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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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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속의 이라크: 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점령정책

정희찬 | 정책편집부장
지난 11월 8일 미군의 팔루자 공격 1주년에 맞추어 이탈리아의 한 방송국이 보도한 30분 짜리 다큐멘터리는 미군이 팔루자에서 생화학무기로 분류되는 백린(白燐)을 사용해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몇몇 증거를 제시했다. 만일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일으켰다는 침략전쟁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전쟁의 명분, 정당성에 치명타를 받을 것이다. 또한 12월 2일과 3일에는 바그다드에서 각각 이라크군 19명과 미군 10명이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사망했을 뿐 아니라 11월 19일부터 연일 계속된 폭탄테러로 인해 무려 한 주에만 200여 명이 희생되는 등 헌법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 이후 오히려 이라크의 전황은 격화되고 있다. 저항세력의 테러와 이를 진압하기 위한 미군의 초토화 전략 속에서 이라크는 점차 공포가 지배하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어 가는 듯하다.

종교적·종족적 갈등을 반영하는 국민투표의 한계: 내전의 가능성

지난 10월 15일부터 이라크 전역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진 헌법안은 10월 25일(현지시간) 78.6%의 찬성(21.4%의 반대)으로 통과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들이 극단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즉각적인 환영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제헌 국민투표의 성사가 곧바로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더욱 높다. 이번 투표에서 전체 투표율은 2/3에 못미치는 63%를 기록했으며 3개 주에서 반대표가 과반수 이상이었다.
애초 지난 2월 이라크에서는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총선을 실시했으나 이는 수니파의 불참(수니파들의 주요 거주지역인 안바르주의 경우 투표율은 불과 2%였다)으로 대표성이 결여되었고, 5월에 구성된 헌법제정위원회와 헌법제정단에서 이번 헌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연방제를 둘러싼 수니파와 시아파·쿠르드족의 갈등은 아직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북부 쿠르드족과 시아파들이 주로 거주하는 남부는 유전지대, 관광자원을 포함하고 있어 재정과 유전관할에 대해 지방정부의 폭넓은 재량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수니파들은 이를 사실상 '분열행위'로 규정하고 중앙정부의 권한 강화를 주장하는 형국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시아파·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이라크 의회와 정부는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내년 개헌안을 마련하고 이를 다시 국민투표에 부친다고 하여 이번 헌법안은 사실상 올 12월 15일 총선과 대통령 선출에 국한되는 임시헌법이 될 공산이 크다.
이번 투표결과는 수니파(20%)와, 시아파+쿠르드족(60%+20%=80%)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라크의 종교적·종족적 분할을 반영하고 있다. 정치적인 대립이 이처럼 종교적·종족적 계선(界線)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미국이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에 기반한 분할통치 방식을 구사한 데 따른 결과이다.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부터 고안된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에 따른 정치적 지분을 계산하는 방식은 올해 임시정부가 출범할 때 적용되어 부총리 4명 중 3명은 각각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에게 돌아가고, 장관직은 시아파 16명, 쿠르드 7명, 수니파 6명, 기독교 1명, 투르크멘 1명으로 분배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계산'은 후세인 정권의 청산을 수니파 자체의 정치적 역할을 축소하는 것으로 환원함으로써 다양한 종교적·종족적 구성의 이라크를 위기에 빠뜨린다. 하지만 이라크의 종교적·종족적 구성의 다양함 그 자체가 내전의 충분조건은 아니며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하며 이라크의 각 정치세력을 분할관리하려는 미국의 노림수가 배후에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라크에서 각각의 정치세력들은 민병대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향후 서로의 정치적 갈등을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일단 이라크 경찰과 정규군이 종족적·종교적 갈등을 완화하기보다는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시아파와 쿠르드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부는 수니파에 적대적인 무장단체로부터 충원되고 있다. 일례로 7월 바그다드의 한 병원을 시아파로 구성된 경찰 특공대가 습격하여 13명을 연행했는데 이 중 10명이 싸늘한 시신으로 되어 돌아왔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의 미군 지휘관들은 예전 임시정부 고위관료들과 연계된 민병대에 자금을 제공하고, 이들을 훈련시켜왔다(이들은 저항세력을 색출하는 데 이라크군 및 미군과 협력하며 지난 2월 총선의 진행에 일익을 담당했다). 현재 과도정부를 주도하고 있는 시아파의 최대정당 이라크혁명최고평의회(SCIR)는 바드르여단이라는 민병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과 임시정부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수니파는 각종 무장단체를 결성하며 미군과 경찰, 군대에 대한 저항을 주도하고 있으며 상당수 폭탄테러는 이미 시아파를 겨냥하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크를 장악하려는 쿠르드족 역시 민병조직 페슈메르가를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헌법의 개정과정에서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권한, 각각의 지역의 경계 설정 문제, 유전관할문제를 둘러싼 정치세력들 사이의 갈등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종교적·종족적 분할에 따른 전면적인 무장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공산이 크다. 국민투표가 통과된 지 불과 이틀 후에 발생한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무장충돌로 벌써 21명이 사망했으며, 최근에는 연일 대형테러가 시아파 거주지와 사원, 그리고 병원 등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12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이미 내전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군사작전: 초토화 전략과 공습

투표 결과가 발표된 날 미군 사망자수는 2,000명을 넘었으며 9월까지 일주일 동안 200건 이하였던 저항세력의 공격은 국민투표를 앞두고 400건으로 늘어났다. 펜타곤(미 국방부)은 2만 6천명이 저항세력에 의해 2004년 1월 이후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도 연합군에 의한 인명피해의 정확한 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고 있지 않다(지난해 의학잡지 『랜싯』의 추산으로는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의 점령기간 동안 사망한 이라크인은 무려 10만 명이다).
저항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무수한 '작전'에 대해 이라크인들이 어떠한 피해와 고통을 입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연합군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여론이다.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대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생각은 이라크의 치안을 안정시키는 것이 연합군의 목적이라는 미국의 변명을 무색케 한다. 상당수의 이라크인들은 저항세력의 (미·영) 연합국에 대한 무장공격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45%)(영국군 점령 하의 마이산주에서는 65%에 이른다), 연합군의 주둔을 강력히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82%). 반면 단지 1% 미만의 이라크인들만이 연합군이 치안향상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67%의 이라크인들은 점령으로 치안이 더 불안해졌다고 느끼고 있다(「데일리 텔레그래프」 10월 25일). 서방의 주류 미디어는 이러한 불안은 저항세력의 무차별적인 테러 때문이라고 보겠지만 실상 이라크인들의 시각은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6월 터키에서 열린 이라크국제전범재판에서의 증언은 미군에 의해 이라크 민중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폭로하였다. "미군들이 저항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집을 급습하여 … 남성들에게 협의가 있다면 그들을 가둔 채로 집을 폭파해 버린다. 그리고 여자들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이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하나 이브라임의 증언), "점령 때문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일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다. 전에 없이 검문이 강화되고 있다"(이만 카흐마스의 증언. 진재연, 「이라크국제전범재판 증언자의 목소리」, 『월간 사회운동』, 2005년 7/8월을 보라 ).
이처럼 미군의 작전이 이라크인들의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이유는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 사실상 초토화 전략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증언하듯이 저항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무차별적인 가택수색과 구금은 다반사다. 게다가 지역 자체를 고립시키고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마을이나 도시를 폭격하는 행위는 사실상 초토화 전략이다. 초토화 전략은 만주의 독립군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의 조선인 부락을 섬멸한 일제의 경신참변(1920년), 그리고 제주도의 4·3항쟁 시 한국의 군대와 경찰의 진압(1948년)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사실상 '잠재적 저항세력'으로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참혹한 학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미군의 초토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팔루자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이탈리아의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군의 백린 사용에 관한 의혹이 보도되면서 새삼 이러한 초토화 전략의 실상이 부각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탈리아 방송이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이전에 이미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해 11월 팔루자에서의 백린 사용 의혹을 보도했지만 당시 펜타곤(미 국방부)은 백린은 단지 "조명탄"으로만 사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의 방영 이후 이 문제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펜타곤 대변인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방화성 무기"로 사용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백린을 쏘면 하늘에서 산소와 접촉하면서 강한 빛을 내고 땅에 떨어지면서 자욱한 연기가 나기 때문에 조명탄과 연막탄으로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또한 백린을 사용해 화재(火災)를 내고 이로 인해 적군에게 피해를 끼치고자 할 경우에는 방화성 무기, 즉 재래식 무기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백린은 인체에 닿으면 산소를 소진할 때까지 살을 녹이며 타들어가기 때문에 얼마든지 화학무기로 전용이 가능하다. 미국이 백린을 사용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방화성 무기"라고 극구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 논란을 교묘하게 피해가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방화성 무기를 민간인에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재래식 무기에 관한 협약'의 3조에 미국은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은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뼈가 드러난 채 숨진 시신에 대한 변명을 다양하게 늘어놓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백린 사용을 둘러싼 의혹은 앞으로 미군이 저항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초토화 작전을 계속 유지하는 한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9월에는 미국은 미군 4천명과 이라크군 6천명을 동원하여 탈 아파르 지역을 봉쇄, 초토화하였고 11월 1일 미군 1천명은 헬리콥터와 전투기를 동원하여 북서부 알사드 지역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여, 40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외부로부터 고립된 이들 지역에서 미군이 어떻게 민간인을 살상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 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저항세력과의 전투에서 미군의 공습은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미군 당국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팔루자를 공격할 당시 발표된 미 해병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된 이래 해병 제3대대가 투하한 폭탄의 양만 해도 50만 톤에 달하는데, 공습은 주로 '임기응변식 공습'(adaptive targeting)의 방식, 즉 지상 요원이 지정하는 공습 목표를 아무런 검증 없이 순간적으로 폭격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공습은 수니파가 거주하는 바그다드 주변과 시리아 접경 지역의 도시들을 대상으로 최근에는 늘어나는 추세다(세이무어 허시, 「공습: 이제 이라크전쟁은 어디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12월 1일). 미군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미국은 공습에 점점 더 의존할 공산이 크며, 이라크 정부가 국방을 담당하고 이라크군의 전력(戰力)이 보강됨에 따라 미 지상군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주로 수니파로 구성된)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주로 시아파·쿠르드족으로 구성된) 이라크군의 전투력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공습은 계속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 역시 늘어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그릇된 변명

높은 실업률에서 드러나듯이 '재건'되지 않고 있는 이라크의 경제, 연합군에 대한 이라크 민중의 일반적인 불만과 적대감, 향후 이라크 국가의 상을 둘러싼 정치세력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저항세력의 공세와 늘어가는 미군 사상자들은 2년 전 항공모함에서 미국 부시대통령의 '종전선언'을 무색케 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과 점령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11월 30일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승리를 얻기 전까지는 결코 철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라크에 부대를 파견하여 주둔함으로써 다국적 연합의 외양을 유지하려고 하는 미국의 침략과 점령의 외피를 그럴듯하게 꾸미는 데 일조하고 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자이툰 부대를 1,000명 감축하는 선에서 이라크 파병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어내는 데 급급할 뿐 아직도 이라크 점령이 침략적이고 압제적이라는 점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려고 한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오도되고 기만적인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지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파병을 감행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전혀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이라크 민중들 스스로가 외국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가? 미군과 외국군의 도움이 없으면 이라크의 치안이 훨씬 불안정할 것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전투기를 동원하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라크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다는 주장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고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와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 이상으로 침략과 점령 자체를 정당화하기 위한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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