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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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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_갈월동기행_김희정.hwp

나의 홍콩투쟁 일기

김희정 | 회원, 광주민중행동 집행위원
2005년 12월 11일

드디어 홍콩으로 출발!
아침에 사무실에 들러 회원들과 몇몇 사람들에게 문자로, 목소리로 열심히 투쟁하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도 그렇고 홍콩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내내 답답하다.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회원들의 후원과 도움으로 나선 길인데 WTO 반대 투쟁에 대해 얼마나 절실함을 가지고 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 세계 민중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초국적 자본의 배만 불리며 세계적인 빈곤과 불평등, 전쟁과 폭력을 낳는다’는 문구는 종이 위에 있고 내 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렵게 홍콩까지 가는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냐 싶어 두루두루 미안함만 더해진다. 그래, 누구 말처럼 그곳에서 직접 투쟁하면서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고, 또 배우고 오면 되는 거지…. 그리고 돌아와서 뭔가를 할 수 있으면 되지 뭐. 맘 편하게 먹고 가자.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도 있는데…. 저기 통로 건너 옆자리에 앉아 계신 두 분이 아직은 어렵고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또 영어도 안 되는데 그곳에서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할지 걱정도 해야 하고.


2005년 12월 15일

우리 팀에 변화가 생겼다.
아침마다 홍콩 신문들을 훑어보며 한국투쟁단에 대해 실린 기사를 조단조단 말씀해주시던, 홍콩 미디어팀이라 불러드렸던 백 선생님께서 한국으로 먼저 떠나셨다. 여섯이었던 우리는 한자리에 모이기가 참 힘들었다. 한국민중투쟁단 상황실에 직접 결합한 사람들은 다른 일정으로 여기저기 다니느라 늘 함께 한다는 건 어려웠고, 주로 남은 셋이서 같이 움직였는데 또 한 사람이 가버리니 둘만 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단체들 틈바구니에서 어디 있어야 하나 이리저리 둘러보곤 했었는데 이젠 찾기도 힘들겠구나 싶다.

오후에는 빅토리아 공원에서부터 홍콩 컨벤션센터(WTO 각료회의장)가 보이는 완차이 바닷가까지 삼보일배로 행진을 했다. Down Down WTO!에 맞춰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기를 반복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져온 가방이 있어 한사람은 가방을 메고, 둘이 절하며 행진하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삼보일배로 가진 못했으나, 절하며 걷는 내내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한국에서 접했던 삼보일배 투쟁 방식에 그다지 내켜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내가 직접 참가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런 삼보일배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뭘까. 잘 모르겠다. 이곳에서 했던 삼보일배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는데….

2005년 12월 17일 ~ 19일

17일, 숙소가 있는 침사추이에서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아침나절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겨울인데 나무에 노란 꽃이 보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역시나 느린 동작으로 춤추듯 운동을 하고 있다. 나도 잠시 눈을 감고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서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지 하며.

난생 처음 유치장에 들어갔다. 이날 집회 참가자 전원 연행이라는 말을 듣고도 어디 공원이나 공공 장소에 한꺼번에 수용했다가 풀어주겠거니 생각했다. 연행되기 전까지 추위 떨친다고 풍물놀이, 줄넘기로 사람들과 뛰면서 어울리기도 하고,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기도 했다. 새벽에 경찰이 연행을 시작했을 때도 뒤쪽에 있던 우리는 추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얼른 데려갔으면 했다. 여성들을 먼저 연행한다는 말에 남은 남성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했고….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유치장에 들어가기까지 손목에 수갑도 차야했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서류에 서명도 해야 했으며, 담당 경찰과 범죄자처럼 사진도 찍고, 지문날인도 했다. 또 몸수색을 당하고, 지닌 물건들은 봉투에 담아 넘겨야 했으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공포와 무력감에 싸여 명령이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려야 했다. 이러다 들어간 유치장 안에 아는 얼굴이 없다는 게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한동안 말하지도 떠올리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풀려 나와 아는 얼굴들을 마주하고 너나없이 고생하지는 않았는지 서로 묻고 걱정해주는 사이에 무겁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졌던 유치장 기억도 하나의 경험으로 한결 가벼워졌다.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내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이기도 했다.

2006년 1월 20일

나에게 홍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 달 넘도록 떨어지지 않은 감기를 달고 있어 홍콩에서 고생해 그런 거 아니냐며 홍콩을 들먹거리는 이들도 있고, 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홍콩 잘 다녀왔냐는 인사를 아직 건네며 다녀온 이야기 좀 듣자고도 한다.
가끔 홍콩을 생각한다. 빵이며 마실 것을 건네주던 홍콩시민들 모습에서 내가 경험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90년대 초 광주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투쟁을 마치고 자기를 진지하게 평가하던 몇몇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있나 재보기도 한다. 함께 했던 사회진보연대 식구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난 아직 홍콩 WTO 반대 투쟁의 경험과 내용을 충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갈월동 기행을 준비하면서 출발할 때 가졌던 마음도 떠올려 보고 그곳, 홍콩에서 썼던 수첩도 뒤적거리면서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게 뭘까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뭐든 풀어내서 만들어야지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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