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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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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어요"

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나라는 파국인데 시위 숫자는 갈수록 줄어요. 나라도 가야지 하고 한 머리 보태러 가지요. 1001이 왔어요. 그건 어마어마한 폭력이에요. 기술도 아주 뛰어나요. 1001, 1002, 1003 부대가 또 급습하러 왔어요. 우리끼리만 급습이라고 합시다. 그건 유린하는 거예요. 그 때 내 혼이 놀라서 떨어졌어요. 문학적인 표현이려니 생각하세요. 내 영혼을 주워가지고 가는 거예요. 그래 맞은편 소나무 그 둔덕 위로 올라가 나무에 기대고 앉았어요. 저 사람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주위에 아주 많았어요. 내 바로 앞에서 전용철 농민이 맞아 쓰러지는 것을 봤어요. 내 목숨이 전용철 농민하고 몇 미터 차이로 살아남았지요. 브레히트의 말처럼,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어요.'”

지난 11월 15일 농민대회에서 고(故) 전용철 열사가 쓰러지는 순간을 소설가 조세희 선생은 이렇게 묘사했다. 그날 그곳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노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2003년 말 고(故)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에 항거하여 목숨을 내던질 때, 노무현은 ‘지금과 같은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87년의 적자(嫡子)라는 오만함에 취한 (전쟁)참여정부는 군사독재보다 더 주저 없이 반민중적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였고, 노동자 농민 민중들은 계속 죽어갔다. 그리고 급기야 노무현 정권은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스팔트 농사를 짓던 농촌의 ‘막내’ 고 전용철 열사를 경찰력으로 살해했다. 자살하거나 혹은 타살되거나. 신자유주의는 민중들에게 자연사의 평안마저 앗아간다.

70년대와 80년대의 활동가들이 운동을 거래하고 그것을 밑천 삼아 지배정치 안에서 제 몫을 챙기며, 자신들의 집권과 시대의 변화를 동일화하는 참을 수 없는 오만이 판치는 이때, 그들 모두가 한번쯤 읽었을 것이고 이제는 낡은 시대의 지나간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릴 한 위대한 소설의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200쇄를 찍는 동안 내내 민중들의 곁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앞에서 한 농민이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한 후에 세상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증언한다. 이 끔찍한 야만의 쳇바퀴는, 탄핵무효집회에서 우리가 착각했던 것과 달리 ‘수구보수’ 세력을 몰아냄으로써가 아니라, 민주화와 운동경력으로 분칠한 채 시민을 살해하는 저 ‘신자유주의’ 세력을 퇴진시킴으로써만 비로소 멈출 것이다. 노무현 퇴진의 기치를 내걸고 투쟁하는 것은 민주화/운동 거래 세력에 대한 민중운동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저들과 우리가 ‘사회적 교섭’이나 ‘사회 통합’을 통해 함께 잘 살아볼 수 있다는 따위의 미망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로 고통받는 다른 나라 노동자 농민 민중들과의 연대에 기초한 대안세계화를 민중운동의 노선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아펙투쟁과 노무현 퇴진 투쟁, WTO DDA 분쇄 투쟁은 따라서 하나이고, 오직 하나일 때에만 온전해질 수 있다. 우리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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