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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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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미래>를 읽고

『부서진 미래』김순천 외 지음, 삶이 보이는 창, 2006

이동현 | 회원

서울역 맞은편 쪽방촌을 들를 때면 어김없이 김 아저씨를 만난다. 건물 입구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거나, 통 짖을 줄도 모르는 흰둥이를 쓰다듬고 있다. 지하도에서 여러 해를 살다 쪽방에 들어간 지 2년. 전쟁 같은 노숙생활을 끝내고 이제 좀 낫지 않으신가 하는 생각에 나누는 몇 마디이지만, 아저씨는 도대체 사는 게 재미가 없다 한다. “뭘 좀 했으면 좋겠는데….” 하시며 흐리는 말속에는, 모 회장 집 벽돌을 쌓았을 정도로 이름난 조적공이었던 지난날과의 단절이 담겨있다. 더 이상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 사회인 줄 알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 큰 괴로움이다. 같은 건물에 사는 영철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일을 잡기 전에는 찾아오지 마세요. 창피 하니까… 그 후엔 제가 먼저 연락할게요.” 다행, 그는 몇 달 전 일을 구했다. 신문배달.

꼭 한 해전 ‘삶이 보이는 창’ 르포 문학 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비정규직을 주제로 르포를 쓰려하는데 그중 노숙인의 이야기도 다뤘으면 한다고. 만나서 이야기 나눌만한 분을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고. 소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르포 문학’이란 말이 찜찜했다. 르포라면 신문에나 실리는 게 의례인 줄 알았고, 거기에 문학이란 이름을 붙이는 건 조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간 노숙인에 대한 언론의 르포들은 며칠 노숙인으로 위장하여 같이 급식을 얻어먹고 잠도 자며, 그간 맺어진 인간관계를 매개로 숨겨진 노숙인의 뒷이야기(폭력적이거나 야한)를 캐내는 야비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르포 문학 모임을 만나며, 매주 활동가들과 함께 거리노숙 현장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작업이 ‘단순히 사실을 알리는 르포가 아니라 그분들의 정서와 마음까지 담아’내려는 기획에 충실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런 작업이 여러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장에서 진행되어『부서진 미래』로 발간되었다.『부서진 미래』는 비단 고용형태로서의 비정규직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 ‘습기처럼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황폐화’시키는 세계화의 문제, 그 파장이 빚어낸 민중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가능한 진실하게, 읽는 이로 하여금 ‘값비싸고 좋은 음식만을 먹다가 어느 날 먹는 된장찌개’가 아닌, 현재의 나와 정당한 나를 갈등하고 충돌하게 한다.

「더 이상은 안 돼」의 이점순 씨는 정부에서 제공한 일자리인 가정복지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비록 경쟁노동시장에서 백기를 든 후 얻게 된 일자리지만, 지역사회에서 단독생활이 불가능한 이들을 돌보는 노동은 비록 임금은 적더라도 일에 대한 가치와 보람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일자리조차 시장 마인드가 개입되다 보니 수발을 들어야 할 수혜자가 두 배로 늘어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 자연스레 사람에 대한 돌봄이어야 할 일의 성격을 보전하기도, 일에 대한 보람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이 일조차 3년을 채우면 더 이상 할 수 없다. 물론 자활공동체란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는 결국 경쟁시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시장은 3년 전보다 더 살벌해졌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렇듯 현재의 복지제도는 일정 기간 민중의 고통과 불만을 잠재우고, 경제 권력의 질주를 위한 연료가 될지언정 국가의 정직한 의무 이행은 아니다.

자본은 생명이라는 경쟁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서도 경쟁하게 한다.「생명, 경쟁할 수 없는 성역」의 서울대병원 간병인 정금자 씨는 인간의 생명이 경쟁의 논리에서 ‘호흡곤란’을 겪고 있음에 분노한다. 서울대병원은 무료간병인 소개소를 폐쇄하고 유료소개소인 민간 영리업체를 들여왔다. 유료소개소는 입회비와 월 회비를 수익으로 삼을 뿐, 소속 간병인에 대한 노동 기회 보장은 뒷전이다. 간병인들은 자구책으로 환자에 대한 간병이 끝날 즈음 새로운 환자를 찾아가 “간병이 쓰려면 나 쓰십시오.”라고 청해야 하는, 환자의 생명이 구매력이 되는 비정함을 빚어내고 있다. 허나, 환자나 유료소개소 간병인이나 생명을 저당 잡힌 것은 마찬가지다. 환자는 질병에게, 간병인은 자본에게.

일상화된 해고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직장을 공포로, 동료들을 경쟁자로 파편화시킨다. 같은 라인에서 같은 공정을 작업하는 노동자들은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으로 구분되고, 어느 날인가부터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핸드폰 문자 통보 하나로 해고된 것이곤 했다.「다시 목련을 기다리며」는 이러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고통과 의연한 투쟁을 보여준다. 금속노조 기륭분회는 10분만에 120명이 가입할 만큼 노동자들의 공분은 상당한 것이었는데, 최근 3년 간 기륭전자에 채용된 여성 생산직 직원의 99%가 불법파견이라고 한다. 지극히 합법적인 노동자들의 요구에 자본은 그 자신을 무기로 노조원 61명에게 총 53억을 손해배상 청구하고, 대부분 여성가장인 조합원들의 생계를 볼모로 싸움을 장기화시키고 있다. 더 이상 어쩌지 못해 생계를 선택한 이들이 간 곳은 또 다른 불법파견 업체이기에 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은 더 아프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다시 한 번 기륭분회 투쟁의 가치를 명료히 한다. 기계의 부속품이길 거부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대가를 되돌려주는 싸움!

제법 두꺼운 두께의 이 책 속에는 그 외에도 많은 삶들이 공감의 언어로 녹아있다. 아마도 작가들 역시 충분히 준비된 삶의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밥 굶지 않을 정도로 살고 싶은 게 꿈인 대학 4년생, 어리광 피울 나이에 사회를 대면하고 가치 절하된 임금으로 스무 살을 채운 청년, ‘불법 사람’이란 정체성이 익숙해져버린 이주노동자….
서문이 말하듯, 모든 주인공들은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간편한 수고만으로 그들은 삶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분노케 하고 정화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책 읽기를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삶이 세상의 가벼움과 충돌’하게 하려면 생각과 감정의 북받침만으로는 될 일이 아닐 테니까.
주제어
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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