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7-8.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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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의 재개 : '지역'적 전략과 실천의 모색

공성식 | 노동부장

노무현 정권-열리우리당의 몰락의 의미

이번 지방선거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몇 차례의 위기를 극복하게 했던 특유의 정치 스타일은 이제 약이 아니라 독이 되어 버렸다. 감정에 호소하는 솔직함은 아마추어리즘과 무능력함으로 저돌적인 추진력은 독선으로, 모든 미덕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악덕으로 치부되고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이끌어 냈던 바로 그것이 이제는 반대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대중들의 삶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는 자본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필연적 결과다. 하지만 대중들의 불만은 현실에 대한 적합한 인식과 행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대의 표현이지 한나라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 표현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나라당 역시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조장하는 것 이상으로 대중들을 조직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이 부재하다.
따라서 우리는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정치지형과 사실상 거의 동일한 정치지형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체 모를 분노'를 허구적인 대립 구도 속에 설정된 '적'에 대한 공격으로 동원하는 인민주의적 정치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노무현을 지지했던 바로 그 측면이 반대의 원인이 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대중적으로 그러한 구도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정권의 위기'가 '체제의 위기'로 확장되지 못하고 '체제의 재생산'의 알리바이가 되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역사적 자본주의의 위기로 인식하고 체제의 변혁을 통해 대안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운동에게 있어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정치지형 자체를 바꾸어 내지 않으면 또다시 (어떤 형태일지 아직 속단할 수 없지만) 새로운 신자유주의 정권의 성립을 눈뜨고 보아야 할지 모른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주체 형성의 난점

무엇보다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난점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들은 계속되고 있으되 이러한 투쟁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주체의 형성과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효과인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는 직접적인 대중의 반대행동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직접 행동에 나선 대중들은 고립화되어 패배하거나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는 어떠한 보편적인 의미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주체의 형성이 어디에서 가로막히고 있는 것일까?
첫째, 신자유주의는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계급분할/해체를 초래하고 있다. 생산적 팽창을 중단한 자본의 초민족적인 금융적 이탈은 과잉자본과 더불어 과잉노동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을 감행하고 노동이 유연화 될 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자들이 증가한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고 성적/인종적 차이, 정규직/비정규직, 대공장/중소영세공장의 차이에 따른 분할이 심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배제되지 않기 위해 노동자 대중들은 스스로 능력을 키워 유연화된 노동시장, 노동과정에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신자유주의의 규율을 내면화한다. 이는 자기계발, 능력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로 합리화된다. 사회적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된 자들의 불만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규율을 강제한다.
둘째,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문민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반독재 전선이 소멸된 이후 그에 뒤이은 새로운 운동의 출현이 지체되는 가운데 민주화운동의 성과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정치적으로 수렴된다. 현 단계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적 지배계급인 자유주의자들이 내놓은 위기극복 혹은 관리를 위한 일련의 능동적인 개혁 프로그램으로서 신자유주의는 남한 사회에서 반공발전주의에 기반한 기존의 지배세력을 대체한 이른바 민주화세력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개혁이데올로기'의 위력은 더욱 증폭되었다. 사회 전 영역에서 민주화, 자율화, 분권화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적 규율이 이전의 민주화운동 세력에 의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고 일부 좌파지식인, 사회운동 진영은 이를 진보로 착각하며 적극 동참하였다. 그 결과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형성되었던 정치적 주체는 신자유주의에 조응하는 개별적 주체들로 재형성되어 왔다.
셋째, 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출현한 대중운동조직들은 조직의 물질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주체성의 해체가 지연되었으나 보편적 의미를 상실하고 특정 계급, 계층 집단으로 전락했다. 심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그나마 누리던 기존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방어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정권이 주도하는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에 포섭되거나 고립분산되어 각개격파 당했다. 한편 이들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던 사회운동들 역시 해체된 전선의 복구와 함께 사상·전략 혁신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되었으나 혁신이 지체되면서 '사상, 이론, 조직, 운동의 분열'이 파괴적으로 나타났고, 현실 운동과정에서는 단적으로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외형적으로 성장한 대중운동의 불안정한 실용적 결합으로 현상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이 가지는 실천적 의미와 목적이 불분명한 가운데,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이념과 전략·전술 없는 슬로건으로서만 표류해왔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운동 내에서 정책대안론과 결합된 '협조주의'와 조직된 조합대중의 동원을 중시하는 '전투주의'의 대립으로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정책대안론으로 대체해버린 운동들은 종종 그나마 누리고 있는 지위를 방어하려는 대중들의 실리주의와 위기를 관리하려는 정권의 허구적인 합의주의와 결합하여 노동자운동을 의회에서의 입법을 쟁점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활동으로 전락시켰다. 압력의 방법을 둘러싸고 노·사·정 위원회나 열린 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매개로 한 압력을 중시하는 '협조주의' 경향과 노동조합의 대중동원을 중시하는 '총파업 물신주의'가 대립하기도 했으나 이는 본질적으로 국가기구에 대한 협상과 압력을 통한 사회경제적 요구의 방어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동일했다. 한편 합의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조합의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투쟁을 강조했던 경향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인한 한국사회 정치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조직된 조합원들의 투쟁동원으로 운동을 대치하거나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이러한 결과 70-80년대에 형성된 계급적·변혁적·전투적 노동자운동은 해체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주로 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경로와 실천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20세기 역사적 노동운동의 한계를 넘어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을 재정립하자
현재 노동자운동이 처한 위기적 상황은 '세계사적'인 노동자운동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을 거치며 중심부 국가에서 분출한 노동자운동은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형성과 함께 급격히 제도내로 포섭되어 갔다. 이러한 서구 노동자운동은 (산업별) 노동조합은 노동시장과 노동과정 내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자신의 목표를 한정하고 사회민주당, 노동당, 민주당과 같은 제도정당을 전략적으로 지지하여 이러한 교섭의 조건을 형성하거나 복지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전략을 채택했다.(사회경제적 노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자유주의 정당의 결합) 한편 반대편에는 현실 사회주의의 비극적 결말이 존재한다. 혁명의 과정에서 계급의식 혹은 통일성을 보증하는 조직으로서의 혁명당은 이행의 과정에서 지속되는 계급투쟁의 상이한 형태들을 전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스스로 국가로 전화하였고 노동조합이나 소비에트는 당의 전달벨트로 전락하였으며 혁명은 중단되었다.(정치적 노조주의와 계급정당의 결합) 이러한 20세기적 노동자운동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주체화보다는 노동자들을 정치로 동원하는데 관심을 두고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의 기관이 아니라 경제적 또는 정치적 목표를 위한 동원(또는 조직화)의 기관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20세기 역사적 노동자운동에 대한 평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전의 당-형태를 통한 정치적 조직화에 반대하여 대중운동의 자율성 그 자체를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거나 혹은 국가-당에 의한 통치와 노동자 연합에 의한 자기-통치를 그 자체로 대립시키고 전자를 알리바이로 삼아 후자의 난점을 은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저 혁명적 주체성의 출현은 결코 자연적 속성이 아니며 어떠한 보장도 없다는 것을, 따라서 정세 속에서 계급투쟁이 대중운동으로 발전하도록 촉진할 수 있는 조건들을 탐구하고 실천할 것을, 그리고 동시에 이 조건들 속에서 대중운동 속에 계급투쟁의 심급을 유지시킬 수 있는 집단적 표상의 형태들을 발견하고 형성할 것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고에서 출발한다면 노동자운동은 마르크스가 분석했듯이 착취와 지배, 경쟁이라는 임금노동자가 형성되는 각각의 계기 속에 내재하는 계급투쟁의 대중운동으로의 성장을 통해 정치적 주체를, 노동자계급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재개념화 될 수 있다. 노동자운동을 구성하는 일부인 임금노동자들의 대중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경제적 목표나 정치적 목표를 위한 동원의 기구가 아니라 노동자의 혁명적 주체성을 형성하는 대중운동의 기관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노동조합에 관여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임무는 노동조합의 관리적 경향에 맞서 사회운동적 경향을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당이라는 조직의 통일성이 계급의 통일성을 보증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사회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공동의 행동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사회운동들의 연합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대중운동의 능동적 분파로서 대중운동의 실험자이자 대중운동의 집단적 분석자로서, 하나의 의견그룹의 형태들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으로 부르고자 하며 이를 위해 지금의 노동자운동을 사회운동으로서 개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운동의 구체적인 개조의 방향은 무엇인가?
첫째, 현재 한국 노동자운동의 위기는 단순히 개량주의적 경향의 득세 혹은 반대로 전투주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대공장-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여 권위주의적 국가와의 비타협적 투쟁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주노조운동의 대표성, 이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혁명적 주체성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불안정노동의 일반화라는 조건 속에서 해체되고 있는 것이 위기의 원인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새로운 계급투쟁 분파의 조직화, 새로운 주체들의 형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노동자조직의 외부에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자대중들의 운동을 조직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기존의 노동조합의 활동을 개조하여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새로운 주체형성과 일상적 활동의 재구성을 통해 기존의 노동조합을 사회운동적 기관으로 개조해 나가야 한다.
둘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맞서 대안세계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들의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연합의 과정에서 전쟁과 경제위기로 점철된 이행의 시대에 적합한 공통의 인식과 행동 프로그램을 생산해야 하며 당과 노조, 대중조직들의 사회운동적 경향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사회운동 연합의 주요한 주체로서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추동하기 위한 사상 이론적인 대중교육과 대중(정치)선전, 연구활동을 자신의 사업으로 하는 의견그룹들을 형성해야 한다. 의견그룹의 역할은 대중(운동)의 논쟁을 북돋우고 전진시킬 수 있는 공통의 개념을 개발하고 제안하며, 대중주체를 형성하는 것에 복무하는 것이다.

어디로부터 무엇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

주체형성과 일상적 활동의 혁신을 통한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개조,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연합의 구축, 의견그룹의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수준에서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대중적 토대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지역'적 차원에서의 실천이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첫째, 지역은 (단순한 자연적인 경계나 행정구획상의 의미보다는) 노동자민중이 노동하고, 사회화되고, 살아가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공간이다. 노동자 사회운동의 형성을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이 공장, 가족, 주거 등 노동자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생활조건 및 노동조건과 관련된 계급투쟁들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는 프롤레타리아화한 개인들의 다양한 이해, 생활형태의 차이를 넘어 이를 통일화하는 실천을 필요로 한다.
둘째,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 사회운동들의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공동의 정치활동,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 확보와 행동 프로그램의 수립을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토론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근접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역적 기반의 사회운동들의 연합 강화는 자본주의 변혁과 이행의 물질적 토대이기도 하다.
셋째, 노동의 불안정화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해 더 이상 기업단위별현장, 혹은 국민경제적 이해에 종속된 민족적 산업현장의 이해를 중심에 둔 조직화는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즉 현장통제력에 기반을 두었던 20세기적인 미숙련 정규직 노동자운동체제가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실업과 취업 상태를 불안정하게 오가며 존재하는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기반을 둔 조직화와 조직형태가 유효하다. 또한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건설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 상층부의 급격한 관료화와 현장의 공동화를 막고 산별이라는 형식의 유의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지역이 중심이 되는 산별노조 건설이 시급하다.
넷째, 한국 노동자운동의 활동적 부위는 대체로 현장주의와 종파주의 속에 활력을 잃고 있다. 특히 기업별 현장에서 지도부의 장악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현장조직들의 분화와 대립은 대부분 노동운동의 이념과 전략에 대한 건강한 토론과 이에 입각한 분별정립보다는 경직된 전술적 대립이나 도덕적, 문화적, 정서적 갈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장주의와 종파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지역적 차원의 활동이나 조직의 구축이 유용한 매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적 차원의 노동자 사회운동의 형성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정치를 우회하고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민족국가의 사회통합적 기능이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들은 민족국가적 틀과 민족국가의 분할이라는 세계적 틀 속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단적으로 지역 사회구성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역적인 운동은 이러한 질서들과 대결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지역적 차원의 운동들은 민족국가적 수준의 통합을 실현해야 하며 이러한 통합의 진전 없이 지역적 차원의 운동의 발전은 근본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지역적 정체성은 오히려 대중을 수동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의 불균등한 효과와 내/외적 배제와 불평등의 강화는 지역발전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낳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조장하고 활용하여 위기를 관리하려 한다. 물론 지역의 불균등한 발전과 실질적인 성공의 가능성이 없는 지역활성화 정책이 오히려 대중의 불만을 폭발시킬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사회를 특징짓는 모순의 구체적 양상을 분석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정학

자본주의의 발전은 지역간 불균등 발전을 동반한다. 대표적으로는 도시/농촌의 분리가 심화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각 지역이 국가 내에서 혹은 국가가 전체 세계체계 내에서 처한 위치에 따라 각각의 불균등한 발전이 이루어지며 자본주의의 발전 이전에 형성되었던 지리적 배치들을 바꾸어 놓는다. 남한의 경우 자본주의적 발전이 본격화되면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을 채택하는데 이에 따라 주력 산업의 입지에 적합한 산업지역이 형성되고 농업이 급격히 붕괴하면서 대도시로의 집중이 강화된다. 이는 이른바 신흥공업국들의 대체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한편 금융세계화된 세계경제는 경제활동의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고도의 기업서비스 활동과 정보통신시설이 집중된 이른바 '세계도시'를 필요로 하며, 세계도시들은 각각의 국민경제의 중심지(혹은 산업)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경제에 속한 자신들만의 (세계적이고 지역적인)네트워크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세계도시는 특정한 국민국가의 주권에 의해 세워지고 그 안에 위치하지만, 민족적 국민적 통합을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내부로부터의 배제와 포섭을 통해 군림한다. 세계적, 지역적, 도시적 규모에서 세계화에 따른 주변화과정은 과거 중심부의 일부라고 여겨지던 핵심에서도 이루어지며, 주변부화 과정이 심화될수록 도리어 중심성이 커지는 체제인 것이다. '도시속의 도시'가 또 '시민 중의 시민'이 서로의 곁에서 한없이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떤 세계경제도 국가적 영토를 벗어나 존재하지는 않지만,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어떤 국민경제도 더 이상 하나의 국민경제가 아니다.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일부 지역은 이러한 네트워크에 포함되어 새롭게 성장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지역은 더욱 주변화되고 심지어 이는 하나의 도시, 지역 내에서도 그러하다. 즉, 지역별 불균형의 증대와 내적인 배제의 심화는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의 기본적 특성이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정책과 한국사회의 지역

한국에서 1990년대 이후 도시화의 중요한 특징은 인구 20-100만 규모의 도시들이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점이다. 이 도시들은 지역적으로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특히 수도권 지역의 중간규모 도시들인 수원, 성남, 안양, 부천, 광명, 평택, 안산, 고양, 시흥, 군포, 용인 등은 1990년대 들어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에 따라 1990년이후 경기도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전국 최고인 4.6%에 달했다. 수도권의 지역총생산(GRP) 비중은 1970년 37.2%에서 1999년 46.3%로 증가하고, 수도권의 인구비중은 1970년 28.3%에서 2000년 46.3%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분권화라는 명분하에 지방정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전 세계적 경쟁 속에서 지방정부가 알아서 살아남을 것을 강제한다. 특히 취약한 재정자립도로 대표되는 지방정부의 만성적 재정위기의 제약 속에서, 지방재정력 강화와 지역소득 증대를 위한 지역경제 활성화가 지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산업적 클러스터의 증진이 강조되고, 복지정책에 있어서 지역 공동체의 참여와 활용이 촉진되고, 지역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정책개혁의 중요한 성공조건으로 강조된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초기부터 '국가균형발전'을 주요 국정 목표로 잡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기존의 요소투입형 경제성장 전략이 수도권-지방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여 다양한 비경제효과를 낳고 있다는 진단 하에 균형발전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 신행정수도 건설 등이 주요 전략으로 제시되었으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역활성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지역활성화 정책은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①글로벌 특구를 목적으로 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 '경제자유구역',' 대덕 R&D 특구' 등이 있으며, ②지역산업진흥을 위한 정책으로 '지역산업진흥사업', '지방문화산업클러스터', '벤처기업육성촉진기구', '지역소트프 타운', '혁신클러스터',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이 있다. ③낙후지역 개발을 위한 정책으로 '개발촉진기구', '소도읍육성', '신활력지구' 등이 있고 ④농어촌 지원을 위한 정책으로 '정보화 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 '농촌전통테마마을', '어촌체험관광마을' 등이 있다.
지역활성화 정책의 핵심이 되는 글로벌 특구 사업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비 8.8조원을 비롯하여 총 30.5조원이 투입된 경제자유구역의 경우 투자유치 실적이 극히 저조하며 대부분이 부동산 및 SOC관련 투자에 불과하다. 지역산업진흥 정책은 지역별로 특화된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김대중 정부가 1999년부터 추진했는데 대구(섬유), 부산(신발), 광주(光), 경남(기계) 등으로 주력산업이 선정되어 현재 약 1.9억 원이 투자되었으나 투자규모의 수준에서 알 수 있듯이 본격적인 산업육성 전략이라기보다는 해당 지역 내에 존재하는 기업들에 대한 약간의 지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 외에 낙후지역 개발이나 농어촌 지원 정책의 대부분은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상품화하거나 관광자원을 활용하여 국내 소비자를 끌어 들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2003-04년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 투쟁은 민중들의 삶의 위기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지역 개발주의로 포섭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정세와 주체의 노력에 따라 폭발적인 대중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출처 : 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

지역에서의 정치 지형의 변화와 내적 모순

앞서 살펴 본대로 균형발전은 허구적 수사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과정은 지역간, 혹은 지역 내부에서의 배제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활성화 정책은 지방정부와 지역공동체로 하여금 자본유치와 내수유치를 위한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강제하여 경제위기의 책임을 은폐하고 민중생존의 위기 때문에 위협받는 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을 보충하고 정책적 실행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위기 관리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은 어떠한 정치 지형을 형성할 것인가?
대중들은 지역 발전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영향 하에 이러한 자본과 국가의 전략에 포섭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의 한나라당의 압승은 대중들이 '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역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 줄 기술 관료집단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지역적 차원에서 노동력 재생산 기능의 사유화와 서비스 제공의 주체로서 NGO의 활용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일례로 최근 각 지역에서는 국제결혼한 이주여성의 가족 내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실행과 이를 위한 센터의 건립이 한창이다. 이는 전북지역에서 전북현장연대가 추진했던 국제결혼 이주여성 관련 사업을 모태로 하고 있다. 이렇듯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사회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대중운동의 창발력을 체제내로 포섭하려는 시도들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한편, 지역단위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체제가 강화될 것이다. 단순히 노동문제로만 머물기보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지역현안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합의주의 협조체제가 가동될 수 있다. 이미 지역차원의 노사정위원회는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지방정책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다. 수도권을 비롯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역적 차원의 경제성장이 근본적으로 제한되어 있을 뿐더러 설령 일부 지역에서 해외자본을 유치하여 일부 산업이 성장한다하더라도 이들의 이윤이 지역사회 내로 분배되는 효과는 극히 적다. 따라서 대중들의 불만은 지속적으로 누적될 수밖에 없고 정세적 계기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할 가능성이 높다.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반대 투쟁의 폭발성과 전투성이 좋은 사례다.(혹은 반대로 다음 해 핵폐기물 처리장 주민투표의 패배도 있다.) 한편 이러한 지역정책의 수행을 위해 동원되는 지역의 대중들이나 NGO들과 신자유주의 국가간의 연합의 취약성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NGO들이 완전히 제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적으로 더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적 토대에 기반한 NGO들의 경우 신자유주의 모순의 폭발 속에 급진화 될 가능성도 있다.

지역 운동의 주체적 조건 및 몇 가지 지역운동에 대한 입장의 평가

최근 지역운동을 강조하는 몇 가지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건설이 가시화되면서 산별노조의 부정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다. 산별노조 중앙으로 모든 조직의 자원이 집중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현장의 공동화를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강화와 이를 매개로 한 현장운동의 활성화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현장의 일상적인 정치활동과 이를 통한 주체화에 중점을 둔다는 측면에서 건강한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산별노조의 조직형식적 차원에 사고가 머무르는 한계도 있다.
다음으로 기존의 진보정당-산별노조를 보완하기 위한 시도로서 지역운동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대표적으로 한국노동자사회연구소(이하 한노사연)가 제기한 바 있는 공동체 노조주의와 이에 입각한 개입전략을 간략하게 검토해보고자 한다.
한노사연은 호주의 아만다 타터솔(Amanda Tattersall)의 논지를 인용하여 공동체 노조주의(Community Unionism) 모형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혁신적 모형으로 제시한다. 공동체 노조주의는 노조의 체질과 활동전략까지 상당히 변화함을 의미하는 높은 수준의 모형이다. 이 모형에서는 임금과 노동조건을 넘어서는 지역사회 발전 구상에 노동운동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조합 주요 활동가뿐 아니라 평조합원들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광범위하게 참여한다. 하지만 여기서 선택되는 이슈는 대중성을 갖는 모든 것이 아니라, '근로인민의 사회적 비전'으로 틀지워지면서도 참여 조직들의 상호 이해를 그 속에 소화해내는, 한마디로 당파적인 이슈다.
이러한 공동체 노조주의는 호주 뿐 아니라 주로 영국이나, 미국 등 영·미 권 국가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지역의 계급/민중 공동체와의 연계를 강조하는 킴무디적 해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공동체 노조주의가 노동당을 통해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이해를 대변했던 영국 노동조합이 신노동당 정부의 등장과 신자유주의 개혁의 본격화 속에 새로운 연대의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출현한다. 이들이 모범적 사례로 드는 것은 AFL-CIO의 지역 기반의 조직화 모델(노동조합 도시 프로그램(Union Cities Programme))이나 생활임금 조례제정 운동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은 코퍼러티즘과 인민주의 정치에 취약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는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지역의 공동체가 변모하는 역동적 과정과 공동체의 내적인 모순을 간과하는 경향을 가진다. 이는 공동의 이익을 전제하는, 공동체라는 개념에서 기원하는 한계이기도하다.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사례 속에서 지역 공동체와 노동조합과의 결합은 한국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나 남아공의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과 같은 보편적인 정치투쟁의 결과물이었다. 공동체와 노동조합의 결합은 양자 모두 정세적인 투쟁 속에서 정치화 되었을 때 가능했다. 이러한 점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성장을 간과하는 공동체 노조주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론적 맥락 하에 한노사연은 지역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을 주요한 과제로 주장한다. 지역밀착형, 수요자 중심 노동시장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노동기준과 노동조건의 보편화라는 방향으로 지역노동시장에 개입해야 하며, 이를 통해 양극화 및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막고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다양한 계층에 대한 연대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과제로는 1) 지역의 고용능력의 제고 2) 지역단위 고용서비스 개선 3) 공공부문 하도급에 대한 개입을 통해 지역 내 저임금구조 개선대책 추진 4) 최저임금제도의 지역화 전략(생활임금) 5) 지역 수준에서 노동력의 숙련형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는 실업과 불안정노동의 원인을 호도하려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정책과 공명할 우려가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노동시장 내에서 노동력의 공급을 통제하는 이러한 전략은 역사적으로 노동자 내부에서 일정한 위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돌이켜 볼 때 노동자들의 통합력을 증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한노사연이 두 번째 과제로 제기하는 것은 노동력 재생산 영역에 대한 개입이다. 한노사연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생산관계의 지속적인 유지와 재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노동력의 재생산 영역을 관리하려고 하는데 이는 지역사회 다른 주민들의 생활세계의 필요를 포함하여 집합적 소비영역(주택, 의료, 교육, 보육, 환경 등)을 형성한다고 본다. 하지만 집합적 소비는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탈상품화의 과정이나 생산부문의 잉여의 이전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집합적 소비 영역이 확대될수록 자본주의의 축적활동에 압박이 되고 갈등이 발생하므로 집합적 소비영역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확보하는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합적 소비영역이 확대될수록 자본주의 축적활동에 압박이 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이러한 영역은 자본주의 축적의 유기적 구성물이다.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시대에 이루어진 자본과 노동의 타협이 노동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성과이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은 옹호될 수 있지만 이를 마치 이행(?)의 거점인양 주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복지국가에서의 타협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역량을 감소하고 노동자 정치의 가능성을 억압했다는 점에서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한편 노동자운동 외부로 시선을 돌리면 지역적 차원에서는 다양한 운동의 흐름들이 존재한다.

지역 노동자사회운동의 실천적 방향성

그렇다면 지역적 차원의 노동자 사회운동의 운동형태, 실천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나. 이는 구체적인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필요로 하나 여기에서는 새로운 주체형성과 일상적 활동의 혁신을 통한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적 개조,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연합의 구축, 의견그룹의 형성을 위한 각각의 방향성을 개략적으로 그려 보는 것으로 하겠다.

1) 새로운 주체형성과 일상적 활동의 혁신을 통한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적 개조
지역을 매개로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으로 조직되지 못했던 다양한 노동대중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지역일반노조, 혹은 업종별/산별 지역노조를 중심으로 계속 시도되어 왔으며 조직화에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지역일반노조는 조합원 확대와 경제투쟁에 주력하면서 현장에서 활동가를 육성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지역사회운동과의 연대도 사안별 투쟁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조합원 조직화는 물론이지만, 현장 활동가 육성과 지역에서 사회운동과의 전략적인 수준의 연대 혹은 융합이 이러한 운동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경제적 이해를 지켜내는 것을 넘어서 중요한 생활공동체로서 삶을 조직하고, 사회운동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노동자'의 경계에 있는 (불안정, 비공식노동자, 半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주류적인 노동조합운동은 민주노총 건설과 산별연맹/노동조합 중심의 운영이 고착된 상황에서 지역이 조직적 강제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지역본부, 연맹의 지역본부들은 지역협의체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며, 그나마 각 산별연맹, 노조 내부의 지역체계는 어느 정도 운영되지만 지역적으로 연대가 확장되고 있지 못하다. 이는 노동조합운동이 경제주의·현장주의에 기반해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조직골간을 통해 해결 가능한 경제적 이해에 집중하고, 당장의 경제적 실리와 무관한 지역연대 운동은 부차적이고 임의적인 활동으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을 바꿔낼 필요가 있다.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확대이다. 예를 들어 한·미 FTA나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과 같은 정세적 사안에 대한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이 조합원의 동원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변화와 정치화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이를 위해서 교육적 과정이 강조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운동의 일부이며 노동운동이란 노동자들을 '역사속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역사적이고 총체적인 변혁운동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운동 역시 단순히 노동자들을 당면과제를 해결하고 계급적 이익을 실현해나가는 수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닌 해방의 주체로서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임무 - 보편적인 인류의 해방을 달성해나가는 - 를 적극 실천하는 주체로 형성해나가는 운동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한다.
노동조합 동원사업을 위한 실용적 교육을 넘어 주체의 변화와 형성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지식의 민주화'의 하나의 과정이며 지식의 생산수단 및 교통수단에 대한 기존의 독점을 해체하고 지적 차이를 재생산하는 허구적 지식을 제거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잇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식인과 대중의 민주적 교통은 지식인의 소멸이 아니라 대중의 지식인으로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지식을 돌려주기 위한 상호간의 긴밀한 연계망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단지 전문인에 의해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으로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가르치는 자기-교육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2) 노동자운동의 의제의 확장과 사회운동들과의 연대
노동자 사회운동의 형성을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이 공장, 가족, 주거, 교육 등 노동자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생활조건 및 노동조건과 관련된 계급투쟁들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재생산 과정 전반이 자본주의로 포섭되어 버린 상황에서 노동자대중은 오로지 임금인상을 통해서 만 재생산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이는 역으로 노동자대중을 급격히 수동화시키고 개별 기업의 초과착취 요구에 자발적으로 응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이러한 운동의 이슈를 주도해 온 시민운동 세력이 신자유주의 개혁의 적극적인 파트너로 포섭되어 가면서 그나마 지역적 차원에 존재하는 건강한 운동의 흐름마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일례로 가족과 여성의 문제를 살펴보자. 신자유주의 하에서 가족의 위기는 노동력 재생산의 기능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보육, 간병, 가사 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더욱 강화하고 이는 재생산 자체에도 심각한 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가족제도를 유지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보육, 간병 등에 대한 일정한 사회화가 추진된다. 하지만 이는 여성에 대한 성별 분업이데올로기를 온존시킬 뿐 아니라 시장화된 형태를 취함으로써 해당 영역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여성운동의 주류적 흐름을 대표하는 여성단체연합의 경우 90년대 초반 중산층 여성 중심의 가정주부의 조직으로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러한 흐름에 포섭되어 가고 있다. 특히 지역여성들에 대하여 상담활동, 직업훈련, 방과후 활동지도, 영유아 보육, 실업자 지원사업 등 사회복지 서비스를 여성의 의식화와 조직화나 지역사회에서 여성단체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만 무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노동자운동은 성맹목적 상태에서 여성운동적 의제에 무관심하거나 정부와 여성운동의 주류적 흐름에 실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지금 당장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여성주의적 인식을 확산하는 한편, 관련 노동자(예를 들어 보육노조, 간병인노조 등)들을 중심으로 단지 노동자들의 노동권의 방어 뿐 아니라 여성운동적으로 의미있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3)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연합의 형성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지역적 차원에서 사회운동들의 연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국민중연대 조직발전논의가 진행 중이고 상설적 연대체의 건설이 논의되고는 있지만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남한의 외환위기, IMF 구제금융 협약을 매개로 전면화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계기로 결성된 민중연대는 내부에서 공동의 인식을 확장하기 위한 실천의 부재, 동원 중심의 관료적 운영으로 사회운동들의 통합을 증진하는데 실패하였다. 전국민중연대 조직발전 논의가 어떻게 결정이 날 것인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지만 현실 흐름으로서 이를 고려하며 사회운동연합의 구상을 도모해야 한다.
오히려 이러한 점에서 사안별로 형성되는 대책위를 통해서 새로운 연대운동의 기운을 형성하는 노력도 중요할 수 있다.(평택 서울대책위) 또한 전선운동적 형태의 연대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대운동의 거점을 외부로부터 형성하는 방식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4) 활동가 네트워크의 형성
지역 노동자 사회운동에서 활동가들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자운동 활동가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골간 집행부로 존재하거나 현장조직 / 정치조직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지역 노동자 사회운동에 적합한 활동가들의 결집형태와 임무를 밝히고 이를 위한 현실적 계획이 모색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지역을 매개로 한 활동가 조직들의 형성 및 기존 조직들의 변화, 다양한 활동가 조직들의 네트워킹을 도모해야 하며 이러한 의견 그룹의 구체적인 활동태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주제어
노동
태그
이명박 오바마 정상회의 핵안보