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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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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을 회복하라 !

KT해고자 이해관 조합원 인터뷰

이해관 | KT해고자
[편집자 주] 지난 3월 23일 KT노조는 대의원대회를 통해 해고자인 유덕상, 이해관 조합원에 대한 제명과 해고자구제지금 지급 중단을 의결했다. 제명사유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징계 절차도 밟지 않는 등 과정상의 문제도 있었거니와,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에서 해고자를 제명조치 했다는 사실이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극명한 사례로서 이번 사태는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두 조합원은 사건 직후부터 계속 민주노총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사회운동에서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 사태의 전말과 의견을 들어 보았다.

일시 : 2006년 4월 19일(수) 오후 2시
장소 : 민주노총 앞 천막농성장
정리 : 정영섭 (노동국장)


사회운동 : 지난 3월 23일 KT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제명 처리가 통과되었는데요, 당시 상황과 지금까지의 경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이해관 : 해고자를 정리한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는데, 단행하게 된 계기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11월에 있었던 KT노조 선거부터입니다. KT노조 역사상 유례 없는 부정선거가 진행됐고, 특히 노사가 담합해서 선거가 치러지면서 내부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선거가 423개 투개표소에서 분산되어 치러지는데 심지어 20인 미만 선거구도 20여개 됩니다. 그런데 개표를 하고 보니 이승만 선거시절과도 같이 특정 위치에 기표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선거 규약에 따르면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에게 추천을 받아야 되는데, 이는 회사가 아닌 노조 선관위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천 서명을 받아서 제출하려고 하면 추천해 준 사람들이 찾아와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과장한테 불려갔다는 것이지요. 선관위에서 회사측에 자료를 넘겨준 게 아니면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 노조 선거에 회사가 개입 안하는 경우가 있냐고 얘기하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다릅니다. 서명한 거 취소하라고 하고, 투표용지 어느 위치에 찍으라는 것까지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노사담합 선거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것이 이슈가 되면서 KT 노조 성격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었지요. 일부 동지들이 또 협조주의적이지 않은 대기업노조가 얼마나 되느냐고 얘기하는데요, 노사협조주의 집행부가 단위 기업노조에서 들어선다고 민주노총에서 쫓아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KT 노조는 아무런 민주성, 자주성도 없는 신어용노조입니다. 근본이 다른 것이죠. 노조가 다소 온건하고 무기력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사용자의 지시 통제 하에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계기가 된 것이 지난 민주노총 4기 임원 선거입니다. 당시 기호 1번 진영에서 KT 노조의 어용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대의원 입장을 막겠다고 나섰습니다. 물리적으로 막겠다고 했다기보다는 어용성을 규탄하는 이벤트성 항의시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KT 대의원들이 출입하지 않아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KT 사측의 노사협력팀 직원들이 와 있다가 끌려 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근데 그 끌려 나간 사람들이 대의원이냐 노사협력팀이냐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1명은 대의원이었고 3명은 노사협력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내용적으로는 KT노조의 어용성이 노동운동 내에 드러날 대로 드러났습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안건으로도 KT노조 제명 건이 올라왔습니다. 이에 KT노조에서 전격적으로 해고자 제명을 단행한 것입니다.
단순히 KT노조가 해고자들의 행동이 기분이 나빠서 제명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전날 문화일보 2면 상단에 해고자들이 억대연봉을 받아가면서 노조를 강성으로 몰아간다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났었어요. 그리고 대회 당일에는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민주노총이 이렇게 해고자들에게 끌려 다니면 혁신 안 된다는 내용을 실었을 정도였지요. 이는 단지 KT노조 지재식 위원장이나 집행부가 작업한 것이 아니라, 사측이 작업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대단히 각을 세우고 있는데요,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면서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위상 자체를 흔들기 위해 KT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까지 염두에 둔 회사 측의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만 제명했다고 하면 노조집행부가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 도 있는데 유덕상 위원장이 포함된 건, 저쪽도 사건이 대단히 커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랬다는 것이지요. 대의원대회에서 지재식위원장이 유덕상 동지를 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대의원들이 야유를 보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KT노조 자유게시판에 가면, 민주노총이 이런 식으로 강성해고자들에게 끌려 다닌다면 민주노총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이런 걸 볼 때, KT자본이 KT노조를 통해 민주노총을 압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KT노조가 자본의 첨병 역할을 해 왔다고 볼 때, 그렇게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번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회운동 : KT노조 대의원들이 제명을 발의하고 이에 동의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장 조합원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해관 : 일단 제명 이후에 노조에서 이 사실을 전혀 홍보하지 않고 있어서 조합원들은 잘 모릅니다. 민주동지회 중심으로 현장을 다니면서 유인물을 뿌려서 제명 사실이 알려진 편입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해고자들이 안됐다’고 여긴다고 할까, 그런 편입니다. 문제는 KT노조가 완전히 무력화되면서 조합원들은 노조를 통해서 지금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해고자가 옳다’, ‘아니다’ 이런 판단 이전에 노조나 해고자들 활동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반응이 일반적인 것이지요. 대의원들의 경우, 안건을 발의한 대의원이 대의원대회 며칠 전부터 회사 관리자들한테 불려 다니면서 술판을 벌인 것이 목격이 됐고, 회사가 매우 적극적으로 조직한 것이기 때문에 대의원들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회운동 : 조합원들이 일상적인 구조조정에 시달리다 보면, 해고자들에 대해서는 조합이 유지되는 한 안정적으로 구제기금을 타가기만 한다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요.

이해관 : 해고자들이 활동을 잘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와 제명을 해야 된다는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제 생각에 조합원들은 KT노조가 무력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옛날에 열심히 싸우던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게 있는 거지, 현실적으로 해고자들이 문제해결의 주체라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와 해고자들 제명은 별개의 문제지요. 해고자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든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든가 그렇게 생각하는 조합원들은 별로 없지요, 대체로 좀 안됐다는 반응들입니다.
물론 불만이 있을 수는 있어요. 이를테면 KT노조가 뭘 잘 해보려고 하는데 해고자가 힘을 안 보태 준다든가 하면 불만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KT노조에 대해 조합원들이 실망을 넘어 절망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고자들이 KT조합원을 위해 하는 일이 없다는 식의 불만이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우리가 희망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희망적인 것을 못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조합원들이 해고자들의 한계에 대해서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 : 어떤 글에서 KT를 ‘구조조정이 만들어 낸 괴물’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으신데, 구조조정과 지금의 노사담합이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해관 : 과거 공기업들에서는 임금이 높지는 않았지만 느슨한 노동 강도와 가족주의적, 가부장적 노사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어용 한국노총의 빅3가 철도, 전력, 한국통신 포함한 체신이었고요, 이들이 한국노총을 쥐락펴락했지요. 어떻든 임금이 높지는 않았지만 민간 제조업보다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87년 대투쟁을 통해 민간부문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정부는 민간의 임금상승을 막기 위해 공공부문 임금을 꽁꽁 묶었고 예산통제도 심하게 했습니다. 한편 독재정권 하에서 공공부문은 임금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연된 비리 구조 등으로 인해 뒤로 생기는 돈들이 조금씩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사정을 통해 하위직들의 뒷돈이 틀어 막히게 되었지요. 이렇게 되니 진짜 우리 임금이 적다는 걸 실감하게 된 거죠.
이에 따라 90년대 중반 뒤늦게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불붙기 시작하는데 당시 한국통신을 비롯해서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주요 요구가 ‘관치철폐’였습니다. 그런데 임금가이드라인, 예산, 정원통제 등에 맞서는 관치철폐 요구는 불가피하게 시장친화적인 분위기로 이어졌고 기업 내 협조주의적 분위기가 유지되는 가운데 노동운동은 계급대립보다는 정부통제에 맞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인데요, 그만큼 우리가 세계사적 조류도 몰랐던 것이지요. 민영화 반대투쟁 하면서도 전면적인 민영화반대가 아니고, ‘재벌특혜 민영화 반대’였고 ‘자율경영 보장’, ‘규제철폐’를 노조가 주장했습니다. 한통노조의 강력한 투쟁으로 임금가이드라인이나 관치 이런 건 많이 풀렸는데, 반면에 권력이 고스란히 시장으로 넘어가는데 그에 대한 노조의준비는 매우 취약했던 것이죠.
결국 협조주의적인 기업문화가 노조의 강력한 투쟁시기에도 유지가 된 것이고 극복되지 못한 채 IMF 사태를 맞았는데, 그 결과 당시 많은 사회운동 단체들이 비판하듯, 한통이나 한전 등 공기업들은 ‘우리가 먼저 매각되면 안 된다’면서 자율적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기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협조주의가 변화된 모습이었지요. 노동자들이 한때는 강력하게 투쟁했지만, 그에 걸맞은 계급의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IMF 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 내 협조주의로 경도된 일차적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한편 노사담합이 더욱 노조 선거를 통해 심화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면, KT는 423개 사업장을 갖고 있는 전국 사업장입니다. 하위 10%는 인사고과에서 무조건 D를 받는데 이것을 2년 연속 맞으면 비연고지로 발령 받습니다. 우리 민주파 활동가 동지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거도, 흑산도, 거문도 등 섬에 가 있는데요, 대한민국 도서지역 통신은 대부분 민주파 활동가들이 지키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런 현상이 어용노조의 방조 하에서 매우 심해졌습니다.
단순히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선거에서 민주파 표가 많이 나오면 그 소속 지부조합원들에 대해서도 회사는 인사나 예산에 상당한 불이익을 줍니다. 우리가 한방에 무너진 건 아닙니다, 위원장을 뺏겼어도 지부조직은 우리가 더 많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KT가 예나 지금이나 돈을 잘 버는데요, 지사별로 경영평가를 통한 내부 워크아웃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구로지사가 내부워크아웃에 걸렸는데, 워크아웃에 걸리면 인사나 모든 것에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래서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위해 어떤 걸 하냐면요, 자구노력이라는 식으로 일요일에 전 직원이 나와서 무보수로 일합니다. 내부 경쟁을 격화시키는 거지요. 그리고 전화국간 경영평가에서 노사화합점수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민주파 지부장이 있는 곳은 항상 평가가 나쁘게 나오고, 조합원들은 민주파 지부장들을 부담스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민주파 표가 많이 나오면 우리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점점 더 무너지면서 지난 IMF 이후 6-7년간에 걸쳐 완전히 무너져서 지금은 민주파가 대의원 한 명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 : 이러한 협조주의 문제가 KT만의 문제가 아니고 민주노조 전반의 문제라고 보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해관 : 현장이 전반적으로 무너져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KT는 경우가 다릅니다. 예컨대 민주동지회 활동가들이 대부분 섬에 가 있고, 대표적으로 광주의 김모 활동가는 지난 4년째 섬에 있습니다. 가족과 완전히 떨어져 있어서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유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걸 노조가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민주파 활동가들에 대한 선별 탄압을 노조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노조가 스스로 조직을 계속 깨먹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도와줘도 될동말동한데 말이죠.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문제가 되었던 ‘KT상품판매전담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회사의 감시와 차별에 시달린 끝에 5명이 그 어렵다는 정신질환 산재승인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지들 싸우는데 집행부가 단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인권운동 단체들까지 들고 일어나 문제를 삼았는데도 말입니다. 또 2003년 줄줄이 열사들이 났던 해에, KT노조는 9월에 5,505명 명예퇴직을 노조가 먼저 제안해서 시행했습니다. 노조가 먼저 제안했단 말입니다.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노동운동이 전략적 대응을 잘 못해서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회사에 의해 당선되어 회사를 위해 현장의 움직임을 억압하는 것을 동일시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KT노조는 좀 온건하고 무기력한 협조주의 노조가 아니라, 정확히 어용인 것입니다.

사회운동 : 지금 현재 민주노총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민주노총은 현재 어떤 논의를 하고 있습니까?

이해관 : 지난 4월 14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은, 4월 30일까지 IT연맹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 그게 되지 않을 시 민주노총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는 것과, KT 노사담합 선거의 진상을 규율위원회에서 최우선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간단히 보지 않는데요. 이는 조직적인 갈등이 아니라 어용노조가 회사의 사주를 받아 민주파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현장에서 현장투쟁으로 노조를 바로 세워 우리의 명예를 회복할 테니 민주노총이 운동적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서 이건 안 된다고 입장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민주노총이 어려워하고, 일각에서 이 문제를 마치 정파 간의 갈등인양 하는 건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지지방문 오는 동지들에게도 많이 얘기하는 건데, 미국 노동운동이 최소한의 운동성마저 상실했음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건 베트남전이었는데요. 당시 미국 내 모든 양심세력들이 반전운동에 나서는데도 불구하고 AFL-CIO는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2차 대전이 마무리된 후 매카시 선풍 때 공산주의자를 추방한다며 노동현장에서 대대적인 좌파 축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딜체제 이래 타협체제 하에서 각종 국가위원회 등에 참석하며 자신들의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던 상층 노동관료들은 이런 현장에서의 운동가 추방문제에 대해 외면했지요. 그 결과 현장은 완전히 공동화되었고 그러한 말로가 바로 베트남전에서의 전쟁지지에서 보여준 반동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제명사태를 그러한 문제와 비슷하게 봅니다. 정권과 자본은 겉으로는 노사정위원회다 해서 노조 상층을 각종 기관에 참여시키지만, 아래에서는 운동적인 부분을 계속 죽여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제명사태도 그 연장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사태를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의 문제로 바라보는데, 이 문제에서조차 민주노총이 입장 표명을 주저한다면 이는 대단히 실망스럽고 우려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미 복수노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지난 선거에서 우리도 민주파가 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통상적 수준의 회사의 개입만으로도 우리는 지재식 후보가 60%대의 득표로 당선될 거라고 봤는데, KT 사측은 민주파가 10% 미만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는 지침을 각 지사로 내리면서 통상적 수준을 뛰어넘는 강력한 선거개입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공연히 얘기했어요. 복수노조 시행에 앞서 민주파의 싹을 잘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KT 자본이 민주노총 집행부한테 압박하고 있는 내용은, KT노조 지재식 집행부가 민주노총 소속이라는 것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3만 명의 노조가 민주노총에서 나가는 걸 각오하고 민주동지회를 택하든지 하라고 압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문제가 원칙과 기풍을 선택할 것인가, 즉 운동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3만 명의 조합비, 즉 파이를 선택할 것이냐의 시금석이라고 봅니다.

개인적 견해를 말씀드리면, 운동이 좌냐 우냐 이전에 어용화되고 있다는 지점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문제가 정파 간 갈등이 전혀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실제로 민주노총의 의사결정이 자꾸만 운동적 원칙,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는 다르게,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의 다수 총의라는 식으로 결정되는 속에서, 가입되 있는 상당부분이 협조주의화되고, 어용화되면서 민주노총 자체가 급격히 운동성을 상실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은 80만 조합원의 조합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계급의 유일 대표조직 아닙니까. 한국노총은 국가와 자본이 세운 것이 불과하니까요. 그러니 그에 걸맞은 위상과 기풍 이런 걸 지향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자꾸만 소속 조합원의 평균으로만 갈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어도 기풍의 문제에 대해서는 노선의 문제 이전에 최소한의 규율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제재조치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이 필요합니다.
단적인 예로, KT 노조가 작년 11월 선거 때는 97% 투표에 90% 찬성이었는데 불과 열흘 뒤 비정규직 개악 저지 총파업 투표는 1%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KT노조는 지금까지 모든 민주노총 사업에 대해서 집행한 적도 별로 없는데, 각종 선거권은 예외 없이 행사합니다. 우리를 제명한 대의원대회에서도 민주노총 파견대의원 46명에 후보대의원 80명을 뽑았습니다. 한마디로, 의결권 행사를 다 하겠다는 것인데요, 이런 걸 언제까지 용인해야 합니까.
혹자는 지금의 위기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지만, 자주성의 위기입니다. 자주성이 있어야 민주성이 있는 것입니다. 노동운동 내 조직된 기득권층의 이해만 대표하는 구조가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이런 기풍과 규율에 대해서는 추상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래로부터 병듭니다.

사회운동 : 끝으로 향후 계획이나 결의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해관 : 제명 철회라는 시각으로 보면 문제해결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쨌든 이번을 계기로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지점도 많이 있습니다.
KT노조가 복수노조시대 노동운동의 일반화된 모델이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도 복수노조를 통해 운동적인 부분들을 계속 고립시켜 나가고 협조주의 세력들을 키워나가면서 결국은 렌고라는 조직으로 통합시켜 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운동성은 다 죽었지요.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KT라는 어용성의 문제로만 보지말고, 모든 민주노조활동가들이 전체 노동운동의 기풍의 문제로 활발하게 고민했으면 합니다. 우리도 어떤 수준에서건 현장을 복원하기 위한 실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성찰을 할 수 있었고요 분발하는 마음도 많이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이 문제를 보편적 운동 기풍의 문제로 제기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 있는 활동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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