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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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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리와 평등을 위하여 유럽헌법조약을 거부하자!

아탁 프랑스 |
번역 바울라 수녀(르베르 애덕 수녀회)


[편집자 주] 이번 호에서는 유럽헌법조약을 부결시키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아탁의 활동 중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대응을 살펴본다. 유럽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들은 헌법조약이 여성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인식하고 활발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헌법조약에 관한 첫 번째 국민투표를 시행했던 스페인에서는 2005년 1월 ‘마드리드 페미니스트 회의’가 열렸고, 이를 통해 여성들의 반대운동을 조직했다. 아탁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은 투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 글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올해 5월, 프랑스에서 헌법조약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아탁 프랑스에서 발표한 글이다. 이 글은 헌법조약을 남녀의 사회적 관계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헌법조약은 마치 유럽의 전 인민들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것처럼, 그리고 남녀평등을 진전시킬 것처럼 강요되었다. 여성억압과 불평등의 기원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 평등이란 실상 여성에게 매우 해악적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아탁은 여성의 진정한 권리와 평등을 위해서는 헌법조약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탁의 주장은 지난 호에 소개한 성별화된 시민권을 성문화하려했던 이리가레의 시도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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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의 진보는 다른 모든 불평등의 축소와 같은 말이라는 것을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 지위와 평등에 대한 요구는 경쟁보다 연대와 협력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회적 유럽은 기본권과 공공 서비스가 유럽연합(이하 연합) 단일시장보다 우선하는 유럽이며, 여성들이 획득한 권리를 보장하고 남녀평등과 인권의 전체적인 수준을 높인다.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하기 위해 모두가, 특히 여성들이 유럽헌법조약에 꼭 반대해야 한다.
헌법 지지자들은 헌법조약이 여성에게 기회를 준다고 한다. 헌법 지지자들은 남녀평등이 오래 전부터 유럽사회제도의 관심사이며, 헌법조약이 남녀평등을 진전시킬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음을 근거로 들지만, 현실에서 이는 어불성설이다. 만약 사람들이 연합 회원국 목표기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이해한다면, 누구도 헌법조약이 여성을 위한 기회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평등의 진전이란 야간근무가 모든 사람을 위해 금지되는 것, 설령 야간근무를 인정한다고 해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만 인정하는 것일 텐데, 유럽에서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야간 근무를 하게 되었다. 유럽의 자유주의 정책에서 작동하는 남녀평등의 원칙은 평등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유럽헌법조약에 기입되어 있는 정책이다.
유럽헌법조약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진보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그 반대로 심각한 후퇴의 위험이다. 헌법조약과 목표기준을 보면 새로운 권리는 하나도 없으며, 여성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는 부재하다. 기본권헌장(헌법조약 Ⅱ부)은 불충분하다. 그것이 다룰 수 있는 사법적 범위는 매우 한계적이고, 여타의 헌법조약 규정에 좌우된다. 남녀평등은 인간의 존엄이나 민주주의처럼 연합의 기본가치로 인정되지 않았다. 남녀평등은 연합의 목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이를 적용하는 규정은 없고 단지 선언으로 발표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헌법의 기초를 구성하는 자유주의적 교리는 그 자체로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는 사회복지의 후퇴, 공공서비스, 민영화, 불평등 심화, 이미 많은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불안정한 삶을 양산하고 있다. 유럽고용전략에서 작용하고 있는 남녀평등의 개념은 그 개념의 진보적 내용을 명분삼아 자유주의자의 이익에 봉사하고 그들이 언제나 유연하게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

1. 심각한 결여

기본권헌장은 “연합의 새로운 권한이나 임무를 만들지 않고,” “헌법의 다른 부분에서 규정된 임무와 권한을 수정하지 않는다(헌법조약 Ⅱ- 111).” 기본권헌장은 “각 나라의 관습에 맞게 해석이 되어야하고(헌법조약 Ⅱ-112-4),” 또 “각 국가의 법률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헌법조약 Ⅱ-112-5).” 이런 문장들은 확실히 기본권헌장이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기본권헌장은 여성을 위한 새로운 권리를 전혀 만들지 않고, 기본권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퇴하고 있다.

피임, 낙태, 성적지향 선택의 권리
자신의 신체와 재생산 능력을 통제하는 권리, 즉 낙태와 피임의 권리는 기본적 자유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재하다. 몇 개국(포르투갈, 아일랜드, 폴란드, 몰타, 키프로스)에서 낙태는 금지되거나,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다. 연합은 그 국가들에게 낙태의 제한이나 금지를 강제하면 안 되기 때문에 낙태의 권리를 헌장에 넣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헌장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권리들에 관한 법률 수준을 높이는 것을 통해 전체 수준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헌장의 목표 중에 하나여야 했다. 자신의 성적지향을 선택할 권리는 표기되지 않았다. 성적지향에 따른 모든 차별은 명백히 금지한다(헌법조약 Ⅱ-81)는 표현으로는 불충분하다. 성에 다른 차별 금지는 평등의 권리를 단언하는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 차별을 증명하기가 어려워서 더욱 그렇다.

폭력을 당하지 않고 생활할 권리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본적인 권리도 부재하다. 여성들이 당해왔던 폭력은 요즘 알려지기 시작했다. 폭력을 당하지 않고 생활할 권리는 가정폭력, 강간, 여성 매매, 강제결혼, 성기절단 등의 모든 폭력에 대항하는 타협 없는 투쟁을 의미해야 한다.

이혼의 권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헌법조약 Ⅱ-69에 보장된 권리지만, 이혼의 권리는 그렇지 않다.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금지
노예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헌법조약 Ⅱ-65는 확실히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부 사람들은 성매매가 확대되는 것을 다른 서비스업처럼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으로 생각한다. 자본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헌법조약 Ⅲ-156, 157), 따라서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로 생긴 검은 돈을 통제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 원칙
조항 Ⅰ-46에 정의되어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 원칙은 민주주의가 남녀 사이의 균등한 대의, 즉 균등제(parite)와 경제적․정치적 결정의 모든 수준에서의 균등을 보장할 때에만 대의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한다. 유럽헌법조약을 계획했던 회의는 그 구성원 대다수가 남성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시민권
연합의 시민권 규정은 사회적 권리와 헌법조약 Ⅱ-99~106에 정의된 권리(투표권, 피선거권, 이동의 권리 등)를 위해 남녀 거주민들에게 확대되어야 한다. 개인적 지위에 관한 법률로 인하여 외국인 여성 또는 이주여성의 권리는 너무 자주 그 남편의 지위에 따라 좌우되고, 그녀들의 출신 국가의 억압적 관습이나 규범에 따라야 한다.

보호받을 권리
헌법조약 Ⅱ-78에 정의된 보호받을 권리는 성별이나 섹슈얼리티 때문에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 억압, 박해에 대한 보호권을 인정해야 한다.

고용의 권리
유럽헌법조약은 모든 사람의 “노동의 권리(le droit de travailler)”와 “구직의 자유”를 인정한다(헌법조약 Ⅱ-75). 이 얼마나 행운인가! 그러나 그것은 “노동권(le droit au travail)”과는 매우 다르다. 그것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 쓰여진 노동권으로부터 많이 후퇴한 것이다. 유럽의 25개국 실업률은 평균 9%(2004년 8월 Eurosignal조사)고, 여성의 실업률은 남성보다 2% 높다. 그럼에도 유럽헌법조약 어디에도 실업률 감소라는 목표는 쓰여 있지 않을 뿐더러 실업이라는 단어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일을 갖는 것은 여성이 자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심각한 실업, 탁아소와 돌봄 노동 서비스 부족, 일자리의 불평등, 고용의 질 하락과 같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친다. 고용의 권리, 즉 고용의 질에 대한 규범과 더불어 실업의 감소라는 목표가 [헌법조약에서] 실종된 것은 그저 잊혀진 것이 아니다. 이런 권리들은 자유주의적 교리와는 양립 불가능할 뿐이다.

최저 소득, 연금, 실업 수당의 권리
이 권리들은 인정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에 충분한 생활기준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것은 실업자, 환자, 장애인, 과부․홀아비, 노인의 경우에도, 그리고 생계수단을 잃었을 경우에도 보장되는 권리다”라고 선언한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에서 후퇴한 것이다. 거기에서는 [프랑스식] 최저임금(SMIC, 전직종 최저임금제)을 인정하지 않고, 유럽 차원의 최저임금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이 권리들은 실업자, 그 중에서도 수당을 받지 못하는 실업자, 저임금 노동자, 최저의 사회보장 수혜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들과 특히 관련이 있다. 이런 여성들은 프랑스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80%와 노령 연금의 최저 수준보다 낮은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의 83%에 달한다. 이주 여성과 편모들에게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가중된다. [사회보장]수당에 대한 권리를 폐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회원국의 정책을 규정하는 “경제정책의 일반 방침”(헌법조약 Ⅲ-178)을 적용한 것이다. 이 방침은 “노동시장에 활동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재정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공공 예산과 [사회보장]수당에 제한을 부과한다. 더 쉽게 말하면, 최저소득보조금(RMI)이나 실업수당이 너무 높아서 사람들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RMI 수급자나 실업자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처럼!

그리고 새로운 위협
[헌법에 따르면] 교회와 종교 공동체가 합법적인 대화상대로 인정되었다(헌법조약 Ⅰ-52). 이런 인정은 표현, 양심, 신앙의 자유가 이미 보증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쓸모없는 것일뿐더러 위험한 것이다. 도처에 여성혐오증을 가진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 대두하는 것은 피임, 낙태와 같이 이미 획득된 권리에 대한 증대하는 위협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교회, 그리고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더 강하게,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역할이 다르고 따라서 여성의 지위는 열등하다고 이론화하고 그 결과 불평등을 낳는다. 연합의 모든 제도와 법규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이 재확인될 때에만 교회의 압력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다.

2. 유럽연합은 남녀평등의 가치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연합의 가치들」이란 제목의 헌법조약 1-2에 의하면, 남녀평등은 “연합이 기반을 둔 가치”가 아니며, 새로운 국가들의 가입 기준도 아니다. 연합의 가치들은 문서의 첫 문장처럼 “연합은 인간존엄성, 자유,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남녀평등은 이 조약의 두 번째 문장에서만 언급되는데 “이 가치들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에서 가입 국가들에게 공통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언급되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두 문장의 지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헌법조약이 많은 사회단체들이 요구했던 인간존엄성,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와 같은 수준으로 남녀평등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헌법의 공식문서에서는 남녀평등을 새로운 가치로 제시하지 않는다. 연합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침묵하고 남녀평등이 연합의 가치이고 중요한 진보적 요소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3. 유럽 연합의 남녀평등은 속 빈 강정이다

남녀평등의 목적(헌법조약 1-3)과 남녀차별 금지(헌법조약Ⅱ-81)를 명시한 것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점은 볼 수 없다. 국제적으로나 연합의 국가들에서 이미 다루어진 권리들뿐이다. 실제 이런 권리들은 법적으로 이미 명시되어 있고, 70년대부터 페미니스트들의 요구로 조금씩 구성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는 아직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형식적인 법과 실제의 권리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다. 헌법조약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하나도 없다. 남녀평등의 진전을 원했다면 헌법조약의 목표 안에 이 문제에 대한 언급도 있어야 한다. 헌법조약124조가 미약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헌법의 다른 조항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헌법이 연합에 부여한 능력의 범위 안에서, 유럽 헌법조약은 모든 차별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확립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들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만장일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그 성과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군사비용이 늘어나지만(헌법조약Ⅰ-41-3) 남녀평등에 관한 재정지원은 전혀 없다.

4. 자유주의적인 논리를 위해서

실제적인 자유주의 정치의 심화, 심각한 빈곤의 책임들, 그리고 불안정한 일자리, 이 세 가지는 여성들과 상당히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공적 서비스의 파괴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은 공적서비스의 후퇴가 공동체에 의해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일과 비용 상승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지운다는 것을 보여준다(예를 들자면 프랑스에서 유아원이 없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공적 지출의 제한(헌법조약Ⅲ-194)은 복지 서비스를 더 비싸고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사회 복지예산(실업 수당과 영세민 보조금) 삭감을 의미한다. 유럽고용전략(European Employment Strategy, 유럽연합에서 2000년~2006년을 기간으로 설정하여, 15개 회원국이 고용확대 및 고용환경 개선 등에 대한 공동목표를 설정하여 관련 정책을 수행하는 것)에는 남녀평등에 대한 내용이 있긴 하지만, 자유주의의 논리에 이용되어 모든 진보적 내용은 공허해졌다. 자유주의의 논리는 여성의 노동을 이용했고 비정규직을 정당화하며, 일자리 창출에서 여성을 제외한다.

잠재적 노동력으로서의 여성
연합의 노동 전략은 고용율의 증가를 목표로 정했다. 목표는 2010년까지 전체 고용율 70%, 여성 고용율 60%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더 이상 실업률을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헌법은 .“고용율을 높이는 것”을 “일자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해석한다(헌법조약Ⅲ-205). 이런 교활한 문구는 구직자들이 실업률이 낮아졌다고 생각하게 한다. 두 번째는 남녀평등이라는 개념이 자유주의의 논리로 사용되는 것과 관련된다. 그것은 이용당하는 것일 뿐이다.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평등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단지 경제적인 관점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너무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불안정한 일자리, 상한선이 정해진 직업, 입사시의 차별 대우 등). 유럽헌법조약(조항Ⅲ-214)에서는 분명히 전문직에서도 남녀가 평등하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평등이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존재하고 공적인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합이 만든” 평등의 자유주의적인 개념은 불평등의 기원으로부터 비롯된 사회적으로 차별적인 역할을 문제 삼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간다. 이는 고용율의 목표가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낮은 수준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여성운동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의 평등한 분배는 “가족에서의 삶과 직장에서의 삶의 절충”이라는 개념이 차지하였다. 그 개념은 여성이 노동, 양육, 가사노동을 다 하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시간제노동, 유연화, 불안정화
시간제노동은 절충이라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특히 회사에게 이익이 되고 임금생활자들에게는 항상 불리하다는 것은 은폐된다. 그것은 부분적인 임금, 부분적인 퇴직 그리고 종종 부분적인 실업의 동의어다. 오늘날 “가족에서의 삶과 직장에서의 삶, 유연화와 고용보장 사이의 최상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서” 유럽고용전략은 “노동계약의 다양화”를 추진한다. 노동시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은 주당 최대노동시간을 48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리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주가 최대한 만족하도록 개별적인 협상을 일반화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주당 35 시간에 대한 공격은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진행된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제를 강요받는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도록 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일한 임금 하에 노동시간의 축소는 최상의 삶의 질과 가사노동의 평등한 배분을 위한 여성들의 요구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은 유럽헌법조약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싸구려 일자리들!
여성들이 가사 업무의 부담을 덜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자유주의적 전략은 아동 양육과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서비스의 욕구를 매우 잘 파악한다. 왜냐하면 그 전략은 여기에서 영리활동의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적절한 자격과 안정적 지위를 얻은 인력을 갖춘 양질의 공적 서비스의 확대가 아니라, 값싸고 질이 낮은 일자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자리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할당되고 어떤 경우 그것은 “할머니들”이나 “이주여성들”의 일로 규정된다. 이는 그 자체로 서비스 부문으로의 여성 집중과 성별 임금 불평등을 다시 강화한다. 어렵고 보수도 낮은 그런 직업들이 큰 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해서 자유주의자들은 그 직업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공학’(볼루 2004년 보고서)과 같은 새로운 명칭을 고안한다. 그러나 그들은 임금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가장 나쁜 부문들 중 하나에 속하는 그 부문의 집단적 관습들을 재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주제어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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