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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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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향한 대장정

에티엔 발리바르 |
* 번역: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편집자 주] 2005년 북한 ‘핵보유선언’과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이라는 말들이 오고 갈 당시 우리는 한반도가 처한 위험의 실체를 냉정히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위험의 실체를 과대포장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 없이, 실재하는 ‘핵위협’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를 명백히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처음 ‘핵’이 사용된 이래 인류는 냉전이라는 불안정한 시스템 속에서 ‘핵’을 관리해왔다. 핵무장의 목표는 국가 간 체계의 불평등성을 확고히 하는 것인데도 냉전체제에서 핵의 ‘관리’는 이를 은폐했고, 미제국주의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뒷받침했다.
1970년대 세계 자본주의에 몰아닥친 경제위기는 이 불안정한 시스템을 근저에서 파괴했다. 동시에 핵무장의 유혹도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다. 경제위기는 개별국가의 민족적 발전 전망도 파괴했고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은 맹목적인 (국가)체제 ‘유지’의 수단이 되었다.
한편, 소련의 몰락 이후 새롭게 등장한 (미)제국주의 역시 자신의 무장력을 전 세계로 투사한다. 이는 국가 간 체계의 붕괴와 군사력의 무질서한 확산을 새롭게 ‘관리’하려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민에 대한 착취(/배제)를 유지(/관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핵 문제는 새롭게 재구성된다. 그리하여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핵독점’을 이루겠다는 (미)제국주의의 군사교리가 수립된다.
세계화에 맞선 사회운동은 이런 상황에서 운동과제를 새롭게 정립하기위해 두 가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첫째 오늘날 핵위협은 (미)제국주의의 새로운 착취?수탈 체계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가운데 새롭게 출현했다. 둘째 오늘날 사회운동은 (고립된) 국가의 핵무장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인민의 통제권을 완전히 벗어난 핵무기의 영원한 존속을 보증하거니와 핵무장은 결국 냉전체제 이후에도 지속하는 국가(/체계) 간 모순(착취와 배제)을 가속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조건 위에서 인민의 ‘평화’라는 관념이 정세적으로 개입된다면, 우리는 전쟁에 대한 인민의 민주적 통제라는 차원에서 ‘평화’라는 문제를 다시금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착취와 폭력에 맞서는 대중의 운동으로서 사회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상이 우리가 그동안 핵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도달한 잠정적 결론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발리바르의 ‘평화를 향한 대장정’이라는 논문을 싣는 것으로 우리의 기획을 마감하고자 한다.
1960년대 초반 영국에서는 핵 무장해제에 관한 지식인들의 활발한 토론이 있었고 특히 『Universities and Left Review』와 『The New Reasoner』가 선구자 역할을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에 <핵무장 해제 캠페인> (CND,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의 활동이 쇠퇴하면서, 영국에서는 거의 20년 동안 핵전쟁의 문제는 대중정치의 의제에서 사라지게 된다. ‘데탕트’의 시기에 무기경쟁의 속도는 실로 더욱 빨라졌지만, 1980년대까지 대중운동은 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1979년 10월 유럽에 쿠르즈와 퍼싱Ⅱ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NATO의 결정으로 상황이 크게 바뀐다. 특히 영국에서 에드워드 톰슨은 이 문제에 관한 지적인 자극에 큰 기여를 했다. 1980년대 초반 에드워드 톰슨은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에서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 문명의 최후 단계’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톰슨은 이 책의 결론에서 독자들에게 평화라는 공통의 주장을 위해 마음을 바꾸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뉴레프트리뷰』는 광범위한 토론을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심포지엄이 개최되었고, 그 결과로 출판된 것이 이 글이 담긴 『절멸주의와 냉전』(Exterminism and the Cold War, 1982)이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1980년 봄부터 1981년 겨울까지의 기간 동안 작성되었다. 저자들은 사회주의자이고 반전운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이며, 대개(모두는 아니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편 에티엔 발리바르는 1961년부터 1981년까지 프랑스 공산당의 구성원이었고, 이주자 문제에 관한 당의 정책에 반대해 출당 당했다. 그는 『자본을 읽자』(Reading Capital)의 (알튀세르와 함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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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공산주의 투사들이 핵무기 경쟁에 대한 현재의 국제적 논의에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긴급한 임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북유럽과 남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대중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점차 고조되는 [핵경쟁] 위험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으며, 또한 이를 몰아내겠다는 결의를 표현했다. 이 투쟁은 국가의 ‘선의’나 나아가 ‘전략적 균형’이라는 계산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핵 ‘절멸주의(exterminism)’의 희생자로 지목된 남성과 여성의 에너지를 동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상황은 매우 다르다. <유럽 핵무장해제>(European Nuclear Disarmament)와 연합한 활동가들이 - 대부분은 지식인들 - 용감하게 나선 몇몇 사례가 있긴 하지만, 프랑스는 대체로 이 절박한 문제에 관해 유독 둔감해 보인다. 1950년대 프랑스 노동운동, 특히 프랑스공산당(CPF)과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정력적으로 평화운동에 헌신했으며,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도 (어떤 모순들이 있었지만) 베트남전쟁과 닉슨의 정책에 대항하는 투쟁에 힘을 기울였다. 오히려 오늘날 새로운 유럽 평화운동의 이상은 ‘자주관리’[운동]과 행동을 함께 하는 프랑스 좌파 분파의 이상과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 드러나는 모습은 분명 무기력함이다.
나는 이러한 조건에서 해외의 수많은 우리 동료들이 프랑스 좌파가 역사적 임무를 ‘배신’하거나 포기했다고 여길까봐 두렵다. 게다가 이러한 무기력의 원인은 의심할 여지없이 프랑스에서 가장 특유한 어떤 정치행동 모형에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기력은 우리가 전통적인 지배계급과 정치인들의 실천에 대한 어떤 대안도 발전시킬 수 없음을 시사한다.
사실 지난여름 프랑스 공산당은 [미국의] 중성자탄 개발에 반대하고 [미국의] 퍼싱(Pershing) 미사일의 서유럽 배치를 반대하는 항의 캠페인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금방 사그라졌고, 그 뒤 자연스럽게 이 운동의 정치적 배경에 관한 온갖 의문이 제기되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퍼싱 미사일을 비난했지만, 1977년 극적인 정책전환 과정에서 갑자기 승인해버린 프랑스 핵무장군(force de frappe)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캠페인이 끝나갈 무렵인 1981년 10월 25일 시위에서 비로소 등장한 “퍼싱 반대, SS-20s[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반대”라는 슬로건만이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불균형을 공식적으로 정정했을 따름이다. 이 캠페인이 단명했다는 사실은 프랑스 공산당이 책략을 구사할 수 있는 여지를 시험해 보기 위해 이 캠페인을 시행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몇 달 후 프랑스 공산당은 선거에서 패배하고 사회당 지지 세력으로 축소되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아마 이 문제가 새로운 다수파 정당 사이에서 겨룰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배타적 특권에 속하는 문제라는 점을 상기했을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 공산당 지도부는 항의행동에서 통제권을 ‘상실할’ 위험을 내건 모험을 피하고자 여론을 동원하는 관료제적인 수단을 채택했고, 이 때문에 진정한 대중운동이 등장할 기회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공산당은 적어도-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 프랑스에서 이슈를 제기하기에 유리했다. 사회당 장관들과 지도부는 이전 우파 정부의 군사 정책을 따르겠다는 결정을 말과 행동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들은 핵잠수함 건조를 지속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군인위원회의 민주적 요구를 저지했다. 특히 국방장관 샬르 에르누(Charles Hernu)는 그들의 단호한 반대자였다. 프랑스 언론의 논조 변화는 혼란을 더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이 문제에 관한 이전의 무관심을 깨고, '소련의 군사적 위협‘, 유럽의 ’핀란드화(化)‘[유럽의 비공산국들이 옛 소련에 대하여 취했던 유화적 외교 정책]라는 위험에 대항하는 강력한 캠페인을 벌였고, 미국의 군사적 우세 정책을 가차없이 지지했다. 그 동안 프랑수와 미테랑은 몇 년 내에 전략적 균형이 미국에 불리하게 변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언론 캠페인은 폴란드의 군사 쿠데타를 최대한 이용하였다. 언론은 총부리의 방향을 독일의 평화운동으로 바꾸었는데, 어느 좌파 일간지는 이를 민족중립주의(Nazionalneutralismus)라고 딱지를 붙이기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우익 언론은 극좌,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 언론과 공동 전선에 합류했고, 똑같은 서명을 양자 모두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군사주의적 경향이 전통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뻗어나가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광범위한 반-군사주의 운동이 모든 계급들과 정당들에서 지원을 발견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늘날 다시 시작된 전쟁의 위험에 저항하는 프랑스 운동이 힘없고 분열에 빠진 상황에서, 어떤 선입견이나 배제도 없는 집단적인 반성과 공적인 토론이 절실하다. 내가 볼 때, 문제의 근원은 좌파 정치조직 혹은 노동조합의 오류, 혹은 결점, 더 나아가 경화증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사회당은 여당이라는 위치 때문에 무기력한 상태이고, 이제 정부에 참여하여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공산당은 지지자를 다시 얻기 위해서 대중이 제기한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유혹과 소련에 충성해온 데에 따른 부담에서 동요한다면, 그리고 CFDT(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가 자신의 반핵 입장과 범대서양주의(Atlanticism)[서유럽과 미국의 군사정치경제의 긴밀한 협력을 주장하는 입장]로 일정한 복귀를 결합하려는 시도 때문에 무력해졌다면, 이 모든 것은, 노동운동 내부에 깊숙이 작동하는 객관적인 모순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프랑스의 ‘후진성’은 이로운 부수효과를 낸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 내가 ‘우리’라고 말할 때는 이웃 나라의 동료들도 함께 생각하고 있다 - 여러 모순과 장애가 존재하는 현실에 주목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 현실은 평화와 무장해제를 위한 운동이 사건에 실제 영향을 미칠 만큼 지지를 얻는데 앞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러한 모순 중 어떤 것은 프랑스에서 특히 강력하거나 두드러진다. 이는 전투적인 반전 운동에 헌신하는 것을 우선에 두자는 말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어떻게 운동의 발전이 그 운동을 깨뜨리고, 봉쇄하고, 약화하는 어떤 모호성을 쫓아 버릴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전쟁 문제에 대해 제국주의와 국제관계는 단순하거나 자동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 또는 특히, 그 대안이 전부 아니면 전무 (상호생존 또는 절멸)가 되는 ‘묵시록’을 향한 경쟁 속에서 [제국주의나 국제관계들이] 집중적인 공통점을 발견할지라도, 그리고 이러한 대안이 너무도 단순하여 수십만 명, 잠재적으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선다 할지라도 말이다.
단순한 해답은 없다. 왜냐하면 비록 핵 협박이 지금 여기에서 대중들에게 복종과 죽음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며, 어쨌든 궁극적으로는 파멸할 것이라고 위협하더라도, 이러한 협박의 희생자들은 동시에 문명의 생존을 위해, 그 뿐만 아니라 또한 독립을 위해, 착취에 맞서, 투쟁들의 복수성(plurality of struggles)을 얻기 위해 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를 위해 다른 투쟁을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또한 어느 한 가지 널리 알려진 개념 아래로 이러한 투쟁들의 종별성을 침몰시키는 것도 해답이 아니다. 제국주의이건 절멸주의이건 간에 그 개념은 모든 투쟁들을 유발한 비인간적인 ‘체계’에 대항하여 그들을 공통의 전선으로 수렴시킬 것이다. 평화운동이 항구적으로 광범위한 인민 대중을 각성하도록 하려면, 모두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위대한 이상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의 삶과 투쟁의 구체적 조건들 속에 깊게 뿌리내려야 한다. 폭탄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질 수 있지만, 에드워드 톰슨(Edward Thompson)이 요청한 집단적인 ‘자기결정 행동’은 천상으로부터 내려올 수 없다. 실제로, 이런 이유에서 톰슨이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들을 창출하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들은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순수한 ‘의지’나 ‘전환’의 결과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순수한 ‘논리’의 결과가 아닐 것이다. 절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남성과 여성의 현재 상태와 맞서 싸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싸우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그들을 ‘새로운’ 인민으로, 서로 거대한 자유와 연대를 소유한 인민으로 점차 변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럽과 다른 곳에서 이미 시작된 그 운동의 결정적인 중요성이 있다: 그것이 없다면 중요한 문제들은 드러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위선적인, 혹은 무의식중에 이루어진 체계와의 타협을 현실의 모순을 작동시키는 진정한 능력과 구별하는 경계선을 미리 밝혀낼 수는 없다. 따라서 내 견해로는 프랑스 핵무장군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핵의 세계적 저장고에 속한다는 주장, 또는 아프리카나 다른 곳에서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어쩔 수 없이 그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제국주의적 관계들에 겹쳐 있다고 하는 주장을 전혀 용납할 수 없다. 반대로 우리는 프랑스가(또는 쿠바 또는 소련이) 니카라과, 앙골라, 또는 모잠비크로 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반대할 수 있을까? 그 나라의 가난에 찌든 인민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식민지 또는 신식민지 군대에 맞서 하루하루 자신을 방어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많은 사회당 당원이 의심 없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선험적인 논거, 즉 미테랑이 레이건이 주창한 ‘전략적 불균형’을 부분적으로(일시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그가 다른 영역들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데, 예를 들어 제3세계에서 어떤 해방운동을 지원하는데 더욱 자유로운 위치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논거를 거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러한 어떤 계산도 -만약 존재한다면- 실패하게 되어 있으며, 진정한 대안이 존재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대안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마찬가지로, 서구의 평화운동이 ‘사회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는 동구의 대중적 투쟁과 ‘결국’ 동일한 목적을 갖는다고 단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세력들이 양자를 현실 세계에서 대립하도록 함으로써 무력하게 하기 쉬운 상황에서, 양자가 서로를 지원하고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폴란드에서 격렬한 계급투쟁이 벌어진지 일 년 반 후 폴란드의 혁명적 과정이 일단 군사 쿠데타로 종결되었다는 사실은 모순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물론 이는 ‘얄타의 논리’를 따르는 여러 결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얄타의 논리는 세계를 대립된 ‘제국들’로 분할했고 ‘공포의 균형’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논리에 대항하는 운동이 폴란드 혁명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레이건과 대처가 휘두르는 제재는 스스로 위기에 빠져 썩어 들어가고 있는 제국, 혹은 나라에서 냉전이라는 공동의 논리를 재건할 뿐인데, 폴란드 혁명은 여기에서 효과적인 지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는 매우 현실적인 모순이다. 이것들은 체계가 낳은 환상의 결과도 아니며, 그 방어자들이 연출한 선전(propaganda)의 결과도 아니다. 만약 동시에 여러 면에서, 그리고 미리 결정된 이론적 ‘해답’ 없이 그것을 직접 대면한다면, 마침내 새로운 국제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운동의] 힘들이 이미 의미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프랑스 ‘사회주의’와 국제적 맥락

영국, 네덜란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 출발한 유럽의 거대한 평화운동의 부활은 대체로 놀라운 것이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또한 이는 프랑스에 있는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운동은 곧 닥칠 미래에 모든 장애물과 마주치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제국주의적 경향에 홀로 도전할 수 있는 서로 다른세력들의 수렴을 뚜렷하게 보도록 도와주며 또 강제한다. 만약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그 목적을 위해 필수적인 새로운 국제주의의 형태를 밝히는 게 사활적인 임무라면, 그 운동은 우리에게 해답의 요소를 줄 것이다.
프랑스에서 언론이 우리에게 어떤 믿음을 심어줄 지라도, 평화운동은 과거 또는 미래가 없는 우연적인 발전이 아니며 단지 공포에 따른 정신병의 결과가 아니다. 예를 들면 크루즈(Cruise)와 퍼싱 미사일이 배치되는 전선에 서 있는 독일의 젊은이들은 분명히 무자비한 진압에 맞설 준비가 되어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평안함이 깨질까 두려워하는 배부른 군중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이미 핵무기 투성이 나라에서, 책임 있고 지각 있는 대중적 세력을 대표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수십만 명의 시위자들과 함께, 그들은 우리 서구의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우선을 두고, 필요하다면 일방적인 방식의 군축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게임의 법칙’을 뒤엎었고, ‘평화주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서독을 포함하여 모든 유럽 나라들에서 실업이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을 때, 동시에 그 운동이 분출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수년 동안 서독에서는 ‘안보’ 이데올로기에 대해, ‘강한 국가’의 현실적 의미에 대해, 그리고 더 이상 복지국가라고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군사-산업 모델에 대한 반역과 반성이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 운동은 서독에 세워진 사회 질서에 대해 비판적인 모든 운동이 함정에 빠지도록 위협하는 테러리즘과 대항-테러리즘의 그물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결단력과 역량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프랑스 좌파의 선거 승리를 지배의 ‘전략적 균형’을 뒤엎도록 돕는 또 다른 요소로 간주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새로운 사회당 정부가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다. 특히 벽 뒤의 배후세력과 투쟁하고 있는 민족해방운동들에서, 독립적인 발전을 위해 가장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나라들에서 그러하다. 그들의 희망은 과장되거나 시기 상조일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그 희망에 알맹이와 진실을 주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의 정치적 자율성이 전제가 되어야 하며, 그것은 프랑스의 사회주의 실험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981년 5-6월 선거의 승리가 단지 ‘권력 쇠퇴’의 기계적 효과며,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권력 쇠퇴는 한 쪽에서는 ‘왼쪽으로의 흔들림’을 낳고 다른 쪽에서는 ‘오른쪽으로의 흔들림’을 낳는다고 종종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진지한 설명이 아닌데, 새로운 프랑스 정부는 대중의 사회적 투쟁에 뿌리를 둔 오랜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못보고 지나치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1968년 활기의 쇠퇴와 1978년 좌파 연합의 비참한 붕괴 이후, 그것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마지막 (따라서 처음) 기회를 어떻게 붙잡을지 알았다. 우리가 지금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어떠한 사회변혁 프로젝트도 활동적인 대중 운동 없이는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없으며, 결코 그러한 운동은 ‘자유로운 사회주의’나 ‘위기에 대한 민족적 해결책’[과 같은 슬로건]을 밀폐된 곳에서 배양한다고 해서 태어날 수는 없다.
‘새로운 국제 질서’에 관한 프랑스의 사회주의 실험의 기초를 마련하려는 일관된 시도는 불가피하게도 제국주의의 논리와의, 특히 미국의 이해와의 충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모든 프랑스 좌파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상호지원의 축이 동구와 서구 사이의 대치를 최대한 이겨내야 한다는 점을, 최소한 말로는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이는 만약 프랑스의 노동자 운동이, ‘우리의’[프랑스의] 민족적 제국주의에 대한 상대적 취약성과 노동자운동 자체의 분할, 양자에서 유래한 그릇된 방침들과 역사적 지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부의 ‘결정’은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만약 운동이 충분한 힘과 응집력을 갖추도록 점차 발전한다면 정부의 결정은 분명한 성격을 띠게 될 것이며, 외부의 압박과 위협을 당하는 이해에 대치하는 불가피한 위험을 감수할 것이다. 또한 그 운동 속에서 사회적 요구들은 반-제국주의 목표들과 평화와 무장해제를 위한 투쟁과 융합될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주의 프로젝트’(그것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으며, 아직 문건조차 없다)가 이러저러한 진보적인 이론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인지 추상적안 의문을 품을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어떻게 발전하거나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형성될 수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대중운동과 범세계적인 해방투쟁에 인상적일 만큼 개방적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나의 우호적인 조건이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스의 사회주의 실험의 국제적인 맥락에 대해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고 싶다. 이 국제적 맥락에는 유럽적 차원의 중요성이 있다. 지난 몇 해의 경험을 통해 극히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초-민족적’[민족-이상적] 전망이 단지 신화일 따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적 사회구성체는 그 내부에서 여러 계급들과 사회세력들의 정치적 지향이 실제 결정(結晶)되는 주요한 틀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특유하게도 유럽의 정치 공간은 몇 해 동안 현존했고, 그것은 국가 기구들, 경제적인 세력 균형, 전통적인 정치 공간으로 단지 축소될 수 없는 계급 전략들에 의해 구조화되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측면에서의 주도권은 그들의 활동을 국경을 가로질러 확장하려는 자본주의 정부와 기업들이 지녀왔으며, 그래서 지속적으로 노동자운동을 분할하고 약화했다. 사실 “유럽의 건설‘은 항상 - 최소한 겉보기에는 - 정치적 결정의 장소를 계급투쟁이 닿을 수 없는 저 너머로 옮기려고 고안된 거대한 측면 포위 책략으로 쓰였다. 반면 노동조합은 결코 동일한 수준으로 활동을 조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 실업과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유사한 계획들에 대항하여 대중 투쟁이 동시에 일어날 때에도 그러했다(일례로, 1978년 로렌과 루르를 생각해 보라). 유로코뮤니즘은 자신이 우위에 있던 시기에도 어떻게 유럽 노동자운동의 견고한 분할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거나 알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체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는 더 그러하다.
세계 경제의 위기와 자본주의 권력 간의 더욱 첨예한 경쟁이 유럽 여러 나라의 이해와 정책 사이의 깊은 모순을 개방하고 있을 때, 노동 운동은 여전히 이러한 역사적 지체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실은 정반대다. 이는 프랑스나 다른 곳의 사회변혁 과정에서 드러나는 취약성의 원천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적이고 범 유럽적 성격을 띠는 진보 운동을 주저 없이 환영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는 위와 같은 불균형을 정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했을 때 유럽의 정치적 공간은 단지 NATO, 브뤼셀 위원회, 은행들과 ‘공동변동환율제’의 투기장이 아니라 주요한 노동운동 조직들(또는 그들의 중요한 일부)의 회합과 같은 대중적 운동을 포함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청년, 지식인, 여성의 거대한 포부를 포함하게 된다. 최소한 그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국제적 맥락이 있으며, 이는 분리할 수 없는 측면이다. 현재 자본주의의 위기는 또한 본래부터 제국주의 ‘세계 분할’의 구조적 위기다. 장-피에르 비지에의 최근 논문1)은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의 지배(또는 미국이 방어하는 독재)에 대한 어떤 조직화된 반대도 강제로 진압하기 위해서, 그리고 전례가 없는 무기 경쟁의 발전 속에서 미국 정부가 정치적 공세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대외 정책에서 ‘굴레를 벗은 자유주의’의 방식을 실현하기로 결정한 미국 정부의 권력 출현이 의미하는 위험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제국주의 대공세는 초과착취 당하고 희생당하는 제3세계의 대중적 저항에 맞서는 싸움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 유래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심지어 이란 혁명 이전부터, '인권‘[미국의 인권침해]에 대한 여러 층의 우려를 급속하게 쫓아버리며, 오히려 미국의 진의를 드러내 준다. 동시에 미국 자본과 미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자본은 일본과 유럽(특히 독일)의 경쟁자와 마주하여 그 기반을 잃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너무 늦기 전에 - 다시 말해 미국이 거대한 경제적 우월성을 잃기 전에 - 전 세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서, 필요하다면 그 과정을 역전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레이건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히틀러가 실패한 화가가 아니 듯이, 그는 B급 영화의 카우보이가 아니다’라는 비지에의 주장은 정당하다. 그들의 성공은 오히려 그들에게 권력을 가져다준 사회 세력의 의미심장한 변이를 증언한다. 민족주의와 거대 권력의 쇼비니즘의 화염은 1980년대의 새로운 아메리카의 특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위기는 분명히 서구와 동구의 대치를 첨예하게 하며, 제국주의 권력 사이의 적대를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결과 세계의 민족-이상적인 체계의 특징인 군사의 단계적 확대라는 ‘논리’는 제동이 걸리기는커녕, 훨씬 강화되고 있다. 3차 세계대전이라는 결과는 여전히 나타날 수 있으며, 불행하게도 그 전망은 이전 어느 때보다 무시무시하고 비참할 것이다. 1950-60년대 냉전 시기, 두 블록 사이에는 전체적인 균형이 있었다. 두 블록은 전혀 동등하지 않았고 사회 성격 또한 완전히 달랐지만, 아직까지 정치적 군사적 주도권을 완벽히 독점하는 ‘초강대국’에 의해 지배를 당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현재 세력관계로 미래를 추정하다 보면, 세계 종말의 전망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0년을 통해 그처럼 직선의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제국주의의 논리는 ‘불합리한’ 무기 경쟁을 그것의 통합된 일부로 가지고 있으며, 체계의 바로 심장부에서, 또한 물론 해방투쟁으로부터 저항에 직면한다. 핵 ‘억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 우리는 마침내 핵 억지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 베트남 인민의 애국적인 투쟁이 미국의 인도차이나 침략에 반대하는 미국 인민의 운동과 결합하지 않았다면, 베트남 전쟁은 제국주의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새로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소비에트 블록의 내적인 발전과 외부 정책이 점점 더 똑같이 제국주의 논리를 본뜨는 한에서는, 사회주의 나라들 내에서의 민주적 민족적 투쟁들의 새로운 역사적 단계 또한 그것[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내부의 세력으로 사고 되어야 한다. 세계 경제위기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기원을 갖는 이러한 다른 위기의 전개가 동시에 그 나름대로 국제적인 상황을 더더욱 위험하게 할지라도.

최강-제국주의?

대중적 저항의 현실과 함께, 이러한 모순은 오늘날 제국주의 체계를 분석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우리가 물려받은 제국주의의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정정해야 할 것이다. ‘절멸주의’ 프로세스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이 체계의 성격을 폭로하며, 그 효과는 생산에서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삶의 범위로 확대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효과들을 어떻게든 꼭 붙잡기 위해서는, 단지 그 효과들의 지옥과 같은 논리를 기록하는 것 이상을 해야만 한다. 톰슨이 올바르게 보았듯이 절멸주의는 기계-생산이나 유럽과 북아메리카 군대의 세계 정복처럼 하나의 사회적 관계다. 따라서 그것은 자동적으로 자신을 재생산할 수 없다. 우리가 절멸주의의 기원뿐만 아니라, 다름 아닌 미래의 방향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재생산의 모든 측면을 조사해야 한다.
오늘날 미 제국주의의 현재 정책이 보여주는 중대한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3세계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은 물론 여전히 해방투쟁의 주요한 적이며, 자본주의 약탈을 위한 조건을 유지하거나 재건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국제적 노동 분할’ 내에서 착취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항상 간섭하고 있다. 현대 기술에 기초한 이러한 새로운 노동 분할은,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늘어나는 인적 자원을 완전히 활용하지 않으며, 부족한 천연자원을 매점(買占)하는데 최고의 관심을 두는 다국적기업의 이해에 맞는 착취 구역을 창조한다. 여기에는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의 물질적인 전멸을 포함할 정도로 매우 체계적인 억압이 따른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절멸주의의 형태다. 나는 오늘날 전략무기의 비축량이 수학적으로 ‘평형’ 상태에 있는지를 모른다. 여하튼 무기경쟁의 단계적 확대에 기름을 붓고 객관적으로 전쟁을 가능케 하는 공포의 틀 내에서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가장 결정적인 논쟁점이다. ‘블록들’ 사이의 분쟁의 세계적 형상이 아메리카 제국주의가 일시적 또는 지역적 실패를 무시하고 수십 년 동안 체계적으로 추진해온 팽창과 포위 전략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전쟁 위험의 주요한 양상은 더는 고립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무대에서 사회주의 진영이 차지하는 위치는 완전한 변형을 겪었다. 사회주의 진영은 처음부터 포위되었고, 내부적 위기로 고통을 당하면서, 이러한 미국의 전략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투를 벌이려고 시도해왔다. 이제 사회주의 나라들은 오히려, 제국주의들 간의 관계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군사적인 수준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는 사회주의 나라들 내의 국가의 생산관계의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라는 특징을 띄는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따라서 프랑스 공산당의 지도부가, 다른 이들보다 특히, ‘세계 세력균형의 개선’에 대해 말하는 것을 고집할 때, 그러한 태도는 ‘현존 사회주의’의 고조되는 위기에 대해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가장 최악의 신비화를 고수하려는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으로 (이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으로 나아갔다), 제국주의적인 국제관계를 향한 경향은 착취와 저발전에 대한 투쟁을 점점 더 압도해왔다. 실로 이러한 논리는 ‘사회주의 진영’의 세력관계의 악화를 드러낼 만큼 지배적이게 되었다.
이미 브레히트가 독일-소비에트 조약과 폴란드 침략 당시에 걱정했던 것처럼,2) 이들 사회주의 국가는 지난 오랜 기간동안 자신을 세계의 혁명적, 반-제국주의적 세력으로 표방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혁명적 운동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들의 존재나 사례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민족 해방운동에 직면하면서 극적인 딜레마를 겪는다. 서방의 식민주주의 권력은 ‘자존’을 완전히 필요조건으로 삼았지만, 충분조건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민족해방운동은 소련과 그 동맹국 말고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게다가 그들은 어떻게 소비에트의 대외정책, 그리고 초강대국의 무기경쟁이 강요하는 ‘전략적 계산’의 볼모가 되지 않으며 혁명적 운동을 수행할 수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최초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 즉 존립할 수 있는 동시에 살기 좋은 - 심각하게 억압하는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의존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앙골라, 모잠비크, 베트남의 인민들은 매일 매일 이러한 모순을 경험한다. 또한 비동맹운동의 단결과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쿠바의 노력이 소비에트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의해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동은 사회주의 나라들을 처음으로 직접적인 식민지 전쟁의 상태에 처하게 하였고, 바로 그때 미국의 정책 결정가들은 ‘인권’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베트남과 칠레로 나아간 원칙들을 공개적으로 부활시켰다.
나는 어떻게 이러한 발전을 세계 자본주의 사장으로의 사회주의 나라들의 전진적인 재통합과 분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통합은 대체로 국가가 보증하는 장기신용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며, 다국적기업에게 동구-블록 시장의 거대한 개방을 가져다주며, [다국적 자본에] 특징적인 노동 분할과 함께 동구-블록의 시장을 축적의 제국주의적 과정에 종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나라들을 서로 경쟁을하도록 만들어 득을 보는 게 가능하며, 그들을 제국주의간의 경쟁에 끼워 넣는다(일례로, 서유럽보다 낮은 가격으로 식품, 원자재, 제조품을 제공하는 대신에 완전히 장비를 갖춘 공장들과 발전된 기술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그들 경제의 일부분만이 이런 방식으로 통합된다고 하더라도, 그 현상은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의 ‘노동 분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그것이 최근 동구의 정치적 위기로 나아간 사회적 모순들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순의 전개를 명백히 가속화하며 악화한다. (폴란드의 270억 달러의 외채를 생각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기에레크(Gierek) 정부가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요구로부터 ‘탈출’하고자 한 결과였다.) 그 때문에 그것은 이러한 나라들이 처한 현재의 불안정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우리는 그 과정이 비가역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시계는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적이며, 중앙집중화된 ‘사회주의 진영’으로 되돌려질 수 없다.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적이건 평화적이건 간에, ‘현존 사회주의’의 전면적인 변혁이다.
이러한 지적이 정당하다면, 세계적 규모의 ‘세력균형’은 동시에 다음의 세 측면을 포함한다. 첫째, 블록들 간의 적대의 고조; 둘째, 그들이 택한 군사전략의 ‘동형성’; 그리고 셋째, 모순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거대한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경쟁과 집약적인 축적의 위급함에 지배당하는 단일 세계시장으로의 사회주의 경제의 전진적인 재통합. 하지만, 이러한 이질적인 경향은, 톰슨이 시작한 토론에 기여하고자 내가 지금 정식화하려는 하나의 해석적 가설을 가리킨다.
우리가 고전적인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며, 어쨌든 제국주의 개념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단일한 다민족 ‘트러스트 내부에서의 민족적 적대의 초월이라고 이해했던 ‘초-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태는 반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군사주의의 부활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초강대국’의 현실성은 분명한 것이므로, 나는 현재의 현상을 최강-제국주의라고 부를 것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제국주의들의 ‘융합’과 그들의 사회적 관계의 균일성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제국주의가 사회주의의 내부적 모순들을 착취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진로 자체를 통제하고, 포위하고, 역전시키는 세계체계가 되도록 하는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구조들의 부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혁명-이후’ 제국주의다. 물론 더 이상 어떤 혁명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혁명들은 항상 예방적 반-혁명, 그리고 국가주의와 계획화를 동반하는 ‘현존 사회주의’를 구실로 한 지배와 착취 관계의 중단 없는 재건 양자를 마주해야 한다. ‘서로 다른 사회 체계를 지닌’ 나라들 사이에서 두 방식의 국가 형태들의 순환은 최강-제국주의의 하나의 특징이다. 여기에는 우선 군사 기술이 포함된다. 그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최강-제국주의는 완벽한 메커니즘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남성과 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과제는 최강-제국주의의 모순을 분석하고, 우리를 속박하는 것을 풀기 위한 대중적 운동에 힘이 될 새로운 형태의 투쟁(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 때, 폴란드의 사건은 이러한 모든 문제에 냉엄하지만 광명을 주는 불빛을 던진다. 폴란드 노동자의 혁명적 운동은 연대노조로 구현되었고, 그것은 그 뒤로 농민과 지식인을 끌어 들였고, 민주적 민족적 요구과 불가분 결합되어 있는 계급투쟁의 특히 분명한 형태를 표현한다는 것은 간단명료한 사실이다. 폴란드의 지배 카스트가 그들의 편에서, 단지 ‘소비에트’ 블록의 이해를 대표하고, 자신의 정치-경제적 특권을 방어하는 것(이는 ‘부패’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알려졌다)만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은 폴란드 노장자의 초과-노동과 서구 금융자본간의 불평등 교환을 관리하였다. 이러한 이중적 의존은 왜 일부 서방의 집단들조차 폴란드 쿠데타를, 매우 사실과 다르게 단지 ‘내정’ 문제로 묘사하는지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유럽의 상황은 35년 전 이루어진 합의[얄타]와 별로 관련이 없지만 프랑수와 미테랑이 폴란드 사건을 보고 얄타에서의 대륙 분할에 의심을 제기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중대한 문제를 건드렸다. 물론 이러한 의문은 대륙의 서반구를 자본주의로서 보호하는 것도 공격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두 블록의 구조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위한 아주 일반적인 테제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그렇다면, 블록 간의 적대는 모든 곳에서 사회적 현상유지를 보존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배의 국제적 ‘평형’이 영원히 안정적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결코 보증하지 않는다. 사실은 정반대다.

어떤 모호성을 없애자

그렇지만, 어떤 천사의 행운 덕분에, 프랑스(또는 다른 나라)의 육체노동자와 지식노동자들이 완전한 핵 무장해제 캠페인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실로 이러한 과정이 그들의 장기적 이해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수십만의 사람들이 무기 산업이나 그와 관련된 기술적 ‘스핀-오프’[군수와 민간산업의 기술교환]에 종사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랑스는 핵 무장군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주요한 제3세계로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다. 사실, 이러한 산업들의 ‘전환’은 현재의 산업구조를 변형하고 여러 부문들과 생산물들 사이의 사회적 노동시간을 재분배하려는 모든 시도가 직면하는 거대한 어려움이다. 이러한 문제는 실업이 고조되고 해외시장이 불안해지는 때에 더욱 날카로워지고, 잠재적인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사회주의 전망 내에서만 진정으로 논쟁될 수 있다. 크리스티앙 바드로(Christian Baudelot), 로저 에스타블리(Roger Establet), 자끄 뚜와제(Jacques Toiser)는 최근 작업3)에서 이에 관해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2세기는 권력을 지닌 계급의 필요와 설계에 따라 능동적인 계층의 구조를 형성했고, 생산적인 기관을 조직했으며 행정구역을 만들어냈다’라고 매우 명쾌하게 논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자본주의 생산 기구는 엄밀한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산과 전달의 전체 네트워크는 현존하는 계급 구조에 맞추어졌다. 그것은 대중 계급들의 노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대체될 수 없다’고 언급한다. 특히,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 계급들이 그러한 장치에 의존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의 성장하는 부문들의 직·간접적인 군사화는 생산 장치 내의 이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잉여의 생산성과 활용을 물질적으로 조절하는 ‘요구와 설계’의 일부분이다. 거꾸로 사회적 생산의 ’완전한‘ 재조직화는 집단적 소비를 위한 거대한 화폐적, 물질적, 인간적 자원을 해방하며, 작업량을 합리화, 편리화하며, 발전을 위한 원조를 확대하고, 해외 무역을 더욱 안전하게 한다. 이러한 명백한 모순은 노동자들을 서로 대항하고 분할되도록 위협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지식인, 정당, 정부, 공공 언론 그룹들의 수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수준에서 매우 명백하게 제출하는 게 필요하다. 노동조합만이 이 문제에 관해 대중적 토론을 시작할 능력이 있다.
그들이 ‘신-자유주의’적인 방식 대신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위기와 싸우자고 제안한 정부를 선출했을 때, 프랑스 노동자들이 매우 정교한 경제적 분석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산 체계의 근본적 변화와 그들의 즉각적인 물질적 요구 사이의 관계에 대해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떤 주어진 생산 모형은 특정한 사회적 소비구조를 포함한다. 현재까지 사회와 관련된 것에서, 무기의 ‘소비’는 ‘대중 소비’의 가장 육중한 형태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모호성을 없애버림으로써 아마도 여기서의 토론을 도울 수 있다. 독자를 놀라게 하거나 거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무릅쓰고, 나는 핵무기와 핵에너지가 실재적인 또는 잠재적인 파괴를 향한 본질적으로 단일한 힘이며, 그것에 대항하는 동일한 형태의 동원을 요구한다는 통념을 이러한 모호성 중에 포함시킬 것이다. 물론, 이러한 두 문제 사이에 방수구획과 같은 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산업 플랜트가 민간과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동시에, 동일한 군산복합체가 전력을 다해서 핵 발전과 핵 잠수함 또는 대륙간 미사일 건설을 추진한다. 크루프(Krupp)나 슈나이더(Schneider)가 기관차와 터빈 옆에서 탱크와 대포를 만들 때, 또는 보잉(Boeing)과 튜보레프(Tupolev)가 전략 폭격기와 민간 항공기를 생산할 때, [군산복합체는] 새로운 질적 양적 수준에 도달하였다. 북유럽의 평화운동이 ‘다른 종류의 성장’을 위한 생태적 투쟁의 견고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어떤 인위적인 결합도 아니다. 이러한 투쟁은 세계적인 전자감시라는 군사화된 경찰사회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에너지의 ‘모두 핵으로 옵션’(all nuclear option)에 의해 일으켜졌다.
전통적인 평화주의나 꾸밈없는 반-군사주의로 단순히 복귀하는 게 민간 핵 산업에 대한 우려를 희미하게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우려는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의 안전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반영하기 때문이며, 그 이전 어느 것보다도 중앙집중화되고 국가화된(statified) ‘고-위험’ 기술의 발전은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자유에 대한 위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이란 단어가 새로운 물신(物神) - 톰슨은 이를 '물‘(物- a Thing)이라고 말하고자 했다 - 즉 대중과 우리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유령이 되어선 안 된다. 정치는, 대중 정치를 포함하여, 구별을 긋고 그 구별에 대한 인정을 획득하는 기술(art)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토론에는 핵무기와 핵에너지 사이의 구별의 조건들, 또는 오히려 이러한 조건들의 변형을 탐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고 제안하려고 한다. 핵 에너지가, 당장에는, 현재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무엇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 동력의 압박, 이득, 위험에 대해 다른 시각들이 있더라도, 무기경쟁의 지옥과 같은 논리를 깨뜨리기로 단호한 결정을 내린 모든 세력들은 성과 있는 단결에 함께 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는 핵무기에 대한 투쟁이 이러한 에너지 자원의 ‘민간용’ 사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보장하는 투쟁에 더 나은 조건을 창조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확실히 두 투쟁 사이의, 그리고 이러한 운동에 의해 위협받는 이해들 사이의, 연결은 이[에너지 자원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투쟁]을 더욱 가치 있는 내기 대상이 되게 할 것이다.

적극적 중립주의

대중 동원을 위해 장벽을 ‘넘어뜨리자’는 선전에 호소하는 의지주의적 방법은 지금까지 제기된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핵무기 문제를 더욱 구체적인 틀에 놓으려 했고, 그 무게를 전혀 최소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핵무기가 지난 40년 간 존재했고, 그 파괴력은 극히 거대해졌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위험을 질적으로 바꾸었고, 동시에 피지배자 대중에 대한 지배계급과 카스트의 권력을, 가능한 한, 증대시켰다. 하지만, ‘핵 우산’의 존재가, 묵시론이[묵시론의 현실화 여부가] ‘핫 라인’이라는 가느다란 선에 의해 우리의 우두머리의 손에 달려있다고 공표한 이래로, 어떤 인식의 결핍은 - 두말할 나위 없이 어떤 ‘유럽’의 위선 - 그 속에서 세계의 대부분이 살아왔고, 또는 오히려 죽어 가는 전쟁의 풍토병 상태를 이러한[핵] 문제와 분리시켰다. 퍼싱과 크루즈, SS-20s, 프랑스의 핵잠수함과 알비옹 고원(Plateau of Albion)의 지하 격납고는 베트남의 폭격기, 카불, 벨파스트, 방기의 낙하산부대, 바르샤바와 산티아고의 탱크, 그리고 엘살바도르의 반-게릴라 헬리콥터와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동일한 체계의 부분을 구성한다. 현재의 시기에서 핵무기가 중국, 이스라엘, 인도, 남아공, 그리고 곧 아르헨티나, 이라크, 파키스탄 등등으로 확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술’ 핵무기가 배치되고,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 개발이 빨라지고, ‘재래식’ 무기와 ‘핵’ 무기 사이의 간격이 항구적으로 좁아지고 있다. 전체의 파괴 장치는 매우 높은 수준을 넘었으며, 이미 여러 ‘전역’(戰域)에서 작동하고 있다. 억지와 선제공격의 시나리오가 갖는 ‘불합리한’ 성격은 연쇄반응을 폭발시킬 어떠한 무장 충돌도 유발할 수 있다.
동시에 서구에서 대중적 평화운동이 성장하는 바로 그 때에, 동유럽의 여러 나라는 폴란드 인민의 투쟁 속에서 지난 전쟁 이후 가장 강대한 혁명의 물결에 흔들렸다. 폴란드에서 국가 권력과 대중 세력들 사이의 타협의 가능성이 붕괴한 이 때에, 자유에 대한 공통의 포부가 있는 이러한 두 운동이 어떻게 서로에게 대항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은 여전히 결정적인 문제다. 내가 아는 한 그에 대한 해결책은 다양하고, 독립적인 유럽의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활동밖에 없다. 유럽의 운동은 전진적인 무장해제군사 블록의 해소를 위한 투쟁에 복무할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 노동자의 투쟁과 그들의 ‘권위주의적인 헌법 국가’에 대항하는 독일 청년의 반역은 이러한 운동의 성장을 지원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폴란드 인민은 이미 그것에 객관적으로 기여해왔다. 마르크스주의와 비-마르크스주의 노동 조직들, 기독교, 자유지상주의 경향, 사회-민주주의자 ― 모두가 분명하게 참여할 수 있다. 동유럽 공산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투쟁에 참여를 볼 수 있을 것이며, 반체제인사들뿐만 아니라 헝가리에서처럼 ‘제 3의 길’을 찾는 듯해 보이는 공산주의 지배세력들도 참여할 것이다.
수많은 프랑스의 역사적 전통을 여기에서 진지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언급하고자 한다. 특히 드골주의(Gaullism)의 양날의 유산이 문제인데, 드골주의는 프놈펜의 연설뿐만 아니라 프랑스 핵무장군을 포함한다. 사회당과 그 후에는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핵무장군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핵무장의 존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주’(independence) 정책을 연상시켰지만, 자주 정책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거나, 또는 점점 더 다른 것으로 변하였고, 제국주의들 간의 이해의 충돌과 일치하는 경우에만 유효한 것이었다. 오늘날 프랑스는 - ‘이행’으로 충만하며, 그것을 위해 부서지기 쉬우나 귀중한 수많은 조건들이 일년 또는 그 이상 동안 이미 존재한다 ― 종속과 착취에 국제 체계, 그리고 세계 군사주의 체계 내부에서 여전히 제국주의의 위치를 물려받으며 (아프리카의 사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자본주의의 다른 모든 구조를 물려받는다.
현재 세계의 격변은 프랑스 좌파가 민족 자주의 진정한 내용에 대해 분명히 사고할 것을 요구하며, 단지 명복상의 NATO로부터의 ‘철수’가 아니라 NATO의 실제 소멸을 의식적인 목표로 삼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바르샤바 조약의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떻게 설득력 있게 주장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이러한 탈군사화가 동유럽의 노동자와 인민을 희생하면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적은 곤란하지만 필수적일 것이다; 두 독일의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 라파키 계획(Rapacki Plan)[1957년 폴란드 외상 아담 라파키가 동독, 서독, 폴란드 및 체코를 포함하는 중부유럽을 핵무기 배치금지 지역으로 만들 것을 제의]을 재활성화하기 위해, ‘포르투갈에서 폴란드까지’ 비핵지대를 창조하기 위해.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여전히 평화주의와 중립주의의 통념을 괴롭히는 모호성을 점점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뮌헨[1938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참가한 정상회담에서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 지역을 무혈로 할양 받았다]와 지난 세계대전 이후, 스페인 내전의 ‘불간섭’이후, ‘평화주의’라는 용어는 프랑스에서, 특히 노동자운동에게 당연히 부정적인 함축을 띠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을 흥미 잃게 한다. 독일에서는 당연하게도 매우 달랐다! 독일에서는, 30년간의 공식적인 ‘범대서양주의’에도, 평화주의의 최근 흐름은 현재 운동의 거대한 도덕적 승리를 얻었다. 게다가, 평화주의의 이념은 언제나 고정된 자기-충족적인 의미를 지닌 게 아니다. 상황이 그것을 허용하고 요구할 때, 그 이념은 포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 매우 혁명적인 힘이 되어 - 적극적인 역사적 개입을 하게 된다. 그 이념 주위에, 노동자와 젊은 지식인이 매우 광범위한 대중적 포부와 함께 연결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미국 내전 기간 동안 미국과 영국의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온순한 배우가 아니라 독립적인 세력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다... 주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전쟁을 부르짖는 곳에서 평화를 요구할 수 있었다’고 이미 지적하였다.4) 그 후, 20세기 초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진로를 채택하는 것의 어려움을 - 심지어 그들의 기층에서 - 치명적으로 과소평가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좌파의 짐머발트와 키엔탈 회의가 1914-18년 대학살의 와중에 개최되었고, 마르크스가 가리킨 방향에 따라 이 시기를 더욱 분명한 혁명적 전망으로 - 부분적으로 현실로 나타나는 - 규정하였다. 또한, 이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 그 결과 공산주의자 정당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오늘날 투쟁의 조건들과 잠재하는 기초가 매우 다르지만, 전통적인 의미를 뛰어 넘는 적극적인 중립주의를 위해 싸우는 게 유토피아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물론,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 이미 '퍼싱 반대, SS-20s 반대'라는 슬로건은 우리를 그 길의 어딘가로 데려다준다.
‘절멸주의의 논리’라는 에세이에서, 에드워드 톰슨은 NATO의 ‘현대화’와 공포의 ‘새로운 균형’이라는 프로젝트에 맞서 평화운동이 단결하고 조직하도록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이러한 논리가 정치를 자동적인 기술적 전략적 메커니즘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옵션이라는 바로 그 통념이 점점 더 신뢰할 수 없게 된다.”라고 썼다. 이는 틀림없이 매우 현실적인 위협을 드러낸다. 하지만, 위험은 단지 전쟁의 새로운 기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평화와 전쟁, ‘안보’, 무장과 국제정치 등의 문제가 당신과 나와 같은 단순한 개인들에게는 차단된 특수한 영역의 일부분이 되는 사회적 구조로부터 생긴다. 왜냐하면, 정의에 따르면 ‘대중들’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가, 그리고 정치정당의 모든 실천은, 그들이 오직 국익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한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사태가 일어나도록 굳히는 경향이 있다. 이점에서 프랑스 공산당은 좋은 사례다. 프랑스 공산당은 ‘그들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국제적 세력관계에 대한 ‘그들의’ 분석을 개정한 후 완전히 180도 전향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구성원들 앞에 핵 무장군에 대한 지지를 갑자기 내놓았다.
‘전문가’의 독점은 끈기 있고 동시에 지속적인 공적 토론을 통해서 깨질 수 있다. ‘세계적 세력균형’의 대차대조표,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의 현재적 형세, 그리고 여러 ‘군사’ 문제들을 정당하게 포함할 대중적 정치문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 사회의 변혁을 위한 가능성의 영역을 증대시킬 것이다. 프랑스 좌파는 그러한 문화를 소유할 때에만, 정부의 무감각한 볼모가 되기를 멈출 수 있다. 위로부터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정부의 ‘오류’와 ‘배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지 않고, 그것은 그들의 정치를 전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길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에서만 우리는, 모든 세계의 억압받는 인민들과 굳건히 연대하는,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의 독립적인 유럽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힘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프랑스 ‘사회주의’는 결국 자신의 실패와 그리고 15년 또는 그 이상 동안 추구하고 준비해온 그들의 희망의 좌절을 진압하는 것, 단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각주]

1)"L'Offensive Reagan", Franc-Tireur, No. 1, November-December 1981본문으로

2)Bertolt Brecht, Arbeitsjournal, Frankfurt 1973: 특히 1939년 9월 18일과 1940년 1월 1일의 내용을 보라.본문으로

3)Qui Travaille Pour Qui?, Paris 1980. 본문으로

4)마르크스가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에서 미국전국노동조합(National Labour Union of United States of America)에게 한 연설 (1869년 5월). Marx and Engels, Werke, vol. 16, p. 35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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