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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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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여성인식은 저급하다

이꽃맘 | 운영위원·민중언론 참세상 기자
“민주노총 여성인식 저급” 이라는 제목을 단 것이 문제였다.

이번 민주노총 4기 임원보궐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참세상에서는 특별페이지까지 만들며 집중 보도를 진행했다. 참세상에서 선거보도를 하면서 무엇을 쟁점으로 던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현재 민주노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의 과제는 무엇인지가 투표에 국한되지 않고 제기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만신창이가 된 민주노총이 남한 노동운동의 선봉에 다시 서기 위해서는 혁신! 혁신! 해야 할 것이 산더미 같기 때문이었다.

혁신의 과제로 많은 것들이 제기되었지만 그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민주노총의 남성 중심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그동안 민주노총의 남성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의 확산,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빈곤화와 맞물려 끊임없이 비판되었던 바이다.

그래서 참세상에서는 여성할당 부위원장 후보들과의 간담회를 마련했다. 어떤 언론에서도 관심에 두지 않는 여성할당제라는 제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그녀들이 생각하고 있는 여성문제는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진심으로….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어려움은 도사리고 있었다. 여성할당 부위원장 후보로 나온 4명 후보 공히 여성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공약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전, 여성할당 부위원장 후보들이 모였다. 간담회를 진행한 후 나의 느낌은 “민주노총 여성인식 저급”이라는 제목 그대로였다. 민주노총이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 없음은 물론이며, 민주노총 내부에 있는 여성들도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한 후보가 “여성위원회에서 했던 수련회를 다녀와서 은혜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부족하지만 이런 자리가 자주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녀들에게 아직 여성문제 인식은 이제 출발선에 서있었다.

‘선거연기’를 두고는 각 정파의 입장에 따라 눈에 불을 켜고 서로를 비판하던 모습과 달리 민주노총의 남성 중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단 하나의 이견도 밝히지 않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녀들은 남성들의 조직 민주노총에서 성폭력 피해자였고, 노동운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딱 세 배 열심히 했던 남성화된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에게서 내가 원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녀들은 민주노총 내부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여성이었다.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길을 찾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그녀들의 수다는 마무리 되었지만 나는 “민주노총 여성인식 저급”이라는 제목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통의 항의전화와 항의메일을 받았다. 후보들은 “모두 다 잘 해보자고 하는 건데 제목을 이렇게 뽑으면 어떡하냐”, “어떤 후보가 이런 말 했냐, 기자의 정치적 의도가 포함된 것 아니냐”, “현장 조합원의 정서를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 그녀들의 말이 다 맞다. 다 잘 해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냥 잘 해보자가 아니라, 여성의 눈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해내고, 여성의 눈으로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여성의 눈으로 민주노총을 혁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밝혀내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발언에서도, 민주노총 어느 구석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여성할당제라는 제도로 여성들의 대표성을 만들려는 노력은 그동안 민주노총의 남성 중심성과 무수히 싸움을 벌였던 언니들의 노력일 테다. 그러나 제도는 제도일 뿐, 내용을 채워갈 의지가 없는 제도는 그저 숫자만 채워 넣으면 되는 문제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여성할당제가 그렇다. 여성할당제의 의미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할당제의 의미와 왜 강제로라도 여성들의 목소리를 중심에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비정규 법안 통과를 앞둔 어느 날 국회 앞 집회였다. 유명한 큰 조직의 여성 부위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X같은 세상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웬 여자가 X같은 이라는 말을 하느냐 구요? 남자들 하고 있어보십쇼. 모든 말에 X을 붙여서 얘기합디다. X만한 것이, X같은 놈 등등… 우리 답답한데 국회를 향해 X을 붙여서 욕해볼까요. 야! 이 X같은 새끼들아”

그녀의 선동에 수많은 남성 노동자들은 국회를 향해 신나게 웃으며 “X같은 새끼들아”를 시원하게 뱉어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수많은 여성들은 웃고는 있었지만 쉽게 함성을 함께 지르지 못했다. 그녀들에게 그 말은 남성들처럼 입에 찰싹 달라붙는 욕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또 한 번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옆에 앉아 있는 남성 동지들처럼 국회를 향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시키지 못했다. 나는 들이대고 있던 카메라를 확 치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말이 통하겠지, 문제제기하면 알아듣겠지, 성폭력 문제 제기한 게 몇 년짼데 아직도 모르겠어?, 열심히 제기하면 되겠지…. 등등 내 자신을 위안했던 모든 말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또 증명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냥 허무하다. 다시 제기할 힘이 남아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 사회운동에 나온 지 이 년 차 활동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노동운의 핵심 쟁점으로 만들고, 사회운동의 중심에서 세상을 향해 여성운동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집회 한 구석에서 “땡! 땡!” 밥그릇으로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밥그릇 싸움, 내 밥그릇을 찾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언니들의 함성이 들린다. 나는 그녀들에게 다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결국 3명의 여성할당 부위원장이 선출되었다. 그녀들의 우려처럼 ‘현장조합원의 인식에 맞는 방식’으로 제발 민주노총을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녀들이 말했던 것처럼 ‘다 잘되는 방식으로’ 민주노총에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 더 이상 ‘여성인식 저급’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주제어
여성
태그
지진 아이티 아리스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