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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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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기고3.HWP

민간의료보험 도입계획은 즉각 철회되어야!

권미란 | 민중의료연합
정부의 진짜 의도는?

급기야 5월 17일 규제개혁위원회는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하여(!)' 민간의료보험을 조기에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보건복지부에 연말까지 시행계획을 마련토록 권고했다. 그리고 이같은 결정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이미 민간의료보험의 보완성 여부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여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95년부터 민간의료보험도입에 대한 논의가 정부 경제부처 및 재벌단체에서 심심찮게 주장되었으나, 의료보장의 수준자체가 빈약한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고 결론지어졌다. 그런데 그 당시보다 지역의료보험의 국고부담률은 더 떨어졌고 보험급여도 별반 확대되지않은 지금, 정부가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추진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또 민간의료보험 가입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것인가? 민간의료보험의 확대현황과 확대배경, 민간의료보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보도록 하자.


민간의료보험, 얼마나 확산되고 있는가?

보험상품의 확대현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첫째 기하급수적인 가입자의 증가, 둘째 보험상품의 다양화, 급여범위의 확대이다.

·사보험 가입자 기하급수적 증가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생명보험회사들이 판매한 건강보험상품은 279만1천431건으로 1998년, 같은 기간의 164만5천853건에 비해 69.6%나 늘어났고, 보험료 수입은 3천830억9천900만원에서 1조2천648억4천600만원으로 무려 230.2%가 폭증했다.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의 암보험의 보험료 수입이 2조4천286억9천500만원임을 감안한다면, 전체 국민이 사보험의 보험료로 1년에 지출하는 비용은 최소 3조7천억원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보생명이 올 3월에 출시한 신상품의 총판매건수와 초회보험료가 시판 10여일만에 7만건, 30억원을 돌파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보생명의 신상품에 대해서만 하루 7000명이 가입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보험의 다양화, 급여범위의 확대
우리나라는 재난보험의 형태로서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의 특약형태로 1979년 성인병특약, 1981년 암 사망보장, 1986년 간 치료상품이 개발되어 특정질환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1988년 의료보험이 전국민으로 확대되고 난 후 1990년부터 생명보험의 특약인 성인병 보장특약, 산업재해특약, 일반입원급여특약, 재해입원급여특약의 형태로 개발되어 입원의료비, 간병비, 사망 및 상해후유장해, 보상금이 현금 급여형태로 제공되어왔다. 기존 건강관련 보험은 암보험을 위주로 특정질병당 고정금액을 보상하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출시되는 보험상품은 몇가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사보험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현상은 몇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특정질병에 대한 간접적 정액보장방식이 아니라 모든 질병, 상해로 인해 발생되는 환자부담의 의료비를 실비로 직접 보장하는 공적의료보험 보완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특히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MRI, 초음파, 레이저 등 고액의 비급여 진료비까지 보장해준다.(예: 삼성의료보장보험의 경우 어떤 건강보험에서도 지급하지 않았던 상급병실 이용에 따른 병실차액도 50%까지 지급해준다)

둘째, 생명보험회사와 종합병원의 업무협정에 따라 진행된다. 보험회사가 지정한 의료기관을 이용할 경우, 의료보험급여대상 의료비의 본인부담비용과 비급여의료비용을 보험회사가 직접 의료기관에 지급하게 된다.(예: 교보생명의 '개인의료보험', 교보생명은 4월20일 33개 종합병원과 업무협정을 체결했다)

세째,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급여범위와 사이버보험 등 보험형태가 다양해졌다.
선천성 기형치료비와 인큐베이터 입원비까지 지급하며, 자녀들이 학교생활 중에 발생하는 각종 재해사고와 학교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까지 보상하는 자녀사랑보험, 남녀의 뚜렷한 질병차이를 감안한 여성건강보험, 남성전용 슈퍼맨 건강보험 등이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다. 여기에 고령자 만성질환을 위한 중·장년층 전용 실버건강보험, 24시간 인터넷으로 보험판매가 가능한 사이버보험 등 그 종류는 매우 광범위해졌다.


민간의료보험이 이토록 확대된 배경은 무엇인가?

현재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대한 논의는 공적의료보험이 국민들의 다양하고 고급화되는 의료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여 공적의료보험의 보충급여 역할을 담당하는 방안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적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받을때(예: 지정진료, 상급병실료 차액, 식대 등) 민간의료보험을 이용하는 방법, 공적의료보험급여의 상한선을 두어 초과분의 위험에 대해 민간의료보험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법, 고소득층에 대해서 공적의료보험에 임의 가입할 수 있도록 강제가입 의무조항을 완화하는 방법 등이 제시되는 방안들이다.

민간의료보험이 1995년 이후로 급격히 확대된 것은 현 공적의료보험에 대한 불만, 보험자(정부와 사업주 혹은 자본가), 의료공급자, 소비자 중 일부계층의 요구, 외국자본의 의료보험시장 개방요구를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고 있는 배경의 첫째요인은, 다양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급증하는 수요를 공적의료보험이 감당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의료보험재정의 위기극복방안으로써, 질높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방안으로써 민간의료보험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의료보험의 목적이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지며 이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고양시킨다는 지향점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공적의료보험은 의료보장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며, 높은 본인부담금을 특징으로 매우 불구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인구의 고령화와 만성질병의 증가 등으로 전체의료비는 이미 최근 OECD국가의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며, 그 상승속도는 오히려 다른나라를 크게 앞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높은 본인부담율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증대로 인해 국민들은 불건강에 대한 다른 차원의 위험분산책을 갈망하게 되었고, 포괄적 의료보험은 아니더라도 일반보험의 특약형태로서 민간의료보험이 꾸준히 증가해온 것이다.

둘째, 김대중 정부는 의료보험재정의 위기와 낙후한 의료보장의 내용을 극복하기 위하여 '민간과 정부의 적정한 역할 분담'을 통해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한 채 복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사회보험에서의 민간 부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셋째, 의료공급자(병.의원, 의사 등)는 공적의료보험내에서 최대한 수가를 보장받고, 다른 한편으로 정부의 간섭을 받지않는 자유로운 수가구조하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의료보험을 원하고 있다.

넷째, 자본가, 사업주는 보험재정의 부담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전경련은 작년 전경련보고서에서 노동시간 단축, 산재보험 전사업장 확대적용, 국민연금에 있어 5인미만사업장 노동자의 직장가입자로의 편입 등은 기업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킨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험재정의 안전성과 의료서비스의 질적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기초적 보장은 정부주도하에 기존의 방식대로 운영하고, 의료수요가 집중되어있는 고소득층를 위해 보험혜택을 차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민간의료보험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1990년대초 UR이후 의료시장 개방의 문제 위에서 1998년중반 한미투자협정과정을 거치면서 세가지 사항이 쟁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보험 시장의 개방·의약품 유통자유화·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이 그것이다. 전체의료비의 65%이상을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 의료보장적 성격이 지극히 부족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하에서는, 수익을 목적으로 한 여러 양상의 시장개방 공세가 침투하여 성공할 수 있는 좋은 지형이다. 이미 1989년도에 외국생명보험회사의 국내진입이 개방되었고, 여기에는 푸르덴셜처럼 독자적으로 들어온 경우와 알리안츠제일생명처럼 합자형태로 들어온 경우가 있다.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되면서 드러나는 문제점

첫째, 민간의료보험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비용을 많이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불건강한 사람, 나이많은 사람, 돈없는 사람-은 가입대상에서 배제된다. 민간의료보험을 기본적인 의료보장제도로 가진 미국의 경우, 의료기관의 위치와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를 조정하거나 보험료를 올리는 방법을 통해 보험탈퇴를 유도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즉 건강하고 의료서비스 이용능력이 있을때는 의료보험의 틀내에 속할 수 있지만, 정작 질병에 걸려 의료보험이 가장 필요하게 될 때는 미가입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서비스의 범위와 수준의 문제이다. 민간의료보험은 단기간의 경제적 성과에 주목하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예방의료서비스를 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기업과 마찬가지로 단기적인 수익성측면에서 투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건강증진이나 예방활동 등과 같이 보험재정에 즉각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거기에 돈을 쓰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또 과다경쟁으로 인한 높은 관리비용 때문에 국민들이 보험료로 부담하는 비용만큼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국영의료의료체계를 유지한 영국이나 스웨덴의 경우 관리비용은 5-7%이지만, 미국의 경우 전체 보건의료자원의 19-24%이다.

셋째,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이중보험으로 인한 부담증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증가에 대한 대책으로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 4인 가족이 대표적인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빠는 슈퍼맨 건강보험, 엄마는 여성건강보험, 할아버지는 실버건강보험, 자녀는 꼬꼬마자녀해상보험, 상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 3만원씩 쳐도 12만원이다. 이중부담과 비싼 민간의료보험비가 의료비부담증가에 대한 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구의 고령화와 만성질환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대상에 있어 나이에 제한이 없다는 한, 실버건강보험의 경우 70세 여성이 월보험료 4~5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대부분 소득이 없는 노년층에게 월 4~5만원이 적은 돈인가?

네째, 이중적 의료제도가 양성화되고 공적의료보험이 위축된다. 비용부담능력이 있는 고소득자는 민간의료보험을 따로 구비해서 고급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저소득자는 공적 의료보험에 남아있게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 부담능력에 따른 민간의료보험의 구매여부가, 고소득계층과 저소득계층의 단순한 분할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의료보험의 위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고소득계층은 이미 보완적 형태의 민간의료보험을 구매한 상태이기 때문에, 공적 의료보험의 수준과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갖지 않게 된다.

그리고 공적 의료보험의 확대를 위한 재원확충, 이를 위한 의료보험료 부담에 더욱 인색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공적 의료보험은 최소한의 서비스만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을 축소하게 된다. 이 경우 민간의료보험을 구매할 수 없는 저소득계층과 중간층이 보장받을수 있는 의료서비스는 최소한으로 축소될 것이며, 의료의 형평성은 파괴되고, 저소득계층과 중간층의 건강이 상당할 정도로 위협받게 된다.


정부, 자본가 부담을 확대하여 공적의료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자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보장성이 지극히 취약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국민의 건강을 의학적으로, 경제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료보험의 기본취지를 살리기위해서는 의료보험의 보장성확대가 최우선과제라는 것도 자명하다. 또 의료보장성 확대를 위해서는 보험재정의 확보가 시급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5월 17일 규제개혁위원회의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선택권 확대를 위한 민간의료보험 도입하라'는 공식적인 권고는 건강에 대한 책임을 시장질서 아래 내맡기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부담하게 함으로써, 악화될대로 악화된 보험재정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은 민중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한 파렴치한 논리에 불과하다. 선택권이 제한되어온 것은 오히려 공적의료보험이 충분한 급여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간의료보험은 대다수 민중들을 제외한 '선택권'을 누릴수 있는 가진자들만의 것이다.
결국 '건강하고 싶으면 돈내서 그만큼 의료보장을 받을수 있다, 각자 알아서들 해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선택권'이란 명목으로 정부지출을 줄이고 민중들의 부담을 늘리자는 술책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의 사회보장에 대한 책임방기는 의료보험제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부와 민간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말하면서 정부가 취했던 정책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산재보험 민영화, 목포결핵병원, 수원의료원을 비롯한 국공립의료기관의 민간위탁 방침…. 사회보장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같이 거론되고 있는 4대보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민간의료보험도입은 전초전일 뿐이다.

작년 한해동안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지출한 비용은, 재정파탄에 처해있는 공적의료보험을 보험료 인상없이도 건실하게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병수당, MRI, 각종 예방의료서비스를 보험급여로 포함시키고도 남을 정도다. 취약한 공적의료보험은 그냥 둔 채, 이로 인해 야기되는 비용부담해결을 위해 더 많은 비용부담을 개인에게 책임지우는 상황, 이것이 민간의료보험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부조리와 모순이다.

우리는 건강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내모는 민간의료보험도입을 반대해야 한다. 건강은 경제적 능력, 인종, 나이에 제한없이 지켜져야 할 사회적 기본권이자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의무이다.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을 더욱 확대할 뿐만 아니라 의료비의 지출을 늘리면서 보험회사의 이윤을 보장해주고, 정부에게는 발뺌할 근거를 마련해주는 민간의료보험 도입 계획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보험료 인상,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통한 개인적 부담의 증가가 아니라 정부부담과 사업주, 자본가의 부담확대를 통해 공적의료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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