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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공간의 박탈을 넘어 평등한 삶의 자리로!

최예륜 | 정책편집부장, 빈곤팀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은?
1> “주거는 ___________이다.”
2> “주택은 ___________이다.”
1>의 경우, ‘인간의 필수 권리’ 등의 답변이 자연스럽겠지만 2>의 경우에서 문제가 달라진다. 오랜 세월 ‘집’이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버린 동안,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은 평생의 노동을 대가로 하기도 했고, 집 없는 이들, 집 잃은 이들의 육체·정신·삶을 통째로 갉아먹는 심각한 인권위협 요소가 되기도 했다. 주택문제는 집 없는 ‘무능한’, ‘게으른’, ‘부끄러운’ 인생들의 문제제기를 틀어막아 온 채 거품경제를 지탱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주택, 주거의 문제가 인간의 삶의 권리임을 천명하기 위한 기획이 요구된다.

한 평도 못되는 쪽방, 그마저 없으면 노숙

지난 1월 18일부터 21일까지 빈곤사회연대(준)가 주최하는 겨울빈민현장활동이 진행되었다. 건교부가 법으로 정한 “최저주거기준”(최소면적과 방의 개수, 설비, 주택 구조 등의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에조차 미달되는 가구가 약 330만(전체가구의 34%)에 달한다. (최저주거기준은 1인의 경우, 부엌, 화장실을 포함한 3.6평으로 그야말로 최저주거기준이다. 유엔인권위 등에서 정하는 생활환경, 입지 문제 등은 기준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나마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노숙인, 무허가판자촌이나 쪽방 등은 조사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이번 겨울 빈활에서는 참가자들이 실제와 비슷한 시설의 쪽방을 직접 제작해 이틀 간 생활하기도 했다. 서울역광장 한 켠에 지어진 1.2m X 1.8m 크기의 쪽방은 고작 합판 한 겹이 땅의 냉기와 1월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정도였지만, 서울역 주변 노숙인들이 찾아와 “이 방 분양하는 것이냐”, “얼마나”는 질문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쪽방은 영등포나 서울역 등지에 많은데, 공동화장실이 있고, 세면 공간(온수시설은 물론 없다)이 있을까 말까 한데, 한 평도 안 되는 쪽방이 하루에 임대료가 1만원에 달하고 한 달을 계약하면 20만 원 정도라지만, 하루하루 일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장기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있는 날은 쪽방에서 잠을 청하고(보통 두세 명) 돈이 없는 날은 한 쪽방에 임대인 모르게 대 여섯 명이 모여 추위만 간신히 피하며 밤새 소주병을 기울이거나, 그나마도 없으면 역사나 지하도에 박스집을 짓게 된다.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쪽방이 고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 달에 드는 이 정도의 돈으로 월세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 싶지만, 문제는 결국 안정적인 수입이다. 비나 추위를 간신히 피하는 쪽방 생활은 결국 정신과 육체를 좀먹는다. 안정적이고 안락한 주거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 한, 노숙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피로와 가난은 심화되어갈 뿐이다.

공공임대주택정책의 허와 실

빈활 실천단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다가구매입임대주택의 현황을 조사하러 나섰다. 은평, 강서, 마포, 광진 등 서울시에 구청이 매입하여 임대 중인 주택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1989년 영구임대주택보급을 시작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사업이 이루어져왔으나, 공공임대, 국민임대주택 등의 건립은 극히 제한적(2004년 현재 329,507호로 전체 주택재고의 2.5%, 네덜란드의 경우 공영임대주택이 41%, 영국 20%, 프랑스 16% 등이다)이거나 저소득층의 현실에 맞지 않는 높은 임대료 문제가 제기되어온 바 있다. 2001년 9월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저렴하게 주택을 임대해 도시저소득층의 주거를 안정화하기 위해 다가구매입임대주택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급대상자들은 15평 기준, 임대보증금 1천1백만~1천3백만 원에 월 임대료 10~11만 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매입 주택은 침수나 1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70%가 넘는다. 매입된 주택의 노후 정도에 따라 3백만~1천만 원 정도의 수리비를 지원하지만 근본적인 건물의 부실을 처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서울 5개 지역에서 총 503호를 매입해 시범운영하고 있고, 당초 계획(1만 호)을 확대해 2015년까지 매입임대주택 물량을 5만 호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민간건설회사가 건설한 경우에는 임대주택의 2/3 가량이 부도가 나서 경매를 통해 임차인들이 퇴거당하거나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주택공급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개발지역의 강제철거(용역깡패에 의한 동절기 폭력철거는 여전하다)가 발생한다. 이러한 주택임대사업이 결국은 투기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인 한, 그리고 건설경기에 힘입어 거품을 키워온 경제에 대한 반성이 없는 한, 이러한 악순환이 끊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강남 개발과 투기의 그늘, 포이동 266번지

빈활 실천단은 마지막 날 포이동 266번지 주거실태조사를 진행했다. 포이동 266번지는 1981년도 이후부터 넝마주이, 전쟁고아와 같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정부가 강제 이주시킴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애초에 45명이 이주했으나, 1986년 이후에도 상이용사 등이 계속 유입되어 현재 주민이 104가구에 달한다). 이후 경찰이 상주하면서 주민들을 감시하고 툭 하면 사회정화 차원에서 누명을 씌워 유치장에 끌고 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포이동 사수대책위 조철순 위원장은 가난하지만 절도사건 한 번 일어난 적 없는 마을에서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경찰공권력에 의해 멸시받고 억압받았던 과거를 설명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심지어는 경찰의 폭력을 피해 땅굴을 만들어 주민들이 몰래 숨어 지낸 날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 포이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마을 앞으로 고지되는 전기·수도요금을 나누어 납부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모두 주민등록 등재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 1986년경 포이동 200-1번지로 주민등록 등재를 해놓았지만, 1989년 이후 시유지로 선정된 이래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변경해야 했다. 1989년부터 부과되기 시작한 토지변상금이 누적되어 주민들 각각 5,000~6,000만원에 달하는 토지변상금을 머리에 이고 살고 있다. 타워팰리스를 양재천의 둑 하나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는 강남을 중심으로 일었던 주택, 땅 투기 거품의 이면에 그늘로 존재하는 곳이다. 빈활 실천단은 조를 나눠 포이동 주거실태조사를 벌였다. 마을의 모든 집들은 합판으로 벽을 세우고 플라스틱 덮개와 비닐 등으로 지붕을 세운 형태였다. 마을 곳곳에 몇 몇 가구 별로 공동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화장실이 위치하고 있었다. 4인가구가 2.6평 남짓의 단칸방에 생활하고 있는 등 조사한 18가구가 모두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실태조사에 앞서 진행된 주거인권학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싶은 집과 살 수 있는 집을, 각각의 상황을 가정해 조별로 진행해보았다. 주거의 문제가 누구에게나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임과 동시에, 주택이 재산 소유의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이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참가자는 “누구나 자신이 사는 집에 대한 안 좋은 추억들이 있는데, 언제나 집은 빈부의 표상이었고, 따라서 작고 누추한 집은 부끄러움의 표현이었다. 주민등록 등재를 요구하고 주거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는 포이동 주민들의 경우, 그 과정까지의 고통이 너무 컸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이동 주민들은 강남의 섬처럼 존재하는 이곳에 사는 동안 개발 이후 입주하기 시작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멸시와 적대가 자식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집이 늘어서 있는 마을 한편에는 모아온 종이와 재활용품을 처리하는 작업장이 보였다. 마을회관의 옥상에서 내다보이는 강남아파트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는 이곳이 시유지에서 풀려나고 재개발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다운 주거의 권리를!

현행 국민기초생활법 하에서 빈곤층에게 주거급여가 제공되고 있다. 생계급여 항목에 주거비를 포함시키는 동시에 급여형태로 주거급여를 보장하는데, 1, 2인 가구 기준 33,000원이 지급된다. 이를 일 년 단위로 모아 주거수리형태로(집수리사업단 등의 자활사업을 연계시킨다)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사업이 어떠한 향방으로 귀결될지 단언할 수는 없으나, 상품화 논리 속에 집이 가장 효율적인 투기상품으로 간주되는 풍토는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대통령 노무현은 퇴임 후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겠다며 수많은 임대아파트 대기자와 무주택자를 기만하고 있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되었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서 부동산을 억제, 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을 뿐이다. 만약 정부의 정책이 빈곤층에게 제대로 된 주택보급을 실시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주거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8·31대책은 집권세력의 재집권 전략의 일환으로서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빈활 중 진행된 주거인권학교에서 우리가 원하는 집을 만들기 위한 퍼즐을 맞추었다. ‘내가 원하는 집’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권리를 기반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집이 없는 경우, 쪽방 생활을 할 경우를 가정했을 때, 그 권리들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했다. 갈대, 나무, 벽돌로 집을 지었다는 돼지 삼형제 우화는 그들이 가진 재산과 그들이 행하는 노동의 형태를 담고 있지 않았다. 누군들 벽돌로 된 단단한 집을 지을 생각이 왜 없겠는가. 벽돌을 구할 돈과 시간이 없는 800만 절대빈곤층, 집 없는 절반의 인구가 느끼는 박탈감을 여전히 능력의 결여, 게으름의 소치로 치부할 것인가. 자신의 집을 가진 이들은 50.7%(건교부 통계) 정도라고 한다. 절반의 집 없는 이들의 수치심과 패배감, 안락한 쉴 공간이 없는 이들의 비참한 가난의 굴레는 집을 소유하기 위한 끝없는 경주를 통해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노숙인들과 포이동 주민들의 자기 존재와 권리의 천명은 옹호되어야 하며 인간다운 주거권 실현을 위한 투쟁이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태그
민주노총 정리해고 신자유주의 쌍용자동차 신보수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