동전략은 한국의 여성운동에 어떤 참조점을 주고 있는가?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이라는 다소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여성운동을 고민해온 이들의 주된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인식을 강화하고 여성의 집단적 요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여성들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조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동조하면서 소수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는 주류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성노동자들의 투쟁 등 다양한 장소에서 분출해온 여성들의 투쟁과 결합되면서 보다 구체적인 운동의 쟁점과 과제를 형성해 왔다. 노동의 형태, 삶의 조건에 따른 다양한 여성의 요구는 어떻게 상호 결합되고 방어적인 요구를 넘어 보편적인 여성의 권리로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노동조합, 여성농민회, 사회단체, 여성운동 조직 등 운동(조직)형태의 차이를 넘어 여성들 간의 연대를 확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등이 그것이다.
여성행진은 이러한 조건과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조직되었다. 7월 3일 행진에서부터 10월 17일까지의 공동행동 과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활동은 여성들의 삶과 요구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다양한 만남과 투쟁하는 여성들과의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10여 개의 학생, 사회운동 단체와 여성활동가들의 모임으로 준비위를 구성한 여성행진은 많지 않은 역량 가운데서도 최저임금,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 기륭전자 등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 광주·부산·새만금 등의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한 여성운동 주체들과의 간담회, 성노동자 운동과의 연대 등의 활동을 조직했다. 이러한 활동들이 7월 3일과 10월 17일의 행진으로 모아졌고, 거기서 여성노동자, 이주여성, 성노동자 등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행진에서 발표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온 노무현정부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과 여성들이 주장해온 다양한 투쟁의 요구들이 근간이 되었다. 16개의 권리항목은 여성들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 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들 그리고 특정한 조건으로 인해 이러한 권리를 가지는데 있어 장애를 가지는 여성들에 대한 언급,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는 여성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확보되어야 할 기본적 조건에 다름 아닌데, 권리선언에서는 경제적 독립, 그를 위한 노동에 대한 권리,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 가족의 개조와 자유로운 관계에 기초를 둔 남녀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목록에는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자기조직화의 권리, 건강권, 주거권, 전쟁과 폭력의 중단 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성농민, 이주여성, 장애여성들에게 부여되는 무급가족종사자, 이등 시민, 인간에 미달하는 존재라는 억압적 지위의 부당함과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들의 온전한 권리를 주장한다. 구체적인 실천의 과제로 제안된 7개의 요구목록은 여성헌장과 권리선언의 정신에 근거해 여성의 빈곤과 이중부담을 더욱 심화시키는 노무현 정부 여성정책,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전쟁에 대한 반대를 현재 여성운동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 폐지, 비정규관련법개악 중단, 최저임금 현실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정, 성매매방지특별법의 전면 재검토, 아펙 정상회담 반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중단과 한국군 철수가 그 세부적인 내용들이다.
이러한 요구들은 지난 몇 년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과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노동유연화의 심화, 가족의 역할 강화를 통해 여성을 고갈되지 않은 무한한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이·삼중의 부담은 강화되어 왔다. 여기에 더해 노동유연화를 통한 다양한 비용절감 조치, 사유화 정책으로 인한 복지·공공서비스의 축소로 여성들의 책임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일부의 중산층 여성들을 제외한 대다수 여성들에게 적용되며, 또한 날이 갈수록 심화·확대되고 있다. 여성의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대는 이러한 현실의 결과이다. 이에 대한 노무현 정부와 여성가족부의 처방은 오히려 퇴행적이다.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에서 오는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시행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라 할 수 있는 보육정책은 그 효과도 미비할 뿐만 아니라, 실제 혜택도 되려 빈곤한 여성들에게 불리하다.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대표로 한 주류여성운동의 전략에 대한 비판도 우회할 수 없는 문제이다. 주류여성운동은 정부의 여성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사회양극화해소를위한국민연대>를 비롯한 각종 정부 로비기구에 참여하여 정책개발과 입안에 있어 오히려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대행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10년 전 북경여성대회를 계기로 성주류화 전략을 전면화한 주류여성운동은 끊임없이 제도화되는 한편, 전체 운동의 요구로부터 이탈, 분리주의적 경향을 강화해 왔다.

여성행진 이후, 열려진 미래

한국에서 여성행진을 조직한 공동의 경험이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이라는 많은 이들의 고민과 실천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아직 열려진 문제이다. 현실의 조건들에 대한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나아가 여성억압의 근원에 대한 공동의 인식지반을 마련하며 운동형태의 차이를 넘어 이를 운동의 힘으로 조직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성행진의 경험은 이러한 고민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참조할 만한 몇 가지 실천적 쟁점을 남겼다. 여성행진이 보다 많은 여성운동들과 함께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의 하나는 성매매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세계사회포럼, 세계여성행진 등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단일이슈를 중심으로 한 운동을 자기비판하면서 다양한 권리들의 상호확장을 지향하는 형태로 운동을 조직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는데, 이번 경험은 현실의 운동에서 인식과 권리들이 충돌할 때 그것을 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했다. 여성들의 연대와 결집은 구체적인 운동의 기획과 현실의 운동을 개조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여성행진은 여성들이 조건과 운동형태의 차이를 뛰어 넘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운동의 공간을 형성했다.
이와 같은 쟁점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성의 현실과 권리를 끊임없이 토론하고 확산하며 이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들과의 결합시키고 있는 세계여성행진의 운동전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여성의 힘은 여성으로부터, 운동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여성운동의 원칙을 현실의 운동에서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시도의 산물이다. 한국에서도 권리선언이 보다 많은 여성들에 의해 토론되고 여성 스스로의 인식을 강화하며 권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직은 미래로 열려져 있는 여성행진의 이후 실천이 이러한 여성들의 토론과 결합됨으로써 운동의 힘으로 구축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V-6 요구안은 1998년 세계여성행진의 첫 번째 국제회의 준비에 참가한 65개국의 140명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여성과 소녀들의 성 인신매매에 관한 요구안이다. 여기에는 1949년 유엔에서 채택된 「인신매매 및 타인의 매춘사취 방지에 관한 협약」과 그 이후 채택된 두 개의 결의안인「여성과 소녀들의 인신매매에 대한 협약」, 「여성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에 관한 협약」이 언급된다. 즉 V-6 요구안은 여성의 인신매매와 성적 착취에 맞서기 위한 전술로서 1949년 협약과 두 개의 결의안을 사용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후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는 이 V-6 요구안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었고,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GAATW(Global Alliance Against Trafficking in Women)으로 대표되는 경향으로 1949년 협약이 성매매 여성들을 처벌하거나 범죄화하는 것에 사용되었고, 인신매매의 현대적 형태를 설명하지 못하며, 성매매를 악덕으로 묘사함으로써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를 통해 생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협약을 반대한다. 다른 흐름은 CATW(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으로, 이들은 1949년 협약이 성매매를 여성인권 침해로 인식하고 여성을 위한 중요한 이득을 규정한 유일한 국제조약이고 따라서 협약을 더욱 충실히 실행할 것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더불어 포주와 고객을 더욱 강력하게 범죄화할 것을 주장한다. 현재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는 이 두 흐름의 분명한 의견차이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주택 및 거주의 권리, 비범죄화, 스스로를 조직할 권리 등)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합의가 존재하고, 이후 성매매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토론과 논의로 모색해가자는 합의도 존재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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