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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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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_갈월동에서_진재연.hwp

대추리 주민이 됩니다

진재연 | 정책편집부장
이제 곧 평택으로 이사를 갑니다.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주민이 되는 것이죠. 주말에 내려가 제가 살 만한 곳을 찾기 위해 빈집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람이 떠난 집이니 허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쇠망치로 부숴 놓은 창문과 문짝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쇠망치가 창문을 내리칠 때 마을 주민들의 가슴에도 쇳덩이 하나가 내려앉았겠지요.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 보였습니다. 지붕과 담이 낮아서 좋았고 방들이 작은 마당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집들보다 어둡고 수리해야 할 게 많아 보였습니다. 몇 개월 전 대추리 주민이 된 후 빈집을 수리해 ‘놀이방’ 일을 하는 한 동무에게 제가 맘에 드는 집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동네 아이들이 그 집을 ‘저주받은 집’이라고 부른다며 웃더군요. 마을에서 제일 먼저 이사 간 집이거든요. 또 아이들 말에 의하면 그 집 주인이 버리고 간 성모마리아 상의 눈동자가 움직인답니다. 아이들의 눈에 마을을 제일 먼저 떠나가는 일이 저주로 보였는가 봅니다.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구호가 ‘올해에도 농사짓자’로 바뀐 2006년은 대추리 주민들이 1952년 미군비행장에서 쫓겨난 지 53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2006년은 ‘행정대집행법’이 만들어진 지 53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지난 53년 동안 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강제로 집을 허물고 수많은 사람들을 쫓아냈습니다. 나랏일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줄만 알고 살아왔던 힘없는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맨몸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렇게 53년이 지난 2006년 2월, 평택에 행정대집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서울역. 버스를 타고 가다 외롭게 서 있는 쪽방을 보았습니다. 겨울빈민활동실천단이 설치한 앙상한 나무 집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을 사람들과 대추리 주민들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행정대집행법이 만들어진 53년 동안 사람들은 쪽방으로 밀려나야 했을 것이고, 그것조차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땅 한 평 마음 편하게 일굴 수 없고, 다리 뻗고 누울 공간 한 평 구하기 힘든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닮아 있었습니다.

2006년 겨울 대추리 주민이 되어 미군기지를 막아내려고 합니다. 일단 빈집을 수리하고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죠. 무너진 집을 다시 세워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끝에 세 번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정말로 ‘막아내기’ 위해서 인간방패가 되고자 합니다. 『사회운동』도 그렇게 민중들의 절박한 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2006년을 맞이합니다. 부당한 권력 앞에 힘없이 무너졌던 슬픈 역사를 가진 민중들과 함께 거듭나려고 합니다. 도도한 민중의 저항에 온몸으로 함께 할 것입니다. 그것이 2006년을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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