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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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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 현상이 만든 잡담

이진숙 | 인천지부 집행위원
지난 며칠, 겨울이 막 물러갈 때쯤에나 딱 어울릴 날씨가 이어졌다. 4월 말에 강원도에는 눈까지 내렸다고 하니, 이상기후 현상이 분명하다. 날씨가 조금만 이상하면 반쯤은 장난으로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이 이상기후라는 말을 할 때면 몇 년 전 보았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투마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부터 생각난다. 간략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한 기후학자가 이상기후가 심각한 수준임을 감지하고 관련 국제 학회나 정부에 경고를 하지만 모두들 콧방귀만 뀐다. 그런데 곧바로 사람 머리통만한 우박이 떨어지고, 한겨울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등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그 기후학자가 예견했듯이 북반구부터 빙하가 덮쳐오기 시작한다. 이쯤 되어 학자의 경고를 무시한 각 국 정부로부터 반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이미 때는 한참 늦은 상황. 결국 미국 부통령은 북부지방의 시민들은 버리고, 그나마 가망이 있는 중부이남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멕시코로의 긴급 이주를 명한다. CG가 만들어낸 그 눈 세상은 정말 장관이라 보따리 짊어지고 피난길 떠나는 아메리카 시민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등등의 상투적인 글귀가 절로 떠오른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백미는 마지막 5분쯤이다. 멕시코 정부에서는 '난민'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며 국경을 폐쇄하고, 이에 미국 정부는 멕시코의 외채를 모두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미국인들을 모두 받아줄 것을 요청한다. 얼싸 안고 환호하는 미국인 난민들의 모습을 잡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없어서 이 영화를 보고 와서는 제3세계 외채문제 해법을 알려주는 영화가 나왔다고 농담을 하고 다녔었다. 인간군상의 갈등과 그 반전을 곳곳에 장치해야 하는 영화공식 상, 이런 재난영화는 천재(天災) 앞에 인간도 별수 없다는 메시지 뿐 아니라, 천재도 알고 보면 절반쯤은 인재(人災)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천하의 미국도 천재를 피해갈 순 없으나, 위기관리 능력만큼은 뛰어나다는(물론 인재를 키운 이들과 위기관리자들은 다르지 않다)암시는 빠지지 않는다.

이상기후가 확실히 의심되는 4월 20일. 장애인 차별철폐 집회에 갔다. 가뜩이나 서럽기로는 비길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하는 집회가 날씨까지 이 모양이니, 다들 악에 바친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런 날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많은 친구를 만나기도, 서울역 광장 같은 곳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장애인들에게는 축제 같은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많고 많은 인간의 덕성 중 인내와 끈기가 가장 결핍된 것으로 자가 진단되는 나는 줄지어 이어지는 연대발언, 투쟁발언들을 들으며 각종 잡생각으로 4월의 추위를 견뎠다. 관변조직 들과 다르게 365일 장애인 문제를 고민한다는 진보정당이 집권을 하면 정말 장애인 문제가 혁명적으로 달라질 것인가. 정부가 수화를 공식 언어로 채택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수화를 배우지는 않을 텐데, 그 요구의 의미는 무엇인가? 활동보조인 문제가 중증장애인들에게 긴요한 요구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활동보조인들의 노동권은 과연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인가? 과학기술의 시장 편향성을 극복하는 방향의 고민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 아닌가? 등등.

이상기후가 물러가고 멀쩡한 봄 날씨가 다시 회복된 다음 날. 인천출입국 관리소 앞에서 벌어지는 집회에 갔다. 출입국 관리소 단속반이 사장도 모르게 옆 공장을 통해 기습적으로 단속에 들어오자 이를 피해 3층 창문을 통해 도망을 시도했던 이주노동자가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부상당한 이주 노동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후, 단속반원은 '불법이주자를 고용한 죄를 눈감아 줄 테니 치료비를 부담하라'는 말만을 사장에게 남기고 사라졌다 한다. 이주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인천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이런 소식들이 가깝게, 곧잘 들려온다. '불법인간'을 만들어 내는 제도와 관행이라는 토양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일들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때마다 놀라게 되는 것은 기계도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 방식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단속 추방이 진행된 지난 3년 간 23명인가 하는 이주노동자가 폭력, 과잉 단속으로 인한 사고 등 순전히 단속과정 상의 문제로 목숨을 잃었다 한다. 이번 사건과 똑같이 추락사한 경우만도 벌써 여러 건이다. 재작년인가 이렇게 창문에서 뛰어 내린 이주노동자와 어쩌다 병원에 동행했던 경험이 있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한국에서 번 돈 모두 치료비로 날리고 치료가 끝나도 몸이 원래대로 회복될지 미지수인 상태였다. 게다가 그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들어온 친지(아들이었던가?)가 사고 직전 강제출국 됨으로써 브로커에게 지불했던 2,000만원인가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었다. 치료가 얼추 끝나면 본국으로 송환될 그의 앞에 기다릴 인생이 어떤 것 일지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자연적으로 타고난 특성이나 차이를 차별, 억압하(거나 그를 위한 매개로 활용하는)는 것에 맞서는 운동들이 활성화되는 것도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물론 신자유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역사가 있는 운동도 존재한다). 물론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가 만드는 억압과 배제가 그만큼 다종다기한 영역에서 강화되어 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운동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운동 내에서 비교적 주변부적 위치에 머물러 있는데, 그에 참여하거나 연대할 때면 여러 가지 고민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체제와 제도의 수혜로부터 가장 멀리 있었던 주체들의 운동에서 '법 · 제도'는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다. 일종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제도를 확충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필요성에 비례하여 요구투쟁, 제도주의적 접근이 운동의 중심이 될 위험은 상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가성은 운동방식의 급진성과 제도주의적 목표라는 형태로 종종 드러나는 듯하다(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자연적 특성이나 차이에 기반을 둔 운동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주류적· 중심적 운동이 아닌 많은 운동들에서 이런 경향성들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장애인이나 이민자가 살기에 좋지 않은 세상이 비장애인, 민족국가가 자격을 승인한 시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일리 만무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인식이 쉽지 않은 데는 법이나 제도 그 자체가 하는 역할이 다른 무엇보다 크다. 적용대상, 자격기준을 규정하고 그 수혜에 따라 지불되어야 하는 유무형-의식/무의식의 대가. 그 결과가 분할과 배제, 또는 이른바 무임승차를 비난하는 따위의 사회 분위기가 아니겠는가. 안에 있는 이들에게나 밖에 있는 이들에게나 양날의 칼이기는 마찬가지.

노동자 파업, 테러의 위협 등 국가가 규정하고 선포하는'재난'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마당에, 자연적으로 타고난 차이를 천재(天災)려니 여기고 살라는 강요는 차라리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인재(人災)를 키우기에 그치지 않고 천재를 주조해내는 능력까지 갖춘 대단한(?) 시대. 과연 이 이상기후 현상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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