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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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속에서도 혁신을

정영섭 | 노동국장
비대위 체제와 6만의 파업대오

지속되었던 운동의 위기가 2005년에 들어서는 조직의 내적 갈등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치 유행처럼 곳곳에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일부 민주노총 지역본부, 위원장이 사퇴한 전교조 등에 이르기까지 운동진영의 대표적인 조직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비상대책' 상태를 선언했다. 이유야 각기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운동 위기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외부의 탄압과 이데올로기 공세, 내부의 지체된 혁신, 운동노선 재정립의 답보 등이 맞물려 있는 상태에서 특정한 사안을 매개로 하여 조직 내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금품수수 비리, 민주노동당은 재보선 참패, 전교조는 일방적인 연가투쟁 연기가 계기였다. 그러나 이런 개별적 사안들을 해결해 보자는 방식, 예컨대 '조직 내 제도개선' 혹은 '투쟁으로 돌파'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사태를 극복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위기는 훨씬 깊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모두 노동자운동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민주노총이 창립 10년을 맞는 해에 총체적인 위기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하다. 이런 상태는 운동주체들이 더욱 근본적으로 사고하고 고민해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12월 2일)에서 민주노총은 총파업 이틀째를 보내고 있다. 민주노총이 자체 집계한 첫날 파업대오는 6만 명.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 저지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민주노총의 파업에서 작년 하반기 하루 총파업에는 15만7천여 명이 참여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12만1천여 명이 참가했다. 파업찬반 투표가 부결된 기아자동차노조와 임원선거가 겹친 현대자동차노조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분석되지만 그렇게만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의 한 달에 걸친 파업 찬반 투표가 간신히 50%를 넘었고, 찬성율 역시 64.2%로 낮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한 노동자운동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는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가 구성되었고, 전국의 사회운동 단체들과 현장조직들이 '비정규직 철폐 현장투쟁단'을 구성하여 연일 국회 앞 농성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그러나 파업 참가자 숫자가 말해 주듯이 투쟁이 급격히 고양되고 있지는 못하다.

결국 우리는 혁신의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 현재 민주노총 비리 사건과 지도부 사퇴를 계기로 형성된 운동혁신의 분위기가 당면한 투쟁으로 인해 당분간 미뤄진 듯한 느낌도 크다. 즉 혁신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당장은 비정규 법개악을 막아내는 투쟁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분위기다. 물론 민주노조운동 전반에 걸친 혁신 논의는 투쟁 시기에 전면화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투쟁 따로 혁신 따로'가 아니고, 투쟁 혁신도 중요한 문제이므로 투쟁의 과정에서 더더욱 혁신의 문제의식을 살리고 키워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투쟁 속에서 혁신의 문제의식을 살리기 위해 짚어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교섭의 환상

우선 짚어볼 것은 노사교섭 문제다.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관한 노사교섭은 한국노총의 요청으로 이목희 의원이 주선하여 지난 11월 10일에 열린 노사대표자회의를 시작으로 11월 30일 한국노총의 수정안 발표와 민주노총의 결렬 선언으로 끝났다. 이미 지난 상반기 교섭에서도 민주노총은 교섭을 진행하면서 당초의 원안에서 후퇴하는 안을 던졌다. 이 내용은 언론에 소위 '노동계 안'으로 보도되었고 물의를 일으켰다. 이것이 금번 교섭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났다. 애초의 요구는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으로 표현되었듯이, 정부의 기간제 법안 폐기, 엄격한 기간제 사유 제한 파견법 철폐, 불법파견 정규직화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노동3권의 보장 간접고용에서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 등이었다. 그러나 4월 노사정협상 내용으로 언론에 알려진 것은 첫째, 기간제와 관련하여 '사용사유 제한'과 최장 1년까지 '사용기간 제한'이 아니라 '1년+1년', 즉 1년은 마음대로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고 다음 1년은 사유제한을 해서 추가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둘째, 파견법 철폐와 직업안정법을 통한 간접고용 규제가 아니라 현행 파견법 유지였다. 셋째, 원청 등 사용사업주의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책임 확대가 아니라 부당노동행위에서 사용자책임 명문화였다. 넷째,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노동법상 근로자개념의 확대가 아니라 노동3권 보장이었다('비정규법안 관련 현재 노사간 교섭에 대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입장', 2005.11.24).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파업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고, 투쟁을 통해 권리보장 입법을 쟁취하기 힘든 상황에서 '협상팀'을 중심으로 이러한 내용들이 언급되었다고 정당화하겠지만, 그렇다고 양보안을 노동자의 안으로 내놓을 수는 없다. 결국 열린우리당과 교감하에(?) 한국노총이 대폭 후퇴하는 안을 발표하여 전선에서 이탈했고 참여연대를 비롯한 7개 시민단체들도 비슷한 안을 내놓아 노동자의 뒤통수를 치는 상황이 되었다. 뒤늦게 민주노총은 원칙을 강조하며 한국노총을 비판하고 공조파기를 선언하였다.

파업을 앞두고 교섭에 매달린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다. 일각에서는 힘도 없는데 너무 원칙만 강조하는 것 아니냐고 교섭과 양보를 은근슬쩍 정당화한다. 그러나 권리보장 입법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법안 한번 만들어 보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비정규직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그러한 요구를 정치적 준거점으로 삼아 운동진영이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발굴하고 주체를 확대, 강화해서 아래로부터의 비정규직 운동을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의 일부다. 따라서 양보안 혹은 수정안을 노동자의 입장으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향후의 운동과 투쟁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정부와 여당이 양대노총과 사용자측을 끌어들어 교섭 혹은 협상의 형식을 띠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지배계급은 허구적인 사회협약이나 협상을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자 한다. 체제를 관리하는 정부, 여당의 입장에서는 자본 측의 '배째라'식 버티기보다는 친자본적인 법적 규제 틀거리를 마련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의 분출을 봉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위기관리에 들러리 서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급진적인 전화를 지향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대안적인 운동을 개척해야 한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

앞서 언급했듯이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함께하는시민행동,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은 한국노총의 최종안 발표 직후 소위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들 7개 시민단체의 조정안은 기간제 2년 사용, 이후 무기계약으로 간주 불법파견시 원청의 직접고용으로 간주하되 소급적용 제외, 경과기간 설정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노사정 공동논의기구 구성 등 한국노총의 최종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이 불과 하루 전인 11월 30일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의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민주노총의 기본방안인 기간제 사유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불법파견 직접고용의제 및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입법의 원칙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선의 안이 아닐지라도 입법이 무산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의 원칙을 훼손하는 부분까지 포함"한 조정안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발표 시점이나 내용으로 보아 열린우리당이나 한국노총과 조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생기는 대목이다. 한국노총의 수정안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던 민주노총은 시민단체들의 조정안에 대해서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민중의 정치적 단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그간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 상층부 일각에서는 국민적인 연대를 해야 한다는 노선상의 이유나 시민단체의 영향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다소 실용적인 이유에서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지속해왔다. 물론 연대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민중진영의 정치적 단결보다는 시민단체와의 연대가 우선시되는 상황도 발생하는 등 역효과가 더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대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언론 선전이나 정치권 압력행사 사업방식, 신자유주의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 등도 운동의 큰 문제다. 따라서 우리는 민중의 단결과 연대투쟁이라는 대원칙 하에서 이러한 점들을 명확히 하고 민중운동 내부로부터 이를 혁신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 심판투쟁

운동의 위기는 노동자 대중의 위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대중의 생존의 위기이자 권리의 위기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 대중의 삶과 권리의 문제를 보편적인 운동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해방운동으로 노동자운동을 만들어 가는 것은 혁신의 중요한 방향이다.
노무현 정권 첫해인 2003년에 배달호, 이해남, 김현중, 김주익, 이용석, 곽경해 열사가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계속되는 분신과 자결에 대해 민주노총은 '손배가압류 노동탄압 분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을 여러 사회운동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여 민중진영의 투쟁을 결집시키고자 했다. 당시 단병호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 이후 모두 61명의 노동자들이 분신했다. 90년대에는 5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후 해마다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올해에만 벌써 5명이다. 오히려 참여정부 하에서 노태우정권 시절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투쟁을 호소했다.
올해는 김동윤, 류기혁 등 노동자들의 자결에 이어 농민들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면서 정권의 폭력에 의해 한 농민이 직접적으로 맞아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투쟁 호소는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故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으로 이어졌다. 당시나 지금이나 노동자와 농민의 차이가 있을 뿐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권 심판, 민중의 정치적 단결이 핵심적인 내용이고 돌파구를 여는 무기인 것이다.
다시 말해 당면 비정규 법개악 저지투쟁 역시 노동자 농민을 죽이고 민생을 파탄 내고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 전체 민중의 연대투쟁으로 명확한 전선을 치고 정치적인 투쟁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 법개악 저지가 시급하니 국회 앞의 투쟁에 주력하고 농민 살해 관련 투쟁에 대해서는 집회 참가 수준의 연대활동을 펼친다는 발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현재의 국면을 정치적으로 분석하고 타격 지점을 명확히 설정하여 노동자·농민, 민중연대 투쟁을 광범위하게 전개해야 한다. 또한 이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국회 앞에 모여 국회 안에서 논의되는 법제도 관련 현상에 압력을 넣는 투쟁 방식을 과감히 전환할 수 있는 유력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약 국회에서 비정규 개악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그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력하게 돌아설 것이 아니라면 미리부터 이러한 투쟁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을 비롯한 모든 민중에 대한 공격을 거듭해 왔으며 이제 쌀 개방, 노동법 개악 등 제도적인 차원에서까지 목숨 줄을 죄는 단계까지 왔다. 이런 조건에서 어떤 운동이 되었건 기존의 내용과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고 지속적으로 혁신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민중을 파탄 내는 신자유주의를 저지하고 운동의 대안과 전망을 새로이 개척하는 것은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사활적인 과제다. 그렇지만 운동의 혁신이 하나의 완결된 안을 만들고 그것을 실행하면 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현실의 투쟁 속에서 혁신의 계기를 발견하고 이를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12월,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마저 투쟁대오를 움츠리게 하지만 우리는 전진할 수밖에 없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편법적 비정규직 사용

상시고용 노동자의 정규직화 노골적으로 회피

얼마 전 민주노동당이 중앙행정기관, 공기업, 산하기관 등 1,003개 기관의 고용형태를 조사한 결과 노동부의 비정규직 사용 비율(직업상담원 포함)은 46%로 나타났고, 이는 조사대상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비정규직이 한정된 부문에서 한시적으로 용인되는 고용형태가 아니라 정규직을 대체하는 일반적이며 유력한 고용형태임을 노동부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안'의 본질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에 있지 않고, 무분별한 비정규직 사용의 사후승인과 비정규직의 합법적 확대에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0월 24일 시작된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국 21개 직업전문학교와 22개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계약직 교사와 계약직 직업상담사들이다. 이들이 주로 하는 학생지도, 학생관리, 직업상담은 일시적인 업무가 아니며 매년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직무다. 따라서 '기간제 및 단기간 근로'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공단은 그동안 편법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활용해왔다. 현재 대다수의 비정규직 교사들은 매년 1, 2월 달은 한 달씩 별도로 계약하고 3월부터 12월까지는 10개월씩 계약하고 있다. 1, 2월 달에는 아예 계약도 하지 않고 1년에 10개월만 계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 노동자들은 이러한 편법적 계약방식으로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9년 동안 일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공단이 상시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노골적으로 회피해온 것이다.


정부가 입법 추진 중인 '비정규보호법안'의 핵심 논리는 '입구를 넓히고 출구를 좁히자'는 것이다. 일단 비정규직은 확대하고 사후 해고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고용기회를 늘리고, 고용불안도 해소하자는 논리다. 그러나 작년에 노동부와 경총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기간제 계약 경과 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응답한 사용자의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하고, 최근 경총이 내부적으로 다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대를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 앞에 이러한 논리는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산업인력공단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에게서도 출구를 엄격히 제한할 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법안 논의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기간제 노동자를 3년 동안 사유제한 없이 사용하자'는 정부의 원안이나, 한국노총과 시민단체들이 제시하는 '1+1년 사용 후 고용의무', '2년 사용 후 고용의제(직접 고용으로 간주)' 등은 이 같은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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