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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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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한 꺼풀을 벗겨낸 6월항쟁

채만수 | 운영위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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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은 한국 현대사 혹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후사'(解放後史)의 한 결절점을 이루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의의는 최소한 1940년대 말, 그러니까 현대사의 원점인 '해방 공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주지하듯이, 그 시작에서부터 좌절과 굴절, 억압의 역사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겹겹이 쌓여갔다. 노동자·민중의 해방의 의지가 미군정 및 그들의 앞잡이, 새롭게 애국자로 변신한 과거의 친일 지주, 대자본, 관료, 경찰 등등을 기반으로 삼은 이승만 정권의 억압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혔고, 1950년대 초의 전쟁을 경과하면서 가히 뿌리째 뽑혀 나갔다는 사실은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해방후사의 기점으로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이후의 여러 민중 항쟁과 그 억압을 일일이 열거한다면 그건 차라리 구차한 게 될 것이다.

아무튼 실로 겹겹이 쌓여간 억압과 파쇼의 역사였고, 6월항쟁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한 꺼풀을 걷어내면서 그 진행 방향에 중대한 수정을 가한 계기였다. 지배계급 내의 파쇼분파는 물론 이른바 '6·29민주화 선언'으로 시작되는 갖은 기만책과 억압을 통해서, 특히 거듭거듭 이른바 '공안정국'이라는 집중 탄압국면을 조성하면서 파쇼의 재강화를 시도했지만, 6월항쟁 이후 그 연장선상에서 조성된 일련의 민중투쟁과 정세의 특수성은 과거로의 회귀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만큼 6월항쟁의 의의와 영향력은 크고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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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6월항쟁이 벗겨낸 것은 분명 한 꺼풀이다. 억압과 착취, 빈곤, 타락의 수렁을 벗어나기 위해서 알맹이인 노동자·민중이 벗겨내야 할 현대사의 껍질은 아직도 질기게 겹겹이 둘러 처져 있는 것이다.
6월항쟁의 이러한 제한적 성격은 그것을 이루어낸 주체 성분의 계급적 정치적 성격에 의해서, 그리고 또 그것은 해방 후 일련의 억압과 굴절을 통해서 형성된 한국 사회의 천박한 정치적 구조에 의해서 규정되었다. 노동자·민중이 대자적인 정치세력으로 형성될 수 없었던 파쇼적 정치구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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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생산의 거대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또한 6월항쟁에서 투쟁의 현장을 메운 것은 당연히 노동자·민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0년 이상의 반(半)식민지적 파쇼 억압으로 노동자·민중은 자신들의 명확한 계급적 이념과 지도부를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항쟁에서 정치적 변방의 인민일 뿐이었다. 정치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계급적 성격이 불분명한(?) '재야 민주화 세력'이었고 '재야 단체들'이었으며, 당시 통일민주당이라는 간판 하에 묶여 있던 야당, 그러니까 지배 독점자본가 계급의 자유주의적 정치 분파 혹은 소외그룹이었다.

물론 당시 '재야 민주화 세력' 혹은 '재야 단체들'은, 끊임없이 동요하고 주저하면서도 그 투쟁의 정치적 성과는 꼬박꼬박 챙겨가던 야당 세력과는, '반파쇼·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과감한 투쟁, 그리고 헌신성에서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한편에서는 그 상층부의 대부분이,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오늘날 여·야 정치권에 입문해서, 즉 지탄해 마지않던 자들과 동료가 되어서, 독점부르주아지의 더러운 정치판의 '개혁 세력'으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그런 성격의 운동 세력이었다.

이들 '재야 민주화 세력'은 물론 야당의 투쟁조차도 사실은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의해서 뒷받침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의해서 자극되고 동기지워진 것이었지만, 아무튼 주도 세력의 성격이 이러하다 보니, 그 항쟁과 그 성과의 성격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반파쇼 부르주아 민주주의'니 '절차적 민주주의'니 하는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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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서 대단히 강고한 것이었다. 10월유신과 광주학살 등을 대표하는 파시즘과 자유주의·민주화 정치세력간의 대립도 예각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6월항쟁은 파시즘에 대한 다수 대중의 투쟁, 곧 '다수자 혁명'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그리고 그 전해에 가두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의 수, 무릇 기하뇨!

게다가 6월항쟁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던 노동자 대투쟁에 의해서 전에 없던,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보정(補正)을 받았다. 1960년의 4월혁명이나 부마·광주항쟁과 달리 군사파쇼에 의해서 쉽사리는 유린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노동자 대투쟁은 말할 것도 없이 6월항쟁을 보완하고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 노동자 대투쟁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서의 6월항쟁이 갖는 계급적 한계를 돌파한 것으로서, 그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민중은 자신을 근간적 사회세력으로서 인식하고 확립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이 노동자 대투쟁은 6월항쟁과 대립적인 것이었고, 이는 그 투쟁이 전개되는 동안 6월항쟁의 상층 지도세력들이 그에 대해 보여준 사실상의 적대에 의해서도 입증되었다.

물론, 노동자 대투쟁 역시 어쩔 수 없이 파시즘이라는 조건하에서 준비되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고 기본적으로 반파쇼 '민주노조운동'이라는 전투적 조합주의로 다소 왜소화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은 그 자체로서 정말 위대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분명 그렇게 왜소화된 것으로서 그 안에 담겨 있는 혁명적 요소를 해방시켜야 하는 과제를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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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친 세계사의 대반동이 없었다면 6월항쟁과 그에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은 어떻게 발전해 갔을까?
지나간 역사를 가정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지만,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13주년을 맞으면서 그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사실은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생생히 숨쉬고 있는 현실이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요소들이 갈수록 증대된 형태로 서로 보정하면서 갈등하고 있는 현실이고, 그 모순적 관계는 오늘날, 과거 6월항쟁 이전에는 대략 하나였지만 이제는 서로 대립하는 여러 정치세력과 인사들의 의식과 실천에 자신을 여러 형태로 각인해내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어느 길을 갈 것인가?

그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대립은 필시…… 변혁으로 전진할 것이냐? 부르주아적 틀 내에 안주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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