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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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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_대안세계화_권형은.hwp

세계 단일 시장 형성을 위한 자본의 전략, WTO

권형은 | 인천지부 집행위원
WTO(세계무역기구)는 1995년 설립된 이래 2005년까지 6차례의 각료회의를 진행하면서 세계 단일시장 건설을 위한 행보를 꾸준히 밟고 있다. WTO는 기존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와 비교할 때 포괄 회원국의 숫자만큼이나(2004년 현재 148개국) 포괄영역과 권한이 크게 확대되었다. 한편으로 서비스, 지적재산권, 농산물 등의 영역이 교역의 대상으로 포함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 간 무역 분쟁, 관세인하 요구, 반덤핑 규제 등에 대한 판결권 및 그에 입각한 강제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역자유화’, ‘세계화’, ‘개방화’를 부르짖는 WTO체제는 세계 교역증진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국을 위시로 한 주요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관철되는 단일 시장 건설을 꾀할 뿐이다. 그러나 몇 차례의 WTO회담결렬을 겪으면서 지배세력은 정치, 경제, 문화적 발전 정도가 각양각색인 국가들이 단일한 거래 원칙을 합의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양자 간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지역경제블럭 건설 등을 우회하면서 WTO의 토대를 차츰 확보해 가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그 진척이 더딘데도 WTO가 이렇게 지속되는 이유는 한편으로 기존의 위계화한 자본주의 시장질서 안에서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누리는 혜택을 고스란히 세계시장(광범위한 미개척 시장을 포함하는)에 투영시킬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후발국 역시 이를 선진국과의 ‘빅딜’을 통해 세계 시장에 편입될 수 있는 유효한 계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에 가입되어 있고, 칠레·싱가포르·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등과 FTA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미국·일본·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캐나다와 공식협상을 진행 중인데도 WTO 협정에 사활을 걸고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홍콩 각료회의까지 회담의 흐름

WTO 각료회의는 일반이사회 및 이해당사자 간의 다자간 실무협상을 통해 수차례 실질적인 의견조정을 거치는데, 그 협상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회원국들 간의 이견 차와 반세계화 투쟁의 여파로 인해 시애틀 회의를 비롯한 몇 번의 회담이 결렬되었던 선례를 반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협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루과이 라운드의 뒤를 잇는 새로운 무역방침인 뉴라운드 성립이 처음 결렬된 이후 DDA(도하개발아젠다)선언, DDA의제 확정, 세부원칙 작성 등이 이어졌다. 3차회의까지 별 진전이 없던 회담은 4차 도하회의 당시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제3세계 개도국과 최빈국의 불만을 무마하면서 ‘개도국과 최빈국의 개발을 돕는다’는 내용의 DDA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일반이사회 및 실무협상 결과 확정된 DDA 핵심의제인 비농산물 관세인하협정(NAMA), 농업협상(농업보조금 축소, 폐지가 핵심), 필수 공공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협정(GATS), 지적재산권협정(TRIPS) 등은 북반구 강대국의 이해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하거나 선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강대국의 이익을 고스란히 담보하는 형태로 개도국과 최빈국에 강제되었다. 마침내 이를 비판하는 제3세계 개도국과 최빈국들이 단결하기 시작하고, 이경해 열사의 죽음으로 전 세계 WTO 반대 운동이 고조되자 5차 칸쿤회의는 결렬되었다. NAMA로 인해 북반구의 공산품이 낮은 관세로 제 3세계 국가들에 유입되어 남반구의 취약한 산업구조를 점유, 파괴하기 시작했고 ‘관세감축’, ‘국내보조금의 실질적인 감축’, ‘수출보조금 철폐’를 원칙으로 하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개시된 이후에도, 농업보조금의 대폭 확대를 골자로 하는 농업법 등을 제정한 미국과 EU의 농업지원정책이 유지, 확대되자 개도국들이 ‘농산물 수출 개도국 그룹(G21)’, ‘개도국-최빈국 그룹(G90)’등의 의견 그룹을 형성하여 협상 자체를 결렬시킨 것이다. 그러나 칸쿤 회담 이후 미국과 EU 등은 자국 시장개방을 미끼로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페루,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브라질, 인도 등의 나라를 개도국 의견 그룹에서 이탈시켰고 2004년 7월 제네바 일반이사회에서 DDA의제 기본골격이 타결된다.
2005년 홍콩 6차 각료회의는 이렇게 형성된 기본골격에 바탕을 둔 세부원칙협의의 장이었다. 비록 미국과 EU 등의 협상 주도국 간에 논란이 재연되었지만 농업보조금(2013년 까지 수출보조금 폐지), 비농산물 협정(관세가 높을수록 더 많이 감축하며 관세상한선인하 등), 서비스협정(복수의 국가가 개별국가의 서비스 시장 개방요구가능)이 타결되었고, 2008년 DDA발효를 위해 올해 4월내로 세부원칙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선언이 발표되었다.

홍콩 투쟁

6차 각료회의는 12월 13일부터 18일까지 홍콩에서 개최되었다. 홍콩은 97년 중국에 반환되기까지 영국령으로 통치되었고, 반환 이후에는 1국가 2체제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기본법을 유지하고 있다. 홍콩의 사회구조는 금융서비스 산업 중심이며 대개의 식료품과 공산품은 수입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얼핏 보면 홍콩은 WTO 협상과 무관하거나 심지어 농산물 개방 등으로 더 많은 혜택을 입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WTO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서비스 협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금은 의료, 교육, 통신 등의 공공 서비스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지만 WTO 서비스 협상이 진행되면 민영화를 통해 홍콩 민중들이 누리던 공적 서비스는 상당 부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홍콩은 WTO 자체의 내용보다는 한국 투쟁단으로 대표되는 반세계화 시위대의 ‘과격성’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 홍콩 언론들은 협상 내용이나 협상의 영향을 보도하기보다는 한국 투쟁단, 현지 인도네시아, 필리핀 이주노동자 조직, 홍콩민중동맹, 비아캄페시나 동남아 투쟁단 등의 참가자들 인터뷰와 하루일상, 동선 스케치 등만을 쏟아냈다. 한국 투쟁단에 대한 과도한 폭력성 부각과 정부 차원의 휴교령, 지역폐쇄 명령 등은 홍콩 시민들에게 시위대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였고,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WTO 서비스 협정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투쟁단은 집회, 해상진격투쟁, 몸싸움, 삼보일배, 촛불집회, 집중진격투쟁 등 다양한 실천방식의 전개를 통해 ‘과격집단’의 혐의를 벗고 홍콩시민들의 동조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어느 시점을 경과한 뒤부터 시민들이 보여준 호기심과 애정 어린 시선, 더 나가서는 먹을거리, 옷가지, 인사, 직접참여 등은 한국투쟁단은 물론 WTO반대 투쟁에 참가했던 많은 이들을 고무시켰다. 거리의 원정투쟁단 활동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WTO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됐다는 홍콩시민의 연대의 메시지 등은 원정 투쟁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폭력의 실체

2003년 이경해 열사는 ‘WTO가 농민을 죽인다’며 죽음으로 칸쿤 각료회의에 항의했다. 2004년 수많은 농민들이 농업말살정책에서 생존을 찾을 길이 없어 자살을 선택했다. 2005년 11월 쌀 수입 개방 반대를 외쳤던 농민집회에서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수 십 명이 다치고 심지어 농민 두 분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이때 정권과 언론은 한국의 투쟁단을 사회의 안정된 질서를 교란하는 과격집단의 표상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결과 체제가 가하는 폭력에 맞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숭고한 싸움이 이익집단의 어거지로 변화되고 말았다. 홍콩 투쟁단이 삼보일배를 진행할 때 한국 언론은 평화집회를 하고 있다며 추켜세우다, 조금이라도 충돌이 있으면 바로 과격 폭력집단으로 매도해 버린다. 결국 '제도'가 보장하는 평화적 시위만을 정당화한다.
사실 정권과 언론이 의도하는 것은 평화적인가 아닌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가 보장하는 범위 안인가 바깥인가 이다. 오늘날 법·제도는 민중의 저항권을 기본 밑바닥에서부터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도가 정해놓은 경계 밖으로 넘어서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그것이 평화적이건 폭력적이건 관계없이 공권력(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민중의 저항권이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농업말살과 그에 따른 생존권 위협은 농민에게 체제가 가하는 구체적인 폭력의 형태다. 이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폭력을 빌미로 ‘제도’를 운운하는 것은 기만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은 홍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홍콩 경찰은 투쟁대오가 자신들이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제도와 원칙을 들이대며 투쟁대오의 인권을 무시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17일 밤과 18일 새벽 도로를 봉쇄하고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게 한 점(화장실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수용공간이 충분치 않음에도 무조건 연행하여 홍콩법률이 정한 규정도 지키지 않았던 것(2명 수용 유치장에 21명이 수용된 경우), 시위대가 범법자라는 이유로 경찰관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점(구타, 물리적 억압) 등은 제도를 넘어선 일체의 행위에 대한 체제의 '폭력'이다. 그들이 사실 ‘제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자본주의의 지배적인 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행위(법과 제도를 위반하는 모든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여기서 그대로 드러난다.
고 전용철, 홍덕표 열사 투쟁의 경우에도 그렇다.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 당시, 법과 제도,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이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그의 발언은 부여된 ‘폭력’의 권한으로 법과 제도를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는 항변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대책을 강구한다. 최근 그들이 제시하는 평화시위대책이라는 것이 민중의 저항권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제도’와 ‘질서’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대책만 내놓고 있다는 것, 이것'만' 지키면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 폭력의 진위공방만을 하면서 정작 산 농민을 죽은 농민으로 만든 쌀 시장 개방, 농업 말살 정책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성찰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가며

삶의 가치보다 경쟁이 우선시 되고, 사람목숨보다 이윤이 중요한 세상에서 자본과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적 반격의 완결성은 더해가고 있다. 거품경제에 기반을 두어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돌입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민중적 대안이 될 수 없다. 법과 제도, 이윤이 놓인 자리에 삶의 권리를 위한 가치들로 대체하는 투쟁이 절실하다. 홍콩시민들과 여러 나라의 투쟁단과의 교류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삼보일배로 보인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망이, 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에서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홍콩의 민중이 한국의 민중이 서로의 경험을 환류하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홍콩에서 수많은 농민열사를 앞세운 농민활동가가 울다 웃으며 한 말처럼 말이다.

"우리 죽지 말고 살아서 투쟁합시다!"
"WTO 끝장내고 신자유주의 박살내자!"

이는 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에 나선 민중들이 전 세계 민중들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주제어
경제 생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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