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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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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정치적 단결로 반신자유주의 기치를 드높이

고 전용철 열사의 죽음에 부쳐

박준도 | 사무처장
노무현 정권은 전용철 열사를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지난 11월 15일 농민들은 추곡수매제 폐지, 쌀협상 국회비준에 항의하며 격렬하게 시위했다. 추곡수매제 폐지로 쌀 가격안정에 실패하여 수확기 쌀값이 급격히 폭락한데다 쌀비준 국회통과마저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손실분의 80%에 이르는 쌀 소득보전을 약속했지만 이것으로는 농가의 소득손실을 메울 수가 없었다. 수확기 쌀값이 너무도 많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쌀 소득보전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목표가격마저도 3년 뒤면 이렇게 계속 떨어질 쌀값이 반영되어 더 하락할 판이었다.
사실 농민들의 쌀 수입 개방 반대 요구는 이 정권에게서는 아예 처음부터 거부당했었다. 도리어 농민들은 이 나라 대통령으로부터 '어려운 협상 여건에서도 정부가 최선을 다해 얻어낸 결과'라며, '국회 비준 동의가 늦어질 경우, 금년도 의무이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대외신인도가 저하되고 국제적 분쟁이 일어나는 등 국가적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6월 7일 정부는 매년 쌀 의무수입량을 2014년까지 40만8700t까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쌀협상국회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14년 의무수입량 비중이 국내 평균 쌀 소비량의 7.96%라고 하지만 이는 1988년~1990년 국내 쌀 소비량 대비고, 지금은 쌀 소비량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에 8%라는 숫자 놀음은 농민들 입장으로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더구나 올해 의무시판해야 할 물량이 내년으로 이월되어 수입될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2006년 3월에 또다시 쌀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농민들은 노무현의 '선대책 후개방' 약속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쌀농사가 줄었다 해도 쌀농사는 여전히 농가소득의 절반을 이루었고 쌀값 폭락에 따른 농가 소득 감소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27조가 넘는 농가부채까지 짊어지고 있는 농민들에게 쌀 수입개방은 정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농민들은 노무현 정권의 농업정책을 살농정책이라 부르며 죽음으로 항거했다. 담양의 정용품 농민은 정부정책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성주의 오추옥 농민은 쌀개방을 반대하며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죽음으로 생존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처절하게 외치고 항의하며 싸웠던 것이다.
11월 15일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가 진행되었다. 숱한 농민들이 다쳤다. 8명이 전신마비, 뇌출혈, 갈비뼈 골절 등의 중상을 입었고, 147명에 이르는 농민들이 맞고 넘어져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그리고 11월 24일 새벽 폭력진압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한 농민은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은 폭력진압으로 일관했고 결국 전용철 농민까지 앗아갔다.
한편 같은(!) 날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청와대에서 '농업분야의 생산성에 비해 농가인구가 많아 소득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므로 농가인구를 줄여야한다'는 요지의 브리핑을 하며 농업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죽음으로 저항해도, 죽음에 내몰리면서까지 저항해도 이들에게 농민들의 존재란 국민경제의 숫자로서, 구조조정으로 줄여야 할 숫자로서만 의미를 띨 뿐이었다. 이들에게 농민들의 생존권은 그저 경제 효율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민중의 정치적 단결로 반신자유주의 기치를 드높이

농민은 생존의 권리 즉 노동에 대한 모든 권리,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민주적으로 누릴 모든 권리를 이 땅의 지배세력들에 의해 완전히 박탈당했다. 자신들의 처지를 분명한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키려는 농민들의 시도는 경찰의 폭력적 개입 아래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이상이 전용철 열사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의 본질이다.
이 문제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지배세력이 제시하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은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들의 투쟁으로서 한국사회 정치지형에 분명히 각인되지 못했고, 오늘 한국 정치를 주름잡고 있는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논쟁 구도를 수구세력 척결과 지역구도 타파 여부로 치환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위기와 갈등은 민중의 생존권을 둘러싼 투쟁으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지배세력은 이를 모든 정치논쟁에서 부차적인 것이거나 '국익' 앞에 희생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실업과 저임금 구조의 확산과 공공서비스 해체로 인한 노동자, 농민, 여성의 극심한 빈곤은 '양극화 해소'라는 구호아래 관리(!)될 뿐이었다.
전용철 열사의 죽음은 오늘 우리가 제기해야 할 민주주의의 쟁점이 어디서 비롯되어야 하는지를 날카롭게 제기하고 있다. 생존권은 모든 인민의 보편적인 정치적 권리로서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정치쟁점이다. 살인적인 경찰폭력이 민중의 생존권을 정치적으로 제기하는 것 자체를 가로막고 있으며, 노무현의 인기영합주의는 민주주의를 둘러싼 민중의 요구를 교묘히 조작했다. 2003년 탄핵 국면에서 대중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자유주의자들의 쟁점 조작(그들은 탄핵을 수구보수세력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아래 어떻게 허비되고 이용당했는지를 떠올려 보라. 2004년 차가운 여름 이라크 민중의 처참한 죽음과 한 젊은이의 죽음을 직접 보고도 '조직된'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자이툰 부대를 떠나보내야 했는지를 떠올려 보라. 2004년 겨울 이른바 '4대 개혁입법'에 관한 국회 앞 천막 농성 투쟁이 민중의 정치적 단결은커녕 모든 투쟁을 법안저지투쟁에 몰입하게 하고 자신만의 의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으로 연대를 무너뜨렸는지를 떠올려 보라. 그리하여 2003년 그 혹독했던 가을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재차 삼차 다짐했던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선(노무현 정권 심판)이 지금 어떻게 실종되었는지를 떠올려 보라. 열사의 죽음은 자유주의자들이 쳐놓은 한계에 갇힌 투쟁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릴 가치조차 없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이 모든 것들과 단호하게 전선을 치고 이들을 물리칠 우리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배세력들이 의제화한 허구적인 정치쟁점을 거부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옹호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중심으로 민중의 정치적 단결을 이루는 것이다. 민중의 정치적 의사를 살인폭력으로 짓밟은 경찰 같은 국가장치를 해체시키고 민중의 정치적 의제를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위기관리비용을 민중들에게 전가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노무현과 이를 정점으로 하는 한국사회 지배세력들이 지금 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바로 그들이 경찰폭력을 동원하여 민중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막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살인교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슬로는 명확하다. '살인정권 폭력정권 노무현정권 퇴진하라!', '노무현 심판/퇴진'을 전면에 내걸면서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기치를 드높이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동투쟁의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 이 투쟁을 농민들의 투쟁으로만 이해하고 그래서 자신의 의제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이해한 뒤 조금씩 서로 연대하자는 취지로는 아무것도 타개할 수 없다. 아무것도 분명해지지 않는다. 노동자, 농민, 여성 모두가 열사투쟁, 아니 반신자유주의 투쟁(노무현 정권 심판/퇴진)의 기치를 내걸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 노동법개악 저지투쟁이 노동법을 개악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투쟁으로 전환되어야 공동투쟁이 가능하며 쌀협상 국회비준저지 투쟁이 전용철 열사를 살해한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투쟁으로 전환되어야 공동투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공동투쟁들이 확산될 때라야 정치적 단결의 싹을 찾을 수 있다.
민중생존권을 파탄 낸 노무현 정권을 민중의 단결된 힘으로 심판하겠다는 투쟁의 의지를 분명히 되새기자. 끊임없는 토론 속에서 민중의 지혜를 모아내자. 민중의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연대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자.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오늘 한국정치의 한복판에 분명하게 각인시키자. 오로지 이것만이 열사의 죽음을 기리는 우리의 가장 값진 추모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주제어
노동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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